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옮긴이의 말
30주년 기념판 서문
개정판 서문
초판 권두사
초판 서문

1.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진화-가장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여기서 우선,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을 첫 번째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진화에 근거하여 도덕성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한 진술'을 구별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오해받을 소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을 두 번째 사항을 말해야겠다. 이 책은 '천성이냐 교육이냐'라는 논쟁에서 어떤 한쪽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을 세 번째 사항은 인간 또는 기타 동물의 상세한 행동에 관한 서술이다.

다윈 이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얻어니는 가장 놀라운 결과 가운데 하나는 생존가능성에 미치는 아주 사소한 영향이 진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정말로' 숨겨진 혹은 무의식적인 이기적 동기에 따라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아닌지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라도 이 책에서 논의할 사항은 아니다. 다만 이 행위가 이타 행위자의 생존 가능성과 이타 행동의 수혜자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를 내는지 아니면 낮추는 효과를 내는지만이 중요할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겉보기에 이타적인 행위는 실제로는 이기주의가 둔갑한 경우가 많다.
집단 선택설
그 잘못된 설명은 앞서 언급한 오해, 즉 "생물은 '종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진화한다"는 오해에 근거한다.

세상은 자기희생을 치르는 개체로 이루어진 집단으로 가득 찬다.

이것이 '집단 선택설Theory of group selection'이다.

이와 반대로 정통 학설은 '개체 선택설Theory of individual selection'이라고 불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유전자 선택설Theory of gene selection'이라 부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아마도 집단 선택설이 큰 매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대부분 우리가 갖고 있는 도덕적 이상이나 정치적 이상과 조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2. 자기 복제자
안정을 향하여

세상은 안정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안정한 것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지속적으로 존재하거나 그 존재가 흔한 원자의 집단이다. 그것은 가령 알프스의 마터호른Matterhorn 봉우리처럼 이름을 붙이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도록 지속되는 고유한 원자 집단일 수도 있다. 또는 빗방울처럼 그 하나 하나는 금세 사라질지라도 집합적인 이름을 붙일 수 있을 만큼 많이 존재하는 어떤 집단일 수도 있다.

때때로 원자들이 서로 만나면서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결합하여 다소간 안정한 분자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자는 매우 클 수 있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결정은 단일 분자로서 안정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내부의 원자 구조가 무한히 바녹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단순한 분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생물들은 매우 복잡한 큰 분자들로 구성되며 그 복잡성에는 몇 개의 단계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구 상에 생물이 생기기 이전에 일반적인 물리화학적 과정에 의해 분자의 초보적인 진화가 일어났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디자인을 누가 했다거나 목적이 있다거나 방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에너지를 가진 한 무리의 원자가 안정한 패턴을 갖게 되면, 그 원자들은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고 할 것이다. 최초의 자연 선택은 단순히 안정한 것을 선택하고 불안정한 것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전혀 신비로울 것이 없다. 그것은 정의대로 당연히 그렇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과 같이 복잡한 존재를 안전히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알맞은 수의 원자를 취하고 약간의 외부 에너지를 더해 그것들이 바른 패턴이 될 때까지 흔든다고 아담이 뿅 하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십 개의 원자로 구성된 분자라면 이와 같은 방법으로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은 10²⁷개 이상의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을 만들려면 우주의 전 역사가 마치 한 순간처럼 생각될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생화학적인 칵테일 셰이커를 흔들어야 하지만, 그러더라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쯤 되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다윈의 이론이 우리를 구조할 것이다. 분자 형성의 느린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끝날 무렵부터 다윈의 이론이 접수한다.
생명의 기원과 자기 복제자

어느 시점에 특히 주목할 만한 분자가 우연히 생겨났다. 이들을 자기 복제자replicator라고 부르기로 하자. 자기 복제자는 가장 크지도, 가장 복잡하지도 않았을 수 있으나 스스로의 복제물을 만든다는 놀라운 특성을 지녔다.

실제로 스스로 복제하는 분자는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단 한 번만 생기면 충분하다. 자기 복제자를 주형鑄型이라고 생각해 보자.

수프 속의 어떤 구성 요소가 자기 복제자에서 자기와 친화성을 갖고 있는 부분과 만날 때마다 자기 복제자에게 들러붙으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들러붙은 구성 요소는 자동적으로 자기 복제자 내 구성 요소들의 서열과 같은 식으로 배열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구성 요소들이 최초의 자기 복제자가 만들어졌을 때처럼 안정한 사슬을 만들 것이라 상상하기는 쉽다. 이 과정이 순서에 따라 계속 반복되어 그 산물이 층층이 쌓인다. 이것이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방법이다. 한편 두 가닥의 사슬이 세로로 쪼개질 수도 있는데, 그러면 2개의 자기 복제자가 되어 그 각각이 다시 복제를 계속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똑같은 사본이 많이 만들어진 시점까지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어떠한 것이든 복제 과정이라면 지니게 되는 중요한 특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 복제 과정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구약성서의 그리스어 판본을 만든 학자들이 '젊은 여성'이라는 히브리어를 '처녀'라는 그리스어로 오역하여 "보라 처녀가 아들을 잉태하여......"라는 예언으로 이어졌을 때 나는 그들이 큰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기 복제자가 점점 많아지면서 구성 요소 분자는 점점 더 소진되어 결국 희소하고 귀중한 자원이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 자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기 복제의 여러 가지 변종들 내지는 계통들이 경쟁했을 것이다. 유리한 종류의 자기 복제자의 수를 증가시키는 요인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검토하였다. 별로 유리하지 않은 종류는 경쟁으로 인해 그 수가 줄었고 결국은 그 계통의 대다수가 절멸했을 것이다.

자기 복제자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계속 존재하기 위해 자신을 담을 그릇, 즉 운반자vehicle까지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기 복제자는 자기가 들어앉을 수 있는 생존 시계survival machine를 스스로 축조한 것이다. 최초의 생존 기계는 아마도 보호용 외피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더 우수하고 효과적인 생존 기계를 갖춘 새로운 경쟁 상대가 나타남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생존 기계는 더 커지고 더 정교해졌으며 이 과정은 누적되고 계속 진행되었다.

3. 불멸의 코일
생존 기계

최초 자기 복제자는 DNA와 연관된 분자였을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다른 것이었다면 그들의 생존 기계를 나중에 DNA가 강탈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그랬다면, 오늘날의 생존 기계에는 최초 자기 복제자들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최초의 자기 복제자는 완전히 파괴되었을 것이다.
유전자는 개체의 특성을 정한다

유성 생식은 유전자를 섞는다. 이것은 개체의 몸이란 일시적인 유전자의 조합을 위한 임시 운반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개체에 들어 있는 유전자의 조합은 일시적이지만 유전자 자체는 잠재적으로 수명이 매우 길다.

