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lin Wall : 13 August 1961 - 9 November 1989 (reissued) (Paperback)
Frederick Taylor / Bloomsbury Paperbacks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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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헌책방에서 발견해서 읽은 책입니다.

이전에 언급한 적 있지만 1989년의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1990년의 독일통일은 이후 일어난 소련의 붕괴를 가져온 역사적 변곡점의 하나입니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Cold War)체제가 붕괴되고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일극체제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의 신자유주의의 전성기는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The Great Recession)을 만나기 전까지 30여년간 이어집니다.

에 책은 영국의 독일사학자 프레드릭 테일러 (Frederick Taylor)가 2007년 출간한 책으로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시에 대한 근현대사를 비롯해 제2차세계대전의 종전 결과 베를린이 동서로 분할되는 과정, 그리고 동독 당국이 1961년의 베를린 위기(Berlin Crisis)를 계기로 베를린 장벽이 건설되는 과정, 장벽 건설을 전후해 동독과 서독이 어떻게 상호교류를 이어갔는지, 장벽 건설이후 어떤 동독 젊은이들이 장벽을 건너려다 희생되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1989년의 동유럽 자유화와 갑자기 다가온 베를린 장벽의 붕괴현장을 마치 눈앞에서 보듯 묘사합니다.

개인적인 언급을 하자면 베를린 장벽 붕괴당시 겨우 대학초년생이었던 저는 당시 미디어에서 전해지는 놀라운 기사에 충격을 먹었긴 했지만 당시의 상황이 역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1990년 쯤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당시 소련과 한소수교를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한중수교도 이루어져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1990년대 내내 중국과 소련이 기회의 땅이라고 언급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 책에는 단 한줄만 나오는데,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있었고, 중국 당국은 이 시위를 유혈진압합니다. 이후 역사는 이 사건을 ‘천인문 사태’로 명명합니다.

당시 소련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추진하던 중국은 체제에 위협적이라고 판단한 시위를 두고 볼 수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영국입장에서 독일은 두번의 세계대전에서 적으로 싸운 나라이고, 제2차세계대전이후 베를린분할에 참가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1990년 서독이 동독을 사실상 흡수통일해서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하지 ‘거대독일’의 악몽을 잊지 못하던 당시 영국 수상 마라렛 대처 (Margaret Thatcher)는 독일 통일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처는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찌독일의 영국폭격을 몸소 겪었던 인물 중 한명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만 총 18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668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읽기 만만한 양은 아닙니다. 저도 여러 책과 같이 읽다보니 완독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2024년 현재 신냉전 (New Cold War)가 도래했다고 주장하는 식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대체로 자유주의적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영미권 식자들이 최근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고 고사시키려는 미국의 대중적대정책으로 일어난 대결양상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이 러시아에 실존적 위협을 가져다 준 이유때문에 발발했다는 견해가 있고, 하마스가 촉발시킨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사실상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을 하는 수준으로 학살하고 있어 이스라엘 국가존립의 정당성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년 미국 유수대학에서 일어났던 대학총장들의 연달은 사임의 배후에 월가에서 돈을 번 유태계 사업가들이 사임압력을 가했다고 알려져 파문이 일었습니다. 월가를 장악한 유태계 자본가들이 이스라엘의 건국(1945)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현재 미국 바이든 정부가 살상무기를 이스라엘에 지원하는 것도 이들 유태계 거물들의 영향이라고 볼 수 밖에는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신냉전(New Cold War)’가 도래했다는 주장이 아직 논란이 많은 주장입니다. 지난 세기 일어났던 자본주의 공산주의의 대결 양상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신냉전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려고 합니다. 별도의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동서독의 분단과 베를린 분할은 제2차세계대전 승전국이 유럽에서 패전국 독일에 행한 조치였고, 아시아에서는 패전국 일본이 아닌 조선이 38도선을 기준으로 분할되었습니다. 베를린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된 것과 다르게 일본의 도쿄는 미국이 단독점령했습니다.

