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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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증오와 멸시가 공고화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인종, 종교, 성적 지향, 성별 등에서 자신과다른 사람 불편해하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증오와 혐오를 어떤 방식으로 강제하는지 살펴본다. 민족, 국가라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동질성 강요, 성별의 본원성 또는 본연성에 대한 주장, 순수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고찰한다. 


구체적인 사례로 동영상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클라우스니츠 사건이 소개된다. 난민 여성들과 아이들을 태운 버스를 둘러싸고우리가 국민이다라고 외치는 사람들, “꺼져! …… 꺼져! ……” 반복하는 사람들, 그들을 둘러싸고 멀지 않은 곳에서 이런 상황을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태를 방관하는 경찰관들. 그들에게 난민은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 있어 마음대로 미워할 있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존재이기에 보편적인우리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난민 사람, 사람은 개인으로 인식되지 않고, 괴물처럼 위험한 존재로만 인식된다. 그들은 사람, 사람이 아니라 무리의그들로만 받아들여진다. 그들은 우리가 없는 사람들로서, 영원히그들이다. 



클라우스니츠에서 증오를 일으킨 이데올로기는 클라우스니츠 안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작센 안에서만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난민들을 원칙적으로 자신과 동등하며 고유한 존엄을 지닌 인간으로 없게 만드는 모든 인터넷 포럼과 토론 포럼, 출판물, 토크쇼, 노래 가사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76) 



하나의 사례는 에릭 가너다. 길에서 줄담배를 판매했다고 의심받아 경찰의 검문을 받게 에릭 가너는 다른 시민이 녹화한 동영상 속에서 작게 말한다. “이런 일은 오늘부로 끝나야 .” 에릭 가너는 경찰의 제지에 반항하지 않았고 무기를 소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러 명의 경찰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데는, 흑인을 멸시하고 경멸하고 학대해도 결코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혐오의 유산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타네히시 코츠). 이미 불법이 초크chokehold(목을 졸라 질식시키거나 머리로 피가 공급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격투기술) 사용해 에릭을 압박하고, 숨을 없다고 말하면서 정신을 잃은 에릭을 길에 방치한 경찰은 그의 죽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당시의 상황을 녹화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시민보다 백인 경찰관인 자신이 신뢰를 받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랍계 난민, 흑인, 혼혈인, 동성애자, 트래스인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는 계속해서 연구하고 탐구해볼 만한 과제다.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해 인간은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도 느낀다. 어쩌면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존재의존재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러한 두려움이 자랄 있게 하는토양 존재 때문이라고 저자 카롤린 엠케는 지적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혐오와 증오는 개인적인 것도 우발적인 것도 아니다. 단순히 실수로 또는 궁지에 몰려서 자기도 모르게 분출하는 막연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다. 이것이 분출되려면 미리 정해진 양식이 필요하다. 모욕적인 언어표현, 사고와 분류에 사용되는 연상과 이미지들, 범주를 나누고 평가하는 인식틀이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 그것을 자발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감정들이 계속 양성되는 일에 기여하는 셈이다. (22) 



동질한 것만이 정상이라는 믿음, 유기적 단일성에 대한 집착이 자신과 다른 존재를받아들이지못하게 한다. 자신과 다른 종교, 자신과 다른 문화, 자신과 다른 옷차림, 자신과 다른 식생활문화, 자신과 다른 생김새, 자신과 다른 성적취향을견디지 하게 한다. 



증오에 대한 대응이 눈길을 끈다. 



