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6
S.S. 반 다인 지음, 안동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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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띠지 설명을 먼저 보겠다.

 

현학적 게임, 반 다인의 세계

예의바르고 격조높은 하버드 영어로 직조된 가슴조이는 서스펜스와 페이소스의 교차

반 다인 3대 걸작 으뜸으로 꼽히는 특 A급 미스터리!

 

예의바르고 격조높은 하버드 영어는 과연 어떤 것인가?

 

표준어의 정의인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보다도 더 와닿지가 않는다.

 

아마도 예의바르고 격조높은 하버드 영어가 현학적 게임, 반다인의 세계에 상당한 지분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인데,

무엇보다도 하버드 영어로 직조된 가슴조이는 서스펜스와 페이소스의 교차라는 것은 어떤 것인지,

설령 서로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읽다 보면 현학의 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온갖 고전에서 따온 말들이 범람하고

살짝살짝 클래식 이야기도 나오고 미술 이야기도 나오는 것 같은데

그야말로 현학의 끝판왕이다.

그냥 제낄까 하다가 혹시 사건의 실마리와 관련이 있는지 일일이 주를 읽다 보면

서스펜스로 가슴이 조이다가도 주를 읽으면서 가슴이 풀어지며 편하게 숨을 쉬게 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주가 너무 많고, 하나하나의 주도 획획 넘어갈 수 있지를 못하다 보니 의도치않게 서스펜스에게 강제로 휴식을 내어주게 된다는 것이다.

 

반 다인 3대 걸작은 뒤에 해설을 찾아보니 비숍, 카나리아, 그린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영미권 독자들로부터 1위를 차지한 것이 그린살인사건이라고 한다.

일단 어느정도는 공감이 간다. 일단 재미가 있다. 비숍살인사건은 전에 읽었었는데 그보다 더 재미있었다.

 

집 안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옛날 식의 표현으로 하자면 이른바 바깥주인의 사망 이후 10여년간 잠겨진 특정 방에 대해서는 안주인이 열쇠를 주기 까지 조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방에서 결정적인 증거들이 발견되는데 그 방에 대한 수사는 전체 소설의 반이 지나서야 이루어진다. 500쪽이 안 되는 소설인데 280쪽이 넘어서야 그 방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

이게 대체 요즘 관점으로는 말이 되는 소리인지 싶다. 그 시대니까 그랬겠거니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시대라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될 것 같다.

그저 '추리'소설의 어떤 틀에 작가 자신이 지나치게 엄격하게 굴다 보니 전체 '소설'의 흐름이 약간 삐딱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재미가 있다.

 

반 다인도 비숍 때보다는 확실히 존재감이 있어서 반가웠고.

이 소설 다음으로 비숍 살인사건이 나왔는데, 어쩌면 반 다인이 뒤로 가면 갈 수록 병풍이 되어가는 것인지?

 

참고로 다시 한번 훑어 보는 반 다인 작가의 살인 사건 시리즈 출판 순서이다.

 

벤슨 살인사건 (Benson Murder Case, 1926)

카나리아 살인사건 (Canary Murder Case, 1927)

그린 살인사건 (Greene Murder Case, 1928)

비숍(주교) 살인사건 (Bishop Murder Case, 1929)

스카라베(스케라브, 딱정벌레) 살인사건 (Scarab Murder Case, 1930)

케닐 살인사건 (Kennel Murder Case, 1933)

드래곤 살인사건 (Dragon Murder Case, 1934)

카지노 살인사건 (Casino Murder Case, 1934)

가든 살인사건 (Garden Murder Case, 1935)

유괴 살인사건 (Kidnap Murder Case, 1936)

그레이시 앨런 살인사건 (Gracie Allen Murder Case, 1938)

겨울 살인사건 (Winter Murder Case, 1939)

 

차례차례 읽으면 좋겠지만 나는 동서미스터리북스의 순서대로 읽고 있어서 그렇게는 어려울 것 같고.

우리나라에 출간 안 된 소설도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읽을 수 있기를.