정자가 만들어질 때 어떤 한 페이지 또는 여러 페이지 뭉치가 빠지고, 짝이 되는 권에서 이에 해당하는 페이지나 뭉치와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정자에서 제1권은 1a권의 첫 페이지에서 65페이지까지, 그리고 그 다음은 1b권의 66페이지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머지 22권도 만들어진다. 따라서 어떤 한 개체에서 만들어진 모든 정자 세포는 서로 다르다. 그의 모든 정자 세포가 46개의 염색체로 이루어진 동일한 세트의 작은 조각에서부터 23개의 염색체를 조립하여 만들어졌더라고 말이다. 난자는 난소 내에서 같은 식으로 만들어지고 역시 모든 난자 세포는 서로 다르다.
자연 선택의 단위
노화이론

조정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배 자체인 것과 마찬가지로 살거나 죽거나 하는 것은 개체이고, 자연 선택이 가장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항상 개체 수준에서다. 그러나 선택적인 개체의 죽음과 번식으로 인한 장기적인 결과는 유전자 풀 내에서 유전자의 빈도가 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전자 풀은 원시 수프가 최초의 자기 복제자에게 했던 역할을 현재의 자기 복제자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 유전자 기계
생존 기계의 시작

나는 몸을 유전자의 군체로, 세포를 유전자 화학 공장의 작업 단위로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유전자의 군체라도 그 행동 양상을 보면 몸은 이미 부정할 수 없이 개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하나의 동물은 하나의 잘 조정된 총체, 하나의 단위로 움직인다. 내 생각에는 군체보다는 단위가 더 맞는 것 같다. 이는 당연하다. 자연 선택은 다른 유전자와 협력하는 유전자를 선호했다. 희소한 자원에 대한 치열한 경쟁이나, 다른 생존 기계를 잡아먹기 위한 또는 먹히지 않기 위한 혹독한 싸움에서, 공동체와 같은 몸이 중추에 의해 조절되는 쪽이 무질서한 쪽보다 틀림없이 더 유리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복잡한 유전자 간의 공진화가 계속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개개의 생존 기계가 공동체의 성질은 갖는다는 점을 사실상 인식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자동차의 성능을 논할 때 양자나 소립자에 관해 말하는 것이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것처럼, 생존 기계의 행동을 논할 때 유전자를 걸고넘어지는 것은 재미없고 불필요할 때가 많다.
뉴런과 컴퓨터

감각 기관이 뇌를 거치지 않고 근육과 직접 연결되었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말미잘은 현재도 이 상태와 별로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말미잘의 생활양식에서는 이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타이밍과 근수축의 타이밍 사이에 더욱더 복잡하고 간접적인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그 매개물로서 뇌와 비슷한 것이 필요했다. 진화의 과정 중에 기억이 '발명'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기억이라는 장치 덕분에 근수축의 타이밍은 가까운 과거의 사건뿐 아니라 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생존 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존 기계의 행동이 목적의식 있는 인간의 행동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동물이 먹이나 배우자, 또는 잃어버린 새기를 '찾는' 것을 보면, 인간이 무언가를 찾을 때 경험하는 모종의 주관적 감정을 그 동물 역시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감정에는 어떤 물체에 대한 '욕망', 즉 바라는 물체를 '마음속에 그린 그림' 또는 '목적'이 내포되어 있다. 누구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현대의 생존 기계 중 적어도 하나(사람)에서는 이 목적성이 '의식'이라고 불리는 특성을 진화시켰다.

'목적 기계', 즉 의식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기계 내지 물건은 사물의 현재 상태와 자신이 '바라는' 상태의 차이를 측정하는 일종의 장치를 가지고 있다. 이 차이가 클수록 기계는 더 열심히 돌아가도록 만들어진다. 이렇게 해서 기계는 자동적으로 그 둘의 차이를 좁혀 가며(이 때문에 '음의 피드백'이라고 불린다), 자신이 '바라는' 상태에 도달하면 작동을 멈춘다.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실제로 경기를 할 떄 컴퓨터는 이미 독립되어 있고 프로그래머의 훈수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미리 많은 양의 지식과 전략 및 기술에 대한 힌트를 적절히 섞어 입력하여 최선의 상태로 컴퓨터를 설정해 놓는 것뿐이다.

유전자 역시 인형을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간접적으로 자기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후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 유전자는 왜 그렇게 수동적이 되었을까? 왜 고삐를 잡고 일일이 명령을 내리지 않을까? 그 이유는 시간적 차이 때문이다.
유전자는 예측한다

북극곰의 유전자는 곧 태어날 자신들의 생존 기계의 미래가 추위를 느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그것을 하나의 예언으로서 생각해 내는 것은 아니다. 그 유전자는 생각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두꺼운 모피를 만들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 유전자가 과거의 몸속에서 항상 해왔던 일이고, 또 그 유전자가 아직도 유전자 풀 속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유전자는 땅에 눈이 뒤덮일 것을 예측하고, 그 예측으로 인해 북극곰의 모피는 백색이 되어 위장 색을 갖게 된다. 만약 북극의 기후가 급변하여 아기 북극곰이 열대의 사막과 같은 환경에서 태어난다면, 그 유전자의 예측은 빗나가고 그 유전자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아기 북극곰은 죽고 그 속의 유전자도 사라질 것이다.
시뮬레이션
의식의 진화

의식에 대해 제기되는 철학적 문제가 무엇이든, 현재 우리의 목적에서 의식이란,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그들의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는 진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뇌는 생존 기계의 일상생활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도 있다. 또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가급적 많은 아이를 낳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인간은 이 점에서 대단히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유전자는 일차적 정책 수립자이며 뇌는 집행자다. 그러나 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정책 결정권을 갖게 되었으며, 결정권 행사에서 학습이나 시뮬레이션과 같은 책략을 쓰게 되었다. 이 경향이 계속되면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 단 하나의 종합적인 정책,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지시하게 될 것이다. 어느 종도 아직까지는 이 시점에 도달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의사소통

동물의 의사소통 신호는 본래 서로의 이익을 증진시키도록 진화되었고 그런 뒤 나쁜 동물들이 이 신호를 악용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믿음이다. 모든 동물의 의사소통에는 처음부터 사기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의 상호 작용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 이해의 충돌이 내재하기 떄문이다. 

5.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다른 생존 기계는 환경의 일부

한 생존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아이 또는 가까운 친척이 아닌 다른 생존 기계는 바위나 냇물이나 한 조각의 먹이 같은 환경의 일부다. 그것은 방해물일 수도 있고 이용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위나 냇물과 다른 점은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또한 미래를 책임질 불멸의 유전자를 갖고 있는 생존 기계이며, 그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 선택은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선호한다. 이것은 같은 종이거나 다른 종이거나 상관없이 다른 생존 기계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B와 C는 모두 나의 경쟁자인데 내가 마침 B를 만났다고 하자. 이기적 개체인 내가 그를 죽이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C는 내 경쟁자이기는 하지만 B와도 경쟁 관계가 아닌가. 내가 B를 죽이면 잠재적으로 C의 경쟁자 하나를 제거해 C에게 이익을 주는 셈이 된다. 따라서 B를 살려 두면 B가 C와 다투거나 싸울 것이므로 결국 나 자신에게는 간접적인 이익이 될 것이다. 이 단순한 가상적 예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함부로 경쟁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에는 뚜렷한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게임 이론과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메이너드 스미스가 소개하는 중요한 개념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tionarrily stable strategy, ESS 인데, '전락'이라는 것은 미리 프로그램된 행동 방침이다. 전략의 일례를 들어 보면, "상대를 공격하라. 그가 도망치면 쫓아가고, 그가 보복해 오면 도망쳐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체가 전략을 의식적으로 고안해 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재 동물을, 근육을 제어하는 미리 프로그램된 컴퓨터가 조종하는 로봇 생존 기계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편의상 이 전략을 일종의 지시처럼 말로 쉽게 표현하는 것 뿐이다. 어떤 불분명한 메커니즘에 의해 동물은 마치 이러한 지시를 따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 즉 ESS는 개체군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일단 그 전략을 채택하면 다른 대체 전략이 그 전략을 능가할 수 없는 전략이라고 정의된다.

