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오렌지의 비밀 동서 미스터리 북스 68
엘러리 퀸 지음, 김우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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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벨의 배웅을 받으며 커크네 아파트에서 나왔을 때, 퀸은 허심탄회한 기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기분도 아니었다.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미간을 모으고,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는 머릿속의 불소화물을 곰곰이 짓씹고 있었다.

제목을 꼭 국명 시리즈로 맞춰야한다고 집착한 탓인가. 억지스럽다고 느껴진 부분도 있는 데다가 생각보다 범인을 쉽게 추측해낼수 있어서... 그래도 등장인물과 상황 묘사는 상큼한 면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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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7
S.S. 반 다인 지음, 정광섭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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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의 예술적 본능에 대해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다. 6월의 그날 아침 번스를 위해 시작된 멜로드라마 같은 모험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그의 penchants(성향)과 내면적인 경향에 대해 얼마쯤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미술에 대한 그의 흥미는 그 개성 가운데 중요한, 거의 지배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요소였다. 나는 지금까지 그런 인물--겉으로 보기에는 더없이 변덕스러우나 속으로는 견실한 인물--을 본 적이 없다.

번스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 애호가'라고 부르기 쉬운 타입이다. 하지만 그를 예술 애호가라고 부르는 것은 적당치 않다. 번스는 훌륭한 교양과 재기를 갖춘 사람이었다. 출신성분으로 보나 천성으로 보나 귀족적이었으며 행동도 더없이 고상했다. 그의 말씨나 태도에는 온갖 저속한 것에 대한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경멸이 나타나 있었다. 가끔 그를 대하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사이비 신사로 보았다. 그러나 그의 겸양과 경멸은 결코 신사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사연하는 태도는 지성적인 동시에 사교적이었다. 나는 그가 천박한 악취미를 싫어한 이상으로 미련함도 싫어했다고 믿는다. 그가 'c'est plus qu'un crime, c'est une faute(그것은 죄악 이상이다. 그것은 과실이다)'라는 푸셰의 유명한 문구를 인용하는 걸 나는 몇 번 들었다. 그리고 그는 글자 그대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방 안으로 처음 들어가자 번스는 외눈안경을 엄숙하게 조정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한 그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번스가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정신이 긴장해서 주위의 인상을 재빨리 파악하려고 할 때 그는 늘 외눈안경을 썼기 때문이다. 외눈안경 없이도 충분히 잘 보이는 데 그것을 쓰는 것은 지적 지상명령의 결과인 듯했다. 그것을 씀으로써 시각이 맑아지면 정신을 맑게 하는 데 미묘한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었다.

매컴은 얕보듯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진상이 드러났거나 드러날 가능성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자기에게 불리한 일을 고백하겠나?"
"정말이지 한심하군, 매컴. 그 천진스러운 귀에 privatissime et gratis(살짝 무료로) 속삭여줄까? 자백에 대해서는 언제나 여러 가지 많은 동기를 추측해볼 수 있다네. 공포나 강박관념의 결과일지도 모르고 또는 방편, 모성애, 의협심, 정신분석학자들이 말하는 열등감, 망상, 그릇된 의무감, 왜곡된 자만심, 쓸데없는 허영심 등 그밖에도 수많은 원인을 들 수 있지.
따라서 자백은 온갖 형식의 증거 가운데 가장 믿을 수 없는 것이라네. 법률이란 우스꽝스럽고 비과학적이지만, 그래도 살인사건에서의 자백은 다른 증거의 뒷받침이 없는 한 물리쳐지고 있지."
"자네 말솜씨가 굉장하군그래. 감탄했는걸. 법률은 모든 자백을 추방하고 온갖 물적 증거를 무시하라는 것이 자네의 주장인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사회는 모든 재판소를 폐쇄하고 형무소를 폐지해야 할지도 모르네."
"전형적인 법이론상의 non sequitur(이론의 비약)로군."

"아주 간단한 추리였군. 그런데 여자가 여기서 차를 마셨다는 건 어떻게 알았나? 누군가가 몰래 귀띔해주었다면 모르지만."
"그것을 설명하려면 창피를 무릅써야겠는걸. 실은 저기 있는 사모바르의 상태를 보고 짐작했다네. 어제 보니 쓴 그대로 더운물도 빼지 않고 닦지도 않았더군."
매컴은 상대를 얕보듯이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별수 없이 물적 단서라는 천박한 법률가의 수준으로 떨어진 모양이군."
"그래서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있잖나. 심리적 추리만으로는 사실을 in esse(있는 그대로의 것)로 추정할 수 없고 다만 in posse(가능성)로 추정할 뿐이라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조건도 고려해야지. 이 경우 사모바르에 나타나 있는 조건은 가정이나 추정의 기초 자료로써 유용할 뿐인데, 여기에서 가정부가 등장하게 된다네."