 

, 참고로 P.259 cortex cerebri(뇌피하세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거 혹시 푸와로의 회색뇌세포를 의식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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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색 연구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
아서 코난 도일 지음, 김병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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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의사 같은 군인 타입의 신사가 있다. 물론 군의임에 틀림없다. 얼굴은 새까맣지만 본디 살갗이 검지 않다는 것은 손목이 흰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열대 지방에서 돌아온 것이리라. 고생 끝에 병을 얻어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초췌한 얼굴이 웅변적으로 말하고 있다. 왼쪽 팔에 부상을 입고 있는 모양이다. 놀리는 폼이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우리 육군 군의가 고생을 하고 팔에 부상까지 입은 열대 지방이 어딜까? 물론 아프가니스탄이다. 이 정도 과정을 지나는 데는 1초도 안 걸렸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했더니 자네가 놀라더라 이 말일세.

자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을 상기시키네 그려. 그런 인물이 소설의 주인공 외에 실지로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모햇어.

물론 칭찬할 셈으로 자넨 뒤팽에다 비교해 주었겠지만, 내가 생각할 때 뒤팽은 훨씬 더 인물이 떨어지네. 15분 동안이나 잠자코 있다가 느닷없이 적절한 말을 하여 친구들의 사색을 깨뜨려서 놀라게 한다는 그 친구의 수법은 매우 천박한 겉치레야. 물론 천재적인 재능은 어느 정도 지니고 있었겠지만, 포가 생각했던 만큼의 경이적인 인물은 절대로 아니네.

자넨 가볼리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나? 루콕은 탐정으로서 자네의 이상에 맞을 것 같은가?

루콕 따윈 불쌍한 얼뜨기지.

나 같으면 24시간에 처리했을 것을 루콕은 여섯 달이나 걸렸으니 말이야. 그건 차라리 탐정이 피해야 할 사항을 가르치는 데 쓸 교과서가 될 만한 책이야.

이 친구는 머리가 좋을지는 모르지만 자만심도 어지간하군.


왓슨과 홈즈의 첫 만남이다. 이러던 왓슨이 홈즈에 대한 마음을 애정과 존경으로 바꾸어가는 과정은 홈즈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풀 수 없는 수수께끼니까요.

원우드 리드가 이 문제에 대하여 멋진 말을 했어, 하나하나의 인간은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지만 집단으로 보면 수학적 확실성을 갖춘 존재라고 했다네. 예를 들어 어느 한 사람의 미래의 행동은 절대적으로 예측할 수 없으나 평균적인 한 무리의 행동은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지. 개인은 종류도 많고 다양하지만 평균치는 언제나 일정하다는 것이 이 통계학자의 주장이라네.

 

역시 뭐니뭐니해도 클래식은 영원한 법이다. 옮긴이의 글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시대적으로 보아서는 고색창연한 느낌이 들지만, 이 시리즈만큼 추리소설의 재미를 두루 갖추고 있는 작품도 드물며, 영구히 신선한 놀라움을 지닌 고전으로서 존재할 것임에 틀림없다.

맞는 말이다.


옮긴이의 말에는 셜로키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왓슨의 상처 입은 다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첫 작품 주홍색 연구에서는 왼쪽 어깨의 부상을 언급하는데 이 모순을 가지고 셜로키언들 사이에서는 왓슨이 부상을 입은 자리가 어디냐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답은 명확하다. 작가가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가지고 갖가지 견해가 등장하는데,
첫째, 두 번째로 입은 상처는 없다. 왓슨이 거짓말을 한 것이고 사실 왓슨은 치질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둘째, 다리 상처는 왓슨이 어깨 상처가 나는 시점에 방어하는 과정에서 자기 실수로 생긴 상처이고 시간이 흐르자 두 개의 상처의 원인을 한데 묶었다.
셋째, 사실 다리가 아니라 국부에 입은 상처이다.
넷째, 사실 다리가 아니라 발뒤꿈치에 입은 상처이다.
다섯째, 홈즈가 권총 쏘는 연습하다가 실수로 왓슨에게 상처를 입혔으나 홈즈의 명예를 지켜 주기 위해 왓슨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참 쓸데없다고도 볼 수 있는데, 셜로키언들은 아주 진지하다.
이 모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다. 그냥 작가가 실수한 것이다.

이제 홈즈 시리즈는 창조해낸 작가마저 집어삼킨 것이다. 다른 소설처럼 탐정으로 인해 창조주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 스스로 빛나면서 작가의 존재가 희미해졌다.

