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의 소설 : 성가신 사랑, 버려진 사랑, 잃어버린 사랑
두 달전 쯤이던가, 생파를 위해 친구들을 만났는데, 친구 한 명이 손에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들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는 집 근처가 아닌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서관에만 이 책이 소장되어 있어 생파를 위해 서울로 올라오기 전, 부러 일찍 출발해 도서관에 들러 책을 대출해 왔다고 했다. 나는, 이 시리즈가 너무 좋아 한글로 한 번 읽고, 영어로 한 번 더 읽었다 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하얗게 지샜던 아름다운 밤이 떠올라 참 좋았다.
올해 나온 ‘나쁜 사랑 3부작’은 ‘나폴리 4부작’과는 다른 색깔, 다른 느낌이다. 나는 나폴리 시리즈가 더 좋기는 한데, 이 시리즈도 나름 열폭 포인트도 있고 괜찮다 싶다. 좋아하는 작가라면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다. 인생 소설을 네 권이나 안겨줬으면, 그 다음 작품이 그 정도 아니라고 실망하고 그러는 건 이 동네 예의가 아니다. 열병에 걸린 듯 들뜨게 하는 페란테 마법은 항상 환영이다. 실망이란 없다.
그 때 내 나이 스물셋이었고 남편과 나는 둘 다 대학에 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잔니는 해냈지만 나는 해내지 못했다. 여자는 수천 가지 일을 해낸다. 힘겹게 일하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공부를 하고, 꿈을 꾸고,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그러다 지쳐 쓰러진다. 그러는 동안 가슴은 커지고 질은 부풀어 오른다. 몸 안에 둥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생명체 때문에 온몸이 욱신거린다. 그 생명체는 나의 것이고 나의 인생이지만 끊임없이 내 몸에서 뛰쳐나가려 한다. 내 뱃속에서 살지만 정작 내게는 관심이 없다. 나는 그 묵직하고 유쾌한 생명체를 격렬하게 사랑하지만 때로는 그 생명체가 혈관 속에 주입된 벌레의 독처럼 혐오스럽기도 하다. (『잃어버린 사랑』, 59쪽)
2. 올해의 외국어 : 프랑스어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올해의 외국어는 프랑스어다. 3년을 배웠어도 그렇게 대충일 수 없을 독일어의 구텐 탁, 비 게트 에스 이넨? 당케, 굿. 운트 이넨? 당케, 아우트 굿 등이 이렇게나 또렷이 남아있는 걸 보면 역시 무슨 공부든지 일찍 시작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프랑스어 공부하는 시간, 듣는 시간, 읽는 시간이 한결같이 즐거웠다. 즐겁고 행복한 핑크빛이었다. 호텔 뷔페 부럽지 않은 호사였고, 명품백 버금가는 사치였다. 내년의 외국어는 돌고 돌아 다시 돌아 영어일 테지만, 2019년의 외국어가 프랑스어였다는 것 자체는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2019년의 외국어는 프랑스어.
3. 올해의 다시 읽을 책 : 화성 연대기
읽고 나서 계속 생각나는 책, 그런 작품이 있기는 하다. 단편 중에는 『혁명하는 여자들』의 <늑대여자>, 『윌리암 트레버』의 <페기 미한의 죽음>이 있는데, 화성 연대기의 그 작품 <2005년 9월, 화성인>도 그런 작품이다. 지구인의 요청으로 자신의 외양을 계속해서 변형해가는 화성인의 모습은 우리 모든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요청으로 스스로를 바꾸어가는 삶, 변화를 요청하는 외침과 고함 속에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삶.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읽고 싶은 소설이다.
