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집 안의 천사 죽이기
질투가 나의 힘이 아니라, 반납일이 나의 힘. 반납일은 나의 읽기를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희망 도서로 신청해 제일 먼저 대출하는 영광을 누렸으나, 반납일이 닷새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가열차게. 가열차게 읽어 나갔던 바로 그 책.
버지니아 울프의 글, 서평, 연설을 모은 산문선 4편 중 첫 번째 책이다. 여성의 직업, 여성의 지적 지위에 관한 글에서부터 시작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제인 오스틴, 샬롯 브론테, 조리 엘리엇과 그들의 작품을 다룬다.
제인 오스틴이 왜 천재인지, 왜 『폭풍의 언덕』이 『제인 에어』보다 이해하기 어려운 책인지, 우리가 왜 샬럿 브론테를 읽어야 하는지를 소상히 밝혀준다. 울프의 의견과 다른 의견일 수도 있겠으나, 울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적극 활용할 수 있겠다.
아무리 자식을 많이 낳고 빨래를 많이 해도 닳아 없어지지 않는 저 타고난 힘은 과월호 잡지에까지 뻗쳐서, 그녀들은 디킨스를 읽고 번스의 시를 베껴 접시 뚜껑에 기대 놓고 요리를 하면서 읽었답니다. 식사 때도 읽었고, 방앗간에 가기 전에도 읽었지요. 디킨스도 읽고 스콧도 읽고 헨리 조지와 불워 리턴, 엘라 훨러 윌콕스와 앨리스 메이빌도 읽었으며, <프랑스 혁명사 책을 한권 구했으면, 하지만 칼라일의 것은 말고>라는 소원을 말하는가 하면, 중국에 대해서는 버트런드 러셀을 읽었고, 윌리엄 모리스와 셸리와 플로렌스 바클리, 그리고 새뮤얼 버틀러의 『노트북Note Books』도 읽었어요. 그녀들은 굶주림에서 나오는 무차별적인 식욕으로 과자와 소고기와 파이와 식초와 샴페인을 한입에 삼켜 버리듯이, 그렇게 왕성한 지식욕을 가지고서 읽어 댔습니다. 당연히 그런 독서는 토론으로 이어졌지요.
(221쪽)
<여성 노동자 조합의 추억>이라는 마지막 글에서 노동자 계층의 여성들이 무서운 식욕과 같은 기세로 책을 읽어가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인 자신과는 전혀 다르지만, 읽기와 쓰기를 통해 노동자 계층이 집 안의 천사에서 글 쓰는 주체(259쪽)로 변해가는 과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있다.
울프의 결론. 집 안의 천사를 죽이고 글 쓰는 주체로 살아가자.
2. All your perfects
로맨스 소설에서의 ‘남자 주인공’이라 함은 이상형의 ‘총체’ 같은 존재다. 왕자님이거나 혹은 왕자님 같거나 혹은 왕자님 같은 행동을 보여준다. 잘 생겼고. (이 부문은 따로 세어줘야 한다) 체격 좋고 건강하고 섹시하고 사려 깊고 머리 좋고 유머러스하고. 이 책에서는 조금 다른 면이 추가된다. (섹스할) 기회만 되면 돌진하는 (일반적인) 남자들과는 달리, 남주 Graham은 결정적인 찬스 국면에서도 섹스 기회를 유예한다. 당신이 나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리고 나도 그걸 원하지만, 당신이 더 편안하게 느낄 때까지 기다리겠다. (게다가) 그때를 기다리면서 당신과 대화하고 싶다, 허심탄회하게. 가히 훌륭하다고 아니할 수 없겠다.
또 한 가지. 이건 내가 미국 문화를 모르니까 실제는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이 소설 하나만 놓고 봤을 때, 부모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남주의 모습이 긍정적으로 그려진다.
I kind of like his teasing. A lot. I open my mouth to respond to him, but his phone rings. He holds up a finger and pulls it out of his pocket, then immediately answers it. "Hey, beautiful," he says. He covers his phone and whispers, "It's my mother. Don't freak out." (113)
남주가 전화를 받으면서 “Hey, beautiful”이라고 인사한다. 여주가 오해할까 봐 핸드폰을 가리고 ‘우리 엄마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인데, 그럼 먼저는 이런 말은 여자친구에게 할만한 것이라는 거고, 둘째로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엄마와 친근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영화 <트와일라잇 : 이클립스>에서도 테일러가 벨라에게 이렇게 인사한다. “Hey, beautiful.” 처음 들었을 때는, <미녀와 야수>의 미녀도 아닌데, 웬 beautiful인가 싶었는데, sweetie나 sweetheart 혹은 honey쯤으로 기억하면 되겠다. 평생 이런 말 들을 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지 않나. 들을 일은 없어도 쓸 일은 있을 수도. Hey, beautiful!