언제 읽어도 재미있고, 결말을 알아도 재미있다. 그게 홈즈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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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동서 미스터리 북스 14
엘러리 퀸 지음, 김성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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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재미있다. 진짜 재미있다. 빨리 엘러리 퀸의 다른 이야기도 읽고 싶다.
엘러리 퀸 시리즈로는 처음이고 작가의 전체 소설로 확장하면 Y의 비극 다음으로 두번째다. 국명 시리즈도 비극 시리즈도 다 좋다. 매력적인 작가로구나.


독자에의 도전

범인은 누구일까? 나는 지금까지 쓴 소설 가운데서 범죄를 완전히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사실들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 독자 여러분의 지혜에 도전해 왔다.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에서도 전례에 따라서 도전하기로 했다. 이 이야기를 여기까지 읽었다면, 지금까지 나타난 자료를 근거로 하여 엄밀한 논리를 구사해서 추론하면 여러분은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누가 범인인가를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뒤에 이어질 해설을 몇 장 읽어보면 금방 알게 되겠지만, '만일……'이라든지 '그렇지만……' 같은 조건을 전혀 붙이지 않고도 정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논리에 행운의 신의 도움 따윈 필요도 없겠지만, 부디 여러분들이 신중히 판단하여 멋지게 맞출 수 있도록 기도하는 바이다.

엘러리 퀸

자고로 추리소설이란 이런 맛이다. 엘러리 퀸 시리즈는 실제 탐정이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한 회고록을 들려주며 독자도 같이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자고 독자의 손을 소설 속으로 잡아끄는 느낌이 든다. 페어플레이를 하자는 것인데 마치 반다인의 소설이 어디 독자 너 나랑 한번 겨루어 볼래? 어차피 너가 지겠지만, 같이 느껴진다면 퀸의 경우에는 한번 봐봐, 힌트는 다 주었으니 열심히 고민하면 맞출 수도 있어! 이렇게 이야기해주는 느낌이랄까.



엘러리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 무릎을 탁 쳤다.
"아버지, 아주 멋진 걸 생각해 냈습니다!"
"얘야!"
노경감도 조금 전의 기분좋은 얼굴은 간 곳이 없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나도 방금 생각이 나는구나! 네가 그 턱없는 대륙 횡단의 술래잡기를 하는 바람에 비행기니 뭐니를 마구 타고 돌아다녔으니, 아마 집의 저금 통장의 반은 썼을 게다. 계산은 나한테 돌릴 작정이냐?"
엘러리는 낄낄 웃었다.
"이 문제도 한 번 논리를 적용해 보죠. 가능한 방법이 세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제가 쓴 경비를 낫소 군에다 청구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아이샴 지방 검사의 얼굴을 보았다. 검사는 깜짝 놀라 뭔가 말을 하려다가 말고 침착성을 잃은 다부진 얼굴에 얼빠진 웃음을 띠며 의자에 기댔다.
"아니, 그건 도저히 실현이 어려울 것 같군요. 그렇다면 두 번째 방법은, 그 손실을 제가 부담하는 거죠." 엘러리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내저었다. "안되지, 그래서는 너무 지나치게 박애주의에 치우치게 되지……. 제가 방금 아주 멋진 걸 생각해 냈다고 했지요?"
본 경감이 투덜거리 듯이 말했다.
"아니, 당신은 그걸 교제비로 적어놓을 수도 없고 스스로 손해를 감수하지도 않겠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경감님." 엘러리는 천천히 말했다. "내가 이 사건을 재료로 해서 소설을 쓰지요. 그리고 그 표제는 저의 유식함을 과시해서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이라고 붙이지요. 그렇게 하면 독자들이 비용을 부담해 줄 테니까요."

이 부분은 작가의 귀여운 변명이라고 할까. 사실 읽다보면 이집트랑은 1도 관련없는데 나라이름으로 시작하는 시리즈를 만들려다보니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반 다인의 6글자 살인사건 시리즈에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에 한 표.


다음은 옮긴이의 작가 소개이다.

현대의 미스터리소설은 미국의 천재 작가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시작된다. 그의 <<모르그 거리 살인 사건>>이 미스터리소설의 가장 오랜 고전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스터리소설은 발생지인 미국보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이식되어 그곳에서 먼저 본격적인 꽃을 피우고 붐을 일으켰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나 르블랑의 뤼뺑이 독자에게 불러일으킨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아 미국에서도 포의 뒤를 이으려는 작가들이 나타났다. 첫째로 등장한 사람이 학자이면서 익명으로 미스터리소설을 쓴 반 다인이다. 곧이어 3년 뒤에 그를 추격하듯 나온 사람이 엘러리 퀸이다.
엘러리 퀸 역시 본명이 아닌 익명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이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고 두 사촌 형제의 합작에 의한 필명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두 사람이 협력하여 작품을 써서 엘러리 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셈이다. 그들의 본명은 각각 프레드릭 대니, 맨프리드 B. 리다. 둘 다 1905년생이며 대니가 10월, 리가 1월이니 리가 형뻘이 된다.


