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기숙사에서 3일, 집에서 4일을 잔다. 멀기도 하고 오가는 길이 고생스러운데도 클릭 작전을 통해 그렇게 시간표를 짰다. 집이 그렇게 좋냐, 아무리 놀려도 1년이 한결같다.
자다가 눈을 번쩍 뜨니 사방이 캄캄하다. 아, 그대로 잠들었나? 몇 시에 쓰러진 것이냐. 그러니까 어제저녁 퇴근 1 (직장)과 퇴근 2 (빨래 돌려놓고 저녁 먹고 치우기)를 마친 후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앉아있으니, 다리가 자꾸 부어서 이런 자세로 앉아 책을 읽었다.
아.... 정확히 이렇게는 아니고 이런 자세를 추구하면서...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마음의 미래>에서 기억나는 문구는 단연 ‘실리콘 의식’인데, 컴퓨터 의식에 관련된 글이니 얼마나 흥미롭겠나. 그러나 고된 하루를 마치고, 운동하며 책을 읽겠다던 나는 10분도 못 되어 고개를 떨구고 말았으니. 방으로 들어가라는 남편의 성화에 꿋꿋하게 버텨 보았지만, 큰애의 다정한 안내에 이끌려 (안방) 입실 – 취침 - 새벽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차게 회전하는 허리케인을 이해할 때는 개별적 공기 분자의 관점이 아니라 수 세제곱킬로미터에 걸쳐 있는 공기 덩어리의 관점을 취한다. 이런 식으로 더 큰 척도에서 현상을 구별하고 그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어느 물리학자에게나 당연한 절차다. 이러한 현상을 '창발emergence'이라고 부른다. 미시적 요소를 지배하는 단순한 기본 법칙으로부터 거시적 척도의 복잡한 과정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이다. (152-3쪽)
원래 아침에는 책 안 읽는데. 책 안 읽고 핸드폰 보는데 오늘 아침에는 어제 너무 일찍 잠들어서 책을 읽었다. 153쪽, 여기까지 읽었다. 창발. 창. 발. 이러면서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밥이 어중간해 쌀을 씻는다. 냄비에 물을 받아 자연한알을 두 알 넣고 물을 끓인다. 아침마다 새 밥, 새 국을 해주셨다는 친구 엄마를 생각한다. 자식이 넷, 부부 두 사람에 시아버지 내외분, 객식구 플러스 마이너스 2명이면, 최대 10명의 식사를 매일 준비하는 그런 아침에 대해 생각한다. 작은 식당이라고 할 수 있겠구먼. 냉장고를 열어 외삼촌 김치를 꺼낸다. 작은외삼촌(외숙모 아님, 외삼촌임)이 막내 이모 드시라고 만들어 보내주신 김치를 이모가 엄마 드리고, 엄마가 내게도 조금 나눠주셔서 우리 집에 도착한 외삼촌 김치를 한 접시 내어놓는다. 우리 집은 원래 된장국에 호박을 안 넣고, 감자는 지금 없다. 양파 넣어야 하는데 껍질 벗길 시간이 없다. 대파를 꺼내 껍질을 벗기고 가위로 쓱쓱 자른다. 한살림 유부를 역시 가위로 잘라 넣고, 뚜껑을 닫는다. 어젯밤에 나 잘 때, 샌드위치를 맛나게 먹었다는 둘째는 배가 부를 테니, 밥을 안 먹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아침엔 밥이지. 밥통의 밥을 꺼내 유부초밥을 만든다. 다른 야채 없이 그냥 포장에 들어있는 대로 만드는 거지만, 아무튼 유부초밥을 만들어 접시에 올려둔다. 반찬 가게에서 사 온 돈까스를 잘라 전자레인지에 45초 데운다. 식구들을 깨운다.
나는 과학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이 잘못된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자주, 자신들이 ‘뭘 모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좀 더 정교하게 나만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 책은 두괄식이다. 핵심 주장이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온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리겠다. 살아 있는 존재는 기계가 아니고, 우리 머리 밖에는 수학이 존재하지 않고, 실재하는 세계는 시뮬레이션이 아니고, 컴퓨터는 생각하지 못하고, 의식은 환각이 아니고, 의지는 자유롭지 않다. (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