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와 과유불급
[세트] 파친코 1~2 - 전2권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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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밥 먹기를 명심하며 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마감을 마친 자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쓴다. 오늘은 <디지털…>만 다 읽으면 되는 널럴한 날이다. 원래는 운동 다녀와서 페란테로 *알파수컷* 쓸려고 했는 데, 파친코 2권 어제 다 들었고 운동가기 싫으니까 이거 써야지. 근데 쓰기도 전 부터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마음아픔 주의다. 아, 내 마음 아픔이지 나 빼고 다른 사람은 안 아플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전에 꼭 단발머리님의 파친코 리뷰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3561043) 를 읽고 오시면 좋겠다. 



[1. 노아의 결벽증 (2권)]


선자는 엄마이며 이삭은 빨리 죽은 아빠고, 한수는 (숨겨진) 아빠고, 노아는 아들이다. 아들은 자살했다. 나는 노아의 자살이 필연이라고 봤다. 노아 같은 삶에 대한 결벽증이 있는 영혼을 난 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마음은 잘 모른다. 엄마가 아니니까. 적어도 내 엄마에 대해서 만큼은 세상에 있는 그 누구보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사랑했으니까. 분리되는 것이 평생의 과제일 만큼.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 엄마는 내가 엄마가 되기를 요구하지만 나는 엄마가 되지 않는 것이 엄마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당분간은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나의 부모는 좋은 사람들이다. 가난하지만 순박하고 정직하게 사셨다. (거기에 어떤 폭력도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그 지점이 나를 미치게 한다. 다행인 것은 지금의 나는 내가 미치겠는 지점, 여기에 삶의 어떤 진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단 거다. 그가 되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것. 어떤 삶도 단순하지가 않다는 것. 나는 서른 살 이후부터 안 미치고 살기 위해 읽고 쓰기를 택했는 데 잘한 것 같다. 잘 만든 이야기와 개념들에 나를 대입해서 읽어보는 글을 쓰는 것. 그런 나를 만들어낸 사회에 대해서 한번 더 읽어보려고 하는 것. 노아에겐 쓰기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노아는 너무 많이 읽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아들에게 팥죽을 먹이고 싶어서 수탁을 만들어 버리는 엄마의 마음에 대해 단발님이 잘 쓰셨기 때문에…(정말 귀한 글입니다. 여자여 글을써라!) 나는 노아가 왜 죽어버리고 싶었는지에 대해서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더러운 피’ 때문이 아니다. 일본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제대로 직면했기 때문이긴 하다. 그에 대한 상징으로 ‘일본인’이 등장하지만, 작은 따옴표안에 ‘깨끗한 정치인’, ‘선량한 기업가’… 같은 걸 넣어도 무방하다. 비슷한 의미로 ‘선한 영향력’도 있다 ㅋㅋㅋ) 조금 가혹한 말이지만 그건 선자가 노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삭도 노아를 사랑했기 때문이고, 모자수도, 한수도 노아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노아는 ‘a good boy’ 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a good girl’ 였기 때문에 종종 어쩌면 자주 죽고 싶었다고 하면 답이 될까. 


거지 같은 역사가 한 가족을 내다버리는 것과 상관없이. 자기 삶을 다 갈아 넣어서 자식을 사랑하는 순진한 모성이란게(역사는 흘러흘러 선자를 헬리콥터 맘으로 만들었다), 대체로 무관심하면서 필요할 때만 나타나서 구원자인 척 생색내는 부성이라는 게 (한남의 부성이라는 건 어찌보면 한결 같다. 한수도 이삭도 대체로 부재한다. 존재감이 이미지로만 있음… 그나마 집에 붙어 있는 건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요셉인데 꼰대에 무능함) 모든 가족이 자랑으로 여기는 든든한 (공부만 잘하면 되는) 아들(자식) 역할이라는 게, 


이게 개인의 역사 속에서든 어떻게 기능하느냐면…  (나는 왜 이 시점에서 조국 가족이 생각나는 건지 모르겠네ㅋㅋㅋㅋㅋ 여기에 대해서는 할말이 많지만 할말이 음슴으로 대체하겠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걸 알기에 잘 살고 싶지만… 그들의 거리감 없는 사랑(차라리 가족의 관심과 기대가 없는 적당한 방임 속에서 자라온 모자수가 잘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이 과도해서 그렇게 살 수 없는 자신을 알게 되었을 때 도망치고 싶은? 살고 싶지 않은? 삶의 동력이 사라지는? 죽어버리고도 싶은? 그것이 깨끗하면 더, 그것이 꼿꼿할 수록 더, 그것이 사랑이었단 걸 이해하고 나면 더. 더. 더.   


노아는 자기 자신만 행복해 질 수 있는 인간이 아니다. 

노아는 그런 사랑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노아는 그게 자신이 받은 최대의 최선의 최고의 사랑임을 안다. 

그러다 노아는 그 사랑이 엇나갔음을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랑에 보답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노아는. 


자살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노아같은 종류의 인간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어떤 시기를 지나왔고 노아만큼은 아니어서 살아는 있다. 

나는 이젠 정말 잘 살고 싶은 데, 이게 맞다 싶다가도 이게 아니다 싶어질 때 너무 힘들다. 

나는 사랑이 어려워서 자주 운다.

가끔 이렇게 어려운 걸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이는 세상이 너무 무섭다. 

