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책에 대한 책'은 굉장히 많다. 최소한 그런 책들은 어떤 의미에서 확실히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일단 요즘 같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서도 고집스럽게 책을 읽는 사람들은 존재하며, 책에 관련한 팟캐스트도 인기가 높고, 온라인 서점은 여전히 성행하며, 감명 깊게 읽은 책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이런 책들을 한 번은 꼭 읽어볼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런 책을 몇 번 읽었었는데, <서재 결혼시키기>도 좋았고, <책여행책>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전자는 작가가 소녀 시절부터 어떻게 애서가의 기질을 보였으며, 역시 나중에 애서가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 평생 책을 사랑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따뜻한 문체로 쓴 책이며, 후자는 '책여행'과 '여행책'이라는 두 파트로 나누어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바탕으로 여행하고, 여행한 기록을 모아 책으로 만든, 기발하고 멋진 책이다.

 

책에 대한 책이 사실 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위에 언급한 두 책도 성격이 전혀 다르지만, 최근에 읽은 <베스트셀러의 역사>라는 책은, '베스트셀러'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 상 베스트셀러가 어떤 것들이 있고, 그 뒷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확인해 볼 수 있었다. 이뿐만 아니라 수많은 명사들이 추천하고 싶은, 혹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책에 대한 글을 모은 책도 꽤 많으며, 거꾸로 한 작가가 여러 책에 대한 글을 쓴 책도 있다.

 

이 책 <장서의 괴로움>은 일본 작가의 책인데,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국어교사로 근무했다가 책에 대한 라디오방송을 하기도 했고, 현재는 신문에 책 서평 기사를 쓰고 있다고 한다. 일본 문학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낸 것 같다. 이 책은 무엇보다 표지가 정말 압권인데, 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은 물론이거니와 바닥과 소파 위에 어지럽게 책이 널려 있는 가운데 발 디딜 틈이 없어 책을 밟고 서 있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이다. 그 역시 손에는 책을 들고 있는데, 색이 칠해진 부분은 그림에서 오로지 책을 제외한 부분, 그러니까 아마도 작가 자신일 중년 남자와, 고양이와, 소파와, 높은 곳에서 책을 꺼낼 수 있게 놓여져 있는 사다리 뿐으로, 바탕색인 황토색이 그대로 책 색이라서 그런지 이 어지러운 광경 속에서도 왠지 눈이 편안해지는, 묘한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또 재생종이를 써서 그런지, 본문을 읽으면서도 하얀색으로 번들거리는 책들과 다르게 온화하게 느껴진다. 매 장마다 끝에 붙어 있는 교훈도 그렇고, 각주도 그렇고, 글자체도 그렇고, 왠지 구수한 느낌이 나기도 한다.

 

독서가와 장서가는 미묘하게 다를 수 있는데, 단어 그대로 독서가는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일 것이고, 장서가는 많은 양의 책을 보유한 사람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 SNS에 돌아다니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칼 라커펠트의 서재. 그는 독서가이면서 장서가인데 사진 속에 보이는 엄청난 책의 양에 압도당한 적이 있다. 그가 몸담고 있는 그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정도였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 명품을 즐기는 사람 중 상당수가 책을 많이 읽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고 해서 그 명품을 만들어내는 사람 또한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일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는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모두가 갈망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정도의 사람이라면, 엄청난 독서로 키워진 지성과 감성이 그를 뒷받침했을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발상인데 말이다.

 

한편으로 어릴 때 나의 꿈도 이런 서재를 갖는 것이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아씨들> 속에서 작가가 되고 싶어하던 조가 로리의 집에 찾아가 서재에 감명받는 장면은 아직까지 생생하고, 어릴 때 보았던 디즈니 만화 영화 <미녀와 야수>의 벨이 책이 빽뺵한 서점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책을 고르고 노래를 부르던 그 장면도 떠올랐다.

 

장서가는 어떤 괴로움을 가지고 있을까. 최소한 이 책의 장서가들은 권 수로는 1만권은 다 넘는 것 같고, 책장으로는 모자라 온 집안을 책으로 다 뒤덮어 결국 같이 사는 가족의 원성을 듣거나, 혹은 책 무게 떄문에 집이 내려앉는 경험도 해 본 사람들이다. 하도 책이 많아 이 책이 자기에게 있는지도 모르고 또 사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극적인 것은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이 때 온 집안의 책들이 전부 와르르 무너지고, 망가진 경험이 기점이 되어 책을 처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나는 독서광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자부할수 있는데 장서가는 아니다.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아직 책 한 권을 살 때 상당한 고민을 하는 편이고, 내 거주지 근처의 도서관이 워낙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에게 어떤 책이 있는지도 몰라서 똑같은 책을 또 살 정도라면 좀 병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떄도 있다. 사놓고 읽지 않을 정도로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이라면, 그의 어마어마한 장서 또한 일종의 과시욕이 아닐까 싶은, 약간의 삐딱한 마음도 드는게 사실이다. 이 책의 11장은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책을 수집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람은 목표가 눈앞에 보이면 도전한다. 끝없는 수집은 대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모든 책을 수집하려는 사람은 없다. 장르나 특정 작가 혹은 짧은 기간에 활약한 출판사나 시리즈물 등 제한 영역 안에서 목표를 세운다.

 

자신에게 분명히 그 책이 있다고 생각되지만, 결국 찾지 못해 도서관을 이용하는 것이나, 끝끝내 전자책을 거부하며 기꺼이 '장서의 괴로움'을 감내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나로서는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지향하고 싶은 삶도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데에 돈을 쓰는 것보다는 한결 친근감이 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14장에서 결국 저자는 자신의 장서 중 일부를 처분하기로 하는데 이른바 '오카자키 다케시 1인 헌책시장'으로, 헌책방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자신이 장소도 빌리고, 홍보도 하여 3천 권 정도의 책을 판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던 책의 10퍼센트도 줄지 않았지만. 후기에서 저자는 말한다.

 

한 인터넷 리서치 회사의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일반인이 한 달에 읽거나 사들이는 책의 양은 이렇다. 한 달 독서량은 잡지를 포함해 "한 권에서 두 권"이 40.42퍼센트, "세 권에서 다섯 권"이 28.39퍼센트다. 이런 마당에 '장서의 괴로움'으로 책 한 권을 쓰다니 속세와 거리가 먼 이야기긴 하다. 하지만 시대의 정중앙을 돌파해가는 이들은 언제나 '소수파'다. 나는 앞으로 억지를 부려서라도 내 신념을 밀고 나가겠다는 굳은 의지로 '괴로워'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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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2015-05-23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쓰시네요! 감탄했습니다. 눈여겨보던 책인데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졌어요^^

마고할미 2015-05-23 23: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이 워낙 좋은 책이라 리뷰도 잘 써졌나 봅니다. 한번 읽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잘 모르는 일본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몰라도 크게 문제는 없는 것 같거든요. 내용이 집중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내용이 아니고, 장서가인 작가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필처럼 쓴 글이어서 가볍게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