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살인 3 - 익명의 순례자, 완결
카르스텐 두세 지음, 전은경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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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완결되었다. 이 책은 예상보다 재미있었는데, 왜 재미있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1권과 2권이 있었기에 재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완벽한 3부작이다. 1권이나 2권보다는 유머가 덜 할 수 있는데, 절대 지루하지는 않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이 있다. 영상화가 된다고 하는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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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창작수업 -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창작 매뉴얼
최옥정 지음 / 푸른영토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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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세상에는 남을 괴롭히는 걸 낙으로 삼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타인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는 병든 사람들이다. 환자에게 필요한 건 치료지, 싸움이 아니다. 내가 동등한 자세에서 나누고자 한 대화가 또 다른 오해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어 다른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돌아다니면서 그런 일만 하는 사람이 있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무크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

<위대한 개츠비> F. 피츠제럴드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파트릭 모디아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조지 오웰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새벽의 약속>  로맹 가리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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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2 - 내 안의 살인 파트너
카르스텐 두세 지음, 전은경 옮김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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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살인 1을 읽고나서 리뷰에 나는 이렇게 썼다.

 

현지에서는 명상 살인 3권까지 나왔다고 하고 우리 나라에는 2권까지 번역되었다. 평을 살펴보면 2편이 1편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1편은 2편을 읽을 이유가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3편은 2편을 읽고 나서 결정해야지.

 

라고...

 

개인적으로는 2편이 1편보다 더 나은 것 같다. 물론 1편에서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와 배경이 완벽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잘 깔아놓은 판에서 작가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느낌.

 

실제 명상 수업도 이렇게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현실에서 악다구니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시기가 분명히 있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야말로 내면 속 깊이 도사리고 있던 아이와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는 내면 아이와 대화하고 소통하고 오해를 풀고...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한다.

1편은 2편을 읽을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다. 2편은 3편을 읽을 이유가 무조건 된다. 그러고보니 3편이 최근에 번역되었구나. 기대된다.

 

 

P.94~96

다른 사람들의 싸움질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점 자체가 짜증났다. 나는 싸움에 아무 관심도 없었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0년이나 지나서야 이걸 느끼다니 어쩌면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변호사의 존재 근거는 직무 특성상 타인들의 싸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와 직업을 서로 맞추기에 늦은 때란 없지 않을까.

내가 맡은 의뢰인은 모두 이른바 '그런 척 의뢰인'이었다. 이들은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척했고, 나는 그들의 일에 관심이 있는 척했다.

상담 시간에 의뢰인들에게 정신이 살짝 나갔느냐고 고함지르며 묻고 싶었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크고 둥글고 빨간 테를 두른 표지판에 검은 글씨로 80이라고 쓰여 있는데 왜 시속 180킬로미터로 달린단 말인가? 관리비를 제외한 월세가 2,200 유로인 집에 살면서 관리비가 36유로 차이 난다고 불평하며 변호사가 써주는 편지 한 통에 120유로를 지출하려는 생각은 도대체 어떤 머리에서 나올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폭발하는 분노는 소리가 전혀 없었다. 나는 의뢰인들을 그냥 실패하게 내버려두고는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다. 내가 음험하게 빈둥거리는 바람에 의뢰인의 운전면허가 취소되긴 했지만 나는 도저히 피할 길 없는 상황에서 최소 형벌을 이끌어냈다고, 내가 없었더라면 운전면허 취소 기간이 훨씬 길었을 거라고 무척 설득력있게 설명했다. 그건 사실 틀린 말이었지만 두 자리 숫자가 쓰인 교통 표지판의 간단한 공고에도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런 논거로도 쉽게 설득됐다.

이것은 내 내면아이와 관련이 있었다. 싸우기를 원하는 모든 의뢰인 때문에 평화롭게 살려는 내 소망이 무시당했으므로.

 

P.213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은 다른 이유 외에도 청소년기에 유치하다고 간주했던 일들이 나이 들면서 상당히 세련되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랑을 주제로 한 소프트 록 컴필레이션 음반 노래들도 그중 하나다.

