야수는 죽어야 한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51
니콜라스 블레이크 지음, 현재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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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는 죽어야 한다의 작가는 니콜라스 블레이크라고 한다. 이 이름은 필명이다. 본명은 세실 데이-루이스이다. 이 독특한 성()과 연결시킨 하나의 곁가지 이야기. 그 유명한 배우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이 작가의 아들이다.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자이자 연기로 기사 작위를 받은 영국의 이 대단한 배우는 현재 잠정적으로 은퇴한 상태인데, 그 당시 나는 은퇴한 배우의 뉴스를 접하면서 슬하에 자식들을 키우고 스스로의 생활을 죽을 때까지 영위할 만큼 충분히 돈을 벌었구나라는 다소 속물적인(?)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FIRE 족인 셈인데, 이 대단한 배우의 아버지는 아들만큼 본업으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필명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면 글을 써서 발표할 때에 사용하는, 본명이 아닌 이름, 이라고 되어 있는데 니콜라스 블레이크는 원래 자기 본명인 세실 데이-루이스로 시를 쓰는 영국의 계관시인이다. 여기서부터 헷갈릴 수 있는데, 영국에서 손꼽히는 시인인 세실 데이-루이스가 시만 써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우니 니콜라스 블레이크라는 이름으로 추리 소설을 써서 가족을 부양했다는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세 가지. 그래도 그냥 시인이 아니라 계관시인인데도 시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의외로 니콜라스 블레이크의 책이 잘 팔려서 자녀들을 잘 키워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추리 소설을 쓰면서 굳이필명을 썼다는 것.

필명으로 추리 소설을 쓰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하자면 본캐와 구별되는 부캐인 셈인데, 본캐는 명예는 최고지만 돈은 되지 않는 계관시인, 부캐는 잘 팔리는 추리 소설 작가 이렇게 스스로 구별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가장의 책임감과 시인으로서의 책임감 양쪽에서 고민했을 작가가 그려지기도 하고.

이 소설은 필릭스 레인이라는 추리소설 작가가 차사고로 아들을 잃고 복수하기 위해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이 작가의 본명은 프랭크 케언즈라고 하며, 시작부터 작가의 일기로 시작되는데, 우연히 범인의 정체에 다가간 작가가 살인계획을 짜는데 일기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접근이 다소 독특한데, 읽을수록 아무래도 작가가 작정하고 쓴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정하지 않고 대충 쓴 작가야 세상에 없겠지만, 주인공이 필명을 가지고 있는 추리 소설 작가이며,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아들이라는 점이 자꾸 작가 개인사에 접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는... 독특하기는 하지만, 훌륭하지는 않다, 이 정도? 이런 소설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소설로는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살짝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당연히 크리스티 쪽이 뛰어난 것이고, 그래도 이 소설은 나름의 재미는 있지만, 계관시인이라는 작가의 본캐 때문인지 추리 소설 특유의 치고나가는 느낌이 덜하기는 하다. 일기라는 형식을 가져온 것도 결국 작가의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 때문인지 일기가 끝나고 후반부에 탐정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소설이 기우뚱하게 살짝 무너졌다는 느낌도 들고.

함께 실린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머의 브룩밴드장의 비극은 맹인 작가라는 캐릭터나 결말도 깔끔했지만 구성이 다소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이 작가의 최고 소설이 이 소설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옮긴이에 따르면 나는 자신을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작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이력에 대해 알려진 게 없는 것 같다. 그의 출세작은 The wallet of Kai Lung 이라는, 이야기꾼인 중국 사람 Kai Lung 이 주인공으로 한 시대 전의 중국을 무대로 삼아 아라비안 나이트식 우화를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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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간으로 동서 미스터리 북스 50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안동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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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0시간으로, 포켓에 호밀을 두 소설이 함께 실려 있다. 둘 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굳이 이렇게 묶은 이유는 모르겠다. 0시간으로는 배틀 총경이 나오고, 포켓에 호밀을 에는 마플 여사가 나오는데, 배틀 총경이 나오는 소설로만 묶는 게 나았을 것 같다. 물론 마플이나 푸아로에 비해 배틀 총경의 매력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맞다. 마플과 푸아로는 드라마화 되었지만 배틀 총경의 경우에는 내가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0시간으로라는 소설은 영국에서 마플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로 드라마화되었다. 즉 탐정 역할을 마플 여사가 했다는 뜻인데 작가인 크리스티가 살아있다면 섭섭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작가도 어느 정도는 인정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소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리치가 고개를 끄덕이자 배틀은 턱을 쓰다듬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에르큘 포아로가 머리 속에 떠오르는지 모르겠군.”

