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는 홀로코스트의 특수성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한 민족의 완벽한 말살을 위한 계획이 수립되고 체계적으로 시행되었던 범죄의 현장을 고발한다.
나치즘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대재앙이었습니다. 히틀러의 집권이 몇 년 만에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가고 유대인과 집시 민족을 거의 말살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 끔찍한 일들이 형이상학적이고 역사적인 기획을 통해 전대미문의 과정을 거쳐 시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치즘의 희생자는 유럽의 문명과 인간주의 문화, 즉 온 유럽입니다. (102쪽)
시몬 베유Simone Veil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살아 돌아온 이후, 프랑스 법조계에서 일하다가 보건부 장관으로 취임해 임신중단 합법화를 이뤄냈고, 유럽의회 최초의 선출직 의장을 맡아 유럽 통합의 길을 닦은 프랑스 정치인이다. 『나, 시몬 베유』는 베유의 삶을, 베유 자신의 목소리로 연대기적으로 풀어냈다.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은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위한 투쟁, 유럽을 위한 투쟁,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의 대단원 아래 각 홀로코스트 기념식, 각종 시상식, 상원 위원회, 유네스코 국제회의 등 각국 행사에서 발표되었던 시몬 베유의 연설을 담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어두운 기억, 유럽 통합을 위한 노력, 임신중단법을 추진했을 때의 어려움, 미래 사회의 전망들을 읽고 있노라면, 과거를 너머 현재를 새로 발견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가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그녀의 에너지와 열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나는 시몬 베유의 기억을 승리의 기억으로 읽는다. 수많은 역경과 좌절,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시몬 베유는 그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잔인한 폭력의 증인이 되었고,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죄수의 삶을 살았던 자신을 돌아보며 프랑스의 재소자 환경에 관심을 갖고 일했다. 여성의 상원 진출을 포함한 여성의 의회진출을 독려하고 여성 입후보를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삶의 재정비를 요구했다. 도시 환경의 개선과 부모 근무시간의 조정, 가족을 위한 직간접적인 재정지원을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420쪽)고 주장했다.
베유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라는 사실이 자신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과 신념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을 때, 주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자리, 의미 있는 자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자리, 정치의 자리로 나아갔다.
나는 그녀의 기록을 승리의 기록으로 읽는다. 나는 그녀의 투쟁이 의미 있었을 뿐 아니라, 노력에 합당한 성과와 더불어 많은 여성들의 삶을 해방시켰다는 데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여성 해방의 길, 여성을 포함한 온 인류 해방의 길은 요원해 보일지 몰라도,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새로운 삶을 위해 뚜벅뚜벅 전진하는 시몬 베유 같은 이가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밤부터 그녀가 추천한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고 있다. 온 가족 필독도서로 선정해 두었고, 온 가족에게 표지를 선보였다.
새로 나온 페미니즘 신간을 정리해 둔다. 제일 관심이 가는 책은 쉴라 제프리스의 『젠더는 해롭다』이다. 나는 그녀의 책 『래디컬 페미니즘』과 『코르셋 : 아름다움과 여성혐오』를 읽고 그녀의 열혈독자가 되었다. 지난 혜화역 시위에서도 ‘생물학적 여성’만이 시위 대열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는 기사 내용을 읽었는데, 트랜스젠더 이데올로기와 관습을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파헤친다니 책에 대한 관심이 더욱 샘솟는다.
제일 먼저 읽고 싶은 책은 역시나 ‘정희진’ 선생님 공저인 『경계 없는 페미니즘』이다. 부제는 ‘제주 예멘 난민과 페미니즘의 응답’. 저자수를 세어보니 총 38명. 다양한 여러 색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페미니즘 응답. 기대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발머리 공식 인정, 9월에 추천하는 페미니즘 도서, 3/4분기 가장 핫한 책, 하반기 가장 주목해야 할 책, 3관왕에 빛나는 책은 『분노와 애정』이다. ‘여성 작가 16인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술가이면서 엄마인, 작가이며 엄마인 이들의 양가감정에 대한 글은 한 편, 한 편 마음을 파헤친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세 아이를 낳고 스무 권의 책을 씀으로써 책 아니면 아기라는 규칙을 누가 봐도 명백하게 거역했다. 스무 명의 아이와 세 권의 책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속한 인종과 계급, 내가 가진 돈과 건강 덕분에, 특히 남편의 지원 때문에 나는 아슬아슬한 두 줄타기를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남편은 내 아내가 아니다. 하지만 남편은 결혼에 상호 협력이라는 전제를 두었다. 그런 바탕 위에서는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261쪽)
어슐러 르 귄이다. <지금 이모랑 낚시하러 가도 돼?>.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짜장면의 시간이, 중2 일기장의 시간이, 검찰개혁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사정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