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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함에 대하여 - 악에 대한 성찰 철학자의 돌 2
애덤 모턴 지음, 변진경 옮김 / 돌베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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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책의 원제는 '악에 대하여'라고 한다.

책의 제목을 살짝 바꾼 것은 워낙 비슷비슷한 이름의 책들이 많아서였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잔혹함과 악은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이기에 잘못 붙였다고 볼 수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 책의 제목이 '악에 대하여'였다면 확 끌리기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잔혹함, 이라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다. 연쇄살인마, 사이코패스, 훼손된 시신. 주로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았던 이미지들이다.

 

그런데 악, 이라고 하면 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 잔혹함 만큼이나 구체화를 띄고 있는 개념이 아니라서 이 단어를 접하고 나면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만 어둑어둑 먹구름이 눈앞에 쳐져 있는 느낌이다. 그 단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 선뜻 이 책을 손에 집어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책의 외적인 형태도, 내용도 훌륭하다. 책의 표지는 이 책의 목차이다. 빨간색으로 쓰어진 목차를 아이보리색 표지와 배치하고, 거기서 '악'이라는 단어는 음각으로 처리한 것은 섬뜩하면서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책 안으로 들어가보면, 저자가 예로 든 책, 영화, 역사전 사건에 대한 사진 자료들이 과하지 않게, 하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배치되어 있고, 달려 있는 설명과 주석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서 좋다. 또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별도의 설명과 함께 참고자료가 덧붙여져 있다.

 

어쩌면 여기 나오는 내용들은 한번씩은 들어봤을 내용인지도 모른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주장, 연쇄살인마에 대한 프로파일러의 해석,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세계 테러에 대한 수많은 입장들. 그러나 이 책만큼 공정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텍스트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결정적으로 이 책을 구매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이다. 소설, 영화,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신문 기사나 논문, 학술서 등등. 이 책을 바탕으로 수많은 독서가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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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범하다 - 서늘하고 매혹적인 우리 고전 다시 읽기
이정원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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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을 범하다.

 

이 도발적인 책의 내용을 보라.

 

우리 고전 문학을 기존에 알고 있던 시각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보며 당시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희생당한 약자들에 대해 초점을 맞춘 책이다.

 

 

어쩌면 기존에 알고 있던 문학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빈번한 일이 되었기에,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영화만 하더라도 <춘향전>을 재해석한 <방자전>, <심청전>을 재해석한 <마담뺑덕>, <장화홍련전>을 재해석한 <장화, 홍련>, <전우치전>을 재해석한 <전우치>등 캐릭터와 설정만 따오고 구체적인 내용은 감독이 새롭게 창조해낸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경우, 이미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그러니까 영화를 보는 관객 대부분이 알고 있는 대강의 구성들 자체가 사실 상당히 축약된 것이며, 심하게 말하자면 왜곡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지적한다.

 

초등학교 시절, 당시 논술 붐이 꽤 일었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초등학생용 논술 참고서에 실려 있던 <심청전>에 대한 부분이었다. 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이 과연 진짜 효일까, 아버지는 딸의 죽음으로 눈을 뜨고도 과연 여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만약 내가 청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토의 주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치 정해져 있는 것 같던 책의 내용을 내가 이리 저리 바꿔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린 나이에도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초등학생의 이해 수준에서 한참 더 나간다. 그러니까 마치 자발적으로 보이는 청이의 죽음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청이가 속해있는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으며, 아버지 심학규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딸의 죽음에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면 당대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어느 정도로 무거운 것이며, 개인이 거기에 저항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실린 모든 소설들에 대한 해석이 전부 그러하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강자와 약자, 양반과 상놈, 남자와 여자... 거의 대부분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이분법으로 설명이 가능하며, 당시의 이데올로기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소설이 작용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설명으로 모든 소설의 해설은 대동소이한 부분이 있으며, 그 점이 크지 않은 단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고전에 대한 서늘한 해석. 한여름밤에 읽으면 오싹할 내용들이지만, 단순히 원래 이 소설의 내용은 이거였다고 사실 확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시대상과 연결한 저자의 해석이 깊이가 있어서 인상 깊은 책이었다.

 

 

1부 _ 殺 : 죽은 자의 변

 

1장 _ 공포 어린 밤에 대한 환상 : 장화홍련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배 좌수가 후처 허 씨를 맞이하는 대목

 

1. 가부장제의 시스템 속에서는 계모도 약자였다.