《벤슨살인사건》은 첫 작품이니만큼 파이로 번스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성격, 풍모, 교양, 취미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도록 세밀히 묘사했다. 번스의 탐정법은 매컴 검사와의 문답에도 있듯이 모든 물적 증거를 무시하기를 극력 주장하고(번스, 의견을 말하다에서), '진실을 아는 유일한 방법은 범죄의 심리적 요인을 분석하여 그것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진실한 단서는 심리적인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처녀작에 이어 제2작 《카나리아살인사건》이 간행되었는데, 여기서도 이 방법을 높이 쳐들며 포커에 의한 범죄 추정을 시도하고 있지만 지은이에 의하여 발견됨직한 형편 좋은 의도적인 구성이니만큼 이 방법으로는 범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 수 있어도 그 용의자의 급소를 찌르기에 충분할 만큼의 것은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제3작 《그린살인사건》 이후 그는 이 방법을 단념해 버리게 되었다.
제3작 《그린살인사건》은 1928년 4월에 간행되어 나오자마자 한 달 만에 온 미국의 최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세 번째 작품에 의한 반년 동안의 수입은 그의 15년 동안에 걸친 문단생활의 총수입보다 훨씬 많았다.

그는 애초에 세 권만 쓰고 그만둘 생각이었으나 <아메리칸>지의 권유를 물리치지 못하여 《비숍살인사건》을 쓰게 되었다.
"이번에는 여섯 권만 완성하고 그 이상은 쓰지 않겠다. 반 다스라는 짝수는 기분 좋은 질서 바른 숫자이다. 한 작가에게 여섯 편 이상의 미스터리소설을 구상할 능력이 과연 있는지 나는 의심스럽다. 내게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무한하게 미스터리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나는 여섯 권으로 끝낼 것이다. 큰 부자가 되는 것을 나는 그다지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그 곱절인 열두 편의 미스터리소설을 쓰고, 미국 미스터리소설 사상 획기적인 작가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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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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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얼마 동안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아주 열심히 일했다. 그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 식사 때까지 진찰하고 수술하고 심지어는 해산을 돕는 일까지 했다. 부인들은 그에 대해서, 신중하고 질병을, 특히 아이들과 여자들의 질병을 잘 진단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일이 단조롭고 전혀 무익하여 그를 매우 권태롭게 만들었다. 오늘 서른 명을 진찰하면, 다음 날에는 서른다섯 명으로 늘어나고, 그다음 날에는 마흔 명으로 늘어나는 그런 생활이 매일매일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도시의 사망률은 줄어들지 않고 환자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마흔 명의 외래 환자를 아침부터 저녁 식사 때까지 꼼꼼히 치료한다는 것은 육체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속이게 된다. 1년에 1만 2천 명의 외래 환자를 진단한다는 기록은, 정확하게 표현하면 1만 2천 명의 사람을 속인다는 뜻이다. 중환자를 병실에 입원시키고 과학의 규칙들에 따라 돌본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규칙은 있어도 과학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을 집어치우고 다른 의사들처럼 현학적으로 규칙들을 따르려 해도,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더럽지 않은 깨끗한 환경과 환기가 필요하며, 악취가 나는 소금에 절인 양배추로 끓인 수프가 아니라 영양가 높은 음식이 필요하며, 도둑놈이 아니라 훌륭한 조수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죽음이 누구에게나 정상적이고 당연한 결말이라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으려 한단 말인가? 어떤 장사치나 관리가 5년이나 10년을 더 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의학의 목적을 약으로 고통을 덜어 주는 데서 찾는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고통을 무엇 때문에 줄이려 하는가? 첫째, 흔히 말하듯이 고통은 사람을 완성으로 이끈다. 둘째, 인류가 정말로 알약과 물약으로 자신의 고통을 경감시킬 줄 알게 된다면, 그전까지 온갖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고 나아가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종교와 철학을 아주 저버릴 것이다. 뿌쉬낀은 죽음을 앞에 두고 무서운 고뇌에 휩싸였고, 가난한 하이네는 중풍 때문에 몇 해 동안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안드레이 에피미치나 마뜨료나 사비슈나와 같은 사람이 아프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들의 삶은 보잘것없으며, 고통마저 없다면 아메바의 삶같이 전적으로 공허할 것이다.

