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와 노인 사이에도 사람이 있다 - 인생의 파도를 대하는 마흔의 유연한 시선
제인 수 지음, 임정아 옮김 / 라이프앤페이지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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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로 읽는 책이 추리소설이다. 새해를 맞아 폴짝 뛰는 느낌의 발랄하고 따스한 책을 읽고 싶어 골랐다. 말 그대로 소녀와 노인, 조금 더 좁히자면 아가씨와 할머니 사이를 의미할 수도 있겠다. (아가씨라는 말이 다소 오염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영화 아가씨를 만든 박찬욱 감독의 말을 빌리고 싶다. '처음 불러봤을 때 말이다. 그 순간 나는 그것으로 제목을 삼자고 외쳤다. 아저씨들이 앞장서 오염시킨 그 명사에 본래의 아름다움을 돌려주리라')
지나치게 가벼운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새해에 읽기는 충분히 경쾌하다. 다만 늘어놓은 여러가지 소재가 좀 더 깊은 사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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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쇼핑 - 나는 오늘도 바다로 갑니다 아무튼 시리즈 4
조성민 지음 / 위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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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몰라도 도둑질한 에피소드는 빼는 게 맞지 않나? 이건 쇼핑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데다가 그 에피소드에 대한 작가의 생각도 꽤나 문제가 있어보인다.
방문한 곳의 서비스가 엉망이라고, 그 곳의 기물을 훔치는 것을 하나의 영웅담 내지 재미있는 추억처럼 서술해놓았는데, 만약 그렇다면 클라이언트로부터 의뢰를 받는 작가의 경우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클라이언트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인가?
아마도 여러 고객으로부터 이런저런 갑질에 시달렸을 작가가 엄한데서 본인의 스트레스를 분출한 것 같은데, 그렇다하더라도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작가가 아무 생각 없이 그 부분을 넣었다하더라도 출판사에서 그 에피소드는 뺐어야한다.
이 에피소드는 미리보기에도 포함되어 있다. 보통 미리보기를 보고 책을 구매하는 편인데 하필 이 책의 경우는 그냥 제목이랑 평점만 보고 구매해버린 내 자신을 탓해야하나. 혹시나 나같은 사람이 있을까봐 평점과 리뷰를 남겨둔다. 나는 이 책을 훔치지도 빌리지도 않고 내 돈을 주고 샀으니 이 정도 평은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 읽고 바로 중고로 팔아버렸지만.
아무튼 시리즈는 가볍게 웃으면서 타인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로 읽는 건데 하필 이 책은 앞부분에 이 내용이 나오는 바람에 읽는 내내 불쾌했다. 그 뒤의 내용들도... 글이 아니라 사진이나 그림 등 시각적인 묘사가 들어갔어야 더 맞는 내용들이라고 생각되고.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거나 큰 주제 아래에서 내용을 점점 확장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작가의 관심사를 특별한 분류없이 나열하듯 늘어놓았다. 단종된 물건은 뭐가 좋고, 이 제품이 이렇게 광고하는데 사실은 아닌 것 같고... 등등의 내용이 죽 이어지는데 차라리 여러가지 대상의 소개가 주된 목적이라면 일러스트나 사진으로 보여주는 잡지 형식이 적합하다. 텍스트를 음미하는 재미가 큰 아무튼 시리즈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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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발레 - 그래도 안 힘든 척하는 게 발레다 아무튼 시리즈 16
최민영 지음 / 위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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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정말 많은 종류의 근육들로 이뤄져 있고, 내가 평소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근육들이 꽤나 많구나 싶었다. 그동안 몸이라고 하면 대충 팔, 다리, 허리, 어깨, 배 정도로 '뭉텅이'로 대충 인지하면서 살았으니, 정육점에서 고기 살 때 요리용 부위 따지는 것보다 더 무심했을 거다. 마음은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돌아보고 예민하게 가꿔온 반면 몸의 세밀한 부분에는 왜 그렇게 관심이 없었을까. 몸보다 정신을 더 위에 두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닐까.

이런 얘길 털어놨더니 나이 지긋한 어느 박사님이 깔깔 웃으며 말씀하셨다.

"몸으로 창조하고 생산하는 활동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오히려 정신에 집중하다 못해 우울하게 자기 자신을 파먹지 않나요. 하지만 진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단순한 생의 원칙에 따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지요. 몸이 진짜예요." 