소련이 사할린과 홋카이도 점령을 추진했었지만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전세계를 하나의 체스판으로 생각한다면 미국이 유럽에서 독일을 분할점령한 방식을 일본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은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에 미소간 한반도 분할점령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1945년 미국 소련 일본 간에 어떤 이면적 합의가 있었는가? 왜 악의축( Axis of Devil)이라고 불렸던 두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전후 다른 방식으로 처리되었는가? 이 질문이 전후 한국과 일본의 경제사회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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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제목에 이끌려 읽은 책입니다.

도시에 대해 관심이 원래 있었지만 여태 읽어온 모든 책에서 도시에 사는 주체는 늘 인간(Human)이었지, 인간이 아닌 생물(Non-Human)인 경우는 없었습니다.

도시에 사는 주체의 관점(Perspective)을 인간과 비인간으로 확장해서 도시생활을 살핀다는 점, 그리고 생태학(ecology)과 야생동물보존 (Conservation)의 입장에서 왜 미국의 도시에 야생동물들이 모여들어 살게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생태학이 자연상태라고 간주하는 도시가 아닌 지역(Rural Area) 라는 공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인간이 건설한 인공적인(Artificial)환경에 야생동물이 살게 된 이유를 설명한 겁니다.

서울만에도 도심하천인 청개천이나 한강변에서 수많은 물고기들과 물새를 목격하고 살지만 거의 늘 보는 것이니 당연한 듯 여겼지만, 야생동물이 도시로 모여드는 이유는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이유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한마디로 먹고 살기가 좋다는 이유이죠.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이유를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만 적용했지 야생동물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저지는 인간사회에 도시가 발달한 이유가 먹을거리를 쉽게 찿을 수 있고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강이나 호수 주변에 주러 발달했다고 했고, 도시가 경제활동에 따라 먹을거리를 생산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의 먹을거리가 모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의 경우 도심(Downtown)과 교외(Suburbs)의 경계가 불분명(blurred)한 경우, 또 도시발달로 도심에 공원과 자연보호구역이 늘어나 야생동물의 이동이 용이해진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경제지리(Economic Geography)적 입지론을 입장에서 도시의 발달을 생각하고 그 도시발달의 혜택이 단지 인간 뿐만 아니라 도시 주위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에게도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혜택을 알고 도시에 몰려들어 살기 시작한 야생동물들은 그들이 원래살던 자연환경과 다른 인공환경인 도시에 살기위해 환경에 적응(adaptation)을 시작하고 행동과 형태의 변이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즉 먹을거리가 풍부해 대체로 더 오래 살고,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주로 밤에 활동(Nocturnal)을 하는 등 도시에서 인간과 같이 공존하기 위해 생리적으로나 행동적으로 변화를 보입니다.

책 후반부에 이런 도시에 사는 동물들이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진화(evolution)가 일어나는 경우가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대체로 다윈(Charles Darwin)이 주장한 진화론은 생물들의 진화가 오랜시간동안 천천히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왔는데, 일부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들은 도시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 진화속도도 빨라졌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물리적 상태에 대해 소개하려 합니다.

본문은 총 14장과 마지막 Coda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마다 미국의 도시에 살고 있는 하나의 야생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릅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단지 동물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어떻게 도시가 발달되었는지, 도심의 공원 (Parks)과 요세미티와 같은 국립공원(National Parks)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야생동물 보존에 대해 미국은 어떤 입법과정을 거쳤는지, 도시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최근의 COVID 19 pandemic과 기후변화가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여러방면의 이야기들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저자는 특히 인간과 야생동물들이 어떻게 도시에서 공존(coexistence)할 수 있는 방안을 찿을까를 고민하고 있고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책 본문이 210쪽 정도니 작은 책이지만 저자가 집필에 5년이나 걸렸다고 하는 이유가 이런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기 때문입니다. 2022년 캘리포니아대학 출판부에서 발간한 책인데 같은 해 한국어 번역본이 발간되었습니다.

