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클 애브너의 지혜 동서 미스터리 북스 36
멜빌 데이비슨 포스트 지음, 김우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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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분에게도 엉클 애브너를 한 번 보여주고 싶다. 크롬웰을 연상시키는 엄숙하고 종교심깊은 사람으로, 무쇠처럼 단단한 뼈대와 반백의 수염과 대장간에서 단련시켜 만든 듯한 얼굴 모습.(p. 207)

 

여기서 엉클 애브너에 대해 한마디 해두어야겠다. 그는 종교 개혁의 산물인 엄격한 신앙가의 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마음내키는 대로 읽었다. 언젠가 로이가 경영하는 여인숙 난로가에서 그가 성경을 꺼내자 같이 있던 사람들이 그를 놀리려고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두 번 다시 놀리려는 사람은 없었다. 싸움이 끝나자 엉클 애브너는 의자며 테이블을 부순 배상금이라면서 은화 18달러를 로이에게 지급했다. 그리고 거기에 같이 있던 사람들 가운데 마을 제대로 탈 수 있는 사람은 엉클 애브너뿐이었다. 엉클 애브너는 '싸우는 교회'에 속해 있었고, 그가 믿는 하느님은 '싸우는 하느님'이었다.(p.50)

 

엉클 애브너는 이런 사람이다. 애브너에게 삼촌이라고 부르는 주인공 마틴은 애브너의 동생인 루퍼스의 아들이다.

 

Uncle Tom's Cabin 이라는 소설을 떠올렸던 나는 실제 삼촌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실제 삼촌이 맞았다.

양쪽 다 현명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것은 똑같다.

 

이 책의 원제는 Uncle Abner-master of mysteries 라고 하는데, 글쎄, 영미권 사람들에게 uncle 이란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엉클도 BBC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가 원작이라고 하지 않는가.

 

제퍼슨 대통령 시절, 버지니아 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럼 이 당시 버지니아는 또 어땠는가.

 

버지니아 주의 경계를 이루는 산 속에는 개척자들만 사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식민지 전쟁이 끝난 뒤 낯선 외국인들이 꽤 많이 흘러들어와 있었다. 외국 군인들 가운데는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어서, 그대로 이곳에 머물러 사는 것이다. 그들은 블래독 장군과 탐험가 라 샤르에게 인솔되어 왔다가, 멕시코에서 제정(帝政)이 무너지자 그곳을 도망쳐 북쪽으로 흘러들어온 것이었다.(P.14)

 

버지니아 주 정부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고, 그 힘이 미치는 범위도 한정된데다 세력도 약했다. 영국 국왕에게서 받은 땅을 야만족으로부터 지키고, 나중에는 국왕의 손으로부터도 지켜온 산맥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일을 신속하고 재치있게 해치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인내심도 강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면 논밭을 버려두고라도 일어나서 천벌을 내리듯 상대가 도망갈 때까지 싸우는 것이었다.(p.15)

 

 

그럼 주인공 마틴은 또 어떠한가.

 

그 무렵 나는 9살이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이 상상하고 있는 것만큼 어리지는 않았다. 9살이라고는 하지만 온종일 말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었다-거의 어떤 종류의 말이든. 나는 무두질한 가죽처럼 강인했으며, 목적지인 고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광장에서 굴렁쇠를 굴리며 노는 어린 소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쪽수는 기억 못함)

 

이렇게 다소 되바라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당돌한 소년이 이 책의 마지막 소설에서는 성인이 되어 있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서는 점잖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재미있다.

 

이제 어린아이가 아닌 나는 법의 무서움과 엄숙함을 직접 보는 것이 허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p.313)

 

 

다음은 옮긴이의 책 소개이다.