그래 이거다. 몸이 진짜다. 단순하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것. 그게 삶이다.

아무리 우울할 때라도 용기 내어 한 발을 내디어 걷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기분이 나아지는 경험은 한번씩 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몸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은 정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파묻혀 버린다.


발레는 하고 싶기는 한데, 겁이 많이 나는 영역이었다. 이 책을 읽으니 용기가 났다. 작가에게는 미안하지만, 작가님이 엄청나게 발레에 소질이 있거나 잘 하시는 분처럼 느껴졌으면 아, 역시 발레는 나하고 안 맞네 하고 책을 덮으면서 동시에 마음을 주는 것을 중단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끄러울 수 있는 이야기까지 전부 다 책에 써 주셨기에 나도 열심히 해 보면 작가님 정도의 성취감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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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실루엣
미야모토 테루 지음, 이지수 옮김 / 봄날의책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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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루엣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1. 미술 윤곽의 안을 검게 칠한 사람의 얼굴 그림. 18세기 말에, 프랑스의 재무상 실루엣이 극단적인 절약을 부르짖어 초상화도 검은색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다.

2. 복식 옷의 전체적인 외형. 우아한 실루엣의 드레스.

3. 영상 그림자 그림만으로 표현하는 영화 장면. 실루엣의 기법을 잘 살린 영화.

 

이 책의 제목은 생의 실루엣. , 자세히는 보이지 않아도 윤곽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삶의 외형 등으로 해석하면 되겠다. <생의 점묘화><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생>이 아니기 때문에 읽고 나면 글로 묘사되지 않은 생략된 모습은 이것이겠구나 하고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곱씹어도 좋고, 그저 그 그림자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고. 여러모로 여운이 남는다.

 

이 작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 많다. 이렇게 살아가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건가하고 생각될 정도로 작가의 일화 하나하나는 그 시작부터 흥미롭다. 각자 재혼한 부모님으로부터 태어난 유일한 자식. 만약 어머니든 아버지든 첫 번째 결혼이 끝까지 이어졌다면 작가는 아예 존재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이런 생각은 작가의 머리에 늘 하나의 화두로 남아있었을 것 같다. 만약 생의 어느 한 순간조차 살짝 어긋났더라면 나는 여기 존재할까.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한끗 차인 것인가 하고. 실제로 여기 실린 글들도 그 생과 사의 그 한끗 차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p.9~10

대학을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취직한 나는 2주간의 연수를 마치고 기획제작부라는 부서에 배치되었다. 디자이너와 카메라맨, 카피라이터가 있어 타 부서와는 다른 분위기였고, 사내에서도 그곳만 치외법권 지역이라는 느낌을 풍겼다.

사흘째 되던 날 디자이너가 나를 부르더니 책상 위에 늘어놓은 사진 열 몇 장 가운데 가장 좋아 보이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어느 부동산 회사가 분양하는 맨션의 팸플릿에 넣을 사진을 고르는 데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젊은 부부와 어린 딸이 높은 지대에서 아래쪽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 사진을 골랐다. 그러자 디자이너는 다들 이 사진이 좋다고 해서 곤란한 참이라며, 팔짱을 낀 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고는 광고업계에서는 사람의 뒷모습을 쓰는 것이 일종의 터부라고 가르쳐줬다. 뒷모습은 어떤 식으로 써도 외롭거든, 하고.

나는 과연 그렇구나 생각하며, 뒷모습에는 아무래도 '떠나간다'는 인상이 늘 따라붙겠지 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어제부터인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끌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떄 반드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p.12~13

그러던 중 나는 내가 어머니의 뜻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다 느꼈다. 이제 관두자 결심하고 그 집 앞을 지나쳤을 때, 초로의 남자가 개를 데리고 나왔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애타게 기다리던 산책에 기뻐하는 개에게 질질 끌려 종종걸음으로 나를 앞질렀고, 사거리에서 산 쪽으로 꺾어 가버렸다.

사는 장소, 보기 드문 성, 짐작되는 나이대, 호리호리한 체격에 큰 키....... 나의 아버지 다른 형이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듯했다.