어쩌다 숲, 피터 S. 알레고나 지음, 김지원 번역 ( 이케이북,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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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가 시작된 이후 한세대(30년)가까이 지나다 보니 1990년대를 평가하는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멀지않은 과거로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이 책은 이미 한국에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90년대: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온워드,2023)

1990년대를 청년시절 경험한 X세대(Generation X)로서 제가 즐겨들었던 음악과 영화에 대한 내용을 보는 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특히 한때 영화를 즐겨봤던 사람으로서 퀸텐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과 ’펄프픽션(Pulp Fiction,1994)’에 대한 평가를 보게 되어서 입니다.

특히 ‘펄프 픽션’은 폭략과 함께 나타나는 B급정서를 나타내는 영화로 이미 한물간 스타로 알았던 존 트라볼타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입니다. 당시 신인이었던 우마 터만과의 댄싱장면이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이전과는 다른 소위 매니악한 정서가 나타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개봉이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입니다.

두번째 영화는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The Matrix,1999)’ 입니다. 이 영화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로 SF의 표피를 가진 블록버스터이지만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로서 노골적으로 홍콩 쿵푸영화를 오마주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Reality)가 무엇인지 메시지를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 꿈일수도 있다는 , 어쩌면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모르고 지나쳤지만 1990년대는 완전한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가던 시기였고, 책에서 언급하듯 X세대만이 디지털이 없던 아날로그 세상과 가상현실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본 세대로서 아날로그로만 살아온 베이비부머(Baby Boomer)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상을 살아온 밀레니얼 (Millennial)을 연결해줄 수 있다는 분석에 공감합니다.

1990년대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의 서막을 알리던 시대로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만들어진 시대이며, 미국 국내적으로 콜롬바인 고교 총격사건과 오클라오마 연방빌딩 폭파사건이 일어난 시기이며, 미식축구 선수 출신 방송인 O J Simpson 재판으로 미국 사회가 술렁이던 때였습니다.

또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 (Machael Jordan)이 시카고 불스와 함께 전성기를 이끈 시기였고, 농구화 Air Jordan 이 출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그를 능가할만한 농구선수가 없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는 클린턴 미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과 미 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된 클레런스 토마스의 성추문 관련 청문회도 미국 정치를 뒤흔든 시기였습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impeachment)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사실상의 종료가 2001년 9/11테러로 종결되었다고 보았습니다.

21세기의 첫해인 2000년 당시까지도 미국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였고, 인터넷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방송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아직 모든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11이후 적 아니면 동지로 그외의 선택은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게 되었다는 의견입니다.

책 내용은 저처럼 그 시대를 직접 목격한 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지만 경험을 못한 이들에게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사회 문화 정치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커버해서 평소 대중음악이나 영화에 관심을 가진 분은 읽기 편할 듯 합니다.

이 책의 후반에 나오는 2000년 대선은 미국 정치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접전이었고 플로리다주의 개표에 대해 결국 미 대법원의 판결로 아들 부시가 알 고어를 이기고 당선되었습니다.

알 고어 전부통령이 부시의 승리를 인정해서 일단락 되었지만 사실상 두 사람 중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었다는 평가도 상당합니다. 제가 아는 한 대통령선거가 법원판결로 결정된 사례는 이 선거 말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오래된 대통령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이후 아들 부시대통령은 미국 군수업체를 대표하는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미명하에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했고, 10년넘게 지속된 전쟁은 이 지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게 되어 사실상 실패한 전쟁수행으로 남게 됩니다.


아버지 부시부터 클린턴 그리고 아들 부시 대통령 시기가 신자유주의의 극한 전성기로 규제완화(deregulation)을 통해 금융기업들이 실물경제와 관계없이 부를 독점하는 현상이 장기지속되어온 저금리현상과 함께 지속됩니다.