오래된 소프트 록 음반을 전축에 넣자 80년대의 아름다운 발라드가 방을 가득 채웠다. 아름다웠던 그 시절 가수들이 부르는 사랑 노래들을 들으면 매우 현실적인 핵전쟁의 위험이 감정적으로 상쇄되었고 그때마다 그 노래들의 표현이 얼마나 강력한지 느끼며 감탄했다. 이와 비교해 치약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 같은 위험은 자신의 무의미함에 대한 노래를 넘어서는 경우에는 창의적인 세계 고통의 기반으로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P.414

"환경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죠?" 내가 물었다. 프라우케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눈에 띌 만큼 확연히 긴장을 늦췄다.

", 우리 지구와 거기 사는 사람들의 미래가 제게는 무척 중요하답니다."

"아주 훌륭하군요. 저도 당사자로서 높이 평가합니다." 나는 그녀를 칭찬했다. "니모반 두 살에서 다섯 살 아이들에게 과일 스무디와 기후변화의 연관성을 설명하셨죠. 맞습니까?"

"!" 프라우케가 자신의 열정을 남들이 알게 되어 무척 자랑스럽다는 듯 대답했다. 이 자부심을 딛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어린이들도 세상을 구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범적인 생각입니다." 나는 칭찬하듯 한 손을 그녀 어깨에 얹었다. 어린이들도 정치적 이념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독일에서 이미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 번의 제국과 두 번의 독재 정치에서 전통으로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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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살인 - 죽여야 사는 변호사
카르스텐 두세 지음, 박제헌 옮김 / 세계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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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있었다. 완전히 취향 저격을 당해 이 작가 책은 다 읽고 싶은 마음이다. 다음과 같은 독자들께 자신 있게 추천한다. 앞뒤가 딱 맞으면서 빠르고 허를 찌르는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분, 사회 풍자와 지적인 블랙유머를 즐기는 분, 명상에 과연 실제적인 쓸모가 있는지 의심하는 분, 결혼 생활에 위기를 맞은 분, 꼰대 상사와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는 분, 수류탄을 좋아하는 분.”장강명 소설가

 

이 소설을 추천하는 소설가의 글에서 '꼰대 상사와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는 분' 이라는 구절에 내 나름의 설명을 좀 더 붙이고 싶다.

악성 민원인을 상대해야 하는 공무원, 기업의 고객센터의 전화상담원, 대면 업무를 하고 있는 은행원, 대학의 시간강사, 객실 승무원,

이 외에 미처 내가 추가하지 못한 어떤 직업이라도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완전히 누르는 것이 업무상 가장 중요한 태도이자 미덕에 해당되는 분들.

 

이 책을 읽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책을 읽는 순간은 통쾌하더라도, 덮으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처럼 자신의 의뢰인이나 고객을 죽여버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잠깐 점프해서 붕 떴을 때의 기분. 바로 직후에 땅에 착지하더라도 순간이나마 두둥실 뜨는 기분. 그 기분을 확실하게 선물해주는 책이다.

 

 

p 28

드라간은 내가 감당할 첫 업무 과제가 되었다. 그의 기업 포트폴리오를 현대화시키고, 그 활동을 검찰의 감시방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 드라간의 주요 수입원은 여전히 마약, 무기, 매춘업이었지만 그 사업을 수많은 운송 회사와 프랜차이즈 업체로 위장했다. 내가 드라간에게서 지분을 취득한 사업체들이기도 했다. 더불어 EU 보조금을 어떻게 착복하여 불가리아에 있지도 않은 가지 농장에 투자하는지 보여줬다. 마약 거래와 비슷한 수준으로 질 나쁜 온실가스 배출과 관련해서 서류 조작 방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두 가지 분야 모두 정부 지원금을 받아냈다. 나의 조력에 힘입어 드라간은 몇 년 만에 대중적 이미지를 잔인한 딜러, 포주에서 존경받는 사업가로 바꾸었다.