 

<엉클 애브너 시리즈>는 제 3대 대통령 제퍼슨이 재임하던 19세기 첫 무렵, 버지니아 주의 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마틴이라는 소년이 아홉 살부터 스무 살까지 보고 들은 마을의 범죄 사건을 수기 형식으로 기록했다. 이 무렵 지은이 포스트는 집필할 때보다 백년쯤 옛날일을 그리고 있는 셈인데, 이 때문에 이른바 <역사 미스터리>가 된 것이다.(p.331)

 

그러니까 지은이가 예전의 미국에 대해서 상상력을 발휘하며 이런 소설을 쓴 것이다. 마치 등장하는 마틴이 지은이의 오너캐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전체적인 책의 내용이 연극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특정 장소와 시대가 주는 분위기,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바로 그 특별한 인물. 여기에 작가가 꽂힌 것 같다. 물론 애브너의 모델은 주변에 있었겠지.

 

다음은 애브너의 활약 중 인상깊었던 부분.

 

예감이란 즉 우리로서는 아무 확증을 가지지 못한 개인의 외부에서 생기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 상호관계가 그때로서는 잘 알 수 없는 어떤 지식에 바탕을 둔 것이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거요. 육감이니 예감이니 영감이니 하는 것은 아직 형체를 이루지 못한 결론에 의해 던져진 그림자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의 심림작용에 의해 인상(印象)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상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실은 눈 앞의 수수께끼를 해결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론이 잠깐 나타난 데 지나지 않는 거요.(p.232)

 

인간의 소박한 감정-예를 들어 공포심니아 그런 것을-은 그 초기 단계에서는 항상 잠재의식적인 것, 말하자면 직관적인 것이 아닐까요? 따라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이다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위험으로부터 몸을 피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위험으로 뛰어드는 일도 없고, 그것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나갑니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란 어떤 심리작용에 의해 직관적으로 위험을 느끼게 되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p.233)

 

뱀처럼 부드러운 사나이의 손이 불룩한 주머니에서 델린저 식 권총을 불쑥 꺼냈다.

그러나 그 움직임보다 재빠르게, 빛보다도 눈깜짝임보다도 더 재빠르게 엉클 애브너는 상대방 사나이를 덮쳤다. 권총은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사나이의 가느다란 손가락 뼈가 무쇠 같은 엉클 애브너의 손바닥 안에서 뚝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트럼펫처럼 울려 퍼지는 엉클 애브너의 큰 목소리가 폭풍우 소리와 술취한 사람들의 소리를 누르고 한층 더 높게 울렸다.

"하느님을 앞선다고! 버드 씨, 당신은 나보다도 앞설 수가 없지 않소! 하느님이 만드신 것 가운데 가장 약한 나보다도!"(p.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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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요리 동서 미스터리 북스 35
스탠리 엘린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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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엘린이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책이 끝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느낌은... 오 헨리와 비슷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등장 인물들, 주인공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사건이 흘러가고, 반전, 그리고 여운이 남는 결말까지.


이 책에는 스탠리 엘린의 단편 10편에, 토머스 버크라는 작가의 작품 한 편이 같이 실려있다.

토버스 버크의 작품도 좋았기에 조금 아쉬웠다. 별도로 묶기에는 작품의 수가 너무 적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다른 작가의 작품에 끼워넣는 것보다는 별도로 마련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드는데, 그 아쉬움마저도 날린 것은 역자 후기였다.


목차에서 '당신은 미식가입니까? 특별요리에 초대합니다' 이 부분이 역자 후기인데, 위트 있고 센스 있는 역자 후기이다.


특별요리-한 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은밀한 요리

뛰는 놈 위에 나는 놈-다 읽고 나면 이런 뜻이구나 했다가 제목 보고 놀란다. 뛰는 놈 위의 나는 놈이라는 제목이 되려면... 대체 떨어진 것은 누구인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흉사-남매간의 진실게임. 이제는 진실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게 될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아내를 죽이면서 질서정연한 세계를 유지했던 남자. 이제 그의 세계가 깨지나?

호적수-드디어 체스의 호적수를 만난 사람. 절대로 알 수도 이길 수도 없는 유일한 타자.

너와 똑같다-리플리

벽 너머의 목격자-너가 들은 게 다가 아니야. 직접 보기 전에는.