2. 아버지 배좌수는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3. 내가 읽은 책에서 계모의 아들의 이름은 장쇠였는데, 원래는 어엿한 양반 이름이 있었고, 여러번 판을 달리하면서 천한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는 새롭게 안 사실.

4. 장화와 홍련이 원귀가 된 것은, 당대의 사회에서 아버지에게 직접 이야기를 못하고, 원님을 통해서 공론화되는 것이 자신의 피해를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5. 장화의 임신은 거짓이었지만, 그것이 만약 사실이었다하더라도 죽음이 정당화되지 않는 현대사회와 비교하면, 이 시대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시대였는지 알 수 있다.


2장 _ 심청 살인사건의 은밀한 내막 : 심청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드는 대목

 

1. 이념공동체는 어떻게 심청을 살해했는가.

2. 장승상댁 부인이 심청이를 도와준 것은 이타심이 아니라, 공동체에서 효녀로 입증된 심청이와 같은 딸을 나도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는데, 저자의 해석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부분이었다.

3. 심학규는 얼마나 이기적이며, 맹목적인 인간인가. 공양미 삼백석을 무작정 약속한 대목은, '눈이 멀었다'는 것은 신체적인 서술뿐 아니라 욕심에 눈이 멀었다는 비유적인 뜻도 가능할 것이다.

4. 아버지의 목숨을 살리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딸의 목숨보다 귀한 것인가?

5. 심지어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은 아버지가 눈을 뜰 것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하면서, 장승상댁 부인의 도움을 받아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다. 나중에 중국 황후가 된 그녀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열었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녀가 아버지가 눈을 뜨지 못할 것임을 알고도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는 것을 입증한다. 대체 심청의 희생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3장 _ 학살 혹은 우스운 죽음들 : 적벽가
· 못다 한 이야기 | <사씨남정기>

 

1. 삼국지의 적벽대전 부분이 판소리로 만들어진 것.

2. 서사적으로는 적벽대전, 이념적으로는 출사표. 

3. 도원결의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4. 군사들이 우는 장면, 한 명 한 명이 죽어가는 장면, 점고 장면이 삼국지와는 다르게 적벽가에 상세히 묘사되는 세 장면이다.

5. 한 명 한 명을 존중해준다는 점에서 의외의 감동이 있다.

2부 _ 慾 : 욕망의 늪

 

4장 _ 차마 말하지 못한 어미의 사생활 : 장끼전

 

1. 세번째 남편과 사별한 까투리에게 조문 온 모든 새들이 청혼한다.

2. 수많은 새들 중, 결국 까투리는 유유상종이라고 장끼와 결혼한다.

3. 가부장제에서, 아무리 아내가 야무져도 남편이 무능하면 결국 가정이 힘들어진다. 

 

5장 _ 우리는 너의 간을 원한다 : 토끼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별주부가 식구들과 이별하는 대목

 

1. 이 책 전체에서 가장 무서운 결말을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접해보는 이야기가 들어 있다.

2. 수많은 판본 중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토끼는 온전히 희생자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선한 자가 승리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3.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하고 치졸하고 이기적인 존재인가?

4.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이것은 절대 이 소설의 교훈이 아니었다.

5. 이 당시 피지배층들은 과연 인간으로 인정이나 받는 존재였다고 볼 수 있는가?

 

6장 _ 금지된 사랑에 대한 경고 : 지귀 설화
· 못다 한 이야기 | <운영전>

 

1. 실존 인물인 선덕 여왕에 대한 이야기.

2.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

3부 _ 權 : 지배자의 힘

7장 _ 호부호형, 그 너머의 고뇌 : 홍길동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길동이 괴물을 물리치고 두 여인을 구하는 대목

 

1. 처첩제도로 피해를 본 홍길동은 왜 정작 여러 부인을 두고 적서를 인정하였나?

2. 신분제를 비판하고 뛰쳐나간 홍길동은 조선의 임금에게 인정을 받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그냥 그 자신이 신분제의 최정상에 올라간 것으로 끝난다.

 

8장 _ 왜 정의는 패배하는가 : 황새결송

 

1. 부자 사촌의 재산을 탐을 내어 소송을 거는 이가 어이없게도 이기게 된다.

2.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재판관을 매수하는데, 그 뇌물은 손자에게 군것질거리 사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한다.