 

 

이 구절을 보면 드라간이라는 고객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이다. 마치 대부의 말론 브란도나 알 파치노 같은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인데, 거기에서 인간성과 지성을 전부 빼 버린 인물이라고 보면 된다. 대부에게도 변호사는 있었지만 로버트 듀발과 이 책의 주인공의 업무 환경은 하늘과 땅 차이이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사명감은 버린 지 오래, 일에 치이다 보니 가정은 흔들리기 직전. 인생의 위기 앞에 명상 수업을 듣게 되는데, 이게 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다음은 이 책의 목차이다.

 

명상

자유

호흡

시간의 섬

디지털 다이어트

상대방의 내면세계

평가 없이 받아들이기

긴장을 완화하는 3화음

싱글태스킹

행복

깨어나기

의도적으로 초점 맞추기

친절

공포

객관

조바심

불안

파렴치

시간의 압박

음미하며 식사하기

패닉

불쾌

행동주의

소통

용서

내면의 저항

브레인스토밍

주고받기

증명하기

위임

고마움

질투

거짓

속으로 미소 짓기

고통

최소화

죽음

 

목차만 훑어 보면 이 소설의 목차이기 이전에, 명상 교습서의 목차라고 봐도 될 것이다.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이 어떻게 명상의 기법과 연결되는지 보면 기발하다. 처음에는 목차 몇 개 정도 그러고 말겠거니 했는데, 절묘하게도 책을 다 읽으면 실제의 예시가 수록된 명상 교습서를 읽은 느낌이니 묘하다.

 

 

p 258

누군가 모든 아이가 훌륭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아이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그 밖에 다행히 호감이 가는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완전히 골칫거리인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불쾌하고 호감 가지 않는 부모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골칫거리 아이는 외양으로만 정의되지 않는다. 그들은 공격적이고 지루하고 퉁명스러우며 사람을 몹시 피곤하게 만든다. 공원 놀이터에서도 이런 아이들은 울음소리고 아주 빨리 알아차릴 수 있다.

나와 젊은 커플 한 쌍 그리고 혼자 온 남자 외에는 모두 여자들만 놀이터에 있었다. 젊은 커플은 ', 우리 정도면 행복한 커플이지' 하는 게 두드러지게 보이는 자들이었다. 멋진 옷을 차려입고, 건장하고 성공한 듯 보였다. 분명히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보살핌 속에 유복하게 자랐을 것이다. 그 부모는 이제 자신의 시간 중 70퍼센트를 손주 돌보는 데 쓸 것이다.

홀로 있는 남자는 약간 울적해 보이고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불편해하는 걸 보아 아마도 어린이 놀이터에 와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혼남일 수도 있다. 양육권을 빼앗긴 채 자신의 아이와 놀아주는 모습을 억지로 얼마간 연출해야 하는 아빠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제하고 나니 두 가지 유형의 여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엄마들과 보모들이다.

엄마들은 과도하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행복한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반면에 보모들은 자신의 행복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무신경하게 세 살 이하의 아이들을 대형 유모차에 태워 많게는 다섯 명까지 돌보고 있었다.

보모 한 명이 돌볼 수 있는 아이는 최대 다섯 명이다. 만약 다섯 명의 아이 중 골칫거리가 하나라도 있으면 다른 네 명의 아이는 사실상 방치된다. 다른 아이를 물고 때리거나 할퀴는 거을 막기 위해 온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저 울며 떼쓰는 걸 말리느라 다른 아이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렇게 놀이터를 관찰하며 생각에 잠기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에밀리와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하기보다 주변의 엄마, 보모 그리고 아이들로 인해 불쾌해하고 있었다.

놀이터에 온 지 3분 만에 내 기분은 ', 정말 좋다!' 에서 '다들 멍청이군!' 으로 돌변했다. 외부 환경은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말이다.

명상 책에는 불쾌감에 대한 구절도 있었다.