파티의 밤-연극? 소스코드? 뫼비우스의 띠

전용열차-완전한 흉기로 완전범죄를 꿈꾸는 가해자가 완전한 흉기로 완전범죄의 피해자가 된 순간

결단을 내릴 때-이런 딜레마가 있나. 성이냐 사람 목숨이냐, 승리냐 실패냐.


오터모올 씨의 손 - 토머스 버크

오터모올 씨의 손-살인 현장에 늘 있었던 그는 누구이지?


당신은 미식가입니까? 특별요리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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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트 마지막 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34
에드먼드 클레리휴 벤틀리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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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트 마지막 사건은 사실 트렌트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첫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인 에드먼드 클러리휴 벤틀리는 대학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하다 기자로 근무하던 중 틈틈이 탐정이 등장하는 이 소설을 썼다고 하는데, 출간 후 큰 인기를 얻어 작가는 트렌트가 등장하는 두 권의 책을 더 출간하였다고 한다.

작가의 소개에 보면 '목요일이었던 남자'의 작가로 이름 높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과 평생지기로 지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이 문장이 왜 작가 소개에 등장하는지, 그것도 두 번째 문장으로 등장하는지 궁금했었다.

더구나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이면 브라운 신부 시리즈를 언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 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목요일이었던 남자'에는 예외적으로 긴 헌사, 정확하게는 70행에 달하는 헌시가 등장하는데, 그 헌시를 바친 대상이 바로 평생의 친구였던 에드먼드 클러리휴 벤틀리라고.

그로부터 5년 후, 벤틀리는 자신의 첫 소설인 바로 이 소설을 발표하면서, 체스터턴에게 '목요일이었던 남자'에 대한 보답을 하고자 한다는 내용의 헌사를 남겼다.

이 책에서도 읽어볼 수 있는데 창작 생활의 버팀목이 서로 되어주는 관계가 느껴져서 흐뭇하다.

이 헌사 때문이라도 체스터턴의 그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출판사에서 제공한 이 책의 소개는 다음과 같다.


부호 피살사건 수사에 나선 트렌트는 피살자의 아내도 공범이라는 확증을 잡는다. 하지만 그녀한테 애정을 느낀 나머지 진상을 기록으로 남기고 떠나 버린다. 그 뒤 다시 만난 두 사람. 그녀는 그 자리에서 트렌트의 추리에 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간 욕망과 미묘한 성격 묘사를 융합시켜 긴박감을 더했다.


얼마 전 칸에서 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내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영화는 아직 개봉을 안 했기에 안 봤다. 그냥 영화에 대한 소개만 본 것인데 전개가 비슷하다.

이런 내용은 사실 아주 흔하디 흔한 소재라고 영화 소개 당시 여러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까 그 뻔한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이렇게 창조적으로 독창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지? 가 이 영화에 대한 평가의 큰 부분을 차지할 텐데, 

이 책 또한 그렇다. 흔하디 흔한, 뻔한 소재를 가지고 이런 결말을 냈는데. 

이 책 출판 당시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마지막 사건이라는 제목이 무색하게 작가는 트렌트의 활약이 담긴 소설 2개를 더 썼다고 한다.

그 소설도 궁금하다. 우리나라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이런 결말에 도달한 후 트렌트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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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동서 미스터리 북스 3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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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덫 three blind mice

특별한 장난 strange jest

줄자 살인 사건 tape-measure murder

나무랄 데 없는 하녀 the case of the perfect maid

관리인 노파 the case of the caretaker

4층 방 the third floor flat

조니 웨이버리의 모험 the adventure of johnnie wavrely

스물네 마리의 검은 티티새 four and twenty blackbirds

연애를 탐정한다 the love detectives

두 번째 징소리 the second gong

 

이 책의 원제는 three blind mice and other stories 이다. 황금가지판으로 읽었을 때는 마지막 단편이 빠지고 9편만 실려 있었다.