그 벨기에인 할아버지, 몸집 작은 이상한 사람 말입니까?”

몸집 작은 이상한 사람이라니, 그는 독사와 표범을 합쳐 놓은 것 같은 사나이야. 물이 흐르듯 연설할 때는 말이지. 그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틀림없이 그의 독점 무대가 될 텐데.”

p. 184

 

이 소설은 작가가 스스로 베스트 10에 꼽았던 소설이고, 독자들도 좋아한 소설이라 매력적인 이야기라서 제작진도 드라마화 하고 싶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사실 범죄가 처음 시작하는 부분은 마플 여사가 등장하는 카리브해의 비밀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0시간으로, 원제는 Towards Zero 로 다른 출판사에서는 0시를 향하여 라고 번역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더 게임: 0시를 향하여 라는 드라마도 최근에 방영되었는데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모티브를 따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그 드라마를 본 것이 아니기에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제목이 붙은 것일까? 소설의 시작을 보자.

 

나는 잘 씌어진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네. 하지만 대부분 첫 부분이 나쁘지! 모두 살인으로 시작되거든.

그러나 살인이란 종말에 와서 이루어져야 하네. 이야기는 그 훨씬 전부터 시작되어 있었지. 경우에 따라서는 몇 년 전부터 어떤 사람들을 어느 날, 어느 때, 어느 장소로 이끌어 가며 그 요인과 사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네.”

p. 14

 

그러니까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새로운 플롯의 소설을 쓰고 싶다는 크리스티의 생각이 등장인물인 트리브스의 대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책의 맨 앞에는 애거서 크리스티가 로버트 그레이브즈라는 사람에게 이 소설을 읽으며 날카로운 비판력을 발휘해 달라는 말을 썼는데, 거장의 뿌듯함과 자랑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 같아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다. 좀 더 직접적으로 의도가 드러나는 대사도 나온다.

 

그렇지, 이 시간에도 살인의 막이 열리려 하고 있다. 만일 내가 유혈과 범죄의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면, 먼저 난로 앞에 앉아 편지를 읽고 있는 한 노인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거야.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0시간으로 다가가는 노인이니까. 0시간으로.......’

p.16

 

 

두 번째로 실린 포켓에 호밀을 이라는 소설은 마플이 등장하는 소설이지만, 소설의 반쯤 되어서야 늦게 등장한다. 이 소설 또한 시작하기 전 첫 단편들을 책으로 펴낼 기회를 준 블루스 잉글럼 씨에게 바친다는 말이 있는데, 아가사 크리스티의 단편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집은 마플이 처음 등장하는 화요일 클럽의 살인으로 기억하는데, 첫 단편집은 한참 전에 이미 나온 푸아로 사건집으로 알고 있다. 이 소설은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인물에 대한 묘사가 냉철하다. 오히려 처음 이 책을 황금가지 판으로 접했을 때보다 지금 읽으면서 작가의 통찰에 놀라는 부분이 더 많았다.

