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있는 소설이 이해되지 않거나, 어렵거나, 재미 없을 때 (써놓고 보니, 세 가지가 한 가지 경우다.) 작품 뒤의 해설과 작가 연보를 읽는다. 번역한 분의 해설이 실려 있는 경우도 있고, 유명한 문학평론가나 소설가의 해설 또는 감상이 실려있는 경우도 있다. 나는, 도움을 받아야 근근히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지난번에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을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작품 뒤에 해설이 없다. 나는 도움이 필요한데, 나를 도와주는 손길이 없다.
작품에 대한, 작품의 배경에 대한 이해없이 읽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는 세계사를 매우 잘했으나 (잘 외우고, 잘 찍었으나),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것 같다. 안 배운 것이냐, 배우지 못한 것이냐. 그래도, 읽어나간다. 소설은, 이미 그 자체로서 완벽한 하나의 세계, 그 안에서 실마리를 찾아보자, 쭉쭉 읽어나간다.
어쨌든 넌 가면을 쓰지 않은 채 그 말을 쓴 거야. 그렇게 해서 적어도 우리는 네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거지. 우리는 네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하나는 당을 위한 얼굴, 또 하나는 다른 것들을 위한 얼굴, 그런 식이지. 나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봐야 이제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나는 똑같은 소리를 여러 차례 늘어놓았다. 농담이었다, 아무 의미 없는 말일 뿐이었고 그저 당시 내 기분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등등. 그들은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57쪽)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책을 읽어가는 중간 중간, 아, 이 책의 제목은 이것일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여러번 들었다. 소설 밖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니체식 선언과 철학적 논쟁 속에서 제목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책의 제목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농담'이라니, 농담?
책을 끝까지 읽은 지금은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농담'이지만, '농담'이 아니고, '농담'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들을 잘 한다. 나는 사랑이 자기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낸다거나 그 시작을 나중에 신비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그것이 그렇게 돌연히 불붙은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 어떤 예시 같은 것이 있었다. 루치에의 본질, 아니 ― 아주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면 ― 나중에 루치에가 내게 어떤 사람이 되었는데 그 루치에의 본질, 나는 그것을 한순간에 즉시 깨달았고 느꼈고 보왔던 것이다. 마치 누가 밝혀진 진리를 가져와 보여주듯이, 루치에가 내게 가져와 드러내보인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100쪽)
참, 멋있는 문장이다. 원문을 읽을 수 없으니, 더하기고 빼기도 어렵지만, 이런 문장으로 여자에게 다가간다면 어떤 여자가 마다하겠는가, 그런 생각이다.
그녀의 삶 속에서는 세계동포주의와 국제주의, 철저한 경계와 계급 투쟁,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의에 대한 논쟁들, 전략과 전술이 동반된 정치,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역할도 하고 있지 않았다. (106쪽)
내 앞에는 이제 전속력으로 비상하는 역사의 날개 아래 가리워져 있던 초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잊혀져 있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107쪽)
위대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가치들, 역사 속에서 각 개인의 역할, 의무와 헌신, 논쟁과 투쟁, 이 모든 것들이 아무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은 장소는 '사랑이 시작되는 곳', '일상'이다. 루드빅이 사랑하는 루치에가 있는 곳, 잊혀져 있었으나 이제 다시 살아난 비밀의 장소, 일상이 바로 그런 장소이다.
사실상 내가 한 여자에게서 좋아하는 것은 그녀 자체가 아니라 그녀가 내게 다가오는 방식, <나에게> 그녀가 의미하는 그 무엇이다. 나는 한 여자를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의 등장 인물로서 사랑한다. 햄릿에게 엘시노어 성, 오필리아, 구체적 상황들의 전개, 자기 역할의 <텍스트>가 없다면 그는 대체 무엇이겠는가? (232쪽)
중간쯤 읽었을 때였나, 소설 속 가난하고 소박한 여인 루치에의 삶이 너무 고단하고 괴로워, 나는 책읽기가 힘들었다. 그만 읽을까 하다가, 조금 아쉽기도 해서 이것까지만 읽고, 이제 밀란 쿤데라 작품은 읽지 말자, 나 자신과 약속을 하고는, 책을 끝까지 읽어나갔다.
끝까지 읽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
끝까지 읽지 않았다면, 나는 407쪽에서 413쪽까지 이어지는 놀랍고도 황당한, 약간 웃기는 데도 정작 웃을 수는 없는, 다행이라 생각되면서도 굴욕적인게 분명한 이 신기한 에피소드를 읽지 못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나는 또 결심하게 된다.
다락방님, 테레사님의 안내에 따라 다음은 [불멸]이다. 신난다.
이 책의 존재를 알았을때, 그 때 바로 구입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이래저래 미루고 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최고의 구성인데, 가격도 너무 착하다.
알라딘 다이어리도 블랙, 알라딘 머그컵도 블랙이 왔다. 폼난다.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알라딘 달력. <세계의 작가들> 달력이 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침 그 달력이다.
1년 12개월 중 제일 멋진 사진이다. 내가 어제 [농담]을 읽어서 이 사진을 고른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도 듣지 않겠으나), 내가 본 바 이 사진이 제일 작가다운 작가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더하여 가장 섹시한 작가 사진이기도 하다. 사진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그의 그윽한 눈빛에 어디에 시선을 둬야할지 모르겠다.
일단 [불멸]을 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