그래도 운다는 것은 다행이다. 그래도 어려워한다는 것이 다행이다. 자주 힘들지만.


- 샘,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만 한걸까요. 이렇게 힘든데요?

- 맞아요, 힘들어요. 정말로 힘들어요. 그런데 재밌어요. 재밌어요 쟝님. 재밌구나 하는 날이 와요. 




[2. 져주면서 사는 삶과 사랑에 대해 (1권)] 


(P.209)

“그이는 구식이야.” 경희가 한숨을 쉬었다. “난 아주 좋은 남자랑 혼인했어. 다 내 잘못이지 뭐. 아이만 있어도 이렇게 불안하지 않았을 텐데, 그냥 빈둥거리는 건 싫어. 이건 남편의 잘못이 아니야. 그이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없어. 옛날 같으면 난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남편한테 쫓겨났을 걸.” 경희는 어렸을 때 들었던 아이를 못 낳는 여자들의 많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 말을 잘 따라야지. 그 이는 항상 나를 아주 잘 보살펴주니까.”


경희는 요셉이 자신을 버리지 않는 것 만으로도 고마워하며 그의 말을 잘 따른다. 훗, 모두의 예상과 빗나가게 여기에 페미니즘 탈 생각은 없다. (물론 좀 타서 요셉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책이 없어서 정확히는 모르겠는 데, 나는 두 사람이 서로 아주 잘 져주고 맞춰사는 커플 처럼 보였고 그게 사랑인가(물론 아름다운 경희의 아주 젠더화된 희생이 따르지만ㅋㅋㅋ) 싶었다. 아니, 그게 내가 본 사랑(우리 엄빠 떠오름)이다. 이미 과계몽된 나는 앞으로는 할 수 없는 찐 트루럽…* 그런데 요셉에게는 경희가 꼭 필요했어 보이는 데, 경희에게는 요셉이 꼭 필요… 했겠구나? 세상이 애도 없이 혼자인 여성에게 얼마나 가혹한 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이 난리인데) 특히 아름다운 미모의 경희에게 요셉은 정말 필요한 존재였겠다 싶다. 그래.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거지. 그런데 결국 죽을 땐 다 혼자인 데...  

경희에겐 아이를 못낳는 것과 요셉에게는 무능력한 것(거칠게 말하면 외국인 노동자…). 두 사람은 각자에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고, 부부이기에 그것을 누구보다 서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며 서로를 고맙게 여기고 건드리지 않는다. 어떤 존재가 가진 열등감과 수치감을 다 알고있으면서도 덮어주는 것. 거기에 대해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 (물론 이 약점이라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우리는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없으니까요) 


꼭 사랑하는 부부사이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같이 살아간다는 건 그런 종류의 생존 관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끝까지 훑어내리지는 않는 것. 그게, 삶의, 스킬,이다. (그리고 나의 피곤함은 여기에 있다. 끝까지 훑어 내리려고 한다는 것. 으윽… 나 자신… 정말… 싫다. 나는 훑어 내려서 파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더 잘 이해하는 것이 목적인데, 나의 이러한 지점이 사람을 미치게한다는 것을 알아서 혼자 읽고 써야 한다… 아, 고독한 똑똑한 여자의 운명이여… ) 그렇다고 내가 뭐 아예 사람이랑 같이 못사는 사람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30년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살아온 사람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게 훨씬 더 좋다. 그런데 가끔 너무 외롭다. 여튼 외로운 게 섞여사는 것 보다는 낫다. 이 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하는 한은 계속 혼자 있고 싶다.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방. 생존 스킬.


이 거친 서울에서 지방 출신들이 모여서 안 살면 월세와 생활비가 감당 안된다는 현실적 이유로 동생들과는 지지고 볶으면서 같이 살았다. 암묵적 위계와 돌봄을 관장하던(?) 부모님이 없는 생존을 위해 모인 원룸 - 투룸 이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생존 관용’이 생겨나기 전까지 정말 치명적인 부분들을 다 긁어내서 싸웠던 것 같다. ㅋㅋㅋㅋㅋ …말로 죽일 수 있다니까?… 개싸움이다…ㅋㅋㅋㅋ 그렇다. 권력 관계가 거의 비슷한 평등(?)의 자리에 이해관계만 같이하는 공동체는… 바람잘날 없이 싸우는 것이 순리. (인류의 이상! 민주주의 가능한 것인가!!!!)  


우리가 만약 싸우지 않았더라면 어느 일방의 정서적 노동으로 동거 관계가 유지되었을 것 같고… 그거랑 상관 없이 서로가 서로를 *참아주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참지 않았다. 싸웠다. 그 결과로 나만 따로 떨어져서 혼자 사 는건 아니고, 이제 우리는 서로의 바닥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때로은 싸우더라도 품위를 유지하는 자신의 모습을 대견해 한다.ㅋㅋㅋ 아무튼 그 시절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의 자매들과 느끼는 나름(;;)의 돈독함은 없었을 것 같다. 부연하자면 나와 자매들은 죽고 못살지도 다정하지도 않다. 대단히 대단히 건조하게 서로를 응원하고, 개그 배틀을 하고, 고양이를 맡기고, 아프면 안부확인하고, 좀 힘든일 있으면 같이 밥먹고(너무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절대 안찾음) 딱 그런 수준의 관계… ㅋㅋㅋ 


그러므로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다 알아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덮어주는 관계’가 … ‘사랑’인 거라면.

