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모자의 비밀 동서 미스터리 북스 66
엘러리 퀸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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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여흥에서 우리가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혐의 과잉과 사실 빈곤이라는 것입니다."

치우침이 없는 추리소설이자 흠잡을데 없는 데뷔작이다. 피살된 사람과 용의자들, 범인, 퀸 부자와 그 주변 인물들까지 캐릭터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서술도 탁월하다. 이 작품으로부터 이어지는 퀸의 국명 시리즈는 트릭에 있어서는 데뷔작보다 발전했어도 인물에 대한 묘사는 생동감을 잃은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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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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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렸을 때는 내게 사랑하는 힘이 넘쳤지만 이제는 그 사랑하는 힘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이 첫 문장은 참 인상적이다. 이스라엘 작가의 책은 거의 읽어 본 것 같지 않은데, 영미권의 이름들이 사실 성경에서 온 이름들이 많아서 등장인물의 이름은 낯설지가 않고 익숙한데, 지명이나 분위기는 또 생경해서 그 사이에서 오는 재미가 있었다.

 

책을 죽 읽어보니 작가의 경우 이 책을 출간하고 나서 두 가지 반응을 다 겪은 것 같다. 하나는 남자 작가로서 여자 화자를 내세워서 소설을 쓴 것이 의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반응, 하나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반응. 아마 그 두 가지 사이에 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이에 대해 어떠한 변명이나 미화도 없이 어느 순간 한나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썼다고 하는데 우리가 살다 보면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특히 나와 생활을 같이 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하고 판단할까 라는 궁금증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화자는 한나이지만, 주인공은 미카엘이라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제목도 나의 미카엘이고, 과장하면 한나의 모든 안테나의 끝은 미카엘에게로 향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굉장히 섬세하면서도 우아하고 슬프면서도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소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지만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서 한나가 겪는 마음의 변화에 몸의 변화는 상당 부분 누락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엄청난 신체의 변화와, 그러한 신체의 변화의 급격함 때문에 당연히 수반될 수밖에 없는 정신적 변화에 대한 부분은 빠져 있다는 아쉬움. 이것은 남자 작가로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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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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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는 예전부터 많이 들어보았으나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책의 소개를 보면 출판 이후 이른바 니나 신드롬까지 불었다는데, 그 시대라면 모를까 요즘 시대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낡아 보이는 주인공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 평가가 박한가? 그만큼 내가 더 나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굳이 태클을 걸어보자면, 중년 남성의 삶의 의미란 딸만큼이나 어린 여성과의 사랑이 아니면 찾아낼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삐딱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과연 이것이 사랑이 맞는지, 그저 지나가버린 자신의 젊은 날을 붙잡고 싶어 발버둥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평탄하게 살아온 니나의 언니가 니나를 부러워하듯이. 정작 젊은 시절 열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니나는 언니의 그 안정을 부러워하고 있는데. 슈타인이 실제 니나를 사랑했는지 아리송하다. 열정적이고 불완전한 젊음 그 자체를 붙잡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대놓고 젊은 여성과 결혼을 하는 남성이 오히려 털털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도 사랑일 수 있다. 숨이 막히는 사랑이겠지만.

슈타인은 그렇다치고 니나는 어떠한지. 학교 수업을 거부할 정도로 안락사를 반대하면서 정작 남편의 조력 자살에 협조하는 모순. 그 모순 또한 인간의 한 부분인 것은 맞는데, 한 인간 안에서의 변화에 대한 통찰 수준까지 소설이 가지는 않는 것 같다.