이런 생각들에 짓눌려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기운을 잃고, 병원에 매일 나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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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박영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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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가 끝나갈 무렵, 이 과부는 지나칠 정도로 사람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녀는 칠팔천 프랑의 공채 이자를 받고, 마치 첩의 물건들처럼 아름다운 보석들과 휼륭한 은그릇을 가지고 있는 이 부자 장사꾼이, 왜 자기 재산에 비해서 너무 싼 하숙비를 지불하면서 머무르고 있나 하고 의아해했다. 첫해 대부분의 경우 고리오씨는 매주 한두 번 외식했다. 그 다음에는 달마다 두 번만 남몰래 하기에 이르렀다. 고리오 씨가 밖에서 식사하는 일은 보케르 부인의 이익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자기 집에서 꼬박꼬박 식사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불쾌한 노릇이었다. 이러한 고리오 씨의 변화는 그의 재산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다 주인인 자기를 괴롭히려는 생각에서 비롯했다고 그녀는 짐작했다. 속좁은 인간들이 지닌 가장 밉살스러운 버릇 중의 하나는 자신이 쩨쩨하니까 남도 쩨쩨할 것이라고 억측하는 것이다.

 

인생이란 부엌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썩은 냄새는 더 나는 거라네. 인생의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으려면 손을 더럽혀야 하네. 다만 손 씻을 줄만 알면 되지. 우리 세대의 모든 윤리가 거기에 있네.

 

읽으면서 답답해진다. 고리오 영감이 살던 시대의 문제인가, 아니면 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인가, 아니면 시대에 상관없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가. 리어 왕 생각도 나고. 그냥 죽을 때까지 영감이 돈을 자식들에게 주지 말고 다 들고 있어야 했는데. 아니 처음부터 딸들을 그렇게 키우지 말지.

 

내가 발자크에 대해 안 것은 의외로 좀 어린 시절이었는데,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데 그 책에서 발자크에 대해서 소개하면서 진한 커피를 하루에도 여러 잔 마셨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썼다는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고, 또 그 책도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어린이들에게 바른 생활과 루틴을 강조하는 교육적인 책이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래서 정작 발자크가 어떤 소설가이고 어떤 책을 썼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매일 새벽에 규칙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사실만 아주 어릴 때부터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독서는, 그렇게 오래도록 묵혀두었던 발자크에 대한, 화석이 되어 버린 기억에 물을 주어서 다시 소생시키는 경험이었다. 발자크는 먼저 쓴 소설에 나온 인물들을 다음 소설에 재등장시키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의 다른 소설을 읽어보면 그 거대한 유니버스를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읽을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참 좋은 책이 많아.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라 찾아봤는데 구스타브 카유보트라는 화가의 파리의 거리, 비오는 날이라고 한다. 처음 들어보는 그림이었는데 제법 유명한 그림인지 검색하니까 많은 내용이 나온다. 빠르게 훑어보니 그림 자체도 훌륭하지만 그림 밖의 일화나 작가에 대한 설명 등도 할 이야기가 많은 그림인 것 같다. 인상주의 화가이면서도 사실주의 화풍에 영향을 많이 받았고,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네나 르누아르 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사고 전시회를 후원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이 작품은 현재 시카고 미술관에 있다는데 그냥 보는 것보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모습이 사진상으로만 보아도 훨씬 더 멋있는 것 같다. 직접 보면 더 감탄이 나오겠지. 그림의 배경은 아직도 존재하는 프랑스 파리의 뒤블랭 광장이라는데 만약 가게 된다면 이 구도로 사진을 찍어봐도 멋진 추억이 되겠지. 인상주의면서도 사실적으로 파리의 풍경을 멋지게 담아낸 화가의 그림과 당시 낭만주의 문학을 벗어나 사실주의 문학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해 예리하게 해부하는 듯한 소설가의 작품이 묘하게 어울린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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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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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중단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계속 읽고 싶어서 중단할 수가 없었다. 이 부딪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생각해 보니, 등장인물 때문에 답답해서 중단하고 싶다가도, 작가의 서술이 문학적으로 아름다워서 또 계속 읽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보바리 부인과 비슷한 상황 아닌가? 놓고 싶으면서도 놓고 싶지 않은, 빠져 나오고 싶으면서도 계속 있고 싶은. 만약 이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 작가는 정말 대단한 작가다.