난 역시. 


1. 난 그런 ‘사랑’은 충분하지 않다. (서로도 싸우고 혹독한 세상과도 어느 정도 싸워야한다고 생각함)

2.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공모지

———

3. 그러나 각자의 취약함을 서로가 인정하는 과정 자체가 사랑이라면?

4. 여기서 사랑을 글로 배운 멍청함이 드러나는 데ㅋㅋㅋ 그건 삶의 스킬이다. 즉 살지 않고는 모르는 거다. 근데 모르고서 막막 사랑은 저는 잘 안된다는 것이 문제인 데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입니까?


결국 나는 *난 그런 사랑은 충분하지 않다*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어쨌든 그런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내 인생이 삶이 사랑이 어려운 것이다. 와우.. 이렇게 써놓으니 또 나만 알아보겠네. 비약이 너무 심하네. 근데 벌써 열두시가 다 되어가고 나는 오늘 책을 다 읽어야 하므로 이렇게 써놓고 사라지겠음. 나의 ‘사랑’ 타령은 한동안 계속 될 것인가?



[1~2권]


하지만 사랑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건 삶이다.

확실히 사랑은 삶을 지탱시키는 기능을 한다.

세상에는 ‘사랑’에 대해 결벽증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 

그건 궁극적으로는 ‘삶’을 파괴할 수도 있으므로 사랑이 아니게 되는 걸까? 

그러나 그런 ‘결벽증’이 없었더라면 사랑에 대한 그토록 많은 환상과 신화와 이야기들 역시 없었으리라.

여하튼 그것은 있고. 그것은 있으므로. 나는 일단 내 기준에는 사랑 아닌 사랑들에게도 관대하게 괄호를 쳐 사랑이라고 묶어두기로 한다. 

다만 내 사랑이 아닐 뿐이다. 


소설 <파친코>는 나에게 이런 걸 다시한 번 알려주었다. 



댓글(48) 먼댓글(2) 좋아요(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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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 쟝쟝님 (부제 : 노아의 선택, 그 불가항력과 결정론의 함정 또는 변명의 문제)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0-02 21:27 
    댓글을 쓰다가 길어져서 먼댓글로 씁니다. 댓글이어서 댓글처럼 씁니다^^ 제가 쟝쟝님의 글을 오독했을 가능성을 전제하고, 제 나름으로 다시 한번 써봅니다. 노아가 자신이 받은 최고 최대의 사랑이 엇나갓음을 알고, 보답할 수 없음을 알고 나서 그가 했던 선택에 대해, 쟝쟝님은 필연적이라고 썼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노아는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언제가 되었든지요. 저 역시, 쟝쟝님처럼 노아가 (일본인이) 될 수 없었기
  2. 자살은 질병사다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10-02 23:02 
    사실 지난 독후감(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969259)을 좀 너무 거칠게 썼던 것 같아서 (휘리릭~) 오늘 길고 긴 지하철에서 추가로 몇자 더 적을까 하다가… 나 자신을 더 훑기 싫어서 그만 두었었다. 그런데 단발머리님이 엄청나게 근사한 답글(https://blog.aladin.co.kr/798187174/13980776)을 써주셔서 … 쓰다 만 거라도 긁어서 올려 붙여본다. *노아는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다
 
 
mini74 2022-09-29 1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 중 한 명이 두메산골 출신이라 중학교부터 자취를 했어요. 그러면서 동생들도 하나 둘.. 넷을 거느리고 살았지요. 도시락 싸줘가며 ~ 그러고보면 그 집 동생들이 큰누나에게 절절한거 같어요 ~ 전 아키코가 하는 말들이 얄미웠어요 ㅎㅎ 다 가진 자의 여유 혹은 덜 사랑하는 자의 무신경함같이 느껴져서요. 저도 리뷰를 올려야 하는데. ~~ 잘 읽었어요 쟝쟝님 넘 재미있습니다 ㅎㅎ

공쟝쟝 2022-09-29 12:41   좋아요 1 | URL
저는 아키코와 하나도 이해가 되긴하는 데… 굉장히 곁다리(?)의 관계성으로 읽었고 ㅋㅋㅋ 제겐 선자-노아가 굉장히 와닿았어요. 이 소설을 선자의 숭고한 사랑으로만 읽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저는 그 사랑에 물음표를 던지기로 했사옵니다!!!
큰누나 ㅋㅋㅋ 후 ㅋㅋㅋ 할말 많네요 ㅋㅋㅋㅋ 그 집 동생들은 큰누나를 아내에겐 기대하지 않길 바랍니다 ㅋㅋㅋㅋ

다락방 2022-09-29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굿 보이 라는 쟝님의 감상에 대해서라면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독서를 하고 감상을 발화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저는 쟝님이 ‘아니다’ 라고 하신 바로 그 지점으로 읽었거든요. 그 죽음은 되고자 하는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한계 그 거리감, 즉 자아 에서 온 거라고요. 쟝님이 ‘그래서가 아니다’ 라고 지적한 부분을 저는 ‘그래서이다’ 라고 본거죠. 되고 싶은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누구나 죽음을 선택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노아에겐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던 거죠. 삶의 축이요. 제가 파친코의 2권에 별 다섯을 준 것은 바로 그 자아를 보여준데에 있어요. 물론 제가 이렇게 읽은건 제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공쟝쟝 2022-09-29 13:20   좋아요 1 | URL
‘그래서 이다‘와 ‘그래서 아니다‘ 가 이해가 안가요.
어쨌든 어떤 사람(노아 같은 사람)은 그 자아의 불일치가 죽는 것이 더 나을 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런 자아를 담은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다락방님이 느낀다는 거죠?
저는 ‘이삭‘도 자살을 했다고 봤어요.
일단 현시점의 저에게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좀 더 정밀하게 하는 작업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삶의 축*이라면.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민해볼텐데요, 다락방님에겐 단호한 어떤 태도가 있어요. 저는 그게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삶의 결과라고 느껴져요. 제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는 인정뒤에 묻어나는 자긍심은 눈감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ㅋㅋ