급한 비탈길을 개에게 끌리듯 올라가던 그 사람은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것은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그 뒷모습에 대고 뭐라고 한마디 말을 걸고 싶은 급작스러운 충동을 억누르지 못했다. 큰소리로 그 사람의 이름을 외쳤다. OO. 그리고 그 사람이 뒤돌아본 것과 동시에 뛰어서 달아났다.

내가 다시 그 집 앞에 설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성운

 

P.15

중국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의 남서쪽 끝에 타스쿠얼간이라는 국경 마을이 있다. 실크로드의 톈산남로에서 옛 간다라 지방으로 가기 위해 파키스탄에 입국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 마을을 거쳐야 한다. 그 반대 코스로 가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P.17

그런 내게 200미터 남짓한 길 양쪽으로 포플러 가로수와 창고나 가게가 한산하게 늘어서 있을 뿐, 사람도 거의 없이 들새 울음소리만 들려오는 땅끝 마을은 어딘가 맑고 깨끗한 표정을 띠고 있어 안녕한 하룻밤을 제공해줄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P.18

나무와 점토와 돌로 세운 딱 한 채뿐인 호텔은 간소하긴 했으나 깔끔하게 청소한 흔적이 있었다. 구석구석 빈틈없이 청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이곳이 국경 마을에 있는 호텔이고, 여러 이웃 나라를 오가는 거친 상인들이 묵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넓이를 생각하면, 적은 종업원으로는 이게 최선이리라 이해했다.

 

P. 20~21

나의 일본어에 깜짝 놀란 남매는 손을 잡은 채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올려봤다. 남자애의 눈은 옅은 갈색이었고 여자의 눈은 희미한 푸른색이었으며, 입고 있는 옷은 허름했으나 결코 비굴하게 알랑거리지 않는 무언가를 그 눈 속에 감추고 있었다.

일을 마친 누나가 호텔 뒷문 쪽에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웃으며 손등으로 여동생의 눈물을 닦아줬고, 그 손으로 남동생의 등을 쓰다듬었다. 세 사람은 강아지들처럼 서로 장난치며 길 막다른 곳의 무너진 돌담 건너편으로 사라졌다.

밤에 추워서 잠이 오지 않아 스웨터 세 장을 겹쳐 입고 창을 연 뒤, 몸을 살짝 내밀어 땅끝 마을을 뒤덮은 안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미 안개가 아니라 구름이었다.

세 사람이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돌담 건너 편, 길로부터는 상당히 낮게 꺼져 있는 일대에서 인가의 불빛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곳에 타지크족의 거주지가 있다는 것을 낮에는 몰랐다. 그것은 땅끝에서도 맨끝의 불빛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듯했다.

바람은 굽이치고 구름은 소용돌이를 그리며 거주지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별의 알갱이 같은 것 속으로 흘러들어가, 우주 어딘가의 성운으로 보였다.

 

 

 

 

유리 너머

p.33

그 작업을 하는 나를 S는 어항 건너편에서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어항의 굴곡진 유리 너머로 보인 것은 친아버지를 쏙 빼닮은 S의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나 S에게 엽서를 받았다. 개미는 건강해요, 고마워요, 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짧은 문면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으며, S가 태어나기 얼마 전 취한 듯한 아버지가 혈통서가 안 딸려 있는 놈은 인간이 아니라는 거냐고 고함치듯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S는 고베 대학을 졸업하고 큰 건축회사에 취직했지만 서른다섯 살 때 한신 아와지 대지진*으로 죽었다. 약혼자가 있었다고 한다. S가 죽은 나이가 친아버지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 깨달았다.

 

*1995117일 일본의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 발생한 리히터 규모 7.3의 대지진. 2011311일에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 지진 관측 사상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이었다.

 

 

바람의 소용돌이

P.43

이부자리로 돌아온 나는 뭔가가 회전하며 교각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은 듯했지만, 그것은 아지강으로 나아가자 낌새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창고가 줄지어 서 있는 아지강 하류 100미터 정도의 벼랑 근처에서 가라앉은 숙선(宿船)으로부터 가족 넷의 유체가 떠올랐다. 당시 수상생활자의 거처였던 조그만 배를 숙선이라고 불렀다.