 

미스 마플은 패트리시어를 이 집에 있게 하는 것이 어쩐지 가엾게 느껴져 견딜 수 없었다. 이 여자는 이처럼 호화스러운 장식 속에 둘러싸여 있는 것보다 올굵은 천으로 지은 스포츠 옷차림으로 말이나 개를 상대하는 전원 생활 쪽이 훨씬 어울리리라고 여겨졌다.

세인트 메리 미드 언저리에서는 어린 말의 경매 시장이 가끔 열리는데, 그때에도 이 젊은 부인과 같은 타입의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미스 마플은 이 굉장한 저택 안에 틀어박혀 어딘지 불행한 그림자가 엿보이는 부인에게 친근감을 느꼈다.

p.386

 

고아들은 다 그렇지요. 그래서 예의범절을 대강 배워 알게 한 다음 하녀로 내보냈어요. 그런데 참아내지 못하고 거기서 뛰쳐나와 술집에 일자리를 구했지요. 그 나이의 아이들이란 모두 그런 생활을 그리워한답니다. 자유롭고 화려한 생활이라고 여기는 거지요.”

나는 그녀를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만, 가엾은 아이였겠지요?”

그렇지 않아요. 정반대지요. 아데노이드가 있어서 얼굴은 여드름투성이고 지능 발달도 굉장히 뒤떨어져 있어요. 그 애 자신은 줄곧 남자친구를 바라고 있었지만 남자들은 전혀 상대해 주지 않았으며, 같은 또래 아이들로부터 늘 이용만 당하는 어리석은 아이였지요.”

잔혹한 느낌이 드는군요.”

인생 자체가 잔혹한 것이니까요. 다만 이것은 말할 수 있겠지요. 세상이 글래디스 같은 아이를 다루는 방법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는 것 말이에요. 그런 아이들은 영화 따위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는 자신에게도 행운이 찾아오리라는 터무니없는 꿈을 가지고 있답니다.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그 꿈에서 깨어날 날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요. 글래디스도 아마 술집이나 음식점에서 크게 실망을 맛보았을 거예요. 그런 생활이 조금도 화려한 게 못되며 오히려 생활고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임을 알았겠지요. 그래서 다시 하녀로 돌아가고 싶어졌던 거예요.”

p.387

 

모든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데 대한 불만의 빛이 짙게 떠올라 있다. 본디 가난한 병원 간호사 생활 쪽이 훨씬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부자와 결혼하여 돈과 여가는 충분히 있지만, 그런 것으로 행복해지지는 않은 듯 보인다. 옷을 사고, 책을 읽고, 맛있는 것을 잔뜩 먹어도 그녀는 조금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렉스가 죽은 날 밤 퍼시벌 부인은 전에 없이 생기 있고 발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결코 그녀의 가슴속에 사람의 죽음을 기뻐하는 악마가 깃들여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밤낮으로 둘러싸고 있는 죽은 권태의 세계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p.418

 

"남자는 역시 재산을 목표로 삼는 걸까요?"

"그야 물론이지요. 당신은 그렇게 여기지 않으세요?"

"우리 마을에 에리스라는 젊은이가 있는데, 같은 목적으로 철물가게 딸인 마리언 베이츠와 결혼했어요. 마리언은 부잣집 딸이라 전혀 세상 물정을 모르고 완전히 그에게 빠져 남자의 속셈을 일러주어도 도무지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요. 그래도 결과는 좋아서 지금은 부부 사이가 원만하답니다. 에리스나 제럴드 라이트 같은 타입의 젊은이는 가난한 집 아가씨와 연애 결혼을 했을 경우 불쾌한 성질이 나타나게 마련이지요. 생활이 고통스러워지면 마치 가난한 여자와 결혼했기 때문이라는 듯 여자를 학대하기 시작해요. 그와 반대로 부잣집 사위가 되면 언제까지나 여자를 소중히 여기지요."

p.472

 

요즘 세상에 아이들이 자라기를 기다려 복수를 꾀하려는 그런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은 믿을 수가 없어요. 요즘은 아이들 쪽이 훨씬 생각이 앞서 있어서 그런 터무니없는 명령은 들어주지 않거든요. 하지만 기회가 있으면 놀라게 하고 고통을 주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바로 이 점을 살인자가 잘 이용한 거예요.”

p.507

 

그렇다. 랜슬럿 포터스큐는 머리가 좋고 대담하다. 그런 만큼 또한 터무니없는 점도 있다. 어쩌면 목숨이 달아나게 될 위험도 예사로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해보겠습니다!”