이쯤에서 정리해보는 엘러리 퀸 국명 시리즈

로마 모자 미스터리(The Roman Hat Mystery), 1929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The French Powder Mystery), 1930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The Dutch Shoe Mystery), 1931
그리스 관 미스터리 (The Greek Coffin Mystery), 1932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The Egyptian Cross Mystery), 1932
미국 총 미스터리 (The American Gun Mystery), 1933
샴 쌍둥이 미스터리 (The Siamese Twin Mystery), 1933
중국 오렌지 미스터리 (The Chinese Orange Mystery), 1934
스페인 곶 미스터리 (The Spanish Cape Mystery), 1935

옮긴이는 이 중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를 최고라고 하는데 확실히 재미는 있지만 다른 작품들을 다 읽어봐야 비교할 수 있을 테니 일단 최고점수는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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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
P.D. 제임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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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알라딘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 책의 저자에 대한 소개.

 

애거서 크리스티와 나란히 영국의 대표적인 여성 추리작가로 손꼽히는 P. D. 제임스는 192083일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여자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과 딸에게 고등교육을 시킬 필요가 없다는 아버지 탓에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17세부터 세무사무소 비서, 영화 스태프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1941년 군의관이던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두었으나, 2차 세계대전 복무 후 정신병을 얻어 돌아온 남편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1964년 사망할 때까지 병원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후 영국 국가보건기구(NHS), 내무성 경찰국과 범죄정책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 1979년 은퇴했다.

 

1950년대 중반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시인 겸 경관인 애덤 달글리시가 등장하는 첫 소설 그녀의 얼굴을 가려라1962년이 되어서야 출간됐다.

이후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표작 달글리시 시리즈’ 14권을 포함, 20여 권의 추리소설 및 여러 분야의 작품을 남겼다.

그중 유일한 SF사람의 아이들(1992)은 영화 <로마>,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2006년 같은 이름으로 영화화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기술공헌상을 받는 등 지금까지도 역사에 남을 걸작 SF’로 손꼽히고 있다.

 

P. D. 제임스는 영국 왕립문학회와 왕립예술회 회원이었으며, BBC 운영이사와 예술위원회 산하 문학자문단 단장을 역임했고, 영국문화원 이사, 미들섹스와 런던의 치안판사로 일했다.

영국법정변호사협회의 명예회원이기도 했다. 미국과 영국의 추리작가협회 양쪽에서 최고의 영예인 그랜드마스터와 다이아몬드 대거 칭호를 받았고, 국가예술클럽의 문학 부문 명예훈장을 포함, 여러 상을 받았다.

영국의 일곱 군데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으며 1983년에는 대영제국 4등 훈장을, 1991년에는 홀랜드 파크 남작 제임스라는 당대귀족 칭호를 수여했다.

1997년 영국저작권협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20138월까지 직무를 수행했고, 20141127, 옥스퍼드 자택에서 9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본명 필리스 도로시 제임스(Phyllis Dorothy James).

 

 

그러니까 보건, 경찰, 정책 분야의 공무원으로도 일했고, 치안판사로도 일했으며,

추리 소설을 포함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그 작품 중에서는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원작 소설도 있고,

영국 왕립문학회와 왕립예술회 회원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화 예술 단체에서 임원으로 일했으며

대영제국 훈장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았고

자택에서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것인데...

 

여기까지 읽으면 군의관인 남편의 발병 및 사망으로 자신과 두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는 부분이 잊혀질 정도로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부와 명예와 장수까지... 다 누린 사람이니까.

 

상대적으로 한국에 덜 알려져 있는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그녀의 이력 중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원작 소설을 썼다는 점이었고, 그 점 때문에 이 작가의 다른 작품도 전부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달글리시 시리즈의 달글리시가 역시 이 소설에 등장하는데, 은퇴를 번복하고 죽을 위기를 넘기는 등의 내용을 보면 이 소설은 달글리시 연대기의 중간쯤 해당하는 것 같다. 찾아보니 맞는 것 같고.