P.44

그때 아버지가 숙선이 떠내려가는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 가족은 죽지 않았을까. 나는 바람과 함께 가루이자와의 숲 전체가 회오리치는 어둠 속에서 50년도 더 지난 일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죽이는 마권

p. 52

며칠 뒤, 친구로부터 우편물이 왔다. 봉투 속에는 '죽이는 마권'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지갑에 넣었다. K 조교사와 만날 일이 있으면 보여주자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경마장에 발길을 끊고 마권에서도 손을 씻은 무렵, 텔레비전 뉴스로 기묘한 사건 보도를 접했다. 세 남자가 호텔방에서 목을 매달고 죽었다 한다. 사업이 벽에 부딪혀 자살한 모양으로, 남자 하나는 전 더비 우승마의 오너고 나머지 둘은 그 친구인데 어째서 세 사람이 동반 자살하듯 거의 동시에 목을 매달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든 뉴스 프로그램에서 크게 다루었고, 개중에는 더비에서 승리한 뒤 경마장에서 찍은 기념사진 속의 아이짱과 그 오너와 K 조교사를 비추는 방송국도 있었다.

 

p.53~54

처자식 혹은 불륜 상대를 길동무로 삼은 게 아니라 어째서 남성 친구 둘이 죽음을 함께했을까. 거대한 수수께끼로서 각종 주간지성 억측 기사가 실렸고, 그 가운데는 상스러운 추리를 전개하는 글도 있었다.

사건은 이윽고 잊혀갔지만 평생에 단 한 번인 '죽이는 마권'은 이제 웃어넘길 일로는 끝나지 않게 되어, 나는 당장이라도 그 빗맞은 마권을 태워버리자 생각하면서도 어째서인지 버리기 힘든 무언가를 느끼고는 그 뒤로도 몇 년 동안이다 지갑 속에 감춰두고 있었다. K 조교사와 통화를 할 때는 있었으나 나는 마권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K 조교사도 아이짱의 마주 이야기는 일부러 피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다 2년쯤 전에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해 F씨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이는 마권의 존재를 나에게 알려준 F씨도 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제 적당한 때겠지. 지금 죽이는 마권을 태워버리지 않으면 나는 그 기회를 영원히 잃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 생각하고 F씨의 죽음을 알게 된 날 밤, 서재의 의자에 걸터앉아 라이터로 죽이는 마권에 불을 붙였다. 떠오른 것은 아이짱의 마주가 아니라 과묵한 F씨의 수수한 양복 차림이었다.

나는 세상에 슬며시 숨어 사는 골수 도박꾼의 정체가 도깨비불처럼 타올라 사라지기까지의 찰나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

 

 

소설의 등장인물들

 

P.59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일어난 해 여름에 내가 실크로드 6700킬로미터의 여행을 했다는 것은 앞에서 적었다. 그 약 40일간의 여행에서 나는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숱하게 얻었지만, 아무리 무대를 바꾸고 입은 옷을 바꾸고 나이를 바꿔봤자 어떻게도 내 소설 속 등장 인물로 쓸 방도가 없는 이가 있다.

 

p.61~62

청년은 강한 바람을 타고 박히듯 날아드는 모래알로부터 얼굴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도 주저 없는 발걸음으로 고비탄 한 가운데로 계속 걸어갔고, 이윽고 검은 점이 되어 신기루 속으로 사라졌다.

신기루 너머에 무엇이 있느냐고 나는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는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 고비탄을 곧장 가면 150킬로미터쯤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이어진다. 그 사이에는 마을은커녕 작은 집락集落조차 없다고 한다.

타클라마칸사막에는 더욱 아무것도 없다. "하늘에 나는 새 없고 땅에 달리는 짐승 없구나"*.

그렇다면 저 청년은 무엇을 목표로 어디로 간 것인가.

세상을 버리고 죽으러 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얼굴은 모래알을 피해 숙이고 있었지만 발걸음에는 의기양양한 구석이 있었다.

이 얼굴조차 보이지 않던 청년을, 나는 내가 쓰는 소설의 어디에도 두지 못했다.

싸구려 연립주택의 복도에 둘 수도 없다. 혼잡한 도시를 걷게 할 수도 없다. 술집 카운터에 걸터앉힐 수도 없다. 고시엔구장의 외야석에 앉힐 수도 없다.

그를 본 뒤로 15년 정도가 지났지만, 이글거리는 열기와 거센 바람 따위 개의치 않고, 이런 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이 작은 모래 회오리들 사이를 계속 걸어가 사라진 그 청년에게 빙의할 방법을 나는 알지 못한다.

