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inko : The New York Times Bestseller (Paperback, 영국판) -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원작
이민진 / Head of Zeus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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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읽었다. 전체적인 줄거리 말고 제3권의 챕터 8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

 


노아는 대학을 마치지 않은 채, 가족을 떠나 다른 도시로 잠적한다. 어디에 사는지 알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꾸준히 선자에게 보낸다. 자신만의 삶을 일궈가는 노아를 마침내 한수가 찾아낸다. 한수는 노아를 찾았다고 선자에게 알리면서, 멀리서만 그를 보라고 말한다. 그가 선택한 삶 속에서 살게 하자고, 그걸 존중해 주자고 말한다. 선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차문을 박차고 나가며 선자가 외친다. “노아야!”

 

노아의 불행을 선자의 탓이라고 할 수 없다. 선자는 최선을 다했다. 지옥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편에게 신의를 지켰고, 투옥된 남편을 위해 생활을 책임졌고, 늦은 밤 고된 일을 마치고서도 노아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림질해 입혀 보냈다. 선자는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두 아들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녀의 지극한 사랑이, 그녀의 선의가 항상 그에 맞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골몰할 때면, ‘선녀와 나무꾼이야기가 떠오른다. 앞부분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뒷부분은 동화책에 따라 약간씩 다른 내용이다. 나무꾼이 하늘나라에서 선녀와 세 아이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판본에서 결말의 나무꾼은 인간이 아닌 수탉이다. 하늘나라에서의 행복한 시간 속에서도 효심이 지극한 나무꾼은 땅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선녀는 천마에 나무꾼을 태워 보내며 절대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당부한다. 반가운 아들의 목소리에 달려 나온 어머니는 아들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아들은 천마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이제 곧 하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뭐라도 먹이고 싶은 어머니(어머니는 먹이는 사람이다)는 아들에게 팥죽을 권한다. 그러나 팥죽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팥죽이 든 그릇을 손에서 놓치고, 깜짝 놀란 천마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어머니는 나무꾼에게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먹이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의 의도는 아들을 붙잡아 두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나무꾼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고,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홰를 치는 수탉이 되고 말았다. 괴로워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녀는 아들의 불행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일은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나무꾼은 어머니와 함께 머물고 있으나 그의 마음은 자신이 속하지 못한 머나먼 세계를 끝없이 떠돌고, 탄식과 아쉬움, 슬픔과 원망이 그의 마음을, 아니 수탉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노아를 대하는 한수와 선자의 태도에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한수는 노아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렇게 살기로 한 노아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한수에 대한 노아의 증오심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수는 자신이 노아에게 요구할 수 있는 작은 권리마저 포기했다. 노아를 더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자는 달랐다. 대학을 그만두고 가족을 떠난 이유를 이미 오래전에 설명했음에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선자는 노아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의 절망이 그에게 얼마나 큰 짐인지를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그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그를 그렇게 아끼면서도, 선자는 몰랐다. 알지 못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선자가 말한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노아가 답한다.

 


“Noa and Mozasu. They’re my life”, “I’ve lived only for them.” (421)이라고 말할 때의 선자를 이해한다. 내가 그런 엄마여서가 아니라, 그런 삶을 사는 엄마들을, 여성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사는 어머니들, 자식만이 삶의 이유인 어머니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혹은 많은 것을 희생한 어머니들. 그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은 ‘a good boy’일 수밖에 없다. 선자를 사무실로 안내하고 차를 내주고 다음 주에 찾아가겠다는 다정한 말을 건네는 소년 노아. 그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은, 그 아들은 a good boy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자식의 어떠함을, a good boy의 절망을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한수는 무책임했고,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았지만, 그는 노아를 알았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한 발짝 물러설 줄 알았다. 노아를 만나고 돌아와 기분이 좋은 선자에게 “You should not have seen him.” 이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자는 노아를 사랑했고, 노아를 위해 살았고, 노아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쳤지만, 선자는 노아를 몰랐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다. 노아를 더 사랑한 선자보다 노아를 덜 사랑한 한수가 오히려 노아를 더 깊이 이해했다는 데 생각이 닿으면 슬퍼진다. 그렇게 보인다. 더한 사랑이, 더 진한 사랑이 결국 노아를 밀쳐버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가장 큰 고통이 선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너무나 가슴 아픈 대목이다.