이 모든 거품은 2007년 금융위기로 터지게 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이론적 정책적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2024년 현재는 그 직접적 영향을 1990년대에서 받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컴퓨팅,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인터넷의 상용화는 이시기에 시작되었고, 여기서 촉발된 플랫폼 경제체제가 경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질서까지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멀지 않은 과거지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이 전후 미국의 달러 중심 세계체제를 재편했고 소련과 냉전시대에 들어갔다면, 1990년 소련의 붕괴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가 역사를 바꾼 중요 변곡점이었습니다. 이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목격하면서, 그리고 그 부상을 억제하려는 예전같지 않은 미국을 보면서 또 한번의 역사의 변곡점을 마주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은 애써 중국이 근대이전 대륙의 헤게모니를 틀어쥐었던 강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여러 정보가 넘쳐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드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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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부님은 사진가
장긍선 옮김 / 눈빛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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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사두었던 사진집 한권을 보았습니다.

한국천주교 평양교구에서 2017년 펴낸 기록사진집으로 1920-1940년대 평안도와 함경도의 풍경과 사람들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천주교 및 기독교 전래의 역사는 조선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갈만큼 꽤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학자로 알려진 조선후기 남인의 천재 중 한사람인 정약용도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천주교에 접했고, 그의 가족 중 순교한 이들도 여럿 있습니다.

평안도 지역은 지리적 위치로 볼때 조선의 사신이 청국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었고, 다른 지역과 달리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온 지역입니다.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자산가들이 많았던 이 지역은 천주교/기독교 등 외래종교를 받아들이는데도 열심이었고, 교육열도 높았습니다.

이런 탓에 조선의 기득권 층인 기호지방의 서인 노론층과 불화가 잦던 곳입니다. 기호지방 양반들은 같은 양반인데도 평안도 출신을 홀대했고, 평안도 출신은 문과입직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완고하기 그지없는 조선성리학과 이를 신주단지 모시듯한 기호지방 노론의 편협함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남다른 배경을 가진 평안도에 미국의 천주교(카톨릭) 선교회인 메리놀회가 일제초기부터 평안도 여러 대도시, 이를테면 평양이나 진남포, 위주 그리고 신의주 등에 천주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시작합니다.

이글은 1940년대 한국을 철수하기 전까지 평안도를 중심으로 선교를 했고, 이 책의 사진들은 그 당시의 기록입니다.

공산주의가 없던 시절의 평안도를 보여주고 있고, 거의 저의 조부모님 대에 해당되는 분들의 기록입니다.

지금은 이해자체가 되지 않지만 실제 1920-40년대에 평양에 천주교회가 있어 미사를 드리고 첫영성체를 받고 소풍을 가고, 농사를 짓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거의 모두 흰색 한복을 입고 있는 모습과 앳된 소녀들이 너무나 당연한 듯 동생으로 보이는 아기를 들쳐 업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금단의 강처럼 느껴지는 압록강으로 수녀님들이 나룻배를 타고 오는 모습이라든지, 평양에 미국 선교회가 세운 신학교가 있다든지 하는 모습은 지금 사진으로 보기전에는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 책에 나온 의주 풍경은 저에게 매우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이 의주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진 중 일부는 아버지께서 한국전쟁 이전 북한에 사실 때 찍힌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 그렇습니다.

저도 오래 묵혀두었다 이 사진집을 보았는데 이 사진집을 서점에서 과연 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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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음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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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대 사회학과 양승훈 교수의 신간입니다.

전통적이지만 마치 플랫폼과 디지털경제에 밀려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잘못 알려진 제조업 (製造業,manufacturing)과 그 제조업의 역사가 거의 100여년이 된 산업도시 울산(蔚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한 연구서입니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손꼽히는 제조업 강국으롯 GDP에서 한국과 비슷하게 제조업 비중을 보이는 나라는 독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중심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어서인지, 금융이나 IT기업들만큼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지나친 경제의 금융화(Financialization)에 따른 결과이고 코로나 19이후 미국이 중국을 배제하는 공급망을 재편하며 해외에 있는 공장들을 특히 전략적인 반도체 공장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을 시작한 것만 봐도 경제의 근간이 제조업인건 분명합니다.