 

*중국 동진의 고승 법현이 쓴 기행문 불국기에 나오는 문장으로, 인도를 향해 떠난 그가 고비에서 타클라마칸에 이르기까지의 사막을 묘사한 이 부분이 명문으로 유명하다.

 

 

책의 추억

p. 67

고작 세 권이지만, 그 책들을 읽을 때 나는 내 인생에서 그리 자주 마주할 것 같지 않은 혹독하고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덴 아라비아는 영락한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하던 무렵 읽었고, 불만의 겨울은 그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와 내가 추심꾼이라고 불리는 남자들로부터 달아나 오사카와 나라의 현 경계에 있는 마을에서 숨어 지내던 시기에 읽었으며, 쿤룬의 옥은 작가가 되려는 꿈을 버리고 다시 구직 활동을 시작해야만 하는 지경으로 내몰렸을 때 읽었다.

그래서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릴 때면 반사적으로 이 세 권의 책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최근 이 세 권을 구하고 싶어 출판사에 문의했다. 아덴 아라비아말고는 절판되어 있었다.

친한 편집자가 아덴 아라비아를 구해서 보내줬지만, 불만의 겨울쿤룬의 옥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헌책방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면 찾을 수 있게지만 내게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공황장애가 가져다 준

 

 

공황장애가 가져다 준 것

 

p.87

스물 다섯 살 때 발작이 덮쳐온 뒤 9년이 지나서야, 우울증도 아니고 강박관념증도 아니고 조현병도 아닌 전형적인 불안신경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미치지 않아요. 이 발작으로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천재는 대부분 이 병을 앓고 있답니다. 발작이 너무 심하면 이 약을 드세요. 금세 편해질 겁니다. 속이 거북하면 소화제를 먹죠? 그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정신과 의사는 온화한 미소로 말하며 신경안정제를 줬다. 천재 운운은 나를 격려하기 위한 말이었을 터다.

그 약이 나의 상비약이 된 지도 벌써 30년이다. 복용하는 일은 거의 없으니 말하자면 거의 부적 같은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얻은 수많은 보물에 대해 말하자면, 이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마음의 힘이라는 것의 대단함을 몸소 깨달았다는 점도 덧붙여둔다.

 

세계, 시간, 거리

 

p. 97

그 가운데 지구에서 몇십만 광년 떨어진 성운인데 크기는 우리가 사는 지구가 포함된 은하계의 50배인 것이 있었다.

성운은 빨강과 주황과 보라의 띠 모양 빛으로 물결쳤는데, 그 중심부에는 관처럼 생긴, 빛이라고도 물체라고도 할 수 없는 돌기가 있었고, 그 끝에는 푸르고 둥근 씨앗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말하자면 바로 지금 태어나고 있는 새로운 별의 아기라고 한다.

아기라 해도 크기는 태양의 약 200, 온도는 400배라고 내레이터는 설명했다.

그것은 내가 몇 개월쯤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장면과 같았다. 성운 속에 난소 같은 형태가 있었고, 자궁관과 비슷한 관 모양의 돌기가 있었으며, 난자를 꼭 빼닮은, 아직 별이 되지 않은 별이 그곳에서 태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연대

 

P.107

우리 가족끼리만 갈 수는 없다. 150명 가까이 되는 동포들도 데려간다. 요코타 씨는 그렇게 말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될까 말까 한 청년이 말이다.

 

선량한 사람들의 연대, 이것이 지금만큼 요구되는 시대는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방향을 향해 구체적으로 움직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인종이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와는 상관없이 인간 하나하나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고작 두 달이기는 했지만, 내가 건축 철물점 '이즈마상회'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요코타 규지 씨의 수기나 손으로 만든 작은 배낭을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소멸하지 않고

 

P. 123~124

약력을 읽어보니 후쿠이현의 와카사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교토 창호 명인의 제자로 들어갔고, 쉰 살 때 독립을 허락받았다고 한다. 요컨대 스승 아래에서 37년 동안 수행을 쌓았다는 뜻이다.