3. 무전유죄 유전무죄.
4. 사소한 악의가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

5. 이북 사투리의 독특한 리듬은 소리내어 읽다 보면 더 재미있다.

 

9장 _ 양반 비판의 공허한 진실 : 양반전

 

10장 _ 그들은 말이 없다 : 김현감호
· 못다 한 이야기 | <최낭전>

4부 _ 我 : 나의 재발견

 

11장 _ 대체 춘향이 무엇이관데 : 춘향전
· 놓칠 수 없는 대목 | 춘향과 이 도령이 첫날밤에 드는 대목


1. 이몽룡과 춘향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절절한 사랑이 아니었다.

2. 시작은 가벼웠다. 육체적인 쾌락을 원하는 양반과, 물주를 잡고자하는 기생의 만남이었다.

3. 어느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적어도 춘향에게는 절대적인 사랑이 된다.

4. 아무도 춘향에게 수절을 강요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춘향의 선택이었다.

5. 마지막 순간에 암행어사로 출두한 이몽룡이 끝까지 얼굴을 부채로 가리고 춘향을 시험한 것은, 당시의 춘향의 계급을 생각해보면, 절개를 지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며, 최종까지 그런 고난을 겪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6. 오히려 기생인 춘향이 끝까지 변사또의 요구를 거절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으로만 보았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직업적인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7.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8. 당시 민중들의 바람이 상당히 반영된, 환상으로 점철된 이야기이다.

 

12장 _ 못난 너를 벗는 날이 오리라 : 김원전

 

1. 공으로 태어난 남자가 지하의 공주를 구한다.

2. 마치 서양의 전설이나 민담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소년의 성장기.

 

13장 _ 우리들의 이기적인 페르소나 : 전우치전
· 못다 한 이야기 | <채봉감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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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승리자들 - 콜럼버스에서 마릴린 먼로까지 거꾸로 보는 인간 승리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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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두께는 어마어마하다. 참고한 문헌의 종류의 목록만 나열했는데 총 18쪽이며, 등장한 인물을 작은 글씨로 나열만 했는데 총 13쪽이다. 전체 701쪽, 이 두꺼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역사 속에 기록된 승리자들은 어떻게 인류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는가, 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어떤 것이든 재능은 있어야 하고, 그 재능이 발휘될 만한 기회가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충분히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람이 누락될 수도 있고, 길이 기억될 만한 사람은 아닌데 지금까지 이야기되는 사람이 있으며,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업적은 뛰어날 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

 

어떻게 보면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일 수 있다. 내가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에디슨'의 일화를 예로 들면서 한국의 교육은 수많은 '에디슨'을 놓쳐버리고 있다는 말들도 많았었다. 요즘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벤처 산업의 현황을 예로 들면서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크'가 등장하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기사도 많다.

 

읽다 보면 수많은 예들에 압도당한다. 책 자체가 절대 어려운 내용은 아닌데, 모든 장에 최소 수십 명에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예를 다루고 있으며, 비슷한 내용이 조금씩 되풀이 되기 때문에 읽으면서 지치기도 한다. 솔직히 여기 실린 인물들의 절반만 가지고도 이보다 더 몰입도 있고 강한 인상의 책을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죽하면 저자도 책 중반에서 스스로 중간 정리를 해 주었을까.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명성은 재능과 우연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산물이다. 대개 고약한 성격과 함께 나타나는 고도의 재능이 우연히 시공간의 은총을 입는 순간 가치 평가의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나타나 자의적 기준에 따라 명성을 부여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그래서 자격 있는 사람이 명성을 얻은 경우도 많지만, 그럴 자격이 없는데도 명성을 얻은 경우는 훨씬 더 많으며, 또 재능은 있지만 나머지 요소들이 없어서 역사에 묻힌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1장). 쿠르트 투홀스키는 말한다. "중국에만 우리가 모르는 나폴레옹이 스무 명이나 있다. 에디슨도 여덟 명이나 있지만 특허권은 아무도 없다. 발터 폰 데어 포겔바이데는 다른 것 말고도 행운까지 따랐다. 과거의 큰 휴지통에서 그의 시들이 우연히 맨 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2. 앞의 테제에 가장 적합한 보기 가운데 하나가 아메리카의 발견자로 알려진 콜럼버스이다. 그의 최대 재능은 확고한 생각 하나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능력이었는데, 그는 고등 사기꾼의 솜씨와 인정사정없는 성정으로 역사 시계에 딱 맞는 시각에 딱 맞는 군주의 발 앞에 그 생각을 갖다 놓을 줄 알았다(2장과 3장).