환경에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면 잠시 동안 진화적으로 불안정한 기간이 올 수 있으며, 개체군 내에서 변동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전략이 일단 ESS가 되면 그것은 계속 ESS로 남는다. 자연 선택은 이 전략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벌할 것이다.
비대칭적 싸움

6. 유전자의 행동 방식
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주의

이제 중요한 것은, 개체군 전체에서는 드물더라도 어떤 가족 내에서는 흔히 존재하는 유전자가 있다는 점이다. 나도 개체군 전체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유전자를 많이 가지고 있고 당신도 마찬가지다. 우리 두 사람이 드문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러나 나의 누이가 나와 똑같은 드문 유전자를 갖고 있을 확률은 어느 정도 있으며, 당신의 누이가 당신과 공통으로 드문 유전자를 갖고 있을 확률 또한 같은 정도다. 이 경우 그 확률은 정확히 50퍼센트다.

이제 우리는 부모의 자식 돌보기는 혈연 이타주의의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전적으로 말하면, 만약 갓난아기인 동생이 고아가 됐을 경우 형제들은 이 어린 동생을 자기의 친자식처럼 열심히 돌봐 줘야할 것이다. 근연도가 똑같이 1/2이기 때문이다. 유전자 선택의 용어로 말하자면, 누나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유전자가 개체군 내에 퍼질 확률은 부모의 이타적 행동에 대한 유전자와 같은 정도여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에 설명할 여러 이유에서 볼 때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며, 실제로 자연계에서 누나 또는 형이 동생을 돌보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만큼 흔하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형제자매 간의 관계에 비해 '유전적'으로 더 특별할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부모가 실제로 자식에게 유전자를 건네주는 데 반해 자매간에는 유전자를 주고받지 않는다는 지적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자매는 같은 부모로부터 같은 유전자의 복사본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혈연 선택

따라서 이타주의의 진화에서 '진짜' 근연도는 동물들이 근연도에 대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추정치만큼 중요하지는 않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아마도 이 사실은 자연계에서 부모의 자식 돌보기가 형제자매의 이타주의에 비해 왜 그렇게 빈번하고 헌신적인지, 또 동물이 왜 자기 자신을 형제 몇 명보다도 더 귀중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요점은 근연도 지수뿐만 아니라 '확실성의 지수'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자식의 관계는 유전적으로 형제자매 관계보다 더 가깝지는 않으나, 그 확실성은 훨씬 높다. 보통 누가 자기의 형제인가보다는 누가 자기의 새끼인가가 훨씬 더 확실하다. 그리고 누가 자기 자신인가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하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부모-자식 간의 유전적 관계는 대칭적이고 근연도도 어느 쪽으로나 똑같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진히 자식을 돌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부모 쪽이 나이도 많고 매사에 더 능숙해서 자식을 도울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는 형제 관계에는 해당되지 않는 또 다른 비대칭성이 있다. 자식은 항상 부모보다 젊다. 이것은 항상은 아니더라고 대게의 경우 자식의 기대 수명이 길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에서 강조한 대로 기대 수명은 동물이 이타적으로 행동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때 가급적 '계산'에 넣어야만 할 중요한 변수다. 자식이 부모보다 기대 수명이 긴 종에서 자식의 이타주의 유전자는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이타주의자 자신보다 더 빨리 노쇠하여 죽게 될 개체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자기를 희생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부모의 이타주의 유전자는 그 계산식에 들어가는 기대 수명에 관한 한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갖게 될 것이다.

자식 보호나 부모의 자식 돌보기에 대한 모든 예, 그리고 젖샘이나 캥거루의 주머니 등의 신체 기관들은 자연에서 혈연 선택 원리가 실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예다. 비판론자들은 물론 부모의 자식 돌보기가 널리 존재함을 잘 알고 있지만, 부모의 자식 돌보기가 형제자매의 이타주의에 뒤지지 않는 혈연 선택의 예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말하는 예는 부모의 자식 돌보기 이외의 예를 말하는 것인데 그런 예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부모의 자식 돌보기가 진화적으로 갖는 이점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 해밀턴의 설명을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이것은 다윈 이래로 받아들려져 온 것이다. 해밀턴은 다른 관계들도 유전적으로 부모-자식 간 관계와 동등하고 진화적으로 중요하다고 증명하면서, 자연스레 부모-자식 간 관계 이외의 관계를 강조하게 되엇다. 해밀턴은 자매간 관계가 특히 중요한 개미나 꿀벌 등 사회성 곤충의 예를 들었다. 해밀턴의 이론이 사회성 곤충에만 적용되는 것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부모의 자식 돌보기가 혈연 선택의 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은 부모의 이타주의는 예측하지만 방계 친족 간의 이타주의는 예측하지 않는 자연 선택의 일반론을 만들 의무가 있다. 내 생각에 그들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7. 가족계획
아이 낳기와 아이 키우기

생존 기계 각각은 아이 낳기와 아이 키우기라는, 상당히 이질적인 두 종류의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결단이라는 말은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전략적 조치를 뜻한다.

아이 키우기의 결단은 다음과 비슷할 것이다.

"여기에 아이가 한 명 있다. 이 아이와 나의 근연도는 이러이러하고, 내가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지 않을 때 이 아이가 죽을 확률은 이러저러하다. 나는 이 아이에게 음식을 주어야 할 것인가?"

한편, 아이 낳기의 결단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개체를 하나 낳기에 필요한 여러 단계를 밟을 것인가? 번식을 할 것인가?"

아이 키우기와 아이 낳기는 하나의 개체가 이용할 수 있는 시간 또는 여러 자원을 놓고 서로 어느 정도 경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그 개체는 다음과 같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이 아이를 키울 것인가, 아니면 새로 하나를 낳을 것인가?"

종의 생태학적인 특성에 따라, 키우기와 낳기 두 전략의 여러 가지 혼합 전략들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될 수 있다. ESS가 절대로 될 수 없는한 전략은 바로 아이를 키우기만 하는 전략이다. 만일 모든 개체가 현존하는 아이 키우기에만 몰두하여 아이를 낳지 않는 상태가 되면, 이 개체군은 아이 낳기를 전문으로 하는 돌연변이 개체들에 의해 곧 점거될 것이다. 아이 키우기는 혼합 전략의 일부로서만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아이 낳기는 어느 정도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낮익은 동물들-포유류와 조류-은 아이 키우기 선수들이다. 일반적으로 아이 낳기 결단은 낳은 아이를 키우는 결단으로 이어진다. 이 두 결정이 이어지는 것이 너무도 흔한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둘을 혼동하고 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당신이 남동생을 돌보는 것과 어린 자식을 키우는 것 사이에는 원칙적인 차이가 전혀 없다. 어느 아이나 당신과의 근연도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양육 대상으로서 한쪽을 선택해야 할 때, 당신의 자식을 선택해야 하는 유전적 이유는 없다. 그러나 정의상, 당신이 당신의 남동생을 낳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신 이외의 누군가가 남동생을 낳은 다음에야 당신이 남동생을 돌볼 수 있을 뿐이다.
개체 수 조절과 인구 문제

한마디로 말해서 동물의 산아 제한이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실행되는 이타적인 것인가, 아니면 번식하고 있는 개체의 이익을 위해 실행되는 이기적인 것인가라는 두 견해 중 어느 쪽을 취하느냐에 있다.
가족계획 이론

랙에 따르면, 개체가 한배 알 수를 조절하는 이유는 전혀 이타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이 산아 제한을 행하는 것은 집단이 이용할 자원의 고갈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가 낳은 새끼들 중 살아남는 새끼 수를 최대화하기 위해 그들은 산아 제한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보통 '산아 제한'하면 떠올리는 목적과는 정반대다.

