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와 남편 하인리히 블뤼허의 상황은 이랬다.
1940년 6월 중순 한나는 귀르스 강제수용소를 탈출했다. 동남쪽으로 약 70킬로미터 떨어진 귀르스로 (아마도 걸어서) 이동해 발터 벤야민을 만났다. 7월 초 한나는 남편을 찾기 위해 벤야민과 헤어져 걷거나 히치하이킹을 해서 친구 차난 클렌볼트의 아내 로테가 사는 몽토방에 도착했다. 남편의 행방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던 한나는 식량과 담배, 신문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몽토방 중심가를 걷다가 우연히 블뤼허를 발견했다(138쪽). 블뤼허는 느베르 강제수용소 경비병들이 수감자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대피할 때 함께 있다가 독일군과 맞닥뜨렸을 때 경비병들이 도망가는 바람에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들의 상황은 이랬다.
재회한 두 사람은 마을 사진관 위층에 작은 방을 얻어 미국 비자발급 서류를 마련했다. 그사이 한나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913),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1832), 조르주 심농의 추리소설을, 블뤼허는 임마누엘 칸트의 저서를 읽었다. (139쪽)
미국 비자 발급 서류를 준비하면서, 프랑스를 탈출한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는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나 아렌트는 읽는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전쟁론』을, 조르주 심농의 추리소설을.
최악의 건강 상태로 카불을 탈출하는 와중에도 『전체주의의 기원』을 가지고 있었다는 체슬러의 이야기에 놀랐던 게 벌써 3주 전. 이번에는 한나 차례다. 절체절명의 시기, 탈출을 준비하는 이 암울한 상황에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어떤 의미일까. 절대극한의 환경에서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또는 읽을 수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정도의 급박한 사정이 아니라면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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