대체 이 아이는 누구이고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처럼 사랑에 굶주린 이 아이는 누구일까? 고독을 참지 못해 외계인 캠프로 들어와 우리 기억 속에 있는 목소리와 얼굴로 변장을 하고 아내와 나 사이에 불쑥 나타나,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비로소 행복해진 이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떤 아이일까? 어느 산에서, 어느 동굴에서 왔을까? 지구에서 로켓이 왔을 때 이 세계에 남아 있던,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작은 종족에서 온 것일까? (277쪽)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결심하게 된건 몰리님의 페이퍼 덕분이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많이 공부하지 않은 소설가가 쓸 수 있는 심플한 영어에 대한 몰리님의 설명이 있었는데, 그게 참 인상깊었다. 나는 한글로 읽었기에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지만. 도서관 책으로 읽었는데, 책이 정말 너무 낡아서 이번에만 읽어준다의 심정으로 읽었다. 어떤 식으로든 책을 다시 구해 볼 생각이다.
4. 올해의 페미니즘 : 제2의 성
올해의 페미니즘 책이라면 단연 『제2의 성』이다. 제일 오랫동안 읽었던 책이기도 하지만, 제일 재미있었던 책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열정적으로 페미니즘에 빠져들고 공부하는 게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유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비슷해 보이는 주제에 대해 어떻게 계속해서 관심을 갖을 수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자기 이야기라서 그렇다. 자신의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이루어졌던 억압이, 그 모든 거짓말들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페미니즘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시야가 확 열리는 경험이 이루어진다. 열광할 수 밖에 없다. 자동적으로 각성이 이루어진다.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전환될 때 최소 4번의 반복이 필요하다는 뇌과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보부아르의 논증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고 싶다면 2.5번을 더 읽어야 할 테다. 마침 정리할 부분도 눈에 띈다. 모성본능(672쪽), 당연히 젊은 쪽이 이긴다(685쪽), 소피아 톨스토이(686쪽), 현명한 어머니란?(687쪽), 아이의 행복(689쪽), 여자는 가사로는 결코 자기를 구제할 수 없다(691쪽) 등등. 올해의 선택이 자꾸 ‘내년에도 다시 한 번’으로 바뀌는 듯 하지만, 아무튼 내년에는 제2의 성을 2.5독 하는 것이 목표다. 완벽하게 완벽한 책, 제2의 성.
5. 올해의 책 : 분노와 애정
인덱스를 해두고 중요 부분을 메모하다가 포기해버렸다. 도서관 책으로 읽을 책이 아니어서. 이 책에 대해서라면 페이퍼를 10개쯤 쓸 수 있을 것 같다. 올해의 책은 『분노와 애정』이다.
6. 올해의 남주 : 길버트 블라이스
2017년 캐나다 시즌제 드라마 <빨간 머리 앤/Anne with an E>의 길버트 블라이스가 올해의 남주다. 긴 말은 필요 없고, 사진만 필요하다.
7. 올해의 운동 : 플랭크
올해의 운동으로 정했지만, 아직 1초도 시도해보지 못 했다. 할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난 항상 두렵다. 하지만 시도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건 플랭크 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다락방님이 말해줬기 때문이다.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산 위에서는 산 아래보다 시간이 빨리 흐른다. 고로 산에 올라가지 않는 것 말고는 시간을 천천히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플랭크를 하면 2분이 20분처럼 흘러간다고 한다. 이 좋은 방법을 어떻게 모른 척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올해의 운동은 플랭크. 내년의 운동도 플랭크. 시작은 내년부터. 하하. 하하하.
플랭크를 하지 않은 탓에 올 한해도 이렇게나 빨리 지나갔다. 빠르고 복잡한 세상사,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이내 마음, 자라는 아이만큼 나는 늙어버리고, 또 이렇게 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알라딘이 있어서 많이 웃었다. 알라딘이 좋은 건 알라딘서재 때문이고, 알라딘서재가 좋은 건 알라딘 이웃 덕분이다. 좋은 이웃들을 만나 많이 웃고 많이 행복했다. 오랫동안, 가능하면 아주 오래오래 이렇게 책을 이야기하며, 커피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화내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웃고 같이 울면서 그렇게 살고 싶다. 미세먼지가 가득해 마스크를 써야하지만, 그럼에도 알라딘 마을 이웃들에게는 특별한 행운과 행복이 함께하는 성탄이 되시길.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