동물 한 마리가 마치 몇 마리의 개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견해는 크렙스가 찌르레기가 아닌 다른 경우에 대해서 시사했던 것이다. 그는 프랑스 외인부대가 이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는 소설 이름을 따서 거기에 Beau Geste(아름다운 몸짓-옮긴이)효과라는 명칭을 붙였다. 찌르레기의 경우 이 행위의 목적은 주위 동료들이 그것에 속아서 그들의 한배 알 수를 실제 최적 이하 수준으로 감소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해서 성공하는 찌르레기라면, 이는 당신과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개체를 감소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에 당신의 이기적인 이익에 부합한다.

이 장에서 우리의 결론은, 개개의 부모 동물은 가족계획을 실행하는데, 이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자손의 출생률을 최적화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살아남는 자기 새끼의 수를 최대화하려고 힘쓴다. 그러려면 새끼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도 안 되고 지나치게 적어도 안 된다. 개체에서 너무 많은 수의 새끼를 가지도록 하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 계속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종류의 유전자를 체내에 가진 새끼들은 성체가 될 때까지 살아남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8. 세대 간의 전쟁
가족 내부의 이해관계

부모의 투자는 '자손 하나에 대한 투자로서, 다른 자손에 대한 부모의 투자 능력을 희생시키면서 그 자손의 생존 확률(그리고 그로 인한 번식 성공도)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트리버스의 부모의 투자라는 사고방식의 장점은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척도에 가장 가까운 단위로 평가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 아이가 모유의 일부를 마셔버릴 때 이 아이의 모유 소비량은 파인트pint(액체의 단위로 영국에서는 0.57L, 미국에서는 0.47L이다-옮긴이) 또는 칼로리 단위가 아닌, 이로 인해 다른 형제가 입는 손해의 단위로 측정된다. 지금 어떤 어머니가 X와 Y라는 두 아이를 키우는데, X가 1파인트의 모유를 먹었다고 하면 이 모유에 상응하는 P.I.의 대부분은 그 모유를 먹지 못한 Y의 사망률의 증가량으로 측정된다. P.I.는 이미 출생했거나 앞으로 출생할 다른 아이들의 기대 수명의 감소치로 측정된다.

갈등의 승자

진화에서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실체, 그리고 이에 근거한 관점이 의미를 가지는 실체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것은 이기적 유전자다. 자식의 체내에 있는 유전자는 부모를 압도하는 능력을 갖도록 선택될 것이다. 같은 유전자가 자식의 몸과 부모의 몸을 차례로 점령한다는 사실에 하등의 모순은 없다. 유전자는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선택되며, 쓸 수 있는 기회를 죄다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 유전자가 자식의 체내에 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기회는 부모의 체내에 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기회와는 다를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의 최적 방책은 그것이 자리 잡고 있는 몸의 두 단계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알렉산더의 주장처럼 부모 단계에서 최적 방책이 필연적으로 자식 단계의 최적 방책보다 중요하다고 상정할 만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9. 암수의 전쟁
짝 간의 갈등

유전자의 50퍼센트를 공유하는 부모 자식 사이에도 이해의 대립이 있는데 하물며 혈연관계가 아닌 배우자, 즉 짝 사이의 다툼은 얼마나 격렬하겠는가? 이들 간 공통 관심사라고는 같은 자식에 대해 똑같이 50퍼센트의 유전자를 투자한다는 것뿐이다. 아비와 어미가 자식에게 투자한 50퍼센트의 유전자는 서로 다르고 둘은 모두 자기 투자분의 복지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어느 정도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한쪽이 자식들 각각에 대해 공평한 할당량보다 적게 주고 도망칠 수 있다면 그(도킨스는 이를 남성으로 지칭하고 있다-옮긴이)는 유리할 것이다. 왜냐하면 남는 자원으로 다른 짝을 얻어 새로운 새끼를 낳음으로써 자기 유전자를 보다 많이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짝은 상대에게 더 많은 투자를 강요하면서 서로를 착취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의 전략
이기적인 기계-누가 누구를 착취할 것인가?

암수 어느 쪽이든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릴 상황에 이르면 상대를 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 자식은 이제 충분히 컸기 때문에 우리 중 누구든 혼자 키울 수 있어. 그러니까 상대가 자식을 버리지 않을 것을 내가 확신할 수 있다면, 지금 버리는 것이 내게는 이득이 될 거야. 만일 내가 지금 버린다면 내 파트너는 자기 유전자에게 최선인 방법을 쓰겠지. 남겨진 내 짝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거야. 나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면 자식들은 확실히 죽어 버린다는 것을 내 파트너는 '알고' 있겠지. 그래서 내 파트너가 자기의 이기적 유전자에게 최선인 결정을 할 것이라고 가정하면 결론은 내가 먼저 떠다는 것이 최선이라는 거야. 상대도 나와 똑같이 '생각'하여 곧 나를 버릴지 모르니 내가 먼저 떠나는 것이 좋겠군!"

언제나 그랬듯이 이 독백 역시 단순히 설명을 위해 의도된 것이다. 단순히 짝보다 나중에 자식을 버리도록 하는 유전자가 선택상 유리하지 않을 것이므로 먼저 자식을 버리도록 하는 유전자가 선택상 유리할 것이라는 점이 이 논의의 요점이다.
가정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의 가장 단순한 예를 생각해 보자. 암컷이 수컷을 훑어보며 성실함과 가정적인 성격을 미리 따져보는 것이다. 수컷 개체군 내에서는 성실성 면에서 틀림없이 변이가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성질을 사전에 식별하는 능력이 암컷에게 있다면 이런 성질을 가진 수컷을 고름으로써 암컷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암컷이 이것을 달성하는 하나의 방법은 오랫동안 접촉을 거부하고 수줍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암컷이 최종적으로 교미에 동의하기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수컷은 성실한 남편이 될 가망이 없다. 긴 약혼 기간을 강요함으로써 암컷은 변덕스러운 구혼자를 솎아 내고 성실함과 인내를 인정답은 수컷과만 최종적으로 교미한다. 연약한 여자의 수줍어하는 성질은 사실 동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며, 긴 구애 행동 또는 약혼 기간도 마찬가지다. 이미 이야기한 대로 수컷이 속아서 다른 수컷의 자식을 양육하게 될 위험이 있을 경우 긴 약혼 기간은 수컷에게도 유리하다.