전후 세대의 고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성숙한 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 감정에만 몰두하는 니나는 그저 자기 파괴적인 본능에서 성숙해진 것 같지는 않고, 소설 자체로만 보면 매력적인 소설은 맞는데, 인물이 매력적인 것은 모르겠다. 신드롬까지는....... 정말 모르겠다. 분명히 니나는 작가의 모습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인물일텐데 작가에 대해 찾아보다가 한때 나치주의자였다는 경력이 드러났다고 한다. 스스로를 반나치 인물로 열심히 포장하며 살았다는 것인데, 한 때 이 소설과 니나를 열렬히 마음에 품었던 사람들에게는 아픈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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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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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1967년에 출판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쿤데라는 1948년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입당했으나 1950년에 당에 반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당에서 추방당했고 1956년 재입당이 승인되었으나 1970년에 또다시 당에서 추방당한다. 농담은 1967년에 쓰인 작품이다. 가벼운 농담마저 허용하지 못하는 사회, 그 사회에서 축출되어 버린 주인공을 감안하면 당연히 본인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찾아보니까 이 책의 원제는 Zert 인데, 아마 체코슬로바키아어로 농담이라는 뜻인가 보다. 체코어와 슬로바키아어는 사실상 사투리 정도로 거의 비슷하다고 하니까. 1975년에 프랑스로 망명한 쿤데라는 현재는 체코국적을 회복한 상태인데,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시기가 1993년이라고 하니 올해로 딱 30년인 셈이다. 1993년부터 쿤데라는 프랑스어로 글을 써왔다고 하며, 이전에 출간된 작품들도 작가 본인이 직접 프랑스어로 번역했다고 한다. 체코라는 나라의 역사도, 쿤데라의 일생도 풍파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체코라는 나라의 역사를 알아보면 도움이 되겠지만, 비전공자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그것은 다음 기회에....... 그리고 쿤데라의 소설은 역사적 배경을 몰라도 재미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주인공에게 큰 영향을 준 여자는 총 3명인데, 3명의 여자와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어떻게든지 농담적인 요소가 있다. 첫 번째 여자에게 보낸 엽서의 농담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이 소속된 곳에서 쫓겨나고 지위를 잃으며 추락한다. 그러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두 번째 여자와의 만남 과정은 당사자들은 절절하겠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제 3자가 들으면 웃어버릴 부분은 분명히 있다. 세 번째 여자와의 만남은 과연 이 만남이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조마조마하면서 보다가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게 되면 이것은 그야말로 단어 그대로의 Toilet Humor . 사실 이 소설 전체가 거대하고 촘촘하게 잘 짜인 블랙코미디이며, 인생이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채플린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흔한 클리셰로 AI가 농담을 할 줄 알고 이해하게 되면 인간성을 획득한 것으로 묘사되는 예술작품이 참 많은데, 이것이 제거된 사회는 그야말로 로봇들만의 사회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robot도 체코어라고 한다. 영어가 아니라.

자꾸 단어에 집착하면서 리뷰를 쓰고 있는 것 같은데 자신의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로 소설을 새롭게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 반복해서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작가는, 화가나 무용가와는 달리 특정 언어로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사람이 아닌가. 쿤데라의 작품도, 작가 개인에 대한 호기심도 계속해서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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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집의 수수께끼 동서 미스터리 북스 65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이철범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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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이 책의 작가는 그 유명한 곰돌이 푸를 탄생시킨 바로 그 작가다. 사랑스럽고 씩씩하고 미소를 짓게 하는 푸. 이 소설도 그렇다. 사랑스럽고 씩씩하고 미소를 짓게 하는데 딱 거기까지다. 범인도 트릭도 너무 뻔하게 그것도 초반에 노출되어서... 차라리 아기자기한 작가의 매력을 십분 살려서 살인 말고 절도와 같은 소재를 가지고 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의 말미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도 하나 실려있다. 아더 모리슨이라는 작가의 랜턴관 도난사건이라는 단편인데 오히려 이 작품이 아기자기하고 기발한 맛이 있다. 동서미스터리북스가 작품들을 엮는 방식은 여러모로 불만이 있기는 한데 뭐 한두번 있는 일은 아니고... 아더 모리슨은 이 작품 말고도 탐정 머턴 휴이트 시리즈를 장편 1권과 단편집 4권을 썼다고 하는데 독립된 책으로 묶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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