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요즘 한국문학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무관심했다는 자각을 먼저 느끼게 한 책이라는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두분 시인과 평론가님 이름은 이 책을 읽기 전엔 알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출생이라는데 한번 놀랐고 고전적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서 또 놀랐습니다.
2022년 ‘전통의’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여성문학가들인 이들은 인천, 의정부, 안산, 이태원, 광주, 서대문, 정동길 등을 같이 다니고 장소에 얽힌 현대사의 비극의 흔적을 더듬어봅니다.
시인 백가경님과 문학평론가 황유지님이 각자의 경험과 관점으로 장소에 어린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냅니다.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흔적과 남은 이들의 슬픔과 남겨진 자리를 보고, 이태원에서는 할로윈에 놀러나왔다가 길에서 압사당한 영혼들과 비극을 곱씹습니다.
서대문에서는 ‘역사문화관’이 되어버린 서대문형무소에서 3.1만세운동으로 수감되어 고초를 당하다 고문으로 죽은 유관순열사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옥바라지 골목에 ‘재개발’로 지어진 고층아파트의 현대적인 풍경을 봅니다.
그러면서 말미에 각자의 고향과 어린시절과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자기고백하듯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두사람이 처음 만난 계기가 된 경향일보사 사옥과 사옥이 위치한 정동길과 거기에 있는 오래된 건물들, 즉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과거 대법원 건물, 더멀리는 일제하 평리원 건물)과 1970년대부터 자리를 지킨 세실극장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문학에 과문한 제가 그래도 이 에세이집이 마음에 든 이유는 첫째, 한국현대사에서 주목받지 못한 이들과 ‘압축적 근대화’에 희생되고 ‘독재’의 폭력에 희생된 이들을 찿아본 것입니다. 사료를 근거로 서술하는 딱딱한 역사가 볼수 없는 빈곳을 찿아 보여준 것입니다.
두번째는 책에 젊은 직장여성으로서 살아온 삶의 편링이 묻어있는 것입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글을 쓰고자하는 삶의 단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두 작가가 번갈아 가면 같은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고 봅니다.
셋째, 이 책의 의정부편을 통해 미군부대 곁에 엄연히 존재했었던 ‘양공주’ 혹은 ‘미군위안부’문제를 거론한 점입니다. 보수정치권이 추앙하는 ‘박정희 대통령’께서 주한미군 부대에 사실상 ‘위안소’를 설치한 건 역사적 사실이지만 아직 해결이 되지 못한체 꼬여있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때문에 공론화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미 한세대이상 지나 이들 미군부대 위안소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건물이 헐려없어지는 와중에도 목소리를 낸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서 딸뻘되는 어린여성들의 술시중을 받던 중 총탄에 맞았다는 사실에서 보건데, 그가 미군부대의 병사들을 위해 위안부를 공급했다는 사실은 별로 위화감이 들지 않습니다. 더구나 오랜기간 군인으로 살아온 인물이니까요.
책에서 제가 자주가는 서대문역 주변 영천시장, 안산과 인왕산 주변 그리고 경향일보사가 있는 정동길과 서울시립미술관이 나와 반가왔습니다.
광주에 대한 글을 보니 여렸을 때 학교선배와 함께 갔었던 광주와 조선대 교정 생각이 났습니다. 서울의 소식을 전하러 팜플렛을 가방에 집어넣고 버스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가봤던 광주의 서늘한 분위기가 상기되었습니다.
한세대 전인 1980년대와 1990년대가 지금 현재 한국의 기반이 되었듯이, 1980년대 또한 뿌리를 찿아 내려가면 1960년대에 가닿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는 1945년에 그 뿌리가 있고, 1945년은 그 기원이 1910년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삶이 왜 팍팍한가를 거슬러 놀러가면 결국 우리사회가 현재와 같이 조직된 이유를 알아야 하고 가장 중요한 현대사의 변곡점이 1960년대라고 생각합니다. 1960년대 시작된 개발주의 경제체제가 흔들려 발생한 것이 1997년 IMF 금융위기이고 그 이후 들어선 신자유주의적 경제독점체제가 현재까지 많은 이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많은 문학전공자들이 현대사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건 좋은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시대의 반영’이기때문에 지극히 당연히 탐구되어야 할 것이 어떻게 지난 시대에는 터부시 되었는지 의아할 따름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한번 읽은 책의 저자의 또 다른 저작에 눈길이 가는데 백가경 시인이 얼마전 시집을 출판했더군요. 기회가 되면 한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백가경, 하이퍼큐비클 ( 문학과지성사,2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