 

다른 시리즈에서의 달글리시는 어떤 인물일지 궁금하다. 여기에서는 경찰 일에 회의를 느끼고 사건 앞에서도 한 발 담갔다가 뺐다를 반복하는 느낌인데, 소설 전반에 흐르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탐정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그들이 나가자 달글리시는 침대에 드러누워, 마치 방금 이 방에 처음 들어온 것처럼 그 몇 평 안 되는 소독된 공간을 둘러보았다. 손을 살짝 대기만 해도 물이 나오는 세면대. 뚜껑 있는 주전자가 놓여 있는, 깔끔하고 낭비가 없도록 고안된 사이드테이블. 비닐이 씌워져 있는 방문객용 의자 두 개. 머리맡에 동그랗게 말려 있는 이어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무늬 커튼이 쳐진 창.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 뿐이었다. 이런 을씨년스럽고 개성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장소에서 죽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이곳은 호텔방과 마찬가지로 잠시 머무를 나그네를 위해 설계된 방이다. 여기서 지내던 사람이 이 방에서 나갈 떄는, 제 발로 걸어나가든 아니면 영구차에 실려 나가든,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들의 불안과 고뇌, 그리고 희망의 기억조차도.

죽음의 선고는 달글리시가 늘 상상하고 있던 것과 같은 형태로 내려졌다. , 침통한 얼굴들, 일종의 연극 같은 성실함, 은밀하게 오가는 말들, 하나마나한 것까지 포함된 갖가지 검사, 그리고 달글리시가 강경하게 요구하기 전에는 절대로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않는 진단 결과와 예후. 그런 식으로 병이 한 고비를 넘긴 뒤에 약간의 궤변을 곁들여 내려진 완쾌 선고는 달글리시를 오히려 화나게 만들었다. 그토록 분명히 죽음을 선고해 놓고 이제와서 완쾌되었다니, 아무리 의사의 책임이 아니라 해도 달글리시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별한 아쉬움 없이 자신이 얼마나 담담하게 일과 즐거움을 단념했는지 이제 와서 새삼스레 떠올려본들 모두 부질없었다. 그것들은 좋게 말해서 마음의 위안, 나쁘게 말하면 시간과 정력의 낭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또다시 그것들에 열중하여 그런 것은 소중한 것, 적어도 그에게는 소중한 것이라고 다시 믿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시 소중하다고 다시 한번 믿을 수는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체력이 회복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생활이 저절로 그렇게 만들어줄 테니까. 그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또다시 인생에 적응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일시적으로 뒤틀린 분노와 나태함은 건강의 악화를 구실로 삼을 수 있고, 그 덕분에 잠시동안 쉴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동료들도 안도하는 표정으로 그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줄 것이다. 옛날에는 섹스라는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 말을 다들 공공연하게 떠벌리는 세상이 된 대신, 죽음이 그 터부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상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되기 전에 주위 사람들이 '명대로 살다가 좋은 세상으로 갔다'고 덕담을 할 수 없는 나이에 죽는 것은, 오늘날에는 최대의 악취미로 여겨지고 있다.

 

이 책에서만 그런지, 다른 소설에서는 인물의 심경의 변화가 있는지. 왠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탐정 달글리시는 시인 겸 경관인데, 이것도 특이하다. 예술과 공직, 양쪽에 걸쳐 있는 모습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이 책을 읽자마자 책에 대한, 그리고 작가에 대한 인상을 규정한 것은 가장 앞에 나오는 작가의 비망록이었다.

 

도싯(Dorset 영국의 지명)을 사랑하는 분들께, 내가 아름다운 도싯 주()의 지형을 멋대로 차용한 것, 특히 토인턴 농장과, 퍼벡 연안에 있는 검은 탑이라는 두 개의 가공 장소를 지어낸 무모함을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록 그들의 풍광은 빌려왔지만 등장인물은 순전히 나의 창작에 의한 것이며,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에 실재했던 인물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을 밝히는 바입니다.

 

때때로 창작의 자유라는 화두가 등장할 때가 있다. 역사 왜곡까지 가지 않더라고, 특정 지역이 언급되거나,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묘사가 작품에 등장할 떄 그렇다.