책이 나온 때가 2024년 3월이니 출간된지 2달밖에 안된 책으로 본문만 411쪽입니다.

저자가 분석한 울산의 현재의 문제점은 10장에 잘 정리되어 있고 다음과 같습니다.

1. 적대적 노사관계
2.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원청 정규직 -하청 비정규직)
3. 산업가부장제 (남성만 생산직에 고용하는 관행- 남성 가장이 가정을 부양하는 경제체제)

위의 사항과 함께 울산을 대표하는 3대 산업(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에 속한 대기업 생산직 위주로 체제가 공고히 이루어져 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울산에 일제때 개발되다 해방과 함께 멈춰진 정유공장을 완성해서 시작된 산업도시 울산은 이후 현대의 대대적인 투자로 조선소와 자동차공장이 들어서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의 원형을 갖추었습니다.

조선소와 자동차공장에는 초기에 돈을 벌기 위해 울산으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짧은 기술훈련을 마치고 정규직 생산직으로 고용되었고,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들도 생산기술과 공정기술 적용을 위해 현장의 생산직 기술자들과 협업을 이루어 나름의 생산관리 노하우와 기술숙련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가 대략 1970-1990년대까지 입니다. 해외 경쟁사의 완제품을 분해해 원리를 파악해 기술을 익히는 reverse engineering 을 통해 기술을 익혔는데 이 당시만 해도 한국은 후발개도국으로 선진국을 추격(follower)하는 실정이었습니다.

하지만 1998년 IMF국제금융위기 이후 현대자동차의 경우 처음 해고를 경험하면서 사측을 불신하기 시작하여 그 이후로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이후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는것이 노조활동의 중심이 됩니다.

1987년 이전 배운것 없고 가진 것 없던 공장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부당한 처우를 받다 이후 1987년 6월 대항쟁이후 임금이 급격히 오르고 처우가 개선되기 시작합니다.

해고가 트라우마로 남은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은 이후 사측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전과 같이 회사와 협업을 통한 생산성 향상노력울 하지 않게되고 기술 숙련에 무관심하게 됩니다. 기술자가 생산현장에서 경험으로 축적하는 노하우인 숙련도에 무관심하게 되면 노동자 본인에게도 좋지 않지만 갑작스런 해고의 트라우마가 더 컸던 겁니다.

이렇게 적대적 노사관계는 1998년 대대적인 해고를 통해 형성되고 회사는 이후 더이상 정규직 생산직을 신규로 뽑지 않고 부족한 인력은 사내하청 비정규직과 모듈화를 통한 생산공정을 통해 원가를 하청기업에 전가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게 됩니다.

이렇게 노동시장이 원청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직으로 나뉘면서 회사는 더이상 전투적인 생산직 노조와 갈등하지 않게되고 생산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이 자신들 대신 해고되는 상황을 용인하게 되면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고착됩니다.

이전에 경험이 풍부한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도에 기대어 향상된 공정기술과 품질은 이후 자동화공정으로 대체되게 됩니다. 서로 상생을 논의하기보다 경영진은 사실상 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최소한으로 들어주면서 공장을 자동화해 노동자를 장기적으로 배제하기로 한 것입니다.

적대적 노사관계는 사실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특히 보수층의 문제입니다. 특히 보수정치인들 중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대화상대로 상대하지 않는 ‘오만’을 보여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난 자신은 후한 대접을 받아야 하고 못배운 노동자들은 자신보다 대접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애서 허우적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업가부장제는 울산에서 발견되는 고용관행으로 지난 50여년 동안 울산의 대공장 생산직은 남성이고 정규직으로 고용되어와서 사실상 여성들에게는 고용 자체가 봉쇄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처음 울산에 들어온 청년들이 못배운 체 공장에 들어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남성 가당 혼자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체제였다면 그 자녀들은 성별과 관련없이 모두 대학에 진학했고 울산은 한 때 대학진학율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문제는 이 자녀들이 울산에 정착하려 할 때 마땅한 직업을 찿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기술연구소가 수도권으로 이동해서 기술연구와 생산이 이미 분리된 상태로 공대를 나온 엔지니어들이 울산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거기에 고소득 직종이 대부분 정규직 생산직이라 문과전공이나 여성 대학졸업생은 아예 진입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문과출신이 울산에 남으려면 공무원이나 교사가 되거나 여성의 경우는 비서직 같은 사무보조직이나 어린이집 교사 같은 직종으로 가거나 아니면 전문직인 의사, 변호사가 되는 경우 뿐입니다.

