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마르크스주의 사전에서 젠더: 용어의 성적 정치학>을 읽고 쓴다. 지금까지 읽은 논문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 이 챕터에서 해러웨이는 과학자라기 보다는 페미니스트 이론가로 느껴진다

 


젠더 논의에서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는 것이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은 출발점이다. 젠더는 성차를 자연화하는 것에 반발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술에서 두 사람은 노동의 성별 분업의 근간이 자연스러운 이성애라고 보았다. 또한 결혼에서의 경제적 소유관계가 여성을 억압하는 근거가 된다고 했을 때, 남자와 여자 사이의 특수한 성의 정치학을 배제했다. (237-8)  

 


젠더 정체성 패러다임은 이분법적 범주의 정치적-사회적 역사를 추적하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섹스/젠더를 심문하는 데도 실패했다.(142) 긴급한 성차의 정치적 투쟁을 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맞서 싸우는데 섹스/젠더의 구분이 너무나 유용했기 때문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주디스 버틀러에게 페미니스트들이 보인 거부감은, 여성의 행위자성 개념이 상실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244) 버틀러는 무엇이라 말했나. “남성()과 여성()은 존재가 아니라 반복적 수행을 거쳐 구성되는 사회적 규범(norm)이자 임의의 범주(category)”이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40) 이는 서구인들의 주체에 대한 사고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온다.

 


서구인에게 고유하고 적절한 상태는 자아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마치 재산처럼, 핵심적인 정체성은 소유하는 것이다. (143)  

 


하지만, 이러한 섹스/젠더 차이 담론은 그간의 정치적, 과학적 경합 과정에도 불구하고, 자연/문화, 섹스/젠더의 인식론적 이항 대립적 프레임 내부에 자리했다. 1980년대 젠더 범주와 섹스/젠더 이분법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하면서, 또 다른 섹스/젠더에 대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루빈은 남성이 여성을 교환하는 섹스/젠더 체계 속에서 욕망의 심층구조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성애가 의무적으로 작동함을 지적했다. 의무적 이성애를 여성 억압의 핵심으로 파악한 것이다. 에이드리언 리치의 강제적 이성애’, 모니크 위티그의 의무적 이성애와도 연결된다. (249) 이는 자연스레 결혼 경제로부터 여성들의 철수를 불러왔는데, 여성은 생산한 산물(아이들을 포함)을 교환하고 전유하는 남성들의 문화 바깥에 존재하는 동시에, 역사적인 주체로 자아를 구성하게 되었다.

 

 


시작점은 당연히 정체성이고, <, , >의 문장은 거기에 정확히 맞닿아있다

(사이보그와 페미니즘의 미래,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291728



 













인간은 언제나 이미 타자이고, 우리의 유일무이해 보이는 개별 자아들에 거주하고, ‘자아들을 구성하는 외부인들, 이질적생명 복합체들이라는 것이다. (376)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굴레에 스스로 갇히기로 할 경우, 정체성의 정치가 가질 수밖에 없는 제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나는 한계라고 쓰지 않았다. 맨 앞에 서고, 목소리 높여 소리 지르고, 용기 내어 싸우는 여성들에게 한계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열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전략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이는 느슨한 형태의 모습이라 하더라도 연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 범위를 어떤 방식으로 넓혀갈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끼어드는 모든 남성의 목소리를 거부한다. ‘이런 페미니즘은 안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거부한다.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거부한다. 오천 년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주어진 특권을 지금 이 시간까지 누려왔다면, 필요한 건 참견이 아니라 반성이다. 나는 내 말을 알아듣는 여성에게만 말할 것이고, 우리의 현실에 공감하는 남성하고만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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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4-03-25 0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쿵💘 5장 막 읽고 자려는 참인데 낼아침엔 7장을 시작해야겠어요. 버틀러의 섹스는 언제나 젠더였다에 준하는 통찰이 사이보그 선언이라는 것. 여신이 아니라 사이보그가 되겠다.로군요. (총체화, 여성없는 여성주의… 이분법… 서구적 주체…) 맥락이 더 깊게 읽혀서 지금 감동받고 놀라는 중… 😭 그걸 꼭 그렇게 했어야하는 이유들…😭😩😭멋져…

단발머리 2024-03-27 08:49   좋아요 1 | URL
댓글에 요약 너무 잘해주셔서 더할 말이 없네요. 여성 없음, 여성성 없음, 여성됨 없음과 이분법 해체, 그리고 전략적 본질주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봅시다. 저는 대강은 알듯 한데, 말이나 글로는 아직 정리가....
노트 좀 빌려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건수하 2024-03-25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장까지 읽었는데… 6장까지와 많이 달라서 놀랐고 그동안 많이 본 개념이었지만 어려워서 놀랐습니다. 단발머리님 글을 정독하고 7장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8장이 사이보그 선언문인데. 다시 읽으면 처음 읽는 것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

단발머리 2024-03-27 08:50   좋아요 0 | URL
해러웨이가 많이 어려워서 저도 예전에 읽었던 책들 꺼내 놓고 찬찬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27일인데 아직도 백쪽이상 남았네요ㅠㅠㅠㅠ
사이보그 선언문이 쪼금이라도 다르게 읽힐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는 있습니다^^ 건수하님의 감상평도 기다릴게요!!

다락방 2024-03-25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끼어드는 모든 남성의 목소리를 거부한다. ‘이런 페미니즘은 안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거부한다. ‘페미니스트는 어떠해야 한다’는 말을 거부한다. >

이 구절이야말로 오늘의 밑줄입니다,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2024-03-27 08:53   좋아요 1 | URL
오늘의 밑줄에 선정된 소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책 선정과 스케쥴 관리, 그리고 좋은 글로 이끌어주신 다락방님과 영차영차 서로 도우며 함께하는 알라딘 이웃님들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밑줄로 승부하는 단발머리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