조신형 암컷은 수컷이 수 주간에 걸친 길고 힘든 구애를 거치지 않으면 수컷과 교미하지 않는다. 경솔형의 암컷은 누구와도 즉시 교미한다. 성실형의 수컷은 장기간 구애를 지속할 인내력이 있고 교미 후에도 암컷 곁에 머물러 양육을 돕는다. 바람둥이형 수컷은 암컷이 즉시 교미에 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다른 암컷을 찾아갈뿐더러, 교미가 끝나면 암컷 곁에 머물러 좋은 아비 역할을 하지 않고 새로운 암컷을 찾아 사라진다. 비둘기파와 매파의 분석 사례와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이 이들 네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전략의 운명을 따라가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남성다운 수컷을 선택하는 전략

자신의 아들이 성체가 됐을 때 개체군 내에서 대부분의 짝짓기를 독점하는 소수의 운 좋은 수컷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암컷이 얻을 수 있는 손자의 수는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그 결과 암컷의 눈으로 볼 때에 수컷이 갖춰야 할 가장 바람직한 성질의 하나는 간단하게도 성적 매력 그 자첵가 된다. 특히 매력적이고 남성다운 수컷과 교미한 암컷이 낳은 아들은 다음 세대의 암컷들에게도 매력적인 수컷이 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이 아들은 어미에게 많은 손자를 안겨 줄 것이다.
핸디캡 원리
암수의 차이

그러나 말과 당나귀처럼 가까운 종간에 교잡이 생기면 그 불이익은 적어도 암컷인 파트너에게는 매우 클 수 있다. 노새의 배가 만들어질 것이도, 그렇게 되면 그 배는 11개월 동안 암컷의 자궁을 차지하게 된다. 노새 때문에 암컷은 부모로서의 투자 중 많은 양을 소모하게 되는데, 태반을 통하거나 후에 모유로 빼앗기는 양분 이외에 가장 중대한 손실은 다른 자식을 키우는 데 쓸 수 있었던 시간의 형태로 소비되는 부모의 투자다. 또 노새는 성체가 되어도 번식이 불가능하다. 이는 아마도 말과 당나귀의 염색체가 매우 닮아 협력하여 우수하고 완강한 노새의 몸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감수 분열에서 적절한 공동 작업을 수행할 정도로는 닮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어미가 노새를 키우기 위해 지불한 적지 않은 투자 그 자체는 어미의 유전자 입장에서 보면 완전히 낭비인 셈이다.

같은 종의 개체 사이에서도 배우자 선택을 신중히 해햐 하는 이유가 있다. 종 간 교잡과 마찬가지로 근친상간은 유전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근친상간에 의해 치사성 또는 반치사성인 열성 유전자의 영향이 드러나기 떄문이다. 여기서도 암컷이 입는 손실은 수컷보다 크다. 어느 자식에 대해서건 암컷이 수컷보다 더 투자를 많이 하기 떄문이다. 근친상간의 금기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암컷이 수컷보다 더 엄격히 이 금기를 지키려 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근친상간 관계에 있는 개체 중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연상의 개체라고 가정하면, 근친상간의 결합 중에는 수컷이 암컷보다 연상인 경우일 때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아비와 딸 사이의 근친상간이 어미와 아들 사이의 근친상간보다 흔하고 남매간의 근친상간의 빈도가 중간 정도 될 것이다.
인간에서의 성 선택

10. 내 등을 긁어 줘, 나는 네 등 위에 올라탈 테니
집단 형성이 주는 이익

만일 동물이 무리를 지어 함께 산다면 그들 유전자는 그들이 투입한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다고 볼 수 있다. 하이에나 한 무리는 한 마리가 잡을 때보다 훨씬 큰 먹이를 잡을 수 있다. 물론 먹이를 나누어야 하지만 떼지어 사냥하는 것은 개개의 이기적 개체에게 유리하다. 몇몇 종의 거미들이 협력하여 거대한 공동의 망을 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황제펭귄은 서로 몸을 맏대서 열을 보존한다. 이렇게 하면 혼자 있을 때보다 노출되는 몸의 표면적이 적어지기 떄문에 모든 개체가 이익을 얻는다. 다른 개체의 뒤에서 비스듬히 헤엄치는 물고기는 앞의 개체가 만든 물결 덕분에 유체역학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이것이 물고기가 떼 지어 헤엄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경륜 선수도 이와 유사하게 공기의 파동을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으며, 새가 V자형의 편대로 비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지 모른다. 이때 무리의 선두에 서는 것은 불리하므로 이것을 피하려는 경쟁이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하지만 새들이 힘든 리더 역할을 교대로 떠맡을 가능성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이 장의 끝 부분에서 논의하게 될 호혜적 이타주의의 한 형태다.
사회성 곤충
협력의 진화

인간에게는 오래도록 기억하는 능력과 개체 식별 능력이 잘 발달되어 있다. 따라서 호혜적 이타주의는 인간의 진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기대할 수 있다. 트리버스는 우리의 심리적 특징(질투, 죄책감, 감사하는 마음, 동정 등)이 좀 더 사기를 잘 치거나, 사기꾼을 잘 알아차리거나, 남이 자기를 사기꾼이라 생각하지 않도록 좀 더 잘 처신하는 능력에 대한 자연 선택에 의해 형성됐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교활한 사기꾼'이란 존재다. 언뜻 보기에는 이들이 보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받은 것보다 조금 부족하게 갚는다. 인간의 비대한 대뇌와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성향이 더 교활하게 사기를 치거나 남의 사기를 좀 더 잘 간파하기 위한 매커니즘으로써 진화했을 가능성도 있다. 돈은 지연성 호혜적 이타주의의 공식적인 징표다.

11. 밈Meme-새로운 복제자
문화, 문화적 돌연변이

안장새의 노래는 분명히 유전자가 아닌 수단을 거쳐 진화한다. 또한 조류와 원숭이에서도 문화적 진화의 예가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이하고 흥미로운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 문화적 진화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 주는 것은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다. 언어는 많은 예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의복과 음식의 유행, 의식과 관습, 예술과 건축, 기술과 공학 등 이들 모두는 역사를 통하여 마치 속도가 매우 빠른 유전적 진화와 같은 양식으로 진화하는데, 물론 실제로는 유전적 진화와 전혀 관계가 없다.
‘밈’과 그 진화

새로이 등장한 수프는 인간의 문화라는 수프다.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에게도 이름이 필요한데, 그 이름으로는 문화 전달의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담고 있는 명사가 적당할 것이다. 이에 알맞은 그리스어 어근으로부터 '미멤mimeme'이라는 말을 만들 수 있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진gene(유전자)'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음절의 단어다. 그러기 위해서 위의 단어를 밈meme으로 줄이고자 하는데, 이를 고전학자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위안이 될 지 모르겠지만, 이 단어가 '기억memory', 또는 프랑스어'meme'이라는 단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이 단어의 모음은 '크림cream'의 모음과 같이 발음해야 한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어떤 과학자가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대해 듣거나 읽거나 하면 그는 이를 동료나 학생에게 전달할 것이다. 그는 논문이나 강연에서도 그것을 언급할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인기를 얻게 되면 이 뇌에서 저 뇌로 퍼져 가면서 그 수가 늘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밈의 특성