 



호의와 선의와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꼼꼼히 생각하고 사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일을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 지나친 사랑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 결론이 자식에게도 해당된다는 데 인생의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아를 그냥 그대로 살게 하는 것, 나와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게 하는 것, 그리운 마음에 찾아가더라도 몰래 숨어서 노아를 훔쳐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 그런 게 사랑이라는 나만의 결론에 또다시 마음이 쓸쓸해진다. 하지만 어린 자녀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이 사랑인 것처럼, 장성한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도 사랑일 테니. 출생 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여전히. 모성이 부족한 채로 살아왔던 이 매정한 엄마는 한 번 더 생각한다. 과유불급. 넘치지 않도록, 넘치지 않도록 하자. 내 사랑이 넘치지 않게 하자. 보내주자. 놓아주자. 기다려주자. 멀리 가게 하자. 그래서 날아가게 하자. 저 혼자의 힘으로 날아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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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로에게 져주는 것도 사랑이라는 건 좀 어려운 문제지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09-29 12:24 
    밥 먹기를 명심하며 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마감을 마친 자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쓴다. 오늘은 <디지털…>만 다 읽으면 되는 널럴한 날이다. 원래는 운동 다녀와서 페란테로 *알파수컷* 쓸려고 했는 데, 파친코 2권 어제 다 들었고 운동가기 싫으니까 이거 써야지. 근데 쓰기도 전 부터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마음아픔 주의다. 아, 내 마음 아픔이지 나 빼고 다른 사람은 안 아플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전에 꼭 단발머리님의 파친코 리뷰
  2. To 쟝쟝님 (부제 : 노아의 선택, 그 불가항력과 결정론의 함정 또는 변명의 문제)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0-03 07:38 
    이 글(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969259)에 대한 댓글을 쓰다가 길어져서 먼댓글로 씁니다. 댓글이어서 댓글처럼 씁니다^^ 제가 쟝쟝님의 글을 오독했을 가능성을 전제하고, 제 나름으로 다시 한번 써봅니다. 노아가 자신이 받은 최고 최대의 사랑이 엇나갓음을 알고, 보답할 수 없음을 알고 나서 그가 했던 선택에 대해, 쟝쟝님은 필연적이라고 썼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노아는 자살할 수밖에 없
 
 
얄라알라 2022-05-01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파친고 한글판은 중고가가 4만원대더라고요. 영문판을 데려오긴 했는데 아직 엄두가 안 나서, 단발머리님의 리뷰로 중간 내용을 짐작해봅니다.

˝그냥 그대로 살게 하는 것˝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 제가 8장까지 이르게 된다면 단발머리님 말씀 새기면서 천천히 넘겨야겠어요

단발머리 2022-05-01 20:46   좋아요 2 | URL
한글판 인세 관련 협의가 마무리 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요. 책이 다시 나올것 같기는한데, 우아~~ 4만원이라니 놀랍네요.

저도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 놀란 부분이 많았어요. 얄라알라님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래요^^

다락방 2022-05-01 19: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단발머리님. 저희가 잠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단발님은 모자관계 얘기를 하고 저는 자아에 대한 얘기를 했죠. 그건 우리의 접근 관점이나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원서로 읽는 것과 번역본으로 읽는 것의 차이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이 책을 사러 교보문고로 가는 버스 안이라는 겁니다. 지금 시간은 일요일 저녁 19:37 이고요.

그럼 이만..

단발머리 2022-05-01 19:42   좋아요 3 | URL
지지지지지….. 지금이요?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락방님? 🙄🙄🙄

그레이스 2022-05-01 2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문판 난이도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단발머리 2022-05-01 22:26   좋아요 3 | URL
짧은 문장으로 쓰고요. 사건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방식이어서 쉽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다락방 2022-05-02 08: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어제 저녁에 교보까지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단발머리 님께 땡투하고 이 책 알라딘에서 샀습니다. ㅋㅋㅋ 부자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땡투로 책 더 많이 사시고 글 더 많이 쓰세요. 그럼 이만..