경감은 힘주어 말했으나 다시 의혹의 구름이 자꾸 솟아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추측이지요.”

그건 그래요. 하지만 추측이라도 일단 믿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여기지 않으세요?”

그렇고말고요, 그러니까 해보는 거지요. 그런 타입의 사나이는 지금까지도 가끔 다뤄 보았으니까요.”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요. 나도 역시 그래요. 그래서 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범죄자 타입이라는 말씀입니까?”

아니오, 이번 경우는 그렇지 않아요. 패트를 보고 그 사람의 일이 머리에 떠올랐어요. 패트는 좋은 부인이에요. 하지만 언제나 불행한 결혼만 하는 운명에 놓여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그렇지 않은가 하고 그 사나이를 관찰해 볼 생각이 들었지요.”

p. 512

 

이 마지막 부분은 특히 인상 깊었다. 결혼을 세 번 한 여성이 그 여성만 놓고 보면 호인(好人, good-natured person)이지만, 매번 불행한 결혼을 했다는 것. 즉 뒤집어 말하면 매번 같은 유형의 남자들에게 끌리고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인데, 앞의 두 남편 또한 머리가 좋고, 대담한 사람들이었다고 마음 속으로 수긍을 하게 된다. 첫 번째 남편은 공군 조종사로 전쟁에서 사망했고, 두 번째 남편은 요즘 식으로 하면 경제 사범으로 자살했으니까. 터무니없고 목숨이 달아나게 될 위험도 무릅쓰는 남자에게 반복적으로 끌린다는 것은 패트의 특성이고, 그 특성을 토대로 패트의 현재 남편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추리한다는 것인데, 역시 마플 다운 추리이자 크리스티 다운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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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은 스키를 타지 않는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49
패트리샤 모이스 지음, 진용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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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떠올렸던 것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죽은 자는 말이 없다 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en Tell No Tales 이다.

이 영화는 조니 뎁의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중 하나로, 참고로 이 영화의 관객들이 매기는 한줄평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은 한줄 평 중 하나는 죽은 자는 말이 많았다 이다...

사실 이 표현은 관용어라고 하는데, 비밀을 아는 사람을 죽여버린다거나 죽은 사람은 말을 할 수 없으니 살아 있는 사람 마음대로 사건의 실체가 결정되어져 버린다는 뜻이라고.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인 죽은 사람은 스키를 타지 않는다 Dead Men Don't Ski 는 제목만 봐서 어느 정도 사건의 실체를 추리할 수 있게 만든다. 죽은 사람은 몰랐으면 좋을 사실을 알아버려서 죽은 것이고, 그렇다면 뭔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이 범인일 것이고. 이 제목을 감안하고 보면 사실 범인이 금방 추리되기도 한다.

스키장과 마약 밀수. 이 소설이 나온 1959년이라면 배경도 소재도 신선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시각으로는 오히려 고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티베트 경감 개인의 캐릭터가 아주 매력적이지는 않다는 것도 아쉬운 점.

