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고민정, 시인 조기영 부부의 인터뷰를 읽었다. 조기영 시인이 말했다. “아이들은 저를 엄마라 부르고, 아내를 아빠라 부를 때가 있어요.” 아이들은 엄마를 아빠로, 엄마를 아빠라 부르기도 한다. 흔한 일이다. 우리집 아롱이도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낸 긴 연휴 뒤에는 며칠동안 나를 아빠로 부른다. 그런데, 고민정 부부의 경우 엄마가 아빠 같고, 아빠가 엄마 같기에 상황이 조금 다르다. 아침마다 안녕! 손을 흔들며 집을 떠나 밖으로 나가고, 자주 만날 수 없고,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아빠고, 학교 다녀온 아이를 맞아주고, 숙제 하는 것을 도와주고, 밥을 차려주는 사람이 엄마라면, 고민정 아나운서가 아빠고, 조기영 시인이 엄마다. 그러니 아이들이 아빠를 엄마로, 엄마를 아빠로 부른다.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의 남편 이승배씨의 인터뷰를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들었는데,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2004년 진보정당이 국회에 입성할 당시, 결정해야 할 중요하고 긴박한 일들이 많아 이 사람이(심상정 후보) 바깥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내가 가사를 전담하기로 했다. 집안일에는 신경 쓰지 않도록, 내가 다 알아서 했다. ”


두 가정 다 일반적인 경우라 하기 어렵다. 밥 차려주는 아빠와 바깥일에 바쁜 엄마.



가고 싶은 나라 스웨덴에는 Latte  Daddy 라떼 대디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Latte  Daddy 라떼 대디란, 직장 일을 멈추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유모차를 끌고 다니다가 오후에는 이웃의 Latte Daddy 들과 달콤한 라떼를 즐기는 육아휴직 아빠들을 가리킨다. 스웨덴은 아빠들의 90일 육아휴직이 의무 사항이기에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행복하게 웃는, 밝은 표정의 아빠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미디어숨>, 스웨덴의 Latte Daddy를 아시나요?”)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 니로의 영화 <인턴>에서 앤 해서웨이는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 신화를 이룬 CEO 역을 맡았는데, 영화 속 앤 해서웨이의 남편 역시 Latte Daddy. 바쁜 엄마,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이의 간식을 챙겨주고, 밥을 먹이고, 아이의 소소한 일정을 챙긴다. 그러다가, Latte Daddy 는 이웃집 Latte Mommy와 바람이 나는데자세한 내용은 영화에서.






















남자가 바깥일,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인간 사회를 지배해 왔을까.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정착시대로 들어서면서 여성의 역할은 크게 축소되었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의 등장이 남자 바깥일, 여자 집안일의 통념을 공고히 했다



『그림자 노동』의 저자 이반 일리치는 상업적 영농이 자급농을 대체하고, 생활 임금을 버는 일이 상례가 된, 1830년을 중요한 기점으로 본다. , 사고 파는 행위의 중심이 물물교환이던 자급자족 경제 시대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집에 가져오는 수입이 비슷했고, 경제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동반자였다는 것이다. 식량 생산이나 의복과 도구를 만드는 일에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1830년 이후, 여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정의 안주인에서, 자녀가 일하러 가기 전에 머무는 장소, 또는 남편이 휴식을 취하고 수입을 지출하는 장소의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199)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무임금 가사 노동은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이며, 여자에게 이러한 그림자 노동이 부여된 것은 과학적으로 여성은 원래 그림자 노동을 하도록 만들어졌으며, 집안을 돌보는 것이 여성의 본성이라는 주장때문이었다. (190)




『여성의 신비』에서 베티 프리단은 해부학적 이유로 여성의 운명을 규정하고가정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최고의 선택이라는 주장들이 여성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었을 뿐만 아니라, 무력감의 울타리 속에도 가두었다고 주장한다

 



낡은 관습과 여성의 신비가 주는 새로운 매력은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게 성숙해지는 길, 즉 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길을 봉쇄해버렸던 것이다. 여성의 해부학적 신체 조직이 곧 여성의 숙명이라고 여성의 신비에 도취한 이론가들은 말한다. 즉 여성의 자아는 여성의 신체적 구조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154)







여성의 신비에 사로잡힌 여성은 개인적인 목표와 설계를 갖지 못한다. 자아 실현을 이룰 수 없으며,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 한다. 의식주, 성생활, 생존에 관한 욕구 만큼이나 인간에게 본능적인 지식의 욕구, 자아 인식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억압당한 채 그냥 그렇게’ 또는 '의미없이' 살아간다. (514)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이다.





