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는 죽어야 한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51
니콜라스 블레이크 지음, 현재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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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는 죽어야 한다의 작가는 니콜라스 블레이크라고 한다. 이 이름은 필명이다. 본명은 세실 데이-루이스이다. 이 독특한 성()과 연결시킨 하나의 곁가지 이야기. 그 유명한 배우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이 작가의 아들이다.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3회 수상자이자 연기로 기사 작위를 받은 영국의 이 대단한 배우는 현재 잠정적으로 은퇴한 상태인데, 그 당시 나는 은퇴한 배우의 뉴스를 접하면서 슬하에 자식들을 키우고 스스로의 생활을 죽을 때까지 영위할 만큼 충분히 돈을 벌었구나라는 다소 속물적인(?) 생각을 했다. 그야말로 FIRE 족인 셈인데, 이 대단한 배우의 아버지는 아들만큼 본업으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필명이라는 단어를 국어사전으로 찾아보면 글을 써서 발표할 때에 사용하는, 본명이 아닌 이름, 이라고 되어 있는데 니콜라스 블레이크는 원래 자기 본명인 세실 데이-루이스로 시를 쓰는 영국의 계관시인이다. 여기서부터 헷갈릴 수 있는데, 영국에서 손꼽히는 시인인 세실 데이-루이스가 시만 써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우니 니콜라스 블레이크라는 이름으로 추리 소설을 써서 가족을 부양했다는 것이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세 가지. 그래도 그냥 시인이 아니라 계관시인인데도 시만 가지고는 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의외로 니콜라스 블레이크의 책이 잘 팔려서 자녀들을 잘 키워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추리 소설을 쓰면서 굳이필명을 썼다는 것.

필명으로 추리 소설을 쓰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하자면 본캐와 구별되는 부캐인 셈인데, 본캐는 명예는 최고지만 돈은 되지 않는 계관시인, 부캐는 잘 팔리는 추리 소설 작가 이렇게 스스로 구별한 게 아닌가 싶다. 이 둘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가장의 책임감과 시인으로서의 책임감 양쪽에서 고민했을 작가가 그려지기도 하고.

이 소설은 필릭스 레인이라는 추리소설 작가가 차사고로 아들을 잃고 복수하기 위해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이다. 이 작가의 본명은 프랭크 케언즈라고 하며, 시작부터 작가의 일기로 시작되는데, 우연히 범인의 정체에 다가간 작가가 살인계획을 짜는데 일기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접근이 다소 독특한데, 읽을수록 아무래도 작가가 작정하고 쓴 추리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정하지 않고 대충 쓴 작가야 세상에 없겠지만, 주인공이 필명을 가지고 있는 추리 소설 작가이며,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아들이라는 점이 자꾸 작가 개인사에 접근하고 싶어지게 만든다.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는... 독특하기는 하지만, 훌륭하지는 않다, 이 정도? 이런 소설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소설로는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과 살짝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당연히 크리스티 쪽이 뛰어난 것이고, 그래도 이 소설은 나름의 재미는 있지만, 계관시인이라는 작가의 본캐 때문인지 추리 소설 특유의 치고나가는 느낌이 덜하기는 하다. 일기라는 형식을 가져온 것도 결국 작가의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 때문인지 일기가 끝나고 후반부에 탐정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소설이 기우뚱하게 살짝 무너졌다는 느낌도 들고.

함께 실린 스미스 어네스트 브래머의 브룩밴드장의 비극은 맹인 작가라는 캐릭터나 결말도 깔끔했지만 구성이 다소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이 작가의 최고 소설이 이 소설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옮긴이에 따르면 나는 자신을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작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이력에 대해 알려진 게 없는 것 같다. 그의 출세작은 The wallet of Kai Lung 이라는, 이야기꾼인 중국 사람 Kai Lung 이 주인공으로 한 시대 전의 중국을 무대로 삼아 아라비안 나이트식 우화를 엮은 것이라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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