단발머리 2022-05-03 16:55   좋아요 2 | URL
입금하신 100원은 잘 적립되었으며 앞으로도 양질의 페이퍼와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변함없는 사랑과 후원과 관심과 애정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수이 2022-05-02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아를 선자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네요 -_-;;;; 좀 알려주시지! 전 한글판 읽는 동안에 정신없이 읽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세세하게 바탕을 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손꾸락은 왜 그래요 ㅠㅠ 왜 다쳤어요! 뭐 하다가!

단발머리 2022-05-03 16:56   좋아요 1 | URL
그 때쯤 저도 딴 생각하고 있어서 말을 못했나 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꾸락은 ㅋㅋㅋㅋㅋ 원래 요리 잘 안 하는 사람이 칼에 손 잘 베인다고 해요. 다 나았어요. 헤헤

독서괭 2022-05-03 1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래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거군요.. 이 책 읽고 싶은데 품절이라 못 읽는구나, 하고 말았는데 원서로 읽으면 되는 거였다니.. 흑흑 ㅠㅠ 독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내 사랑이 넘치지 않게 하자˝라는 말씀 멋져요. 아이 키우면서 정말 명심해야 할 말 같습니다. 희생한 만큼, 사랑한 만큼 놓아주기는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희생을 최소화 하려고 합니다..쿨럭.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2-05-03 16:59   좋아요 2 | URL
많이 꼬인 문장이 없어서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미리보기 함 읽어보시고 결정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또 영화랑 같이 봐도 되니까요. 배경 알고 읽으면 더 잘 읽힐 것 같아요.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다짐.... 넘 멋져요. 저도 한결같이 그 다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더 쿨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식들한테.....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건 충분히 알려줄 테지만 많이 앵기지는 않으려고 해요. 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2-06-05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친코 드라마가.아닌.원문.읽으며 다시.읽으니.단발머리님 이글 절절히 와닿아요. 더욱

공쟝쟝 2022-09-2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굿 보이… 아ㅜ영어로 읽었어야 했구나… 팥죽 ㅠㅠㅠ 단발님은 천재다 ㅠㅠㅠㅠㅠㅠ

공쟝쟝 2022-09-29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이 글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다시 왔어요… 한수는 노아를 이해하지만 선자는 노아를 이해못한다는 지점이 무슨 말인지 너무 알 것 같아요. 아… 찐 좋은 글이다 진짜… 먼댓글 한 독후감에도 썼지만, 저는 정말 저희들 다 키우려고 부모님이 너무 고생 많이 하셨기 때문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자신을 상처내는 아키코-하나 는 알듯 말듯 모르겠더라고요.

다만 부모님을 저도 사랑했기 때문에,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 있었는 데, 그건 일본인이 되고 싶다나 자수성가하고 싶다가 아니라, 제게 그건 어떤 양심껏 헌신하면서 사는 삶였던 거 같아요. 근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 혹은 내가 그렇게 살려고 할 수록 양심에서 멀어진다는 걸 견딜 수가 없이 괴로웠던 적이 있었거든요?… 뭔가 내 삶뿐만 아니라 내 부모의 삶까지도 다 부정 당한 것 같은 세계의 상실이 있었어요. 아.. 이건 뭐라고 설명이잘 안되는데… 어쨌든 노아를 너무 제 방식으로 읽어가지고ㅋㅋㅋ 무튼 헌신하는 사랑이라는 게 너무 아파요. 저는 아직도. 엄마가 ‘너 자신을 살아’라고 한번이라도 말해줬다면 어땠을까요?… 마지막에 노아가 엄마한테 책 주는 것도… 저는 거의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 데…

독후감이 혼란의 도가니탕이지만… 동시에 단발님이 이렇게 선자의 마음과 한수가 본 것에 대해서 쓴 글을 읽지 못했다면, 저는 노아만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말았을 것 같아요 ㅎㅎ 다시 한번 읽고 쓰고 감상을 나누는 힘을 느낍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