3. 탐닉
"Ya tebya lioubliou." (러시아어로 '당신을 사랑해’라는 뜻) 그가 내게 러시아말로 대답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해서 그에게 다시 한번 말해보라고 한다. "단지 마샤만 사랑해?" "응." 내가 대답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떠날 거야. 하지만 당신은 슬퍼하지 않겠지, 강한 남자니까." 그가 대답한다. "그래 맞아." 그가 떠날 시간이었다. 어떤 말로도 덮을 수 없는 그 말이 내 가슴을 찢어놓았다. "다음주에 당신에게 전화할게. 집에 있을 거야?"라는 말뿐. 일순간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를 거칠고(그리 심하지는 않지만), 즐기기만 하는(나쁠 것도 없지) 플레이보이 또는 고르비보이로 봐야 한다. 떠나며 탁자위에 있는 말버러 담배 보루를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묻는 그 남자를 위해 내가 1년이란 시간과 돈을 잃었음을 확인했다. 스무 살에나 마흔여덟 살에나, 언제나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하지만 남자 없이, 삶 없이 무엇을 하겠는가? (205쪽)
그녀가 갈구했던 건 그의 젊음과 그의 육체였다. 젊음만도 아니고 육체만도 아닌, 젊은 그의 육체. 그것 말고 그는 그녀에게 줄 게 없었다. 그녀는 그걸 알았고, 그가 원하는 걸 주고 그녀가 원하는 걸 얻었다. 13살이나 어린 그가 혹 다른 여자를 만나지는 않을까, 조바심 내는 그녀의 모습이 안쓰럽다. 한편으로는 자신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인생에 대해 이토록 솔직하고 뜨거운 그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사랑에 빠진 사람, 그곳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사람의 짙은 무력감이 36도의 더위처럼 끈적끈적하다. 사랑 없으면, 사랑이 없다면 인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까.
4. 임신 중지
선택이라는 수사는 임신중지 의제에 따라 붙을 때부터 비판 받아왔다. 임신중지가 여성의 선택 문제로 환원되면 순전히 개인적인 결정처럼 보일 수 있다. 여성이 임신해 엄마가 되든 임신중지를 하든, 그런 일은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성이 임신과 양육에 대해 내리는 결정과 그에 따른 결과는, 젠더·계급·인종 같은 요인 때문에 그 여성이 어떤 선택에 다가갈 수 있으며 어떤 선택에서 멀어지는지, 더 넓게는 선택이 사회·문화적으로 어떻게 의미화되는지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문제를 선택의 자유로 축소해 버리면 임신중지를 우리 시대의 도덕적·사회적·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사회·정치의 요인이 흐릿해진다. (32쪽)
‘선택’이라는 단어처럼 오염된 단어가 있을까 싶다. 생각해보니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동무, 공정 그리고 세월. 임신 중지뿐만 아니라 ‘젠더’와 관련된 의제는 그 어떤 문제보다도 쉽사리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되는 것 같다. 가정폭력이 발생하면 ‘집안 문제’이고,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면 ‘애정 문제’가 된다. 가사 노동 분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 ‘그깟 집안일 가지고’라는 응수를 듣기 쉽고, ‘임신’에 대한 문제라면 노코멘트. 그야말로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이 책 4장의 제목은 ‘수치스러운 선택’이고, ‘임신중지 수치’를 다룬다. 임신중지 여성의 침묵이 임신중지에 대한 공적 논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보는데, 그 부분은 외부에 쉽게 알려지지 않는 ‘성폭력’과 ‘성폭력 신고’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실재했던 사실을 숨겨버리는 효과가 발생한다. 피해자의 고통과 경험이 역사 속에서 지워진다.
저번 주에는 옆에 <행정법>을 공부하는 학생이 있어 내심 기대하게 하더니만, 오늘은 초등학생이 앉았다. <상위권의 기준 : 최상위 수학>을 펼쳐서는 ‘대각선의 성질 이용하기’ 파트를 풀고 있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열공하는 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할 텐데. 일단 『임신중지』를 부지런히 읽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