 

혹시나 몰라 적어놓은 패트리시아 모이즈의 작품들

1. 죽은 사람은 스키를 타지 않는다(1959)

2. 가라앉은 선원(1960)

3. 죽음의 회의록(1962)

4. 살인 아 라 모드(Murder a la Mode, 1963)

5. 흐르는 별(Falling Star, 1964)

6. 허공으로 사라지다(Johnny Under Ground, 1965)

7. 환상 살인(Murder Fantastical, 1967)

8. 죽음과 상냥한 아저씨(Death and the Dutch Uncle, 1968)

9. 죽음의 선물(Who Saw Her Die, 1970)

10. 눈과 죄악의 계절(Season of Snows and Sins,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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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시간의 딸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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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독특한 책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글랜트. 범인을 뒤쫓던 중 맨홀에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한 상태다. 다행히 그 범인은 잡혀서 형을 살고 있고 글랜트 경감도 생명이 위험한 것은 아니고 다리가 다 나으면 퇴원할 수 있다. 그래도 몸은 답답하고 마음은 화가 나는 게 당연한 이 주인공이 병실에 걸린 리처드 3세의 초상화를 본 것을 계기로 추리를 시작한다.

무슨 추리냐고?

어린 왕자들을 죽이고 왕위를 뺏은 극악무도한 이 왕의 역사가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다는 의심을 가지고 실제로 왕자들을 살해한 자는 리처드 3세가 아닐수도 있다는 의혹에서 출발한 추리.

 

여기서부터는 약간의 상식이 필요한데, 리처드 3세는 우리 식으로 하자면, 우리 역사의 세조(수양대군)와 닮았다. 그러니까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조카를 죽였는데, 우리 역사에서 세조가 왕위에 올라서 한 업적과는 별개로 조카를 살해까지 한 것이 잔인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뭐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나마 세조는 오래라도 살아서 여러 업적을 세울 시간이 주어졌고, 그러다보니 약간은 그의 잔인함이 희석(?)되었다는 느낌은 드는데, 리처드 3세는 재위기간이 2년밖에 되지 않아서 아마도 잔인함이 더 부각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나는 역사에 대해 문외한이니 잘은 모르겠으니 이 정도로 하고...

 

아무튼 이렇게 잔인한 왕이, 알고 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추리하는 내용인데, 그럼 어떻게 추리를 하느냐? 병실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지인들의 도움을 받는다. 지인들이 가져다주는 여러 서적들을 바탕으로 추론해 나가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이게 무슨 뻘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신기한게 소설을 읽다 보면 점점 스며들어가는 매력이 있다. 글랜트 경감의 시리즈가 여러 권이 있다고 알고 있는데, 그 시리즈 중에서도 이 소설은 아마 독특한 추리 소설일 것이고, 그리고 추리 소설 전체로 놓고 봤을 때도 형식이 아주 독특하고, 또 재미있다.

 

리처드 3세에 대해서 찾아봤더니, 놀랍게도 2012년도에 유실된 것으로 알려져 내려오던 유해를 고고학자가 찾아내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DNA 검사를 거쳐 리처드 3세로 판명된 이 유골은 우여곡절을 거쳐 재장례가 이루어졌으며, 그 이야기와 함께 여러 가지 아름다운 후일담도 함께 있다. , 그리고 저자의 생각처럼 리처드 3세가 그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는 사람들도 소수 있지만,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아마 리처드 3세가 왕자들을 죽인 범인이 맞을 것이라고.

 

이 책은 리처드 3세에 대한 진리는 시간의 딸 뿐 아니라 로버트 바의 건망증 있는 사람들도 함께 실려 있다. 매번 느끼는 건데 동서미스터리북스의 편집은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이 더 재미있었는데, 찾아보니 이 작품 또한 로버트 바 작가의 유제니 발몽 시리즈 중 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가는 셜록 홈즈의 코난 도일 작가와 절친이자 세계 최초의 셜로키언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홈즈의 패러디 소설도 썼다고 한다. 다른 소설은 잘 모르겠으나 이 건망증 있는 사람들(출판사에 따라 건망증 클럽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듯)은 엘러리 퀸을 비롯한 전문가 열한 명이 선정한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단편 열두 편 중 한 편으로 선정되었으며, 에도가와 란포가 선정한 단편 베스트 10에도 들어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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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할 때는 동서 미스터리 북스 47
제프리 허드슨 지음, 홍준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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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허드슨이 누군가 했더니 그 유명한 마이클 크라이튼이다. 마이클 크리이튼이라면 의사 출신 작가로 그의 수많은 작품이 영상화되었으며, 대표적인 작품에는 쥬라기 공원이 있다. 드라마 ER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고. 그래서인지 이 소설도 결말은 초반부터 대충 예상이 되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전개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고, 무엇보다도 등장인물에게 마치 현미경을 갖다 댄 것처럼 촘촘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익숙한데도 재미있는, 아니 익숙해서 재미있는 그런 책.