나는 그 사진집을 빌려서 이따금 책장을 넘기며 명인의 세계를 접했는데, 그러던 중 이 사람이 오랜 수행으로 얻은 것은 죽음과 함께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호장의 세계뿐만이 아니다. 그들 장인의 직종은 여러 방면에 걸쳐 있으며, 학문이나 운동이나 예술 분야에서도 고도의 기량과 출중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라도 노력과 부단한 수련 없이는 체현이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그 사람이 이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면 무로 돌아가는가.

계승자에게 기술이나 지식을 전수할 수는 있어도, 전수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계승자의 소유가 되므로 전수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독자적인 개성과는 별개다. '장로'의 죽음으로 '장로'만의 재능과 기술도 사라져버리는 걸까.......

 

 

터널 연립주택

P. 175

아마도 나는 터널 연립주택에 맡겨진 고작 1년 사이에, 사람들에게는 타인이 짐작할 수 없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배우지 않았나 싶다.

 

남자는 이제부터 문을 잠그고 열쇠를 입구의 우편함에 넣어달라고 내게 부탁하더니 10엔짜리 동전을 다섯 개 줬다.

"왜 직접 못 잠가요?"

"힘들어서 말이다. 몸이 안 움직이거든."

"내가 밖에서 문을 잠그면 아저씨는 못 나가잖아요."

"괜찮아. 됐으니까 밖에서 문을 잠가줘."

여하튼 50엔이나 받았다. 나는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은 채 밖에 달린 자물쇠를 채우고 고모의 집으로 돌아갔다.

 

 

사건의 전후

p.199

초등학교 3학년 때 찍은 단 한 장의 사진은, 거무스름한 수영 팬티를 명치까지 끌어올리고 좌우 집게손가락을 양쪽 귀에 꽂은 채 강물 속에서 상체를 내놓은 순간의 것이다.

 

오타니 씨가 그 사진을 찍고 1분인가 2분 뒤, 여자애는 강 한가운데에서 깊은 곳에 발을 헛디뎠던가 하여 빠져 죽을 뻔했다. 오타니 씨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나는 사진을 볼 때마다 한순간의 전후라는 것을 생각한다. 사건이 일어날 조짐을, 한 장의 사진 어딘가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귤 산에서 본 바다

p.207

-나한테는 마음씨 곱고 귀여운 여동생이 있었는데 열여덟 살 때 죽어버렸다. 만약 그 애가 살아 있었다면 너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 애가 죽었기 때문에 네가 태어날 수 있었던 거지. 이상한 일 아니냐. 이 집 툇마루에서 너와 장기를 두고 있으면 이상하군, 이상해, 이 세상은 이상해, 하는 생각이 든다. 너와 나는 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더 깊은 것으로 이어져 있는 기분이 든다. 작고 비쩍 마른 네가 귀여워서 견딜 수 없다.-

 

p.209~210

그런 쓰다가 사물들과의 헤어짐은 갑자기 찾아왔다. 우리 가족이 도야마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횅에 처했기 때문이다.

몇 년 뒤, 고향으로 돌아갔던 쓰다 아저씨의 죽음을 알리는 편지가 왔지만 아버지는 계속된 사업 실패로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난요의 미쇼초로 가는 교통비도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가 가벼운 뇌경색으로 누워 지내게 된 해에 쓰다 아주머니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는 마흔네 살이 되어 있었다.

편지는 미쇼초의 귤 산 상속에 관한 것이었는데, 나에게도 몇 분의 일 정도의 상속권이 있다고 쓰여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생일 때 죽었지만 아버지와 쓰다가의 장녀는 이혼이 아니라 사별한 것이니 내게도 상속권이 있다고 한다.

나는 당시의 상속에 관한 법률을 잘 모르지만, 쓰다 아주머니는 쓰다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귤 산을 팔아서 그 돈을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노후의 생활비로 충당하고 싶다고 썼다. 요컨대 나의 상속권을 포기해 주지 않겠냐는 의뢰였다.

나는 곧장 함께 들어 있던 서류에 서명 날인하여 보냈다. 법률이야 어떻든 간에 나한테 쓰다가의 귤 산을 판 돈을 받을 권리 같은 건 없다.

그 쓰다 아주머니도 돌아가시고 2, 3년이 지난 무렵, 나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가 예전에는 쓰다가의 소유였던 귤 산에 올랐다. 이렇게 큰 산이었나 놀라며 진주 양식용 뗏목이 가지런히 떠 있는 아름다운 미쇼만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그 소네자키 경찰서에서 쓰다 아저씨가 후배 경찰들에게 어린 나를 소개하던 순간의 말이 문득 되살아났다.