인간의 뇌는 밈이 살고 있는 컴퓨터다. 뇌에서는 아마도 저장 용량보다 시간이 중요한 제한 요인이며, 심한 경쟁의 대상일 것이다. 인간의 뇌와 그 제어를 받는 몸이 동시에 하나 또는 몇 종류 이상의 일을 해치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밈이 어떤 사람의 뇌의 집중력을 독점하고 있다면 '경쟁자'의 밈이 희생되는 것은 틀림없다. 밈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광고 게시판의 공간, 신문 기사의 길이, 그리고 도서관의 서가 공간 등과 같은 상품에서도 경쟁하고 있다.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거나 같은 신을 믿더라도 다른 의식을 행한다면 맹신은 그 사실만으로도 그가 죽어야 한다고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달거나, 화형을 시키거나,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거나, 베이루트 노상에서 자살한다거나, 벨파스트의 술집에서 폭탄을 날린다거나, 그 무엇이든 정당화시킬 수 있다. 맹신의 밈은 특유의 잔인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번식해 간다. 애국적 맹신이든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밈과 유전자는 종종 서로를 보강하지만 때로는 서로 대립하기도 한다. 예컨대 독신주의 같은 것은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성 곤충과 같이 매우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독신주의를 발현시키는 유전자는 유전자 풀 속에서 실패하게 돼 있다. 그러나 여전히 독신주의의 밈은 밈 풀 속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사후에 남길 수 있는 것은 유전자와 밈 두 가지다. 우리는 유전자를 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전자 기계다. 그러나 유전자 기계로서의 우리는 3세대가 경과하면 잊히고 말 것이다. 물론 자식이나 손자도 우리와 얼굴 모양새라든가, 음악적 재능이라든가, 머리칼 색깔이라든가, 하여간 어딘가 닮은 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한 세대 두 세대 지날수록 우리 유전자의 기여도는 반감된다. 그 기여도는 머지않아 미미해질 것이다. 유전자 자체는 불멸일지 몰라도 우리 각자의 유전자의 집합은 사라질 운명에 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정복 왕 윌리엄 1세 대왕의 직계 자손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 대왕의 유전자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못할 가능성은 다분히 있다. 번식이라는 과정 속에서 불멸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세계 문화에 무언가 기여할 수 있다면, 예컨대 좋은 아이디어를 내거나, 음악을 작곡하거나, 점화 플러그를 발명하거나, 시를 쓰거나 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유전자가 공통의 유전자 풀 속에 용해되어 버린 후에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윌리엄스의 말마따나 소크라테스의 유전자 중에서 오늘날 남아 있는 것이 과연 하나라도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가 그런 것에 관심이나 있는가. 하지만 소크라테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코페르니쿠스, 마르코니의 밈 복합체는 아직도 건재하지 않은가.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진정한 이타주의의 능력이 또 하나 인간 특유의 성질일 가능성도 있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 점에 관해 나는 가타부타 논쟁할 생각도 없으며, 이것이 밈을 거쳐 진화할 가능성에 대해 이러저러한 추측을 내놓을 생각도 없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음의 한 가지 사실이다. 우리가 비록 어두운 쪽을 보고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우리의 의식적인 선견지명, 즉 상상력을 통해 장래의 일을 모의 실험하는 능력이 맹목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이기성으로 인한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 줄 것이다. 적어도 우리에게 당장 눈앞의 이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이기적 이익을 따질 정도의 지적 능력은 있다. 우리는 '비둘기파의 공동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장깆거 이익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할 능력이 있으며, 이 공동 행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서로 논의할 능력이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낳아 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더 필요하다면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 순수하고 사욕이 없는 이타주의라는 것은 자연계에는 안주할 여지도 없고 전 세계의 역사를 통틀어 존재한 예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가르칠 방법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12.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
마음씨 좋은 놈, 마음씨 나쁜 놈
죄수의 딜레마

승리를 거둔 전략은 놀랍게도 가장 단순하고, 가장 덜 교묘해 보이는 전략이었다. 그것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Tit for Tat(앞으로는 줄여서 'TFT'라 하겠다)'이라 불리는 전략으로, 제안자는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게임 이론가인 토론토 대학교의 아나톨 라포포트Anatol Rapoport 교수였다. TFT는 최초의 승부는 협력으로 시작하고 그 이후에는 단순히 상대의 앞 수를 흉내 낸다.

TFT보다 더 관대한 전략도 있다. '두 번은 봐준다Tit fot Two Tats(이후 TFTT으로 줄여 칭한다)'는 전략은 적이 연거푸 두 번 배신하는 것을 용납하고 나서 보복한다. 지나치게 도량이 넓은 전략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액설로드는 누군가가 이 토너먼트에 TFTT를 제안했었다면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이유는 이 전략이 상호 보복의 연쇄를 잘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합 게임과 비영합 게임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리고 최근까지 미국 50개 주 전체에서는 법률이 또는 보다 엄밀히 말해(그리고 의미심장하게도) 변호사 규약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변호사는 고객으로 의뢰인 부부 중 어느 한 사람밖에 수락할 수 없다. 상대편은 문전에서 거절당하며, 법률적인 조언을 전혀 받을 수 없거나 다른 변호사에게 갈 것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두 사람의 변호사는 분리된 방에서, 그러나 같은 목소리로 즉시 '우리'와 '그들'에 관해 상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우리'란 나와 내 아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내의 변호사와 대립하는 나와 내 변호사를 말하는 것이다. 이 소송이 법정으로 가면 실제로 '스미스 대 스미스'라는 식으로 기재된다. 그 부부가 서로를 적대시하든 그렇지 않든, 현명하게 서로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데 동의하든 아니든 간에, 그 부부는 서로를 적대하는 것으로 상정된다. 이혼을 '내가 이기고 너는 진다'라는 싸움으로 다룬다면 누가 이익을 얻겠는가? 이익을 보는 것은 아마도 변호사들뿐이다.

불행한 부부는 영합 게임에 말려들고 만다. 그러나 변호사들에게 스미스 대 스미스의 소송은 짭짤한 비영합 게임이다. 그들은 스미스 부부 각자가 돈을 지불하도록 하고 자신들은 잘 짜인 협력을 통해 두 의뢰인의 구좌에서 돈을 쏙쏙 빼내는 것이다. 그들이 협력하는 하나의 방법은 상대측이 수락하지 않을 것이 뻔한 제안을 하는 것이다. 이 제안은 수락하지 않을 것을 양측이 모두 뻔히 알고 있는 반대 제안을 내놓도록 부추긴다. 이런 식으로 일이 계속 진행된다. 협력하는 '적대자(변호사들)' 사이에 오가는 모든 편지와 전화 요금은 또 하나의 적지 않은 금액이 되어 청구서에 추가된다. 운좋게 이 과정을 몇 개월, 아니 몇 년까지 연장시킬 수 있다면 이에 비례하여 비용도 올라간다. 양측 변호사는 이 모든 것을 진행하는 데 같이 만나 일하지는 않는다. 얄궂게도 그들이 주도면밀하게 떨어져서 일하는 것이 고객의 돈을 뺴가는 그들의 협력을 실현하는 주된 수단이다.

13. 유전자의 긴 팔
유전자냐 개체냐

그러면 그 흡충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왜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내 생각은 다음과 같다. 다른 제반 사정이 같다면 달팽이의 유전자도 흡충의 유전자도 모두 그 달팽이의 몸이 생존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생존은 번식과 같은 것이 아니며 일종의 타협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달팽이의 유전자는 자신의 번식에서 이익을 얻은 입장인 데 반해 흡충의 유전자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흡충도 자신의 유전자가 전체 숙주의 자손의 몸속에 포함되어 있다고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쟁자인 다른 흡충의 유전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달팽이의 수명이 늘어나려면 번식 성공도가 어느 정도 줄어드는 대가(비용)를 치러야 하므로, 흡충의 유전자는 달팽이에게 그 비용을 지불하게 함으로써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달팽이의 번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달팽이의 유전자는 그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 왜냐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그들의 미래는 자신의 번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흡충의 유전자가 달팽이의 껍데기를 분비하는 세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흡충 유전자의 영향은 자기에게는 이익을 주지만 달팽이의 유전자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 이론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지만 검증 가능한 이론이다.
숙주와 기생자
유전자는 왜 집단을 형성했는가?
불멸의 자기 복제자

자기 복제자는 자기 고유의 성질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상에 초래하는 결과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 결과는 매우 간접적일 수도 있다. 필요한 단 한 가지 조건은 그 결과가 얼마나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것이든 간에 피드백을 통해 최종적으로 자기 복제자의 복제 성공률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어떤 자기 복제자가 이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지는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즉 선재先在 조건에 달려 있다. 이런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종류의 자기 복제자와 이것이 초래하는 결과일 것이다.

