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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ㅣ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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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그려졌지만 악어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의 한 마디, 한 마디는 희생자,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준다. 옷차림으로 여성임을 가릴 수 있는가. 성범죄는 밤에만 일어나는가. 여자는 집에만 있어야 하는가. 여자는 밤에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가. 여자는 헤어진 남자 앞에서 다른 남자랑 춤출 수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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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항하는 전략 요약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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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인식, 즉각 대응 대결
본인과 희생자와의 안전에 유의, 사람들을 모음 공권력과 같이 제어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림
가해자에게 따지는 건 우선순위가 아님, (경찰, 경비, 종업원, 교수 등등)
희생자의 잘못을 따지지 않음 가해자 주의를 분산해서 도망갈 기회를 줌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면서 봇물 터지듯 나왔던 여러 여성들의 용기 있는 증언들을 들으면서, 읽으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들이 느꼈던 절망, 두려움은 모두 다 내 안에 있던 것들이다. 생기발랄한 소녀 시절과 나름 활짝 피었던 아가씨 시절, 그리고 아직은 젊은 아줌마로서 나는, 항상 그 두려움을 느끼며 산다. 늦은 밤, 놀다 놀다 하루를 넘겨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불안하다.
마지막으로 악어 이야기.
어떤 남성은 『악어 프로젝트』에 나오는 여성의 처지에 서볼 수 없었을 뿐더러,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남성층에 동일시하려 하며, 남성을 악어로 그린 것에 기분 상해했다. 그들은 여기에 표현된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모든 남성이 실제로 성적 포식자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의 관점에서는 좋은 남자와 공격자, 이렇게 두 가지 범주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이 두 범주는 서로 만나고, 섞이고, 혼동된다. 모든 남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범주에서 저 범주로 순식간에 옮겨갈 수 있다. (159쪽)
그들은 우리가 강간, 폭력 그리고 아주 심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무언가를 느끼기는커녕 자신들의 에고를 보호하느라 바쁘다. 그 심리는 무엇일까? 그런 일이 자신들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남성도 성폭력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혹은 단순히 자신의 이미지를 보호하려는 걸까? 하지만 바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악어의 모습인 것이다. 말하자면 타인의 필수적인 요구(특히 여성의 육체적 안전)보다도 남성이 자신의 요구와 욕망(예를 들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을 독단적으로 상대방에게 들이미는 행동은 악어의 그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악어 프로젝트』에서 수많은 여성이 진술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161쪽)
딸아이 공개 수업에 갔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기 때문에 나에게 ‘남자 친구’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인 친구’다. 그들의 의도건, 혹 나의 의도건 ‘이성적’인 감정이 완전히 배제될 수가 없다. 나에겐 그런 ‘남자 친구’들만 있다. 음악 실에는 세 개의 책상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딸아이의 짝궁은 여자아이였다. 딸아이 맞은편에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고, 딸아이의 뒤에도 남자아이였다. 그렇게 등을 대고, 마주 보고 앉아 수업을 듣는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 36명이 뿜어내는 열기를 한 교실에서 다 감당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줄 아는가. 그 재미없는 음악 이론 수업, 종묘 제례악 수업도 아이들과 함께 들으면 그냥 마냥 웃을 일 밖에 없다. 딸아이에게는 남자아이들도 친구다. 나처럼 ‘남자’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이, 그 애들도 그냥 친구다.
그 친구들이 얼마 전에는 둘이 한 의자에 겹쳐 앉아서는 무엇을 뜻하는지가 명확한 기묘한 신음 소리를 내며 히히덕거렸다는 거다. 딸아이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그래서 너 어떻게 했니? 하고 물었다. 딸아이는 니네 뭐야! 저리 가! 라고 말했다는데, 복도로 쫓겨난 남자 아이들은 거기서도 계속해서 즐겁게 히히덕거렸다는 거다.
같이 밥 먹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땀 흘리고, 같이 성장하는 친구들. 친구이자 남자인 아이들이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도 모르고 서로를 바라보며, 여자 아이들을 의식하며 히히덕거릴 때, 그렇게 하는 것이 잘못된 거라고, 그렇게 했을 때 여자들이 불쾌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게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이들 학교 가기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한 번 더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에 찾아갈 생각이다.
그 일이 꼭 나만 해야 하는 일인가.
그냥 하는 말, 재미로 하는 말, 예쁘다고 하는 말이 성희롱이 될 수 있음을 가르치는 게 여자들만의 몫인가.
본인이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정말 몰랐어, 여자들이 이런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산다는 걸 말이야, 라고 말해줄 책임 있는 남자 어른이 우리에겐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왜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여기느냐고, 왜 우리를 악어로 그렸느냐고, 돌려 말하며 불평하는 남자의 소리만 들어야 하는가.
중학생 딸애에게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도 있지만, 더 많은 근사한 남자들이 있다고 말할 수 없도록 하는 건 누구인가.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와 같이 살고, 남자를 낳은 나를, 이런 극단으로 몰고 가는 건 도대체, 악어가 아닌 그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