공쟝쟝 2022-09-29 13:37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이해했어요!!! 제가 그 앞에 일본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라고 썼군요.
맞아요, 그는 될 수 없기 때문에 죽은 거죠. *자아*요. 아. 오케이 콜.

저는 이 글에서 그런 종류의 자아(다락방님과는 좀 다른 의미겠지만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집중해서 쓴 건 맞습니다. 저는 제가 (가부장제에 오염된)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내가 되고 싶은 인간이 되지 못했을 때 정말 많이 힘들었거든요. 이젠 다른 종류의 삶을 다시 시작하고 있고... 덧붙여서, 자살이 불행하다고 볼 필요가 없다고 본다면... 할말넘많이라 스탑.
음. 다시 돌아가서 다락방님이 칸트인건 제가 압니다.ㅋㅋㅋ 스피노자에 두리번 거리는 칸트..

다락방 2022-09-29 13:47   좋아요 3 | URL
이 댓글 쓰고 나서 얼마전 읽은 책 <자유죽음> 떠올렸어요.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미 비포 유>도 같이요. 그리고 좀 더 오래전에 읽은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까지. 파친코, 미 비포 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두 ‘되고 싶은 나‘ 혹은 ‘살고 싶었던 삶‘이 있었는데 ‘그렇게 되(하)지 못했던 나‘ 가 있거든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약간 결이 다르긴 하지만 제가 일정 부분 ‘그렇게 보이고 싶어서 그렇게 살려고 했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었다‘를 처음 느낀 소설이 그 소설이었어요. 이 소설들을 놓고 봤을때 ‘장 아메리‘가 말한 자유죽음은 실행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것이로구나. 그러니까 장 아메리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 늘 생각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건 제가 페이퍼로 길게 풀어야 할 것 같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지금 쓰기 귀찮음 ㅋㅋ)

공쟝쟝 2022-09-29 13:5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저 다락방님이 일케 말씀하시니까 이해 되는 건 ㅋㅋㅋ 제가 다락방덕후라서 ㅋㅋㅋㅋ 무슨글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무슨 물음표인지 대략 알겠습니다 ㅋㅋㅋㅋ 나중에 다 엮어서 길고 긴 이야기 써주세요 ㅋㅋㅋ

웽스북스 2022-09-29 14:55   좋아요 1 | URL
저 여기서 두 분 댓글 읽는 거 넘 재밌고 즐거워요. 물론 공쟝쟝님 글도 엄청 재밌게 읽었고...

저는 다락방님처럼 쟝님이 ‘아니다‘라고 하신 바로 그 지점으로 읽혔기에 노아를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공쟝쟝님의 글을 읽으니 노아가 이해가 되었어요. 참고로 전 ENTP로 다락방님과 공쟝쟝님을 섞어놓았다...! 이제 다락방님 글 기다리면 됩니까?

다락방 2022-09-29 15:00   좋아요 1 | URL
저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9-29 15:02   좋아요 0 | URL
사유가 무르익으실 때까지 더 기다리겠습니다 ㅋㅋㅋ

다락방 2022-09-29 15:03   좋아요 2 | URL
아니, 파친코를 팔아버려서 쓸 수가 없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9-29 13: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궁금해~ 이따 자세히 읽으러 다시 올게요!!

공쟝쟝 2022-09-29 13:38   좋아요 0 | URL
난 밥먹어여 ㅋㅋㅋㅋ 댓글달다 심각해짐ㅋㅋ

시에나 2022-09-29 1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쟝쟝님의 사고 흐름과 제가 그동안 생각해온 게 너무나 유사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었다니!!라면서 저 지금 열광중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샅샅이 훑지 않으면 못견디는 인간인데요. 그게 권력과 결합할 때 더 샅샅이 훑고 싶어져서 그 인간이나 나나 바닥까지 탈탈 털어내는 지경까지 가야 직성이 풀리는 거에요. 그러나 동시에 관계가 유지되고 서로 같이 살려면 분명히 눈 감아주고, 으이그, 원수 같으니. 쯔쯔. 하면서도 적당히 흐릿하게 보는 요령도 필요하고 그 지점에서 사실 대체 불가능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새어나오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권력 관계가 있는 인간끼리 (남자와 여자) 그런 걸 하면 그게 ‘공모‘가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도저히 저란 인간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보부아르가 평등한 인간끼리만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사랑이란 ˝두 자유의 상호 인증’이고, 각자의 연인들이 누구의 초월도 포기하지 않고 누구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세계 속에서 함께 가치와 목적을 찾아내는 것˝, (910쪽) ˝또한 여자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고유한 목표를 향해 자기를 투사하고 남자라는 매개자 없이도 집단을 향해 초월할 때에만 평등한 사랑이 가능˝ 하다고 했지요.