 

210p

난 가끔 생각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정치이야기 같은 건 하지 않을까 하고요. 의학 이야기뿐이거든요.”

나는 의사는 무정치적이라고 하던 아더의 말이 생각나서 빙긋 웃었다. 아더는 언제나 의사는 진정한 정치적 시야를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치를 생각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군대와 같은 거지.” 그는 언젠가 말했다. “정치적인 사고방식은 직업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거야.”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좀 과장해서 말한 것이지만, 아더의 말에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더는 사람들에게 쇼크를 주고 초조하게 만들고 부추기기 위해 무슨 일이든 허풍스럽게 과장해서 말한다. 참으로 그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한편 그가 진실과 허위, 진실과 과장을 구별짓는 가느다란 선에 매력을 느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의견을 던져 누군가 그것을 집어든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려는 것이다. 취해 있을 때면 특히 더 그렇다.

내가 아는 의사 가운데 술에 곤드레가 되는 것은 아더뿐이다. 다른 의사들은 상당한 양의 알코올을 마셔도 거의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한동안 말이 많아지고 떠들썩하다가는 곧 존다. 아더는 몹시 취했을 때면 특히 화를 잘 내며, 아무도 보이지 않는 듯 거침없이 행동한다.

나는 그의 이런 버릇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얼마 동안 그것을 병리적 명정(酩酊)의 한 종류이리라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다른 사람이 자제하려고 애쓸 때 마음껏 행동하고 싶어지는 자기탐닉의 한 종류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에게는 이 탐닉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마음대로 행동할 구실로서 스스로 탐닉을 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는 자신의 직업을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의사는 많다. 존즈는 연구에 붙잡혀 마음대로 돈을 벌 수가 없다고 싫어했고, 앤드류스는 비뇨기과가 그에게서 아내와 행복한 가정생활을 빼앗아갔다고 싫어했으며, 피부과의인 텔서는 환자가아니라 정신병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싫어했다. 이러한 의사들 가운데 누군가와 이야기해 보면 반드시 불만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들은 아더와는 다르다. 아더는 의사라는 직업 그 자체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어떤 직업에나 그 자신과 동료를 경멸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더는 극단적이었다. 그는 마치 자신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불행에 빠지게 하고, 화를 내고, 슬퍼하기 위해 의사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나는 이따금 그가 중절해 주는 것은 동료들이 자신을 싫어하게 만들고 불쾌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게 아닐까생각할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는 취하지 않았을 때는 임신중절에 대해 지성적인 의견을 조리있게 편다. 그러나 취하면 감정과 태도와 자세와 자기만족을 이야기한다.

아더는 의학에 적의를 느끼고 있어, 취해 있다는 구실로 그 적의를 발산시키기 위해 술을 마시는지도 모른다. 그는 취하면 다른 의사들과 지나치게 심하다고 여길 만큼 크게 말다툼을 한다. 언젠가 그는 저니스 보고 그의 아내에게 중절을 해주었다고 말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저니스는 급소를 찔린 듯한 얼굴을 지었다. 저니스는 가톨릭 신자지만, 그의 아내는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아더는 화기애애했던 디너파티를 엉망으로 만들고 말았다.