 

3. 우리에게는 위대한 행위를 위대한 남자들에게 귀속시키려는 욕망이 있다. 우리가 그 인물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거나(셰익스피어) 거의 없더라도(호메로스), 혹은 그들이 집단적 성취의 얼굴마담이거나 막후 실력자의 복화술 인형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들의 흉상에다 화환을 걸어 주길 좋아한다. 1914년 8월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사람은 힌덴부르크, 루덴도르프 참모장, 호프만 중령, 그나이제나우, 몰트케, 독일 병사 15만명, 독일 교사 1만 명, 독일 통신 기술자, 독일 철도원들인데, 이 모든 사람들을 대표해서 '힌덴부르크'라는 이름 하나만 거론하는 것이 훨씬 일반적이면서 간편하고, 또 역사 서술도 쉬워진다. 게다가 바로 그런 이름이 힌덴부르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고, 그것이 히틀러의 부상에도 도움이 되었다(4장).

 

4. 사람을 두고 위대하나도 말하는 것은 신화에 뿌리가 있다. 텔 같은 신화적 주인공들은 얼마 전까지도 실존 인물로 여겨졌다. 쇼페하우어와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위대성의 척도로 대체 불가능성을 들었다. 물론 그리되면 세상의 모든 발견자와 발명자들, 그리고 대부분의 국가 지도자들을 위대성의 범주에서 끌어내려야 하는 단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위는 분야별로 엇비슷하거나, 아니면 그가 아니라도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완수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위대성'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정말 무엇을 뜻하는지는 하프너가 핵심적으로 잘 표현했다. "인간을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운동선수에 비유한다면 그 선수가 온 힘을 다해 성취할 수 있는 최대치"가 위대성이다.

 

5. 백과사전에 오르거나 노벨상을 받은 사람 중에 여성은 극히 적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능력과 명성 같은 개념들은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가치이고, 이 방면에서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남성에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남성들의 생각이다. 여성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 기록으로 표현될 수가 없어서 백과사전에 올리기 어렵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적 의미의 능력을 보였을 때도 남성들에 의해 결정되는 세계에서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희박하다. 설사 여성이 그런 성공을 거머쥐었을 때도 역사가와 백과사전 편찬자들은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 즉 병성을 안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6장).

 

6. 세상의 모든 중요한 발명들은 많은 사람이 서로의 이론이나 성과를 토대로 하거나 아니면 동시에 똑같은 결과에 이르렀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A가 B를 발명했다'는 식의 모든 진술은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131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최소한 여덟 명에 의해 만들어졌다. 발견의 경우도 결코 더 일목요연하지 않다. 아메리카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유럽인이 누구인지, 북극에 처음 도달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늘날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7장).

 

7. 헤겔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개인들을 세계정신의 경영자라고 불렀고, 역사가 그들에게 미리 보여 준 길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마르크스주의는 이 태제를 감격적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세계정신은 중요한 두 가지 요소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즉 세계정신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의 경영을 망쳐 버리는 눈먼 우연과 강력한 개인들의 힘이 그것이다.

 

8. 위대성은 도덕과 어떤 관계일까? 한편으로는 분명해 보인다. 스탈린과 히틀러, 마오쩌둥 같은 대량 학살자들에게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오는 지하에 누워 있을 때 "세계정신의 등대"라는 칭호를 받았고, 히틀러는 1974년 미국의 『타임』지가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정치 영역에서는 도덕과 부도덕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을 수 없다(9장).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의심스러운 행태를 보였고, 처칠은 드레스덴의 무의미한 군사적 차괴에 책임이 있었다. 그 밖에 예술가들 중에도 인간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도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인들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나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들은 명성의 사다리에서 맨 꼭대기에 올라가기가 무척 어렵다(10장).