사랑을 하기 위해서라도 서로의 권력 불균형을 어떤식으로든 맞추기 위해서 발악을 해온 거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찝찝해서 못 견디는 결벽증걸린 인간 하나 여기 추가하고 갑니다.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9-29 13:39   좋아요 0 | URL
이런.... 좋은 댓글은 비밀글로 하지 말아주세요 ㅋㅋㅋ 매실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남관계 권력관계다 조차도 이해 못하는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 한국에서요 ㅋㅋㅋ

시에나 2022-09-29 13:44   좋아요 1 | URL
으하하 바꿨습니다. ㅎㅎㅎ

다락방 2022-09-29 13:52   좋아요 0 | URL
매실님도 INTJ .. 이십니까?

공쟝쟝 2022-09-29 13:57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 매실님은 entp 입니다 ㅋㅋㅋ

시에나 2022-09-29 14:25   좋아요 0 | URL
저는 INTP입니다.ㅋㅋㅋㅋ

공쟝쟝 2022-09-29 14:41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깝다 ㅋㅋㅋㅋ 매실님에게서 제 동생 (entp)의 향기가 났는데 ㅋㅋㅋ 엔팁은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ㅋㅋ 인팁도 그런 걸로!!!!

다락방 2022-09-29 14:42   좋아요 0 | URL
전 뭘 알거나 짐작한게 아니라 공쟝쟝 님과 사고 흐름이 너무나 유사하다 하셔서 아 그럼 공쟝쟝님하고 같으신가? 한것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음요 ㅋㅋㅋㅋㅋ

시에나 2022-09-29 16:54   좋아요 2 | URL
저에게는 E나 J도 상당부분 있긴 한 거 같아요. ㅎㅎㅎ 참 INTP는 싸움 자체를 귀찮아한대요. 저도 어지간하면 싸움 잘 안 거는데요. 귀찮아서.. 그런데 한번 꽂히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다 물어 뜯어놓는...ㅎㅎㅎㅎ

건수하 2022-09-30 18:25   좋아요 1 | URL
사랑에는 관심없지만 권력불균형은 못견디는 사람 여기도 있습니다. 그래서라도 계속 일을 하려고 해요. 인생 어떻게 될 지도 모르고…

독서괭 2022-09-29 16: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쟝쟝님 글 잘 읽었어요.
쟝쟝님은 파고들어서 탈탈 털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니까 ‘좋은 게 좋은 거지‘하며 대충 덮고 넘어가는 게 안 되는 사람인거죠? 그게 이 사회를 살아가는 일을 더 힘들 게 하는 부분인 것 맞겠지만,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관계를 못 견디고 도망가는 사람(특히 배우자감?)은 뭐 어쩔 수 없는 거고.. 비난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라는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을테니까요.
경희와 요셉의 관계에서 ˝찐 트루 럽˝인가..? 하시는 부분 보고 ㅎㅎ 웃었는데, 요셉 너무 싫다는 점 덮어두고 쟝쟝님 글을 읽으니 이해가 되네요. 결혼도 그렇지만 모든 동거생활에서는 눈감아주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문득 든 생각인데, 사랑이 상대를 바꾸려 달려들지 않고 그 사람이 자라온 환경과 거기서 형성된 특질을 단점까지 포함해서 받아들이는 거라고 한다면, 가부장적으로 자라온 남편의 (페미니즘적으로) 모지란 특질을 어느 정도 눈감아 주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눈뜨고 나아가는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남편의 사랑의 태도여야겠죠. 그러니까, 상대의 단점을 눈감아주는 것+상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까지가 사랑이어야 하고, 눈감기만 하고 끝나면 그것은 말씀하신 ‘공모‘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아요.
전 <밝은 밤> 읽으니 파친코가 좀 떠오르더라고요! 여러대에 걸친 여성중심 서사라 그런가. 둘다 좋았지만, 저는 밝은 밤 쪽이 좀더 좋았어요^^

공쟝쟝 2022-09-29 16:37   좋아요 3 | URL
네, 괭님의 댓글이 저의 어떤 지점을 굉장히 순하게 만들어 주는 군요. 맞습니다 맞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서로 토론하고 협상하는 것까지가 사랑인 데, 그걸 안하면서 (경제적) 공모만 하고 그걸 참아주면서 사랑이라고 말하는 건, 시간을 내면 글씨를 읽을 수 있는 데다 대부분 대학 교육을 마친 배울만큼 배운 현대인들의 합리화죠.ㅋㅋ

저는 여기서 두고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어요. ‘젠더화된 이해력’인데…
묻고 따지고 끝까지 털어내는 여성은 사랑할줄 모르는 ‘피곤한 여자’가 되고(그저 똑똑할 뿐인데?) 거기에 동조하는 것 만으로도 남자는 ‘지극한 사랑을 가진 괜찮은 남자’(그저 소통하는 건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인간의 도리임에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결혼은 남자에게 이득이고 결혼을 하려는 여자들이 있는 한 인류의 재생산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소통하지 않은 부모들의 공모의 결과로 아이들은 태어나서 양육될 것이고… 그것의 가장 큰 성공사례(조국 집안 ㅋㅋㅋ 여남 집안일 바깥일 분업화의 완벽한 성공)를 눈꼴시어서라도 참아주지 않고 싶어하는 것이 어떤 심급(!)으로 작용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 된 것입니다ㅋㅋㅋ 아 나 천재인가?