원칙적으로, 그리고 사실상 유전자는 개체의 체벽을 통과하여 바깥세상에 있는 대상을 조종한다. 그 대상 중 어떤 것은 무생물체고, 어떤 것은 다른 생물이며, 또 어떤 것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확장된 표현형의 힘이 방사상으로 뻗은 그물눈 중심에 유전자가 들어앉아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대상물은 여러 생물 개체 속에 들어앉은 여러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력의 그물이 합쳐지는 지점이다. 유전자의 긴 팔에는 뚜렷한 경계가 없다. 세상 전체가, 멀거나 가까운 표현형에 미치는 유전자의 영향을 잇는 인과의 화살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우연이라기에는 실제적으로 너무 중요하지만, 필연이라 하기에는 이론적으로 불충분한 사실을 하나 추가해 두자. 그것은 이들 인과의 화살이 뭉쳐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자기 복제자는 더 이상 바닷속에 제멋대로 흩어져 있지 않다. 이들은 거대한 군체, 즉 개체의 몸속에 포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뭉쳐진 자기 복제자가 표현형에 초래하는 결과는 세상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개체에 응집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구에서 우리에게 이다지도 낯익은 개체라는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우주의 어떤 장소든 생명이 나타나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유일한 실체는 불멸의 자기 복제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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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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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 한 사람을 꼽는다면 고 김수환 추기경이다.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학문적인 이유로, 그분이 선종하셨을 때 명동성당을 찾아갔던 적이 있다. 수많은 신자들로 인해서 명동을 빙 둘러서 사람들의 줄은 끊이지 않았고, 한 명에게 허용된 시간은 단 3초 정도였다. 너무나 짧았기에 애도를 표현할 시간도 스스로 감정에 젖을 시간도 부족했지만, 이미 의학적으로 사망한 그 분을 뵈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느꼈던 생각은, 생전에 그 분이 아닌 것 같다는 것. 물론 내가 생전에 그 분을 실제로 뵌 적은 없고, 늘 화면으로만 보았지만, 어쨌든 내가 머릿속으로 알고 있다고 믿었던 그 모습은 아니었다. 단순히 그 때는 사람이 죽고 나면 살아 있는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달라지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관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매장하기 전 1시간 정도 어머니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경험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얼굴에 약간 화장도 한 상태이고 머리에 웨이브도 넣었다고 적고 있는데, 본문에 나오지만 장의사들의 경우 유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몇 가지 조치를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고 김수환 추기경을 보면서 '다르다'고 느꼈다면, 시신을 돌보았던 분들의 작은 배려 덕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뗼레야 뗄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분이 자신의 각막을 기증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당시 뉴스로도 크게 보도가 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죽기 전 장기 기증을 기피하는 우리 나라의 정서상, 단시간이었지만 그 덕택으로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늘었다는 기사도 있었고, 주치의의 인터뷰도 있었다. 각막 이식을 하려면 상피 세포가 2000개 이상이어야 가능한데, 워낙 고인이 고령이라서 혹시나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추기경의 소중한 뜻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했는데 다행이 2008개가 나와서 수술이 가능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건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그 이후에 시간을 일부러 내어서 케냐로 의료 봉사를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책의 원제는 Stiff. 사후 경직 상태를 의미한다. 죽고 난 후, 남아 있는 우리의 신체에 대한 글이다. 한글판 제목은 인체재활용. 평생 인체를 활용하며 살다가, 사망 후 덩그러니 남아 있는 인체 전체, 혹은 일부가 어떻게 다시 활용되는지 여러 케이스를 보여준다. 의과대학이나 병원에 기증되는 경우도 있고, 뇌사자의 경우 장기 이식을 통해 다른 이의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 과거의 엽기적인 사례들부터, 현재의 숭고한 사례까지 훑어가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불쾌감을 표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맨 마지막, 저자가 자신이 죽고 난 후 시신을 해부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기증할 계획을 세운 장면에 다다르면, 이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썼으며,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들을 했고, 그 결과 이 결론을 내렸구나 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절대로 명시하지는 않았고, 돌려서 암시하지도 않았지만, 작가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고 김수환 추기경도 그 면에서는 똑같지 않았을까 싶다. 추기경이 스스로의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 저자는 저서로 설득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 역시 사후 행동으로 자신의 글을 실천할 것이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왔다. 미국에서 나온지 12년이 흘렀다. 아마도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업데이트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총, 균, 쇠>와 같은 책처럼, 증보판을 기대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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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사이언스 북 - 엉뚱하고 기발한 과학실험 111
레토 슈나이더 지음, 이정모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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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사이언스 북.

 

한글 말로 옮기면? 미친 과학 책.

 

1304년 이후 지금까지, 700여년의 시간 동안, 과학사의 수많은 실험 중 "대체 어떻게 저런 실험을?" "저 사람 미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수 밖에 없는 111가지 ‘미친’ 실험에 대한 소개서이다. '과학'이라는 말 떄문에 읽기도 전에 부담을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이 책은 특별한 과학적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으며, 상당수는 심리학자들의 실험이 많고, 또 서프라이즈같은 프로그램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알려진 실험들도 많아서 전혀 어렵지 않다. 예를 들면 스탠리 밀그램(1961 끝까지, 450볼트의 전기충격을 가한 까닭 1963 길바닥에 편지가 떨어져 있을떄 1967 정말,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두가 아는 사이?)이나 필립 잠바르도 (1969 누구에게나 파괴본능은 있다 1971 스탠퍼드의 감옥, 아부그라이브의 감옥)처럼 한번쯤 들어봤던 실험들도 있다.

 

외국 책을 보면 이렇게 대중을 위한 과학서가 참 많고, 그 중에 훌륭한 책도 참 많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분들이 많고, 나도 몇 권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아쉬운 부분도 많다. 그 아쉽다는 것이, 저자가 부족하다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나의 편견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은 과학 교양서를 즐겨 읽지 않는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이다.

 

이 책의 원제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 영어 단어 mad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미친다는 뜻으로 간단하지만, 우리말의 '미치다'도 사전을 찾아보면 '정신에 이상이 생겼다' '어떤 대상에 관심을 보이는 정도가 지나치고 비정상적으로 열중하다'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다'로 미묘하게 다르며, 영어 단어로도 mad, crazy, insane, lunatic, frenzied, frantic 등등 다양하며 속어까지 합치면 훨씬 많다. 이 모든 단어가 비슷한 의미를 뜻하겠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이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미치다'라는 표현만큼은 우리말보다 영어가 더 다양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최소한 영어 단어 mad는 단순히 정신이상자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라 좀 더 긍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왜냐하면, 여기에 실린 모든 실험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경악할 내용인 것은 확실하지만, 한편으로는 과학사에 일정한 정도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며, 개중에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며 인용이 되며 영향을 주는 실험들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거의 실험일수록 피실험자의 인권은 보장되지 않았으며, 그 시기는 20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는데, 아마도 과학은 급속도로 발전하였으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인식은 그보다 더디게 확립되었을 것이고, 가장 과학이 발달하여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미국이 당시 세계 정세상 소련과 일본, 중국을 끊임없이 의식한 결과 지금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용인되기 힘들 정도의 실험이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몇 가지 실험들>

 

