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에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나 명태균의 녹취파일일텐데, 이 회오리 바람이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몰랐다. 우리 다 몰랐다. 그 해 겨울 밤에 그렇게나 많이, 그리고 자주 광화문 광장에 서 있게 될 줄은.
명태균의 녹취록 중에서 귀에 꽂힌 건, 5선 국회의원에 대한 고함 & 호통이나 공천과 관련된 대통령과의 대화 이런 게 아니었고, 김건희에 대한 명태균의 평가였다. 이를 테면 이런 대목.
김건희가 사람 볼 줄 아는 눈이 있는 겨.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아.
명태균이 '김건희가 사람 볼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 그 근거는 김건희가 명태균, 즉 자신을 알아보았다는 점이다. 그 지점에서만큼은 명태균에게는 1만큼의 과장도 없어 보이는데, 김건희는 문자 메시지에서 명태균을 선생님, 이라 불렀으니 말이다.
우치다의 주장 중에 마음에 걸리는(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여럿 있기는 해도, 다시 찾게 되는 저자인데, 그의 책에서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되면 '오, 역시~~ 괜찮은데?' 그런 생각이 든다.
유대인은 행동하는 자신을 주시하고, 사고하는 자신을 주시하도록 저주받았다고 사르트르는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저주는 본래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것이 아니었던가? 인간은 스스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받는 승인을 우회하여 비로소 인간이 된다('자기의식'은 오직 타자로부터 승인을 받은 후에만 존재한다)고 쓴 사람은 헤겔이 아니었던가? (『유대문화론』, 193쪽)
그렇다.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승인을 우회하여 비로소 인간이 된다. 둘 이상의 인간이 함께 모여 생활하면서 만들어지는 사회 속에서 나를 대상으로 하여 만들어진 타인의 평가가 그처럼 중요한 이유이다. 타인의 인정, 타인의 승인을 통해 나는 어떤 한 인간으로 비로소 '만들어진다'.
김건희가, 검찰총장의 아내이며, 야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후보자의 아내이며,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가 명태균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때, 명태균은 비로소 선생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러 기타(?) 안건을 제안하고, 지시를 전달하고, 정책을 조율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Tell me everything』에서 밥의 아내 마가렛은 목사다.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에서 그녀의 설교에 대해 언급하며 윌리엄이 말한다.
Willaim said to Margaret, as he raised his glass, "Great job tonight, Margaret. Really, really great job." (45p)
윌리엄의 칭찬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칭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진짜 그런 사람도 있다.(있더라) 칭찬하는 말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 드물긴 하지만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어느 경우에는 아주 심플한 언급도(심지어 칭찬이 아닌 '간단한' 언급마저도) 그 사람에게는 작은 위로와 뛸 듯한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타인의 평가로 인해 만들어지는 나. 타인의 승인으로 구성된 나.
특별히 할 일이 없기도 하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허락될 예정) 오래오래 생각하고픈 주제이긴 하다.
<읽고 있어요>가 한없이 길어지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솔직히 ‘읽고 있어요'는 3-4권을 넘기기 힘들다. 그래서 최근에 기준을 바꾸었다. 나의 '진짜' <읽고 있어요>는 3일 이내에 펼쳐 본 책으로만 한정하기로. 요즘 나의 '읽고 있어요'는 다음의 책들이다.
시간이 참 잘도 간다. 서운한 마음에 책을 샀다. 딱 두 권만 샀다. 내가 그렇게 소박한 사람이다. 두 권 사도 내년 다이어리랑 프레첼 주더라. 세상에... 2025년에도 지구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2025년 다이어리가 나왔다고 한다. 2025년에도 지구에 사람이 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