제 생각에 이미 여남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멍청한 짓을 멈추려면… 서로 소통을 하지 않고 싶은 사람들은 부부가 되지 않으면 됩니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되어요. 그럼 불행한 아이들이 안만들어 질거고 벌써 너무 많은 80억인 인구에게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가 젠더분업화와 세계화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의 이민자들이 재생산을 막 열심히 하면서 잘사는 나라에 들어온단 말입니다? 마치 파친코 처럼요? ㅋㅋㅋㅋㅋ (요즘 거기까지 갔음 생각이… 이제 우리는 인종, 계급, 여성 을 읽읍시다) 투비컨티뉴!

시에나 2022-09-29 16:52   좋아요 3 | URL
가부장적으로 자라온 남편의 모지란 부분을 어느 정도 수용해주는 여자들이 90%라면 페미니즘에 눈 떠서 같이 바뀌자고 외치는 여자를 수용해주는 남자는 10%도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ㅠㅠ (물론 이것도 이 정도면 ‘괜찮다‘(‘이괜남‘이 괜히 있는게 아니죠.ㅋㅋㅋㅋ)고 수용해주면 오케이입니다만 공쟝쟝님과 저 같은 부류는 그 정도로는 택도 없는 거잖아요?ㅎㅎㅎㅎ)

여자들은 자기들의 요구를 주장하닥 관계가 파괴되느니 그냥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고 저는 봅니다. 평화를 사랑으로 묘하게 덮어버리는 것이지요.(이게 저의 페미니즘 공부의 주된 주제거든요. 왜 멈출까??? 사실 전 정말 알고 싶어요) 치열하게 소통하면서도 서로를 갉아먹지 않고 서로 같이 변화해가는 관계를 저도 정말 추구하고 싶은데, 대부분 남자들은 못 버팁니다. 자아가 계란껍질 같기 때문에 (에이드리언 리치 언니의 표현)....여자가 돌봄 감정 능력으로 둥가둥가 해주지 않으면 ... 소통 하려다가 애정 관계 자체가 박살나는 경우가 태반이지요.ㅠㅠㅠ

공쟝쟝 2022-09-29 17:14   좋아요 3 | URL
매실님 그렇습니다. 저는 택도 없습니다. 그래서 엥간한 사랑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ㅋㅋㅋ 몰랐을 때는 됐는 데 알면 안됨 ㅋㅋㅋ
저는 저를 주장하다가 관계가 파괴되는 걸 너무 괴로워했는 데, 이제는 그냥 파괴되기로 했습니다. 붕괴. 마침내! 그런데 그렇게 살기 시작하자 아무도 사랑할 수 없어졌습니다. 그 전에 일단 아무도 나 안사랑해주는 게 먼저였고요 ㅋㅋㅋ 그래서 뭐 이성애는 아니구나 합니다 ㅋㅋㅋㅋ

진짜 남자들 개 모순인게요 제 주변엔 페미니즘 공부하는 남자애들도 있었는데요… ㅋㅋ 그러니까 그런 여자를 수용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10%의 남자애들도 결국 사랑은 연애는 90%의 여자들에게서 안도를 합니다. 결혼도 안했는데 굳이 왜 싸워요? ㅋㅋㅋ 계급투쟁에 지친 이 남자들은 계란껍질 같은 자아(리치언니… 최고다)를 어떻게든 보호받아야하고, 별다른 노력 없이도 쉽게 보호받을 수 있는 여자들에게서 안심하는거죠. 그러므로 기득권 남성들이 변할리는 없고… 여자들이 젠더화된 공감, 이해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과 자아에 집중하지 않는 한… 오래오래 계속될겁니다. 이 제도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9-29 20:01   좋아요 4 | URL
사랑에 대해서, 마지막까지 파고 들어가는 사랑 혹은 밑바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눈감아주는 사랑에 대해서는 각자 생각이 다를테고, 또 각자의 사랑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만.


˝가부장적으로 자라온 남편의 (페미니즘적으로) 모지란 특질을 어느 정도 눈감아 주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라는 독서괭님의 댓글에

˝여자들은 자기들의 요구를 주장하닥 관계가 파괴되느니 그냥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고 저는 봅니다. 평화를 사랑으로 묘하게 덮어버리는 것이지요.˝라고 매실님이 댓글을 달아버리시면.....


독서괭님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평화를 사랑으로 묘하게 덮고 사는 사람인가요? 페미니즘적 사고가 확고하지 않은 남편과 살고 있는 저같은 사람은 어쩌고요? 요구를 주장하다 지쳐 관계가 파괴될까 두려워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사람의 감정은 .... 그 시간과 경험은 사랑이 아닌건가요? 아니라고 하시는 건가요? 제가 찬찬히 세 번을 읽어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서 댓글 답니다.

알라딘에서 페미니즘을 몇 년 동안 읽어오면서 ‘김치년‘부터 시작해 반페미니즘적인 댓글, 공격적인 댓글 많이 보고 읽어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결혼해 남자랑 살고 남자아이를 키우면서도 페미니즘을 읽고, 읽고 싶어하는 저같은 사람은....
그냥 놓고 가는 건가요? 우리 자리는 없나요?