가족 구조에서 어머니의 노동이라고 간주되는 육아와 가사는 문화적으로 비하되고 경제적으로 보상되지 않는다. 어머니의 일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미숙련 노동이라는 인식은 공적 영역에도 확장되어, 노동 시장에서 여성 노동에 대한 낮은 평가와 연결된다. … 배려와 보살핌, 감정 노동을 중요한 노동 요소로 요구하는 사회복지사나 간호사, 유치원 교사의 저임금은 이들 노동의 특징이 어머니의 노동을 닮은, 성별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67)






특정한 역할과 임무 그리고 책임이 여성에게만 귀속되었고, 여성이 지속적으로 맡아왔던 일들이 문화적으로 비하되었다. 하찮은 일이기에 경제적 보상이 필요 없었고, 경제적 보상이 없었기에 더욱 하찮은 일로 취급되었다.




그렇다. 이 페이퍼는 고정된 성역할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해악에 관한 것이며, 또한 가사 활동이라는 제한되고 반복적인 일에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강요된 여성들의 슬픔에 관한 것이다.  


또한 이 페이퍼는,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이 강경화는 셀럽일 뿐, 외교부 장관은 국방 잘 아는 남자가 해야한다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대한 답이며, “딸 셋 중 맏딸로서 경제력이 없는 친정 부모님을 늘 부양했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지의 글이다.


또한 이 페이퍼는, 여성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이고, Latte Daddy가 되어 별처럼 빛나는 아이의 순간 순간을 함께하자는 초청의 글이며, 여성과 남성, 남성과 여성, 우리 모두 고정된 성역할의 벽을 뛰어 넘자는 초대의 글이다.



고정된 성역할의 견고한 벽을 넘어선 그 곳에는,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Latte Daddy와 강경화.



환한 표정의 Latte Daddy가 있고,


그리고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울 게 분명한 여전사 강경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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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6-12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단발머리님 진짜 멋지다.
애정합니다 단발머리님.
이런 글을 써주셔서 애정하고, 그림자 노동을 또(!) 저보다 먼저 읽으셔서 존경합니다.
아, 단발머리님 진짜 ㅠㅠ 페미니즘 공부하는 분이셔서 진짜 제가 든든하고 너무 좋고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도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불끈!)

단발머리 2017-06-12 15:52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책을 읽고는 있지만, 아직 다락방님이 든든해 하실 만큼은 아니어요~~
아까도 <그림자 노동> 중에서, 가사노동보다 더 큰 범위인 그림자노동에 대한 설명 읽다가,
에라 모르겠다~~ 해버렸답니다. ㅠㅠ
하지만, 이렇게 응원해주시는 다락방님이 계셔서 엄청 씐납니다.
우리 같이 달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7-06-12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방을 잘 아는 남자’ 대부분이 방산비리를 저지른 적폐 세력입니다. 문 정부가 방산비리 척결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해서 다행입니다. 그동안 국방부의 조직 체계가 호모 소셜에 가까워서 방산비리를 눈 감을 수 있었습니다.

단발머리 2017-06-13 10:5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국방을 잘 안다고 맡겼더니 방산비리의 주범으로 변신들을 하셔서~~
문 대통령님 할 일 너무 많아서 좋기도 하고,
그런데도, 나라를 이렇게 해 놓고도 발목 잡는 야당 보면... 아이구...

레삭매냐 2017-06-1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인턴>에서 라떼 대디가 바람나는 장면
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만.

이반 일리치의 <그림자 노동>은 기회가 된다
면 꼭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저작입니다.
버킷 리스트에 담아 두었네요.

어느당의 헛소리 일삼는 국회의원의 작태에
정말 기가 막힙니다. 독일 국방부 장관은
애가 일곱인가 되는 여성 분이신데, 그렇다
고 독일 국방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던가요?

같은 여성의 능력을 폄훼하는 발언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단발머리 2017-06-13 10: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레삭매냐님^^

네, 라떼 대디 바람날 때, 그리고 앤이 그걸 모른 척 하면서 가정을 지키려 애쓸 때
맘이 참.... 그랬어요. ㅠㅠ

어느당은 곧 사라질 것 같습니다. 이름만 국민이 들어가면 뭐 하겠어요.
국민의 뜻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데요.
무엇보다 헛소리 국회의원의 ‘여자 아닌 남자가...‘라는 워딩 자체가 잘못인 것 같아요.
능력을 가지고 말했다면 (물론 이제 반기문 사무총장까지 전 정부 모든 외교부 장관들이 강경화 후보자의 능력을 보증하고 있지만...) 차라리 괜찮았을텐데요.
여자 아닌 남자라니.... 참.... 어이가 없습니다.