 

9. 유다는 인간 사회의 척도를 완전히 혼란에 빠뜨린 인물이다. 인류의 구원에 필요한 일을 한 사람이 어떻게 증오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조처한 사람이 아니던가? 클롭슈토크와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이후 유다의 행위는(그게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전제한다면) 더욱더 대담하게 해석되었다. 즉 후대에 사탄으로 평가받을 정말 어려운 역할을 떠맡은 예수의 동맹자이거나, 아니면 망설이는 예수에게 어서 메시아로 현현하라고 독려하는 인물로 해석된 것이다. 이런 모순적 해석들 속에서 이 책에 남은 것은 단 하나이다. 더 이상 도덕적 평가는 없고, 살해당한 것은 분명 명성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카이사르에서부터 룩셈부르크를 거쳐 존 F.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11장).

 

10. 지금까지는 기본 개념들을 살펴보았다면 이제 2부에서는 '천재'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위대성과 마찬가지로 천재의 개념도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세기에 이 개념은 숭배의 대상이었다. 괴테는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는 1775년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이렇게 기술했다. "천재라는 말은 일반적인 표어가 되어 버렸다. 어디를 가든 이 말을 자주 듣기 때문이데, 그만큼 사람들은 이 말이 의미하는 것도 일상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천재의 증표로 주로 독창성이 거론되지만 이것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천재는 불명확한 의미에다 화려하고 야단스럽게 포장한 말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이런 정의도 가능할지 모른다. 천재란 공중 줄타기를 하는 인류의 곡예사들이다(12장).

 

11. 천재들에게서 눈에 띄는 것은 기형적이거나 못생긴 사람이 많고, 대부분 육신의 병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질병은 간질과 결핵이다. 천재와 질병 사이의 떼어 놓을 수 없는 연관에 대해선 작품 창작을 위한 무자비한 육체적 찾취가 원인이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조심스럽게 키운 순종 말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면역 결핍증이 원인이거나, 아니면 질병의 고통으로 인한 창작의 자극제 역할이 그 원인일 수 있다. 어쨌든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은 천재가 아니라 몸매 만드는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13장). 볼프강 힐데스하이머는 모차르트의 전기에서 이렇게 쓴다. "육체를 만드는 것이 정말 정신이라면, 위대한 정신이 육체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을 필요한 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12. 거의 모든 천재들이 건강 염려증과 우울증, 상처 난 영혼, 혹은 루소처럼 추적 망상증에 시달리거나, 고흐처럼 지독한 광기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 갔다. 천재적 성취와 우울증, 정신병, 환각증의 관련은 플라톤 이래로 유명하다. 심리 분석가 아이슬러는 천재성이 현실 관련성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광기라고 했고, 벤은 "천재는 생산성 유발과 연결된 순수한 변종의 특정 형태"라고 밝혔다. 정신 의학자 크레치머는 발명가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성공한 자와 성공하지 못한 자가 있는데, "그중에서 성공하지 못한 발명가를 사람들은 편집증 환자라고 부른다."(14장) 증거가 가장 충분하면서도 가장 충격적인 광기를 보인 사람은 니체였다(15장). 광기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 하나는 행복한 상황일 경우 당사자의 내면에서 최고의 능력을 불러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재에게 경탄하는 사람들에게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13. 대부분의 위인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지극히 오만하고 비판에 과민하다. 이들은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자기 자신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 외에는 스스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새로운 이론을 관철하려는 철학자와 학자들에게는 오직 혼자만 진리를 알고 있다는 오만함이 필요하다. 어떤 위인들은 자신의 천재성에 대한 믿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받는 것을 앙연시했다. 하이네가 그랬고, 바그너와 마르크스가 그랬다(16장). 예술가로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경향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 준 이는 폴란드 소설가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이다. 그는 1924년에 노벨상을 받았는데, 파리 주재 폴란드 대사가 그를 국립 도서관으로 안내했을 때 딱 한 문장만 말했다고 한다. "당장 이 책들을 전부 불태워 버리고 내 책들을 놔둘 자리를 만들어 주십시오."

 

14. 무언가 위대한 것을 이루려는 사람은 자신의 일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다. 위인들의 삶은 대부분 근면함과 강철 같은 작업 규율이 특징을 이룬다. 거기다 작업 과정에서 고도의 효율성까지 보인 사람도 더러 있었다. 예를 들어 수천 쪽의 메모를 모아 두고 활용하는 방법이 그렇다(17장). "문학으로 먹고사는 이는 균형을 잃은 사람이고, 엄청나게 큰 거위간은 아무리 먹음직스럽더라도 병든 거위를 전제로 한다." 클레멘스 브렌타노가 자신의 단편 소설에서 한 말이다.