 

불쾌감은 장기간 지속된 실망의 표현이다. 실망의 원인은 외부에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내 안에 얼마나 머무를지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과거의 실망감이 당신의 삶의 질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려면 다음 질문을 던져보라.

 

1. 실망감이 어떻게 생겨났나?

2. 그 실망의 근원으로 인해 현재까지 불쾌함을 느낄 만큼 신경을 쏟을 가치가 있는가?

3. 행복이 어떤 구체적인 것에 달려 있지 않다고 확신하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어린이 놀이터에 앉아 무엇에 그리도 불쾌해하고 실망한 걸까? 답은 간단했다.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여성과 정반대의 입장이었다. 한낮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놀러 나온 것 자체가 내겐 살면서 처음이었다.

나는 지난 2년 반 동안 내 아이를 돌보는 일에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 기간에 피곤할 정도로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없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일하느라 평일이든 주말이든 가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미뤄두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엄청나게 실망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화가 났다. 2년 반의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놀이터에 있는 엄마나 아이들 중에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나에게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런 불쾌감에 신경 쓸 생각이 없었다. 현재 내 인생은 완전히 변했다. 내 행복은 바로 이 순간 만들어가는 거다.

자리에서 일어나 에밀리에게 다가가 아이를 안았다가 공중에 띄웠다. 나의 행복이 다시 양손에 잡혔다.

불행해 보이는 아빠와 젊은 커플과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고 싶었다. 그 순간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샤였다. 발터의 경호원이 날 미행하던 자를 방금 무장해제시켰다고 알려왔다. 그자는 나를 집에서부터 따라붙어 카타리나의 거주지를 거쳐 놀이터까지 미행했다. 경호 인력은 젊은 커플로 위장하고 재빨리 그자를 저지했다. 그때 남자는 한 손에 라테 마키아토를 들고 통화를 하려고 나무 뒤에 숨은 참이었다. 게다가 그는 다른 손에 권총을 들고 주머니엔 프랑스제 수류탄 두 개를 소지한 상태였다. 그러나 지금은 결박된 채로 트렁크 속에 갇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행운의 젊은 커플과 우울한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조용히 내가 인사 담당자가 아니라 변호사가 된 것을 기뻐했다. 나는 명백히 사람 보는 눈이 없었다. 어쩌면 보모 셋을 살인 청부업자 취급하며 겁을 집어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젊은 커플이 부모의 등골이나 빼먹는 사람이 아닌 나의 수호천사였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깨달음, 통찰을 이렇게나 절묘하게 표현하다니!

 

 

p 357

나는 어제 숲속에서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동안 뮐러를 어떻게 이용할 지 생각했다. 그래야 토니를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다. 나는 뮐러를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우리 편으로 만들어 활용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명상을 매개로 해서 부패한 경찰이 내 말을 듣도록 만들까? 이 경우 그 자의 처지가 되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한번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경찰은 공무원이다. 기본적으로 공무원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합리적인 인간은 비합리적인 자보다 조종하기 어렵다. 먼저 뮐러의 합리성을 무너뜨려야 한다.

명상은 물론 애초에 그 반대의 개념을 갖고 있다. 명상으로 비이성적인 감정을 극복해야 한다. 명상의 미학은, 그것이 가장 격렬하고 폭발적인 감정의 분출도 완화시킬 수 있는 평화로운 길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러나 다행히 이 길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감정은 폭탄처럼 제거가 가능하다. 명상 실천과 폭탄 제거의 근본적 차이는 폭탄을 제거하는 사람이 작업 중에 사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명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시도한 명상이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내일은 성공한다.

폭탄을 해체하는 사람이 오늘 운이 없으면, 그에게 내일은 오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폭탄을 해체하는 사람이 폭탄의 구조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곧 그가 해체시킨 폭탄을 다시 작동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명상에도 적용된다. 명상으로 마음의 평화를 형성할 수 있는 것처럼 이성적인 사람을 비합리적이고 신경질적인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상대를 일부러 감정적인 상태로 몰아넣어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뮐러에게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동거녀, 바사가 있었다. 그녀는 눈에 띄게 매력적인 외모를 지녔으며 뮐러보다 열 살 아래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연금 청구권이 있는 공무원의 특권을 신분의 상징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바샤의 매력적인 외모는 뮐러에게 신분의 상징만은 아니었다.

