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존재는 알라딘 이웃 레삭매냐님의 서재를 통해서 알게 됐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작가 이름조차 생소한 시그리드 누네즈. 시그리드 누네즈를 읽는다. 어제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나오면서 뒷면을 보니 신형철의 추천사가 있다. 아, 신형철이 추천했구나.
추천사를 읽고 나니 아… 그렇지, 추천사는 이렇게 써야지. 절로 감탄이 나온다. 첫 문장이 이렇다. ‘타인을 평가할 때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아, 본회퍼라니요. 너무 멀리 가신 거 아닌가요.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 (Quel est ton tourment?)’에 대한 소설적 실천. 음, 여기는 괜찮고요.
하지만 나를 사로잡는 문장은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 바로 여기. ‘나(신형철)는 근래 드문 집중력을 발휘해 이 소설을 두 번 연달아 읽었고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이 작가가 쓴 수전 손택 회상기까지 내처 읽었다.’ 두 번 읽을 만하다는 거야? 이 작가가 수전 손택 회상기를 썼다고? 이미 대출한 책에 한 번 더 반하게 만드는 추천사.
첫 장면은 잘난 척하는 남성 작가를 까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찌 아니 기쁘랴.
사이버테러리즘, 바이오테러리즘, 불가피하게 또다시 닥쳐올 팬데믹. 그에 대해 역시나 불가피하게, 우리는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다고 그가 말했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치료법이 없는 치명적 감염병. 전 세계적인 극우 정권의 발흥, 선전선동과 속임수가 정치 전술과 정부 정책의 기반이 되고, 그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상황. 전 지구적 지하디즘을 제압하지 못하는 무능. 생명과 자유 - 문명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은 무엇이든 - 에 대한 위협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에 맞설 수단은 턱없이 부족하고……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