공쟝쟝 2022-09-29 20:19   좋아요 2 | URL
단발님 저는 그냥 놓지 않고 가는 것이 페미니즘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솔직히 놓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즘을 읽는 여성들이 어디까지 도전해야하는 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 나누는 장이 한국에 있었나 싶습니다. 극단까지 생각을 밀어붙이는 건 제 성향이지만 삶에서 그런 삶을 살지는 않고요, 다만
단발님 같은 분들을 놓고 가는 게 아니라 단발님 같은 분들이 주류예요! 주류인데 그녀들의 이야기가 없어요. 많이 읽고 써주세요. 저는 여성운동이 소수자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그래요. 아… 어쩌나… 단발님의 자리는 있습니다!!! 언어는 권력입니다. 권력을 스스로 놓지 마세요!! 음, 만나면 좀더 이야기해요~!🥲
확실한 건 저는 페미니즘을 읽는 기혼 유자녀 여성들이 정말로 많아지고 글을 많이 써야하는 것이 정말로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아닌 사람들 보다 훨씬요 ㅋㅋ

공쟝쟝 2022-09-29 20:26   좋아요 1 | URL
마지막으로 그래서 *사랑* 사랑이 저의 주제가 되네요…. 페미니즘은 결국 사랑으로….

시에나 2022-09-29 21:05   좋아요 2 | URL
이 글에 논쟁은 하기 싫지만, 저는 독서괭님이 눈감아주는 것도 사랑일 수 있지만 ˝그러나!!˝ 라고 강조하면서 쓰면서 남자도 아내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에 동의했고, 그냥 눈감기만 하면 ‘공모‘라고(!!) 하신 부분 때문에 그렇게 쓴 것이었어요. 이게 수평적으로 이루어지기가 너무나 어려우니까요.

그렇게 눈감는 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공쟝쟝님의 글에서 이미 고민이 담겨 있고 저도 그 부분에 저의 생각을 보완한 것이구요. 저는 이게 사랑인지 아닌지 대답할 수 없어요. 다만 이걸 사랑이라고 보는 경우라면, 왜 그런 것일까를 저는 진심으로 너무나 이해하고 싶습니다. 비꼬는게 아니라요. 그래서 저도 사랑이 너무나 중요한 문제에요. 왜냐면 저는 그걸 못하기 때문이고, 사실 그래서 저는 공쟝쟝님이 쓰셨듯이 ...지독하게 외로워졌기 때문이지요. 단발머리님이 주류 맞으세요. (기득권이라는 의미가 아니라...사실 그게 어찌보면 ‘상식적일 수‘ 있다는 면에서....라고 쓰지만 여전히 좀 조심스럽네요. ) .... 대화 하나 안 되는 남자와 사는데 관계가 파괴될 각오를 하고 밀어부쳤고 그렇다고 딱히 애정에 성과도 없으며 이혼도 안 하고 사는 저는 .....음..^^ 뭐 불행배틀 하자는건 아니고 단발머리님이 저에게 공감 못하시듯이 저는 대부분 기혼여성에게도 공감 못 받는 거 맞아요.^^ 하지만 저는 이런 저를 부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저도 페미니즘을 공부합니다. 각자 자기 위치와 고민의 자리에서 더 치열하게 벼려나가보아요.

공쟝쟝 2022-09-29 20:51   좋아요 1 | URL
저 되게 딴 소리인데…. 그.. 지독한 외로움요 ㅋㅋㅋ 저도 있고 매실님도 있고 독서괭님도 있고 단발머리님도 있다고 생각해요 ㅋㅋㅋ 지독한 외로움요 ㅋㅋㅋㅋ 결코 외로움에 투항했다면 이분들 페미니즘 책 안읽었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렌트가 그걸 좀 아는 것 같아요… 공동의 세계를 짓기 위한 혹독한 외로움과 사랑으로 부터의 분리와 단독자 되기… 아렌트를 읽읍시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다름을 벼르는 것… 오드리로드를 읽을 때가 왓구나… (일 때려치울까..)

독서괭 2022-09-29 21:10   좋아요 2 | URL
어 이쯤에서 저도 한마디 해야할 것 같은데 애들 재워야 해서.. 잠들지 않으면 달아볼게요?;;

독서괭 2022-09-29 22:30   좋아요 2 | URL
제가 깊이 고민해보지 못한 문제에 대해 말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어쨌든 제 생각을 얘기해보면요,
일단 제가 공모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고 쓴 것은 공모라는 단어 사용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었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이해해보려는 노력이었고요. 자칫 잘못하면 어느 정도 눈감아주며 살고 있는 대부분의 기혼 유자녀 여성들을 공모자로 비난한다는 오해의 염려가 있어(공모라는 게 부정적이니까요) 저는 쓰지 않을 단어입니다.
그리고 두분은 사랑에 대해 고민하시는데 저는 부부관계를 사랑으로 동일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치열하게 서로를 파고드는 것이 사랑이냐 눈감아주는 것이 사랑이냐는 어떤 사랑을 원하는가 하는 정말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인 것 같고, 부부관계는 설령 사랑으로 맺어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하는 동력은 사랑 외에 다른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연애할 때의 사랑과 비교해서 말이죠.. 그러니까 사랑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과 제 댓글이 핀트가 안 맞았을 수도 있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요.
기혼 유자녀 페미니스트로서 제가 중점을 두는 것은 남편을 붙잡고 설득해서 페미니즘을 이해시키는 것보다는 내 딸과 아들을 어떻게 성평등하게 키울 것인가 입니다. 저희 남편은 다행히 그 정도는 열려있는 사람이라, 그부분에서 투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남편이 저를 만나기 전 삼십년 넘게 쌓아온 사고를 치열하게 논쟁한다고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요(스며들듯 영향받기를 기대하긴 하지만^^), 페미니즘을 향한 태도가 한사람의 전부가 아니므로, 그 부분에서 좀 불만족스런 부분이 있더라도 다른 많은 장점들로 만족하며 눈감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페미니스트가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고요.
매실님의 “파괴되느니 멈추고 평화를 사랑으로 묘하게 덮는다”는 말씀이 옳은 지적일 수 있지만, 비겁한 태도라고 비난하는 듯 들리기도 하고, 그래서 단발님이 저대신 반박해주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실님이 다시 다신 댓글 보니 그런 뜻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만.
긴 댓글을 북플로 쓰려니 ㅠㅠ 앞뒤가 안 맞아도 이해해주세요..