 

15. 연구자와 사상가, 철학자는 무엇보다 세 가지 능력에서 특출하다. 첫째, 남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 놀라워하고 의아해한다. 둘째, 인식한 것들을 토대로 사고 체계를 세워 나갈 힘이 있다. 셋째, 적대적인 외부 환경으로부터 이 체계를 지키는 일에 강고한 의지를 보인다. 전형적인 보기가 코페르니쿠스와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프로이트였다(18장).

 

16. 창조적 예술가들 가운데 대부분은 자신들의 착상이 어디서 솟구치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다만 신적인 영감이라고 빋은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가들이 무의식의 샘에서 창조의 착상을 길어 올리고 있다는 것에 다들 어느 정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프로이트는 예술가 자신의 무의식을, 융은 그보다 더 깊은 층, 그러니까 인류의 근원 상상과 근원 경험이 저장되어 있는 집단적 무의식 층을 창조의 샘으로 보았다. 무의식에서 양분을 공급받은 판타지가 예술 작품으로 태어나려면 통일적인 질서 원칙이 작용해야 한다. 그런 질서는 어느 정도까지 습득할 수 있고, 연습을 통해 발접할 수도 있다. 거칠 것 없이 자유로운 판타지와 강철처럼 차가운 논리를 생산적으로 잘 결합시킨 예술가가 포였다(19장).

 

17. 여런 방면에서 천재적 능력을 보여 준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불가사의한 것을 느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와 E.T.A. 호프만, 괴테가 그랬다. 하지만 괴테 자신은 번다한 일들로 정력과 시간을 소모했음을 한탄했다. 시작은 해놓고 아무것도 제대로 끝내지 못할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을 많았던 사람은 다빈치였다(20장).

 

 

처음에는 재미있게 읽기 시작했고, 중반부터는 나는 위인이 될 수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소 김이 빠지기도 했다. 물론, 이제 와서 내가 위인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다만, 워낙 어린 시절부터 위인전을 보면서 꿈을 키워왔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던 시절이 생각나면서 조금 씁쓸해졌다고 할까. 만약 내가 죽고 나서 나의 이름이 역사의 한 쪽 구석이라도 남아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달콤한 슬픔, 혹은 희망 고문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수없이 넘쳐나는 역사 속 승리자들의 예를 보다 보니 지치기도 했고, 결국 우리가 죽고 나서 얼마나 우리의 이름이 뒤에 남겨질지는 내가 노력한다고 얻을 수 있는 지위도 아니며, 설령 그게 가능하다 할 지라도 얼마나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다행이기도 했다.

 

이 책은 1993년에 출판되었다. 책에 실린 모든 예들을 위해 작가는 직접 도서관에서 자료를 조사했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간단히 인터넷으로 검색 가능할 내용을 위해 작가는 아마도 위인에 관한 모든 책을 다 꼼꼼히 살폈을 것이다. 그 결과물로 나온 이 책. 자주 들여다 볼 책은 절대 아니지만, 꼭 백과사전처럼 방대한 양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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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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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9년에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을 읽었다. 나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과학적인 수사 기법이 존재하였다는 것이 신기했다. 몇 년 전에 방송되었던 <다모>라는 드라마에서 비록 가상이지만 범죄를 수사하는 여자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고, 현재 시즌 10까지 나온 미드 <본즈>에 당시 꽤 빠져 있었기 때문에 더 그 책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는지도. 한때 법의학이라는 학문에 아주 살짝 열광했던 시절이 있었고 마침 그 책을 접한 시기가 그 때와 맞물렸기 때문에 더 설렜었는지도.

 

이 책은 동일한 작가가 쓰고 동일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이른바 기획상품같은 것으로, 내가 본 책을 기준으로 하면 11쇄인 것을 보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것 같기는 한데 나로서는 좀 실망스러웠다.