 

 

추천하는 글에 있던 사회 풍자와 지적인 블랙 유머, 바로 이런 것이다.

 

 

p 365

죽을 고비에 있는 사람에게나 보인다는 일생의 기록이 뮐러의 눈앞에 영화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 순간 그의 내면의 눈은 남은 삶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보고 있었다. 그건 공포영화였다. 뮐러는 급격한 감정 변화를 겪는 중이었다. (젠장, 애인이 날 배신했어...... 야호, 여자 친구는 날 배신하지 않았군...... 빌어먹을, 여자 친구가 날 배신하진 않았어도 날 떠나버리겠는걸...... 잠깐...... 내가 백수가 된다고?) 그는 샤샤의 제안에 어떤 저항도 내비치지 않았다.

뮐러는 마지막으로 경찰 측 정보를 토니에게 넘길 것이다. 완전히 허위 정보겠지만. 그리고 토니의 소식을 다시는 듣지 않을 것이며 호텔 침대에 누워 있던 커플도 다시 만날 일은 없다. 또한 호텔 스위트룸에 침입한 영상도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다.

그는 바샤와 결혼하여 은퇴할 때까지 행복한 삶을 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이나 은퇴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지만 상상만으로 꽤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가. 그리고 협박만으로는 이 일에 협력할 만한 동기가 충분치 않다. 거짓도 좀 섞여줘야 효과가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내용을 소개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자제하고... 현지에서는 명상 살인 3권까지 나왔다고 하고 우리 나라에는 2권까지 번역되었다. 평을 살펴보면 2편이 1편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1편은 2편을 읽을 이유가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3편은 2편을 읽고 나서 결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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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이미륵 지음, 전혜린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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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의 모든 게 아주 낯선 것뿐이었어요. 오랫동안 저는 숱한 근심을 했거든요. 거기는 이제껏 제가 익숙해 있던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떄문에 마음에 안 들 것 같아요."

아버지는 오랫 동안 잠자코 있었다.

"섭섭했니?"

아버지는 나중에야 이렇게 물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이었어요. 전 언제나 서당을 우리 집으로 생각해야만 했어요."

"내 곁으로 들어오너라."

아버지는 손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너는 아직 소동파의 시를 잘 알고 있을 테지?"

나는 다시 생각해 보고는 그렇다고 했다. 항행하는 시인의 노래를 작년에 배웠다.

"그것을 읊어봐라."

나는 막히지 않고 읊었다.

"너는 저 <영탄가>를 읊을 수 있니?"

나는 그것도 읊었다. 50절이 끝나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젠 네 마음이 좀 진정되었니?"

아버지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다시 내 이부자리로 들어갔다.

"내일 또 학교에 가겠느나?"

",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많은 사람들은 이제 나쁜 시대가 왔다고들 말한다. 그러면 너는 분명히 말해 줘라. 그건 조금도 나쁜 시대가 아니고 새로운 시대이고, 그것은 갓 시작된 것이라고. 예를 들자면, 눈이 많은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듯이, 진달래가 피고 뻐꾸기가 우는 것과 같이 온다고 말이야. 나는 '현대'를 그렇게 생각한다."

 

"네가 이 학교에서 충분히 재주가 없더라도 괜찮아! 우리들에게 그렇게까지 서투른 문화는 맞지 않는거다. 지난 일을 생각해보아라. 너는 얼마나 쉽게 고전이며 시를 배웠었니! 넌 총명했단다. 너를 괴롭히는 새 학교에서 나오너라. 그리고 올 가을에는 송림촌으로 가거라. 휴양하러 말이다. 그곳은 제일 작은 땅이지만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농토다. 밤이며 감이며 많이 있다. 거기 가서 푹 쉬어라. 우리 일꾼들과 그들의 일을 익혀라. 한적한 마을에서는 네가 이 불안스런 읍에서보다 훨씬 더 잘 자랄 거야. 너는 옛 시대의 아이다."

