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크게는 웃음 버튼과 울림 버튼이 있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루시 버튼(『바닷가의 루시』 한글판 출간, 축하드립니다!). 친구는 읽기 버튼과 쓰기 버튼 중에, 쓰기 버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야무지게 피력했는데, 나는 그만큼 중요한게 구매 버튼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이 세상에는 읽기와 쓰기와 (책) 사기가 있는데, 그 중에 제일은 책사기니라.
내 읽기 버튼 중에 하나가 알릴레오 북스이다. (참고사항: 유시민 좋아하는 편, 공장초기화의 난관 속에서도 유시민 작가님과 1미터 거리에 앉아 환한 미소를 띄며 강연 듣던 사진 찾아낸 나를 칭찬합니다) 알릴레오 북스 전편을 보는 건 아니지만, 소개된 책이 무엇인지, 출연자가 누구인지는 확인하는 편이다. 최근에 올라온 책들이 모두 다 마음에 들어 내가 사는 S구와 근거리의 K구 도서관에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거의 대출 중이며, 예약자가 꽉 찬 상태다. 이 정도 기세라면 올해안에 대출해서 읽기는 어려울 것 같고, 그냥 구매를 하는게 낫겠다 싶기는 한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소기를 돌렸다. 손으로는 청소기를 잡고 있지만, 머릿 속은 책 생각 뿐이다. 박태균 교수의 『이슈 한국사』는 일단 상호대차 신청했으니까, 그 책은 살짝 살펴보고 구매해야겠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근대론과 관련해 나는 저자의 의견에 솔깃했는데, 그러니깐 식민지가 되었던 국가들 중 한국의 특이성 부분이었다. 이에 더해서, 일본과 우리 나라의 과거사 문제도 흥미진진했고, 반유대주의와 정체성의 정치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던 나로서는 좋은 레퍼런스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래, 일단 그 책을 읽어보고 나서.
이러고 있는데 거실 책상에 콘래드가 보인다. 아, 콘래드. 정희진의 공부 8월호 <우리가/저들이 저들을/우리를 다스릴 것인가?> 듣고 나서, 이 책 저 책 다 꺼내놓고, 요걸 좀 써봐야겠다 싶었는데, 어느 새 잊어버린 나. 비교적 최근에도 『전체주의의 기원』 읽고 '보어인의 인종주의'에 대해 쓰면서 콘래드는 살짝 언급했었다. 친애하는 알라딘 이웃님들의 댓글에서 제일 주요한 지점은 일곱 살이었는데, 내가 강조하고 싶었던 건, 26년 전. 26년 전에 읽었으니 나는 많이도 변했으리. 다시 읽고 나서 써보자, 했는데.... 는데...
그리곤 또 다시 다른 생각에 빠져든다. 더운 여름 다 지나가는데, 아롱이 연청 반바지, 도대체 어디에 간거지? 여름 다 가기 전에 한 번은 입어야 하는데. 어디 갔지? 아니,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고. 어디 갔지? 도대체?
큰아이 책을 반납해 주고, 서브웨이에 샌드위치를 사러 가는 길에는 정희진의 공부 8월호 <전쟁 무기로서 남성의 몸>을 들었다. 나오자마자 한 번 들었는데, 그 때는 다른 일 하면서 들었던가. 이런 문장들이 귀에 딱 꽂히는 거다. "... 일본 우익의 문제가 끊임없이 일본 내부에서 해결이 안 되면서, 서로가 인제,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민족주의가 적대적 공존을 하는, 그러니깐, 우리도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야되는데, 언제나 일본이 아직도 저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되는 거죠."
네, 선생님. 그게 저에요. 제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인데. 말만 한게 아니라 글로도 썼어요.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다. 나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실질적, 군사적 압력으로 북한이 존재하는 작금의 분단 현실 속에서, 군사 전체주의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일본의 침략 야욕은 노골적이고 확고하다. 용서를 바라지 않는 가해자,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가해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렇게 썼어요, 제가요. 아.... 나의 공부 버튼, 정희진 선생님! 선생님, 존경합니다! 하지만, 선생님도 아시지요. 한국은 한참동안 이걸 넘어서기 힘들거에요. 그리고, 저는요. 한국의 민족주의,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려는 지식인들이 존재하는데 반해 일본에는 그런 사람이, 그런 지식인들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그 분들을 잘 모르기는 하지요. 그래서 제가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전쟁과 죄책』을 사서 읽어보려고는 하는데. 일단, 아직은 안 샀어요. 선생님이 저의 공부 버튼이신건, 제가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기는 한데. 선생님, 제발 한 번에 버튼 한 번만 눌러주세요. 여기저기, 이 분야 저 분야 총망라해서 여기 저기 누르시면, 저는.... 어떡하나요. 네? 선생님? 저는 어떡하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