증오에 대처하려면 자신과 똑같아지라는 증오의 유혹을 뿌리치는 수밖에 없다. 증오로써 증오에 맞서는 사람은 이미 자기도 따라 변하도록 허용한 셈이며, 증오하는 자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진 것이다. 증오에는 증오하는 자에게 부족한 , 그러니까 정확한 관찰과 엄밀한 구별과 자기회의로써 대응해야 한다. (25)  



증오하는 자에게는 이렇게 대응해야 한다. 정확한 관찰과 엄밀한 구별, 그리고 자기회의. 그리고 마지막으로진실 말하기 Wahrsprechen’. 저자는 공공의 영역에서진실 말하기 더해 다양한 권력 구조에 저항하는 과제로서진실 말하기 제안한다.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 이를테면 가족과 친구, 종교공동체, 자신이 활동하는 정치적 맥락에 대해서도 반대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자신도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배제하고 낙인찍는 독단론과 관행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하고 있지 않은지 주의하라는 당부다. (241) 



아랍계 난민으로 유대계 혼혈인이며 성소수자인 나를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랍계 난민으로 유대계 혼혈인이며 성소수자인 나를 상상하면서 책을 덮었다. 

아랍계 난민으로 유대계 혼혈인이며 성소수자가 되고 보니, 말을 없다는 사실이 제일 먼저 다가온다. 어렵게 도착했지만 이 곳의 말을 모른다. 들을 있으나 이해하지 한다. 

말을 잃었다. 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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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23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억 오늘 도서관에서 신간으로 꽂힌 걸 보고서 가져올까 말까 고민하다 놓고왔는데......

단발머리님의 글을 두 시간만 일찍 만났어도 업어왔겠어요.

단발머리 2017-11-23 16:20   좋아요 0 | URL
키햐~~~ 아쉽네요. syo님의 선택을 받았어야 하는데....
카롤린 의문의 1패입니다. ^^

cyrus 2017-11-2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진실 말하기’ 개념이 푸코의 ‘파레시아(진실을 말하는 용기)’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어요. 푸코의 파레시아를 이해하면서 페미니즘이 파레시아를 실천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아무개 2017-11-23 19:36   좋아요 0 | URL
진실... 진실을 말하는 용기라. . . 그거 하고 있습니다. 아시고 계시니까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아무개 2017-11-2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혐오는 권력을 가진 쪽에서만 가능하죠. 여성이 장애인이 성소수자가 비성인인 청소년이나 유아가 그리고 전라도가 과연 어떤 혐오권력을 실재로 휘두룰수 있을까요. 현실에서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미러링 따위로 권력자들이 실제로 죽지는 않으니까요.
혐오는 대체적으로 권력문제라 생각해요.
조만간 뵈요^^

단발머리 2017-11-24 06:51   좋아요 0 | URL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양성평등에 반대한다>와 <김대중 죽이기>가 자꾸 겹쳐지더라구요.
그 이야기도 페이퍼에 같이 써보려 했는데, 정교하게 써내려가기가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했어요.
아무개님 댓글이 제 글보다 낫네요~~~~~

맞습니다. 혐오는 권력을 가진 쪽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특히 전라도 문제가 많이 생각났어요.
경상도도 지역투표고 전라도도 지역투표다. 둘 다 똑같다. ....
엄연히 혐오의 피해자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데 그것마저도 혐오로 해석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요^^

AgalmA 2017-12-01 08:19   좋아요 0 | URL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503 비롯 기타 등등의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게 우리가 권력이 있기 때문은 아니니까요. 제 견해로는 ‘권력을 가진‘도 해당되지만 ‘세력을 가지려는‘ 자들의 감정수단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도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동질성의 강요‘라고 기술하셨죠. 세력을 가진 측의 예로는 빨갱이니 종북이니 프레임을 덮어씌워 반대편을 무력화시키려 했던 것이 있겠죠. 방송이니 언론플레이, 온갖 공작을 해서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휘두를 수 있는 힘은 2차적인 거죠. ‘세력을 가지려는 측‘의 부정정인 예는 각종 테러 집단을 예로 들 수 있을 겁니다. 긍정적인 예는 이 사회에 대한 혐오와 울분이 표출된 촛불운동이 해당된다고 생각되네요
약자라고 혐오가 없겠습니까. 사회를 움직이는 이런 정서들은 쉽게 재단해 볼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를 명쾌하게 보자고 단순화시킬수록 놓치는 게 생기니까요. 아이러니하게도 페미니즘도 하나의 세력 강요처럼 여겨지고 있죠.

깐도리 2017-12-30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희망 도서로 끼웠네요..궁금한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