건수하 2022-09-30 21:03   좋아요 3 | URL
음 어제 이런 대화가 지나갔군요... 저는 이걸 좀 전에 봤는데. 굳이 댓글달지 않는게 나을까? 했지만.. 그래도 한 마디 보태봅니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한다면 이렇게 오해가 되지 않을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사랑‘에는 관심이 없어서 무엇이 사랑이다 아니다는 얘기할 수가 없을 것 같고..
유자녀 기혼여성으로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은) 미혼여성 시누이에게 ‘너가 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느냐 너는 가부장제 안에 있으면서 (혜택을 누리면서 라는 뜻이겠지요)‘ 라는 이야기를 듣고 엄청 좌절했던 사람입니다. 아주 단적으로 말할 때 ‘공모‘ 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사실 저는 어떨 때는 되게 정색하면서 단적으로 말하기도 하는 사람인데... (남편하고 싸울 때는 이렇게 말 잘합니다) 이상하게 여성에게는 마음이 약해지긴 하더군요.

전 그냥. 좀 비겁할지 모르지만 페미니즘에도 사랑에도 인간관계에도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주된 이유는 한 개인이 여성, 남성이라고 구분지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딱 선으로 나눌 수 없는 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펙트럼이란 단어를 쓰는 걸 좋아해요.


공쟝쟝 2022-09-30 22:11   좋아요 3 | URL
제가 글에서 건너뛰고 비약적으로 ‘공모’라는 단어를 사용했어요. 그리고 댓글을 달면서 경제적 공모와 관계적 공모를 겹쳐서 잘못사용한 것 같아요. 이건 제 게으른 글쓰기? ㅋㅋㅋ와 비약적 뇌구조 ㅋㅋㅋ 때문에 생긴 것이긴 하지만 분명히 제 글에서 꾸준히 있어왔던 어떤 긴장(?)과도 연결되어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본문에서는 전 2번 공모라는 단어는 가부장제 공모… 라는 것보다는 좀 더 개인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단어로 쓰긴 했어요. (모든 관계가 일종의 공모죠 ㅋㅋㅋ 저의 동생들과 저의 관계도?)
그리고 댓글로는 젠더분업화를 통해 성공을 이룬 가족을 비판하려다 보니 이게 묘하게 섞여버렸다는 감이오고요^^ㅋㅋㅋ
다만 오해를 부르는 글쓰기를 통해 서재 이웃분들의 생각을 잘 알게 된 것 같아서 너무 다행예요!!!!
*사랑* 이라고 하니까 어렵네요. 이번엔 쉽게 쓸게요~ 무엇을 아끼고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제가 사랑합니다… 여러분…* 저의 부족하고 거친 관점은 계속 논의하면서 수정하고 더 깊이 이해하겠습니다 ^^

2022-09-29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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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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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9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9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홍정우 2022-09-30 22: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더 이해하기 위해서 『파친코』 들춰봐요. 껍질 하나 깨고 나왔는지 보고 느낄 거리가 차고 넘치는 요즘이네요. 그 사실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공쟝쟝님 글 역시 그렇습니다.

공쟝쟝 2022-09-30 21:56   좋아요 2 | URL
아… 스타의 탄생인가…

바람돌이 2022-10-02 2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9월 29일부터 오늘까지 서재에 제대로 못들어왔더니 읽어야 하는 글이 주루룩......... 단발머니님 최근 글 들어갔더니 이 글 읽고 오래서 들어오니 또 단발머리님 글 읽으래.....ㅠ.ㅠ 아니 왜 이러세요? 이거 다 읽으려면 지금 자야 하는 시간에 힘들거든요. ㅠ.ㅠ

사랑이 어려운건 사람의 숫자만큼 좋은 사랑의 방법이 다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A와 B사이의 사랑의 방식, A와 C사이의 사랑의 방식 다 다른거 같아요. 부모의 사랑도 어떤 자식에게는 감사하고 고맙지만, 다른 자식에게는 부담이 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나 그럴 수 있잖아요. 남녀의 사랑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오늘 또 사랑에 대해 하나 배우고 저는 단발머리님 글 읽으러 갑니다. ^^ 굿밤되세요.

공쟝쟝 2022-10-04 11:30   좋아요 2 | URL
다른 모양의 다른 사랑 방식~ 그것은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것 처럼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제가 참 뒤늦게 알게 되었네요. 하지만 알아서 다행인게 어디이겠으며... 머리로만이라도 알아는 놓자...ㅋㅋ (글로 배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