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로 자신을 규정하는 여성에게 가장 강력한 심리적 장애물은 무엇일까. ‘성적으로 난잡하다’는 평판과 ‘이기적이다’라는 평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사유 재산의 축적, 여성의 노예화가 가속화된 시점에, 한 여성을 ‘소유’한 남성이 점유하게 된 것은 여성과 더불어 그녀의 ‘재생산력’이다. 아이를 낳을 수는 없지만, 자신의 초월을 대상화할 대상으로 ‘자식(대부분의 경우 아들)’을 상정할 경우, 그 아들은 나의 분신, 나의 현신으로서 반드시 ‘나의’ 씨, ‘나의’ 자식이어야만 했다. 자녀가 나의 후손임을 확실히 하는 방법은 어머니인 여성을 다른 남성과의 접촉이 불가능하도록 완벽하게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공고화되었으며, 성적으로 ‘방종하다’, ‘난잡하다’, ‘적극적이다’는 평가는 그 무엇보다 여성의 ‘평판’에 파괴적이어서, 특정한 상황에서는 여성의 생존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머지 한 가지는 ‘이기적’이라는 평가. 모든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일정 정도 ‘이기적’이다. ‘이기적’이라는 평가가 이루어지는 현장은 생존을 위협할 만한 이슈가 문제인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남을 배려하지 않는 여성, 자신의 안위를 먼저 살피는 여성, 희생하지 않는 여성,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은 모두 ‘이기적이다’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이는 여성의 직업적 성공과 가정생활, 자녀 양육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양보하는 여성, 희생하는 여성, 가족과 공동체의 필요를 자신의 안위보다 우선시하는 여성만이 숭배받으며, 이 중 단 한 가지에도 소극적이라면 그 여성은 ‘이기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하게 된다.
‘성적 방종’과 ‘이기적’이라는 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여성 그룹은 ‘어머니’다. 성 해방의 흐름 속에서 성관계는 더 이상 결혼제도 내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혼이 아니라 연애와 동거 생활 중에도 성적 관계는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어머니가 결혼 생활 중에 배우자 이외의 다른 성적 관계를 모색하거나 그 관계를 지속했을 때, 그녀는 명백히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된다. 안나 까레리나의 경우처럼 남편만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녀의 성적 일탈을 한목소리로 비난한다. 기혼 남성의 불륜이 ‘한시적 문화 코드’의 일종 즉, ‘바람’으로 가볍게 다루어지는 데 반해, 여성의 불륜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일생일대의 ‘반역’으로 여겨진다.
'이기적인 임신중지 여성'이라는 전형은 적어도 20세기에 들어설 무렵부터 존재했다. 1970년대 여성해방론자들이 주장하길, 임신중지 여성에게는 '이기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데 왜냐하면 '여성을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존재로 규정하는 문화적 정의’에 비추어 그들은 실패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대중문화에서 급속히 '이기적’이라는 전형성을 얻었다. (91쪽)
‘임신중지’의 이유가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한해서는 합의가 훨씬 간단하다. 근친상간, 성폭행과 강간으로 임신, 기형아 출산 위험, 태아와 산모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경우의 ‘임신중지’는 받아들여진다. 즉, ‘어쩔 수 없음’은 임신 중지 논의를 훨씬 더 부드럽게 이끌어간다. 하지만, 자율적 동의에 의한 성관계 혹은 연인/부부 관계 속 합의에 의한 성관계로 인한 임신의 경우,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여성은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어머니인 여성들이다. 이미 돌봐야 할 자녀가 여럿인 상황에서 새로 태어날 아이로 인한 부담을 질 수 없는 여성들의 선택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비난은 오롯이 여성만의 것이다.
여성은 죽는 그날까지 완벽한 성녀 마리아가 되어야 하고, 그중 한 가지 임무에서라도 실패한다면 그녀의 모든 성취는 무위로 돌아간다. 완벽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완전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니, 여성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당하는 존재다. 여성은 인간으로서는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여성’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성은 여성의 자율성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통제 불가능한 지점에 접근할 기회이기도 하다. 여성은 어머니가 되면서 자유를 잃는다. (『숭배와 혐오』, 1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