쥐덫에는 푸아로도 마플도 증장하지 않는다.

이후 네 작품에는 연이어 마플이 등장한다.

이후 세 작품에는 푸아로가 등장한다.

연애를 탐정한다에는 연애 탐정 할리 퀸과 새터스웨이트가 등장한다.

마지막 두 번째 징소리에는 다시 푸아로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마플 단편 4, 푸아로 단편 4, 할리 퀸 1, 그리고 쥐덫.

 

쥐덫은 크리스티가 영국 메리 여왕의 80세 생일을 맞아 방송극으로 처음 만든 작품인 어린 쥐의 복수를 후에 각색한 것이다. 아마 이 한 작품만으로는 책 한 권을 엮기 어려워서 other stories 를 포함 시킨 것 같은데 원래 징 소리 이야기가 원본에 포함된 것인지, 빠져 있는 것인데 동서 측에서 포함시킨 것인지는 알수 없다.

쥐덫은 1952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개막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대유행으로 무대 공연이 중단되어야 했던 2020316일까지 계속 운영되었다고 하며, 웨스트엔드 쇼 최장기간 공연 기록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소설로만 읽었을 때는 연극 무대로 올리면 그렇게 재미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미 결말도 알려져 있고, 대사나 볼거리가 화려한 편도 아니어서. 그래서 연극 공연이 더 궁금했다.

여기 나오는 거의 모든 단편은 itv의 마플 시리즈나 푸아로 시리즈에서 영상화한 것이다. 당연히 원본 소설도 훌륭하지만 영상화도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단편을 40분 정도의 분량으로 만들어내면서 촘촘함을 잃지 않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텐데.

특히 마지막 작품인 두번째 징소리는 트릭처럼 생각되었던 것이 트릭이 아니었고, 인물과의 관계도 한번의 반전이 있는 등 단편으로는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의 장치를 장편이 아니라 단편으로 써버린다니 역시 크리스티는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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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레드메인즈 동서 미스터리 북스 32
이든 필포츠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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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레드메인즈의 표지는 온통 빨간색인데, 빨간 머리가 아니라 붉은 천 일부가 날카롭게 찢어져 있고, 그 틈 사이로 사람의 코만 살짝 보이는데 천도 코도 다소 붉은 빛이다.

 

이 표지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목하고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한데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코만 살짝 보이고 정체를 꽁꼼 숨긴 누군가가, 마치 바람이 불어서 커튼만 살짝 들춰지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구인지 아직은 전혀 모르겠는 사람이 몸을 감춘 상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엿들으며 실수 한 번 저지르지 않고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느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누가 범인인지는 사실 금방 눈치를 챘다. 아마 나중에 등장한 피터 건즈도 빠른 시일 내에 알았을 것이다.

 