 

불륜 소재야 문학에서 흔해 빠졌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역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거장이 쓴 소설, 문학적 가치가 높으면서도 현재까지 끊임없이 영상화 되고 있을 정도로 시대를 초월하여 대중에게 매혹적인 소설. 안나 카레니나도 마담 보바리도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을 때와는 달리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주인공에게 연민이 들지 않아서 독자로서 참으로 힘들었는데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경우, 첫째, 남편이 무정하였다. 둘째, 불륜 상대인 애인이 유부녀인 여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였다. 셋째, 남편 사이의 아이와 사생아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그러니까 읽으면서 이 여주인공이 여러 모로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데, 연민과 동정심이 들 수밖에 없는데, 마담 보바리의 경우 여주인공은 저 세 가지가 전부 결여되어 있다. 남편은 아내를 무지 사랑하지, 애인은 여주인공을 그저 자기 욕심으로 만나지, 소설 내내 자기 자식에 대한 책임은 전혀 안 느껴지지. 이러니까 도대체 마담 보바리를 어떻게 동정하겠나.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에 대한 환멸이 점점 증가하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읽다가 때려치고 싶다가도 묘사가, 서술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우니 또 읽고 싶은 것이다. 문자가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대화랄까. 1부만 쓰는데 1년이 걸렸고 전체를 완성하는데 4년 넘게 걸렸다고 했나? 아무튼 해설에 보면 긴 시간동안 쓰고 또 다듬고 그 과정에서 작가가 스트레스도 꽤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읽다 보면 문장 하나하나를 엄청 공들여서 썼을 것이라는 느낌이, 원문을 읽지 못하고 번역을 거쳐야만 읽을 수 있는 외국의 독자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된다.

 

처음에 읽으면서는 시대가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자유롭게 연애하면서 보헤미안처럼 살다 가지 않았을까, 아니 결혼했어도 자기 일 하면서 가정과 일 양쪽 다 재미를 느끼면서 살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점점 읽어가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아니다. 이 사람은. 어느 시대에 태어났어도 이렇게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소설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성질을 탐구하는 소설이겠구나. 이렇게 사는 사람, 요즘도 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자기반성이나 성찰 없이 원망만 하면서. 이기적으로 굴면서. 가장 아껴야 할 사람들을 파괴해 가면서. 죽을 때까지 자기 연민에 빠져서 주변은 돌아보지도 않고, 헤아리지도 않고. 이런 사람은 요즘도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있다. 솔직히 다 읽고 나면 마담 보바리가 그의 애인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었나 하는 의문도 든다. 그저 자신의 권태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 그리고 이 표지 그림에 절대 속으면 안 된다. 이렇게 소박하고 순수한 얼굴이라니. 표지 그림 선정을 왜 이렇게 했을지 궁금하다.

 

392p

그때부터 그녀의 생활은 온통 거짓말투성이였다. 그녀는 자기의 사랑을 마치 베일로 감싸듯이 거짓말 속에 싸서 숨겼다.

거짓말이 이제는 어떤 필요, 광적인 습관, 쾌락이 되어버렸다. 이리하여 끝내는 그녀가 어제 어떤 길의 오른쪽으로 지나왔다고 말하면 사실은 왼쪽으로 지나왔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410p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어! 하고 그녀는 혼자말을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녀는 행복하지 않았고 한번도 행복했던 적도 없었다. 인생에 대한 이런 아쉬움은 대체 어디서 오는것일까? 의지하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썩어 무너직 마는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 그러나 만일 어디엔가에 강하고 아름다운 한 존재가, 열정과 세련미가 가득 배어 있는 용감한 성품이, 하프의 낭랑한 현을 퉁기며 하늘을 향해 축혼의 엘레지를 탄주하는 천사의 모습을 한 시인 같은 마음이 존재한다면 그녀라고 운 좋게 그를 찾아내지 못하라는 법이야 있겠는가? ! 턱도 없는 일! 사실 애써 찾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거짓이다! 미소마다 그 뒤에는 권태의 하품이, 환희마다 그 뒤에는 저주가, 쾌락마다 그 뒤에는 혐오가 숨어 있고 황홀한 키스가 끝나면 입술 위에는 오직 보다 큰 관능을 구하는 실현 불가능한 욕망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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