꿈꾸는섬 2017-06-1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글이에요.
라떼 대디와 강경화~ㅎ
그림자노동, 페미니즘의 도전 찜해둘게요.^^
인턴, 영화 아직 못봤는데ㅎㅎ 궁금하네요.
좋은 아침, 행복한 날 되세요.^^

단발머리 2017-06-13 10:59   좋아요 0 | URL
멋지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영화 <인턴>은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예요.
<페미니즘의 도전>은 꼭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ㅎㅎㅎ

오늘도 날이 좋네요. 꿈섬님~~
좋은 하루 되세요^^

블랙겟타 2017-06-1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단발머리님 오랜만에 글남겨요.
저는『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와『그림자 노동』사두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는데 단발머리님이 먼저 읽어보시고 글올려 주셔서 감사해요 ^^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단발머리님도 읽고 저도 최근에 읽었던 『아내가뭄』도 이런걸 다루기도 했었죠. 사실 저는 최근, 젠더역할과 경력단절, 여성임금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스웨덴처럼 한국에서 남성들도 의무적으로 육아휴직을 해야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심상정 의원이 약속대로 ‘슈퍼우먼 방지법‘을 발의하셨더군요. 조금씩이라도 현실에 반영되었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17-06-13 11:09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당신이라는 바람이 내게로 불어왔다>는 아직 읽지 못 했어요.
고민정 아나운서와 조기영 시인 사진 넣을까 하다가, 그래도 책 제목이라도 알리고 싶어,
책을 링크했습니다. ㅠㅠ 블랙겟타님이 먼저 읽으시고 리뷰 써 주세요~~

블랙겟타님도 공부하는 중이시군요. 너무 반갑습니다.
저도 젠더역할과 여성임금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저는 ‘가사노동‘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지금 제가 사회적 일, 고용관계에 근거한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아내 가뭄>에 나왔던가요. 스웨덴의 경우, 아빠가 육아휴직을 쓰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게 될 정도로, 육아휴직 자체가 강제적이라는 걸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슈퍼우먼 방지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런 것도 반영되면 좋겠어요.
육아 휴직 써라~~ 하면 아빠들은 특히 사용하기가 어려우니까, 법적으로, 강제적으로 3년 이내에 6개월이상 육아휴직 써라~~~ 이런 식으로요. 아~~ 너무 좋은 세상이다. 완전 불가능한건 아니겠죠? ^^

블랙겟타 2017-06-13 11:36   좋아요 0 | URL
우와 단발머리님도 비슷한 주제에 관심이 많다니까 엄청 반가운데요? ㅎㅎㅎ 네. 저도 동감해요. 아이들이 어릴때부터 엄마와만 관계를 맺어야되는것이 아닌 아빠와도 관계를 맺어야 아이들이 커나갈때 좋은 영향을 받을꺼라 봐서 아빠도 법적으로, 강제적으로 육아휴직을 써야해야된다고 생각해요. ^^

단발머리 2017-06-13 11:57   좋아요 1 | URL
반가워요~~~ 반갑구먼~~~~ 춤이라도 덩실덩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특히, 육아휴직은 가능한 아이가 어릴 때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물론 모유수유할 때는 엄마가 꼭 필요하지만 (뭐, 이런 당연한 말을 ㅋㅋㅋㅋ)
아이가 조금 커서 이유식 먹을 때만 되어도, 아이가 알거든요.
아, 나한테 이 맛난 걸 주는 사람은, 날 보고 웃어주는 사람은, 날 씻겨주는 사람은...
엄마 말고 다른 사람, 아빠구나...

새로 나온 박카스 광고 보셨어요? <딸의 인사> 편.
출근하는 아빠에게 이쁜 아이가...
아빠, 또 놀러 오세요~~~~ 하더라구요.
하도 아빠 얼굴을 못 보니까. ㅎㅎㅎ 슬프지만 웃긴... 웃기면서 슬픈...

블랙겟타 2017-06-13 11:57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어릴때 써야죠 ㅎㅎ
아이들에게도 그렇지만 육아라는게 얼마나 힘든 노동입니까. ㅜㅜ 같이 부담해야죠.
박카스 광고는 아직 못봤는데 어떤 장면일지 상상이 가네요 ㅜ
현실은 남녀 모두 일하는 가구는 늘어나는데 아내 역할은 언제나. 여성들이 하니..

단발머리 2017-06-13 12:0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육아 진짜 힘들죠. ㅠㅠ

근데 저는 힘들고 어렵기도 하지만, 기쁜 순간 있잖아요.
아이랑 짠! 눈이 마주치고, 같이 웃고, 서로 살을 비비고, 끌어안고....
그 때가 주는 행복감을 남자들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같이 키우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만, 육아 초기 시기에 그런 기쁜 순간, 순간을 알아채는
남자들이, 아빠들이 나중에도 아이와 더 가깝게 지낼 수 있다고 봐요.
기저귀 갈아준 아빠가 자전거도 밀어주고 같이 캐치볼도 하구요. 그런 식으로요... ㅎㅎㅎ

문제는 사회니까.....
남자가 가정에 있는 시간을 늘이고, 아내의 가사 부담을 덜어 주고...
말은 쉬운데... 휴우...

블랙겟타 2017-06-13 12:33   좋아요 0 | URL
네. 육아를 통해 힘든부분도. 기쁨을 느낄부분도 당연히 둘다 남자도 누려야된다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직 사회나.. 현실은..받쳐주질 못하네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