 

봉건시대를 뛰어넘은 남녀상열지사의 재발견

1장 _ 조선을 뒤흔든 왕조 스캔들
사랑에 미쳐 왕좌를 버리다 | 양녕대군 폐세자 사건
후궁의 죽음을 부른 한 통의 연애편지 | 왕의 여자가 사랑에 빠진 죄
질투의 화신, 현숙공주 독살 미수 사건 | 베일에 싸인 공주의 사생활
세종의 며느리 세자빈과 궁녀, 그들만의 사랑 | 궁궐 여성의 동성애

2장 _ 조선을 뒤흔든 남녀상열지사
목숨을 걸고 천민을 사랑한 처녀 | 신분을 초월한 용기 있는 사랑
기생과 사대부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 |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연애
자유연애를 꿈꾼 규방 부인 | 남편감을 직접 고른 여인
일부종사를 거부한 여성들, 감동과 어을우동 | 윤리보다 자유를 택한 두 팜므파탈

3장 _ 조선을 뒤흔든 연애기담
위험한 사랑이냐, 부도덕한 간통이냐 | 조선시대 근친상간이 일어난 이유
아버지의 연인을 빼앗은 사대부의 최후 | 어느 사대부의 일그러진 욕망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유린한 별종 | 양성을 넘나든 사방지 사건
일곱 살 아이가 아기를 낳은 사연 | 영조시대에 일어난 놀라운 사건
여인의 정조를 놓고 싸운 선비들 | 연애 스캔들을 둘러싼 조식과 이황의 대립

4장 _ 조선을 뒤흔든 불멸의 로맨스
삼의당 김씨 부부의 영원한 사랑 | 사랑의 시를 남긴 부부
조선 최고의 로맨티스트 심노숭 | 떠난 아내를 미치도록 그리워한 남자
첫사랑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다 | 기생이 열녀문을 하사받은 사연

 

일단 목차를 보면 다음과 같은데, 이 중 몇 가지 이야기는 다른 역사서를 통해서 접한 적이 있었고, 그 뒷이야기는 오히려 더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었기에 이 책의 이야기는 좀 밋밋하기도. 하지만 역사를 깊이 알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벼운 읽을 거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꽤 괜찮은 책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여 책을 읽기보다는 잠깐의 휴식이 필요하지만, 전혀 머리를 쓰고 있지 않으면 오히려 더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아니면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이 들었을텐데, 이 책은 효과적인 처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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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를 뒤흔든 12가지 연애스캔들
박은몽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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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류의 책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역사를 거시적인 관점과 미시적인 관점의 두 가지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을 때, 예전에 거시적인 관점이 지배했던 시절로부터 서서히 미시적인 관심으로 옮겨오다가 지금은 전세가 역전된 것 같다.

 

몇 년 전에 읽은 책 중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이 있다. 책 자체가 굉장히 뛰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전의 다른 역사서로는 접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일화들이 많아서 조선 시대의 새로운 면모를 본 것 같아서 인상깊었다. 그 책의 저자인 이수광 작가는 역사 소설을 많이 썼는데, 소설을 쓰면서 수없이 했을 자료 조사로 인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수십 년 동안 다져진 필력으로 마치 조선시대 판 <경찰청 사람들>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 외에도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기생들>과 같은 시리즈가 다산 초당에서 연이어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저자의 책들의 제목을 훓어보면 <공부에 미친 16인의 조선 선비들>, <신라를 뒤흔든 16인의 화랑>, <중국을 뒤흔든 우리 선조 이야기>, <중국을 뒤흔든 27인의 지략가>,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재판 사건>,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비극 애사>등이다. 대략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 책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겠거니 했는데, 저자는 물론이고 출판사도 다르다. 아마도 이수광 작가의 히트작들에 어느 정도 묻어가려는 의도가 보이며, 실제로 이 책이 나온 것이 드라마 <선덕여왕> 방영 3개월 후라고 하니 출판사 쪽에서 상당히 기획해서 내놓은 책이다. 상당히 기획을 했다는 것은, 노력과 시간을 많이 들였다는 것이 절대 아니고 딱맞는 타이밍에 출판하여, 책 자체보다 주변의 이런 저런 상황에 절묘하게 탑승하여 간다는 것이다. 즉, 이수광 작가의 책들의 기본적인 퀄리티를 이 책에서 기대하면 안 된다는 말도 된다.

 

물론 고대사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던 까닭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만의 특별한 미덕이 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이미 드라마를 통해, 또 이전에 출판되었던 다른 수많은 책들을 통해 한번쯤은 반복되었던 내용을 여기서는 효과적으로 편집하였을 뿐이다.

 

이 쪽 분야에 지식이 거의 없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겠고, 책은 정말 읽고 싶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무거운 책에는 손이 안 가는 상황이라면 후딱 읽어볼 만한 책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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