 

이 작품은 지명만 가져온 것 같은데, 어쩌면 이런 말을 책을 읽기도 전에 덧붙인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독자로 하여금 책에 몰입하는 정도를 줄여버릴 위험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을 넣었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공직에 오래 있었던 작가의 이력을 떠올리게 하고, 또 소설의 내용을 상당히 바꿔버린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 대하여 원작자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과 연관하여서는 예술적 허구와 그것이 실제로 발현되는 현실의 논리에서 확고한 주관을 가진 작가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대체로 유명한 탐정들-지금까지 읽은 동서미스터리북스를 기준으로 보면 셜록 홈즈, 에르퀼 푸아로, 드루리 레인, 브라운 신부, 피터 윔지 경, 파일로 밴스 등 대체로 공직과 직접 연관이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디에 묶여 있지 않아 자유롭고, 그래서 틀을 깨는 발상을 하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달글리시는... 마지막에 가서야 전모를 알게 된다.

한 명 한 명 용의자에 올렸다가 내렸다가를 반복하다가, 이 범죄가 왜 생겼을까 동기를 찾다가, 마지막에 등장하게 된 범인과 동기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지금까지 읽은 추리 소설의 동기와는 사뭇 멀어져 있다.

그래서 신선하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계속 여운이 남았다.

범인보다는 그 동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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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용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어떤 한 남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아주 평범한 남자입니다. 그가 살인을 하리라고는 생각할 수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어딘지 나약한 성품이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이제까지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내 본 적 없는 나약한 마음이지요. 아마 앞으로도 두 번 다시 드러내지 않을지 모릅니다. 만일 그 나약한 마음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누구나 다 존경하고 그 역시 죽을 때까지 편할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는 돈에 몹시 궁했지요. 아니, 궁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꽉 막혀 버렸다고 합시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어떤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사에 관계되는 비밀을 말입니다.

그 남자는 처음에는 이것을 공표하여 선량한 시민의 의무를 다하려 했지요. 그러나 여기서 그의 나약한 성격이 머리를 쳐들고 일어납니다. 이건 돈이 생길 좋은 기회다. 더욱이 막대한 큰돈이다라고요. 그 남자는 돈 때문에 몹시 난처해 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돈이 눈앞에 놓여 있습니다. 더구나 그 돈을 얻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침묵만 지키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시작입니다. 돈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져 갑니다. 더 많이, 더 많이! 남자는 발 밑에 금광에 그만 취해 버립니다. 그리고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집니다."

 

"아마 이번 일도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돈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너무 지나치게 쫓았던 거지요. 영국의 격언과 같이 금덩이를 낳는 거위를 죽여 버린 격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사실이 폭로될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현재의 그는 벌써 과거의 그, 1년 전의 그가 아닙니다. 이제 도덕 관념도 흐려져 있습니다. 자포자기가 되었습니다. 점점 지고 있는 싸움에서 그는 수단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의 폭로란 바로 그 자신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그리하여 단검이 꽂혀졌던 것입니다."

 

"그 단검이 뽑혀진 뒤 그는 다시 여느 때의 평범하고 동정심 많은 남자로 돌아갔겠지요. 그러나 만일 필요할 때는 다시 단검을 휘두를 겁니다."

 

 

이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다른 버전인 황금가지 출판사의 크리스티 전집으로 이미 읽었다. 따라서 반전을 정확히 알고 읽었다.

이 책이 반전을 알고 나면 반응은 딱 두 가지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교활한 속임수를 썼다고 비난했던 반 다인과 같은 반응, 하나는 앨러리 퀸과 같이 극찬하는 반응이다. 중간은 없다. 당연히 없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였다. 물론... 정통 미스터리 트릭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독서의 재미라는 측면에서만 놓고 보면 단연코 이 소설은 압권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 반전 때문에 멍해졌는데, 시간이 한동안 흐르고 나서 반전을 다 안 상태에서 책을 다시 읽으니 책 전체에 교묘하게 깔아놓은 복선이 보였다.

다 알고 봐도... 재미있다. 정말 재미있다. 추리 소설은 읽다 보면 그 반전과 트릭에 치여서 지치는 경우가 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의무이자 책임은 재미이거늘... 지나치게 추리물의 트릭의 정교함에 집중하다 보면 소설 자체의 재미는 어느 순간 사라진다.

크리스티의 작품은 그냥 막 읽어도 재미있다. 사건도 재미있고, 사건이 밝혀진 이후 사건의 진짜 모습도 재미있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대화도 재미있고... 어쩌면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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