책을 점점 읽어가면서 이렇게 눈에 보이는데(얼마나 눈에 보이냐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주요 인물의 대화를 생략하는 부분이 있다. 이 책 기준으로 315쪽에 나온다. <건즈가 다시 코담배를 집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이 대목은 수사의 과정으로 말해서 당연히 이 사악한 범죄의 클라이맥스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므로, 여기서 다 말해 버리면 오히려 그 올바른 의의를 보여 줄 수 없게 된다. 다만 얼른 듣기에 상식 밖으로 여겨지는 그의 설명이 브랜던의 머리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수사하고 범인 잡는 게 직업인 사람이 이렇게까지, 이게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예전에 읽었더라면 현실성이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했을 것인데, 최근 일반인이 합숙하며 짝을 찾는 예능을 몇 편 보면서 이런 일이 실제로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멀쩡한 사람들이 왜 저 상황에서 감정 조절을 못하고 저런 어이없는 말을 하고 저런 잘못된 판단을 하고 저런 황당한 실수를 하지? 이게 전지적 시점에서 지켜보는 시청자의 생각이지만, 실제 그 상황에서는 충분히 자연스럽고도 가능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의 큰 주제도 그렇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피터 건즈, 그리고 마크 브랜던의 또 다른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데, 작가는 추가적인 이야기는 쓰지 않은 것 같다. 은퇴한 전설적인 명탐정의 화려한 과거도, 새로운 길을 가게 되는 유능한 형사의 빛나는 미래도, 더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소설 자체로 놓고 봤을 떄 아쉬운 점은 시점이 정돈되지 않은 점이었다. 사실상 마크 브랜던의 속마음을 그대로 노출하는 1인칭 시점이었다가, 갑자기 후반부에서 한동안 브랜던이 사라지고 사실상 피터 건즈의 1인칭 시점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실제 작가의 서술이 그랬던 건지 번역 떄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추어 작가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작가가 누구의 입장에 있는 것인지 이렇게 우왕좌왕하다니.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의 속마음까지 노출할 수는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전지적 작가의 시점은 택할 수가 없는데, 그렇다면 일관성 있게 어느 한 사람의 입장에서 가야 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 이든 필포츠는 놀랍게도 크리스티랑 관련이 있다. 습작 시절 크리스티의 옆집에 유명한 소설가가 살았는데, 크리스티의 어머니가 딸의 작품을 그에게 보여주며 그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작가가 바로 이든 필포츠, 빨강머리 레드메인즈의 작가이다. 크리스티는 훗날 엔드하우스의 비극이라는 소설을 그에게 헌정했다고 하는데, 아마 늘 고마움을 기억했던 것 같다.

 

 

p. 241

 

"'악한 인간들'을 상대로 평생을 보내는 우리들이니, 저는 이따금 이런 내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습니다. 통조림을 판다거나, 속옷 장사를 한다든가 하면서 살고 싶을 때도 있구요. 군인이나 선원이라도 좋았을 것입니다. 평생의 과업이 같은 인간의 악을 대상으로 하다니, 이런 부끄러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직업이 활이나 화살처럼 과거의 유물이 되는 시대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연상의 사나이는 웃었다.

 

"괴테가 어디선가 이런 말을 했었소. '백만 년을 살아 봐야 고생거리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또 그것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엷어지지도 않는다'고 말이오. 몽테뉴의 말에도-몽테뉴는 읽어 둬야 하오, 인류가 낳은 가장 현명한 인물이니까 말이오-이 사람도 말하고 있소. '인간의 지혜가 그 자신이 규정한 이상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가령 도달했다 하더라도 다시 또 그것을 넘은 이상을 가리킬 테니까.' 결국 인류가 존속하는 한, 악인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도 되오. 그래서 그들을 잡으러 다닐 사람을 훈련할 필요가 생기게 되는 거요. 범죄는 이 세상에 인류가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지 계속될 것이고, 범죄자가 영리해지면 영리해질수록 우리도 더 영리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요."

 

"저는 인간을 좀더 나은 존재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마크의 말에 나이든 친구는 감탄해 보였다.

 

"훌륭한 생각이오. 당신 나이로서는."

 

 

p. 369

 

"그리고 이것만은 꼭 말해 두고 싶소만, 나는 당신을 나무랄 생각은 조금도 없소. 때로는 그 그리운 벗의 짙은 우정을 생각하긴 하오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소. 내가 책망하는 것은 나 자신이오. 마지막에 가서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 것은 나이지, 당신의 실책이 아니었소. 그 일을 맡긴 내가 바보였던 거요. 그건 아무 변명도 소용없소. 그 때의 당신은 그 일을 맡을 만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었거든. 마땅히 그걸 생각했어야 했던 거요. 당신이 실수하고 또 마이클 펜딘이 실수한 것은, 우리들 인간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오. 악인은 그 악행에 상처가 나고, 선인은 그 순백한 경력에 먹칠을 하게 되고. 생각이 깊은 두뇌라도 별안간 고갈하는 수가 있는 법이오. 그 이유는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선과 악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완벽한 것은 거부되고 있기 떄문인데, 그 점 성자나 죄인이나 다 똑같다고 볼 수 밖에 없단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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