나도 그 파티에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 일이 걱정되었다. 며칠 뒤 아더는 나에게 사과했다. 내가 곧 저니스에게 사과하라고 말하자 그는 사과했다. 이상하게도 저니스와 아더는 그로부터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으며, 저니스는 중절에 찬성하게 되었다. 아더가 그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어떤 식으로 설득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설득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아더를 잘 알고 있으므로 그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을 중대하게 생각한다. 그의 출생과 육체적 특징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의사 중에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많아 그들에 대한 우스갯소리도 많다. 그들의 에너지, 영리한 두뇌, 성공을 쫓는 열의에 대한 경계심이 담긴 농담이다. 유대인들이 듣고 있는 그런 종류의 우스갯소리이다. 아더는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이 전통과 싸웠고, 또 보수적인 그의 가정과 싸웠다.

그는 반대방향으로 치달려 과격해져서 좌익에 가담했다. 그가 온갖 새로운 것을 자진해서 받아들이는 게 그 좋은 증거이다. 그는 보스턴의 산부인과의들 가운데 가장 근대적인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곧 그것을 산다. 이 일에 대해서도 우스갯소리가 오갔다. ‘새로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동양인이라고. 그러나 아더에게 있어서는 동기가 다르다. 아더는 전통과 습관과 인정받고 있는 방식과 맞서싸우는 것이다.

아더와 이야기하노라면 언제나 새로운 생각에 가득차 있는 듯이 여겨진다. 그는 파파니코로 염색의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지금까지 해온 내진은 시간낭비이므로 그만두자는 것이다. 그는 배란을 나타내는 기초체온은 지금까지 발표된 것 이상으로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난산이라 하더라도 분만 때 겸자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만할 때 전신마취법을 그만두고 많은 양의 트랑키라이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생각과 학설을 들으면 처음에는 감명을 받는다. 그러나 곧 그는 모든 기회에서 결점을 찾아내어 전통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임신중절을 시작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동기를 따져물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우 언제나 잠자코 있다. 동기는 그 일의 궁극적인 결과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올바른 동기를 가지고도 잘못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그런 경우 그는 패배한다. 그러나 잘못된 동기를 가지고 올바른 일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그는 영웅이 된다.

 

226p

어찌된 까닭인지 아는 학생시절과 퍼플 넬이 생각났다. 퍼플 넬은 78살 된 알콜 중독 환자였는데, 그녀가 우리의 해부용 시체가 된 것은 죽고 나서 1년이 지난 뒤였다. 우리는 그녀를 이라고 불렀다. 해부하기 쉽도록 우리는 여러 가지 취미가 좋지 않은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나는 차갑고 축축하게 젖은 고약한 냄새가 풍기는 살을 베다가 그리고 피부를 걷어올리다가 그대로 도망쳐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일이 기억난다. 넬과 관련된 일을 얼른 끝내고, 그녀를 잊고, 그녀의 냄새를 잊고, 죽은 뒤 오랜 시간이 지난 살의 촉감을 잊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랬다. 사람들은 차츰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해부를 끝내고 모든 신경과 혈관을 하나하나 가르쳐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맨 처음 해부용 시체와의 쓰디쓴 경험을 맛본 뒤 나는 병리에 흥미를 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나는 해부를 좋아하게 되었고, 새로운 검시해부를 할 때마다 시체의 냄새와 모습을 마음에서 쫓아버리는 데 익숙해졌다. 그러나 검시해부는 다른 점이 있어 이상한 매력이 느껴진다. 검시해부에서는 막 죽어 병력(病歷)을 알 수 있는 사람을 다룬다. 인격이 없는 해부용 시체가 아니라 인생의 싸움을 겨루다 막 패한 사람을 다루는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그가 왜 어떻게 패했는가를 찾아내어 같은 싸움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부만을 목적으로 하여 방부제를 써서 죽은 뒤 오래도록 보관해 둔 해부용 시체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 이 단락은 220p에서 221p에 걸쳐 똑같이 등장하는데 아마 편집의 실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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