"내 자식 같은 애니까 아무쪼록 잘 부탁한다."

그것과 겹치듯이 툇마루에서 아저씨가 했던 말도 가슴에 북받쳤다. 쓰다 아저씨의 말 속에는 천만 마디를 써도 표현하지 못할 마음이 담겨 있었다는 것을 가까스로 깨달았다.

난요의 햇빛을 받고 빙빙 도는 갈매기를 눈 아래로 바라보며, 나는 생명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생각했다. 생명보다 이상한 것이 달리 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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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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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한 친구는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내적 갈등을 겪는다고 했다. 올리고 싶은 사진이 많은데, 인스타그램에는 가장 좋은 이미지를 최소한으로 선별해 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글도 짧을수록 좋았다. 댓글도 구구절절 쓰는 대신, 작고 깜찍한 이모티콘으로 대신했다. 새로운 시대가 원하는 콘셉트였다. 간결함, 명료함, 분명함. 하지만 '싸이 감성'인 그녀에겐 하고 싶은 말과 나누고 싶은 사진이 너무 많았다. 여전히 우리는 멈춰야 할 때, 그만 둬야 할 때를 잘 몰랐다. 

싸이월드는 그 시절의 분위기와 많이 닮은 매체였다. 절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돈이 더 드는 것도 아닌데 업로드를 멈추거나 분량을 줄일 이유가 없었다. 여행을 하거나 행사가 있었던 날이면 하루에 백 장 넘는 사진도 올렸다. 게시판 글은 길수록 좋았다. 싸이월드에서 가장 부족한 한 가지를 꼽으라면, 그것은 절제미였다. 

그것은 나의 가장 큰 취약점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나는 직장에서도, 관계에서도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계속해서 "한 곡 더"라고 앵콜을 외치는 사람이었고, 떠난 버스를 괴력으로 쫓아가 마침내 얻어 타고 마는 '집념과 진상 사이'의 승객이었다. 때로는 굴욕적으로, 때로는 자기합리화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세상과 혼연일체가 돼 살아왔다. 그게 좋았다거나 나빴다거나 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그땐 그랬고, 그렇게 버텨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시절' 싸이월드의 몰락은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었던 어떤 노래의 진짜 끝처럼 느껴진다.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저 멀리로 사라지는 느낌, 이제는 정말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온 것처럼 말이다.


작가분 내 나이 또래 맞다. 그리고 내 나이 또래라면 이 작가분 글 읽으면서 공감 많이 할 테지. 싸이월드는 이제 우리 세대에는 추억이 된 걸까. 


철 지난 싸이월드에 유독 오늘따라 꽂힌 이유는 뭘까.


아마도 특별히 힘들고 지친 날 내 감정을 토로하고 싶을 때 인스타그램으로는 부족해서일 것이다.

그 밝고 화사한 세계에는 이런 감정 자체가 걸리적거리게 느껴진다. 인스타에 감정 토로 안 해봐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낌이 그렇다.

조용한 밤의 세계. 침묵과 고독의 세계. 혼자만의 생각으로 일기를 쓰는 시간과 싸이월드는 어울린다.


힘든 감정을 한 두개의 단어로 축약해버리면 그 감정이 너무 가벼워지고, 또 그만큼 내가 가벼워지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 아닌다.

이러한 감정을 토로하기에는 싸이월드가 딱이다.

그 매체가 없어졌다는 것은 이러한 감정을 토로할 곳이 없어졌다는 것 뿐 아니라, 시대가 그만큼 바뀌었고 이 감정을 수용해 줄 수 있는지, 눈치를 봐야 하는지까지 생각이 가는 것이다.


요즘 어린 친구들이 진지충이라는 말을 왜 쓰나 했는데 이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요즘 시대에는 동떨어진 걸까?


어쩌면 싸이월드가 다시 열릴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설레면서도 싸이월드 백업은 죽어라하지 않는 우리 세대의 모순이 여기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한 때 존재했던 추억이 아름답게 박제되어 있기를 바라면서도, 싸이월드에 매달리는 철 지난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은 싫다고, 아직 우리 나이에 옛날을 그리워하는 어른으로 규정되는 것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양면의 마음이 다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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