기회가 없다고 판단되면 울산을 떠납니다.

즉 현재 울산의 노동시장구조는 1987년 이후 생긴 남성 정규직 생산직 위주로 견고히 구축되어 있고 회사에서 더이상 정규 생산직을 채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 시스템의 수혜자들이 모두 은퇴하고 나면 무너지게 되어있는 체제입니다. 아버지가 보던 해택을 그 자녀들은 전혀 볼 수가 없고 따라서 울산을 떠날 요인이 될 뿐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실을 오직 한세대만 누리고 그 이후 세대가 전혀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울산을 디스토피아로 보는 이유이고, 이 사실을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

MZ세대가 연애도 결혼도 생각하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고 개인주의적인 건 울산이 보여주는 디스토피아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그리고 서울과 수도권에 거의 모든 자원이 집중된 현실에다 대학졸업생들이 원하는 직업도 회사도 너무나 제한적입니다. 대기업 이외의 대부분 중소기업들이 영세하고 수익이 좋지 않은 구조적 요인으로 처우가 대기업같지 않으니 말이죠.

따라서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주거비와 생활비가 높은 현상황을 그대로 둔채,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돈을 버는 젊은이들에게 결혼하면 출산을 지원한다는 캠페인하는데 돈을 쓰는 건 정부가 무책임하게 세금을 낭비하는 겁니다.

더구나 결혼과 출산를 아예 하지 않는데 다자녀부터만 혜택을 주는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언급을 소개할까 합니다.

저자는 제조업 생산직이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편안히 산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산업이 제조업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적당히 사는 보통사람들이 잘 사는 나라가 선진국이지 공부 많이 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만 잘사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조업이 산업의 근간이라는 건 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고 화려해보이는 금융이나 플랫폼도 공장과 물류센터 그리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지루해 보이는 제조업이 지난 50년동안 운영되어 온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되는 게 중요합니다. 따라서 공장노동자들을 배제한채 생산성을 논의하거나 보수층에서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건 미래를 위해 부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적당히 일해 중산층이 되는 구조를 만들지 않고 방치한체 자동화 로봇으로만 이루어진 공장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건 무논리이자 위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AI와 자동화가 워낙 핫하니 마치 모든 것들이 사람없이 될 것처럼 과장되어 포장되어 있는데 일부 무인화가 이루어지더라도 전면적 무인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과문하지만 AI란 것이 결국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기계를 학습시키는 건데 컴퓨터과학자들이 알고리즘 논리는 잘알아도 산업이나 생산관리 그외 여러 고려사항을 모두 안다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컴퓨터에 정보를 넣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모두 결과와 그에 기반한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합니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한국에는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엔지니어나 과학자가 매우 드물다고 보기 때문에 AI의 영향을 과장하는데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자동차 혼자 움직이는 자율주행 자동차(Autonomous Vehicle)가 초기 호들갑과 달리 비즈니스모델로서 사실상 실패된 체로 구현이 연기된 상황을 보면 무인공장 역시 가능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공장노동자를 배제한 이런 논의는 이들 노동자들이 공장의 소비자의 일부라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자본주의에서 소비자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를 배제하는 이런 논의는 기본적으로 넌센스라고 봅니다. 번지르르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모르겠습니다.

효율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창고에 쌓아놓는 것이 목적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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