그건 나를 슬프게 했다. 나는 언제나 새 학문에 대한 재능이 없을까 두려워했었다. 아버지가 이끌어준 이것만이 우리에게 더 높은 문화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제 내가 4년간 열중했던 공부를 재능이 없다고 해서 집어치우고 퇴학을 해야 하는 것은 나를 아주 슬프게 만들었다.

'"너는 그렇게 할 테냐?"

내가 잠자코 있는 동안 어머니가 물었다.

"물론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어요."

나는 맥빠진 대답을 하였다.

"아이구, 기특한 내 자식아."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방문을 나섰다.

 

"너는 지금까지 도회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생각해 봐라, 세상이 어지러울 때 은퇴하여 시골에 온 많은 선비들도 있지 않았느냐? 그들은 밤에 붓을 들기 위해서 낮에는 호미를 쥐었다. 그들처럼 너도 몹쓸 세상이 좋아질 때까지 이 고요한 속에서 지내라."

새 왕조가 이룩되기만 하면 다시 좋은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모든 농군들은 믿고 있었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리 민족의 보다 더 화려한 앞날을 상상할 수가 없었지만 굳이 반대는 안 했다. 더욱이 내가 '아저씨',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그분들에게 반대한다는 것은 불손하게 여겨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지주의 가정과 소작인의 가정을 한집안으로 삼고 그렇게 부르는 것은 옛부터 내려오는 좋은 풍습이었다. 나는 즐겨 그렇게 불렀고, 수많은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소위 택호를 붙였다. 그래서 한 사람은 '윗골 아저씨', 그 부인은 '윗골 아주머니', '뒷섬 아저씨', '뒷섬 아주머니'라는 식으로 불렀다. 소작인 농군들은 으레 나를 '도회지에서 온 조카'라고 했고 진짜 조카처럼 친절히 대접해 주었다.

 

"과거를 너무 생각지 마라."

끝으로 어머니는 말하였다.

''네가 자주 말한 것처럼 시대가 변하였다. 과거는 새 문화에 앞서 갔다. 새 문화는 자주 분수를 모른다. 그러나 네가 그것에서 무엇을 배우려고 하든지 그것이 생소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야 하며, 또 언제나 온화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궁궐의 이끼 낀 긴 담장을 따라서 오래되고 조용한 길을 걸었다. 이 궁궐의 담장 안에는 전 왕실의 후예가 수백 명의 시종과 시녀를 데리고 살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길은 언제나 조용하고 고요했다. 나는 이 길을 걸을 때마다 항시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고 말이 없어졌다. 나는 그들 왕족의 인기척이나마 듣고 싶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아무런 소리도 아무런 말도 아무런 발짝 소리도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5백 년 왕조의 저 후손들은 지극히 조용해졌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학문, 철학, 자연, 인간의 생활-이 우리에겐 무의미하게 보였다. 아니 더럽게 보였다. 우리가 시체 해부를 마치고 학교에서 나올 때, 우리는 더운물로 깨끗이 목욕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의 신체를 보아야 하며 피부를 손으로 만지는 게 겁이 났다.

 

"너는 겁쟁이가 아니다."

어머니는 오랫동안 잠자코 걷다가 말하였다.

"너는 자주 낙심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충실히 너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너를 무척 믿고 있단다. 용기를 내라! 너는 쉽사리 국경을 넘을 것이고, 또 결국에는 유럽에 갈 것이다. 이 에미 걱정은 말아라. 나는 네가 돌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겠다. 세월은 그처럼 빨리 가니, 비록 우리가 다시 못 만나는 한이 있더라도 슬퍼 마라. 너는 나의 생활에 많고도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 내 아들아, 이젠 너 혼자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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