1852 음탕한 얼굴근육

프랑스 의사 기욤 뱅자맹 아르망 뒤센 드 불로뉴는 1842년 36세의 나이에 프랑스 북부 영불해협 연안의 불로뉴쉬 르메르에서 파리로 이사한 후 확실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는데 당시 센 강 좌안의 살페트리에르 병원에는 병명이 명확하지 않은 마비환자들이 많이 입원해 있었다. 주로 간질병 환자, 경련 환자, 하반신마비 환자들을 진료한 그는 이들의 근육을 하나씩 전기로 자극해가며 신경성 질환에 관한 카탈로그를 만들었다. 마비된 근육을 전기로 자극할 수 있다면, 이것은 조절메커니즘이 손상된 것, 즉, 뇌 속이나 뇌와의 연결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고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근육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결론 내린 뒤센의 이름은 가장 유명한 근육위축 질병인 뒤센형 근이영양증Duchenne type muscular dystrophy으로 기억되고 있다. 뒤센이 연구한 근육은 모두 얼굴근육으로, 실험하는 동안 전기로 얼굴을 자극해 감정의 동요를 유발하려고 애썼고, 감정에 따라 활성화된 근육에 각 감정의 이름을 붙였다. 예를 들어, 슬픔의 근육(입꼬리내림근), 고통의 근육(눈썹주름근), 음탕의 근육(코근)등이다. 그리고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의 차이는 눈둘레근의 가쪽 부분에 있는데, 이 근육은 자연스러운 진짜 웃음의 경우에만 활성화된다고. 전극자극법에는 전기로 근육을 자극한 효과가 아주 잠깐 동안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기에, 순간적인 현상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술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면 뒤센은 오늘날 그저 역사적으로 흥미 있는 신경학자로 남는 데에 그쳤을 것이다. 

 

1945 48주 동안의 길고 긴 굶주림

 

100명이 넘는 양심적 전시군복무 거부자들이 지원한 안셀 키스의 실험이 1945년 2월 12일에 시작되었다. 최종 선발된 36명은 하루 1500킬로칼로리 정도의 영양을 공급받으며 체중 감소, 탈모, 추위에 대한 민감도, 인체의 화학조성과 변동, 내장 기관 같은 육체적 변화와 지능, 주의력, 개성에 미치는 작용에 대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피실험자들은 어떤 지속적인 손상도 입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몸상태를 회복하기까지는 여러 달이 걸렸으며 실험기간동안 음식에 대한 강박관념에 가까운 집착, 무감동, 사회적 소극성이 관찰되었다. 이것들은 오늘날 거식증에 걸린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며 식이장애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1950 착하게 살아라, 그렇다고 얼간이 짓은 하지 말고!

존 내시의 최소최대정리와 관련된 실험의 이야기이다. 그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 절도, 세금포탈, 무임승차, 미국과 소련의 군비경쟁까지, 세계는 온통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아무런 해결점도 찾지 못했지만, 수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분양에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바탕을 둔 수백 편의 연구논문이 쏟아진 이후, 입증된 최고의 전략은 이것이다. 처음에는 '협조'할 것. 그리고 두 번째부터는 앞에서 상대방이 했던 그대로 '협조'와 '비협조'를 따라할 것. 이것은 다음과 같이 진화되었다. 상대방이 속이면 즉시 반격하고, 그 다음에는 상대방을 용서하고 다시 협조할 것. 즉, 착하게 살되, 얼간이는 되지 말 것.

 

1955 거미들의 수난-3: 이젠 오줌물까지?

정신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지금까지 수수께끼다. 메스칼린이나 LSD같은 약물을 복용하면 건강한 사람도 정신분열증 환자와 같은 징후를 보였다. 화학물질들이 단기간의 환각작용과 자아분열증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단지 변덕스러운 신체화학의 작용이 항상 일어나기 때문에 늘 그런 증상이 생긴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물학자 한스 페터 리더는 정신분열증 환자 열다섯 명의 오줌을 모아 거미에게 먹인 후 정상인의 오줌을 먹인 거미와의 거미줄을 비교했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고.

 

1959 세 명의 예수 그리스도, 한곳에서 마주치다

1959년 7월 1일, 심리학자 밀턴 로키치는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여기고 있었던 세 남자를 2년 동안 한 병원에서 침대를 나란히 놓고 잠을 자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고 세탁소에서 비슷한 일을 하게 했다. 정신의학사에서 가장 기괴한 실험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가장 모순되는 상황, 즉, 자기와 똑같은 정체성을 지닌 사람과 맞부딪힐 경우 무슨 일이 일어날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윤리적인 이유로 실행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스스로를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믿는 정신병 환자들이라면 가능하다. 세 사람 모두 자신이 진짜 그리스도라는 확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으며 정체성 문제를 단호하게 해결하여 충돌을 감수하기보다는 그냥 평화롭게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하여 살게 되었다.

 

1968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여덟 사람

1968년에서 1972년 사이에 심리학과 대학원생 한 명, 심리학자 세 명, 소아과의사, 정신과의사, 화가, 주부까지 총 8명이 같은 거짓 증상을 가지고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가짜 환자 누구도 들키지 않았으며 평균 3주 후에는 모두  퇴원에 성공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연극을 알아챈 사람들은 다른 환자들이었다고 한다. 1973년 실험이 발표되고 비판과 성과가 이 실험의 결과에 함께 찾아왔다.

 

1984 박테리아야, 내게 위염을 일으켜다오!
서른세살의 베리마셜은 헬리코박터가 잔뜩 들어있는 죽을 마셨다. 대학 당국에 실험허가를 요청하지도 아내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자기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은 그실험은 결코 허락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위궤양의 원인이 스트레스가 아닌 세균이며, 헬리코박터가 위염과 위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그 공로로 2005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 실험은 '코흐의 공리'가 실제로 적용된 아주 적합한 사례로 가장 고전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었으며 실험이재미있고 과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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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c2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민희 옮김, 한창우 감수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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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mc2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까? 또 그 공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수많은 책과 논문에서 이 공식을 설명하고 있지만 크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관한 수많은 책들, 그리고 위인전의 아인슈타인은 수없이 대중에 알려졌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공식 E=mc2 자체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E, =, m, c, 2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고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이것들이 어떻게 공식이 탄생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공식이 적용되고 이용되었는지, 또 그 과정에서 아인슈타인 이외에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젊은 세대를 위한 단 한 권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책의 부제가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중고생들이 읽어도 좋을만큼 이해하기 쉬우며, 내용도 풍부하다. 아마도 이 책이 출간된지 한참이 흘러서도 여전히 추천도서에 꼽히는 이유일 것이다. 나도 어린 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다만 이제 어른이 된 나에게는, 한 사람의 일대기, 그러니까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삶의 궤적을 그리는 책에 더 감동을 한다는 점, 그리고 정말 공식에만 집중하는 이 책이 쉽게는 읽히되 내 현실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자꾸 떠오르게 한다. 좀 더 어린 친구들이 읽으면 그들의 인생 향로를 바꿀 수도 있을 책이리라. 어쨌든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자세에는 탄복하게 된다. 경제적 어려움, 사회 위치에 따른 차별과 불평등, 그 외에 현실적인 제약들을 딛고 대가도 없는 순수한 즐거움과 학문 탐구의 정신으로 매진하는 모습은, 책의 맨 뒤에 우주의 모든 물질이 m에서 E의 자리로 넘어가고 '아인슈타인 공식의 임무가 끝난' 모습과 대비되어 묘한 감동을 준다. 이 거대한 우주, 깨닫든 깨닫지 못하든 진행되는 법칙을 발견하려 전 생애를 기꺼이 던지는 과학자들, 그야말로 '학문의 즐거움' 하나로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청소년 시절에는 반성을 했겠지만 요즘 같아서는 사람이 저럴 수 있을까, 하고 신기한 마음이 먼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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