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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출간된지 20여년이 지난 책을 읽은 것을 자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책을 처음 접한 건 이책을 기반으로 영화 ‘Adaptation (2003)‘를 먼저 보고 원작이 어떤지 궁금해서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Movie Tie-in 표지의 책을 구입했었지만 서재에 처박혀 존재를 모른 체 시간이 흘렀습니다.

난초(Orchid)라는 식물자체도 미지의 세계이고( 정원이나 조경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한사람으로 말이죠), 책의 배경이 되는 미국 플로리다의 늪지Florida Swamp)도 생경하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선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존 라루쉬( John Laroche)라는 주인공이 플로리다의 늪지에 불법으로 들어가 야생난초를 불법채취해서 재판에 넘겨지고 그 이야기를 추적하는 것이 이야기의 큰 줄기입니다.

주인공을 비롯해서 난초에 미친 여러 사람들이 책에 나옵니다. 대부분 난초를 기르는 이들이지만 난초애호가 중에서도 가격과 상관없이 원하는 난초를 구하려는 이들이 보이고 과거에도 자신의 저택에 온실을 꾸미고 난초를 수집하던 귀족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이기에 집착(obsession)이라는 말이 선택되었겠죠.

하지만 여기에 플로리다에서 언제부터 난초를 재배해 왔는지, 플로리다 늪지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인디언 (Seminoles)의 이주사, 그리고 플로리다 법원이 이들 인디언의 권리와 백인 정착자들의 권리를 늪지 자연환경과 관련해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흥미로운 관점들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난초라는 관상용 식물을 중심으로 17세기 이후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야생난초를 채취해 관상용 재배를 시작했는지 주로 영국의 경우를 들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난초의 새로운 종이 발견되면 영국에 학명을 등록한다고 합니다.

이책은 본문 282쪽의 작은 책이지만 난초를 중심으로 한 식물학(Botany)적인 내용이 들어가고 앞서 언급한 야생난 수집과 재배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미국에서도 외진 곳 중 하나인 플로리다 지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어찌보면 지역색이 무척 강한 마이너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이 쉽게 읽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말미에 저자가 20여년이 지난 후 쓴 후기가 있는데 조자 역시 이 책이 좋은 평가를 받고 헐리우드에서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줄 생각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 저자 후기는 논픽션 작가가 어떻게 우연히 소재를 발견하고 몇년동안 이야기를 추적하고 책으로 펴내는지 쉽고 압축적으로 설명해주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약 책과 영화 중 고르라면 우선 영화를 먼저 보실 것을 권합니다. 메릴 스트립과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을 한 영화이고 난초의 아름다움을 화면에서 구현한 꽤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다만 내용 자체는 이 책과는 상이하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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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04 0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네 작은 도서관으로 달려가야 겠어요. 난 영화보다는 오히려 책파이니까요.ㅎㅎ
 
리멤버 홍콩 - 시간에 갇힌 도시와 사람들
전명윤 지음 / 사계절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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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민주화운동 취재기입니다.

오랫동안 관광지로 유명했던 홍콩에 대해 가이드북을 만들어왔던 저자가 2016-2019년을 뒤흔들었던 홍콩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르포를 썼습니다.

홍콩하면 딤섬과 완탕면이 생각나는 분들이라면 홍콩이 마주한 정치현실에 대해 이 책이 작은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홍콩이 지금의 홍콩이 된 것은 1842년에 일어난 아편전쟁때문이었고, 이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서 1997년까지 영국의 총독이 통치를 하던 곳이었습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유산인 것이죠.

1984년 덩샤오핑(鄧小平)이 홍콩을 영국으로부터 반환받기 위한 카드로 영국의 마거렛 대처 정부에게 주창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 즉 하나의 국가 안에 두개의 제도를 유지하자는 정치체제는 홍콩과 중국의 관계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체제로 지탱되었던 홍콩의 서구적 개인주의적 자유는중국이 통치를 시작한 이후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하고 홍콩과중국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 과정을그리고 있습니다.

베이징의 입장에서는 타이완이나 홍콩이나 모두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베이징의 관할 하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역사적으로 1949년 공산주의 중국 수립을 전후해서 공산 중국을 탈출한 사람들이 만든 사회인 타이완과 홍콩은 항상 중국 중앙정부와 마찰을 일으킬 여지가 있었습니다.

홍콩의 경우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통치권이 넘어가면서 정치적 격변을 맞게 됩니다.

이책에 대한 느낌이 개인적으로 남다른 것은 2019년 말 홍콩이공대학에서 공성전이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2020년 3월 홍콩에 직접 방문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시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아 홍콩의 MTR을 타고 어느 역을 가지 말아야 하는지 잔뜩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침 방문지역이 센트럴과 가까운 코즈웨이베이라 더 홍콩의 시위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홍콩에 있다 귀국했는데 이후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습니다.

2013년 홍콩의 침사추이를 방문하고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당시 홍콩인들이 왜 모두 거리에 쏟아져 나왔는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르포를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홍콩의 현재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홍콩의 우산혁명(2016)과 2019년의 민주화시위릏 이해하려면 좀더 시간을 거슬러 1989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있었던 민주화 시위를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도 1949년 천인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했었고, 더 시간을 거슬러 1919년 제1차세계대전의 종전을 고하며 그 이후 체제를 규정했던 베르사유조약에 대한 중국 청년들의 항의를 계기로 중국의 5.4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1919년,1949년 그리고 1989년 중국 현대사의 획을 그은 사건이 모두 천안문 광장에서 일어난 겁니다.

1989년의 천안문 민주화 시위는 중국 지도부를 경악에 빠뜨렸고 체제의 위기를 느낀 덩샤오핑을 비롯한 지도부는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나서 홍콩이 영국의 손에서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자 영국의 자유주의의 영향력 아래에서 살던 홍콩인들에 대해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로의 순응을 요구했고, 중국의 손에 홍콩이 넘어간 이후 많은 홍콩인들이 호주로 캐나다로 미국으로 영국으로 떠났고 영연방 국가로 가지 못한 이들은 타이완으로 이주했습니다.

공산 중국을 떠나 만들어졌던 홍콩 사회에서는 비록 떠나지 못해도 공산주의 권위주의 통치체제에 대한 반감이 있어왔고, 영국의 식민통치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자유롭게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이 중국 공산주의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졌는데 어느 순간 중국인으로 살 수도 없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7년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이 홍콩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기 전까지 홍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는 고백을 합니다.

중국으로 홍콩이 넘어간 후 일국양제가 끝난 이후 홍콩을 떠나려 했던 홍콩 젊은이들이 홍콩을 지켜나가기 위한 자신들의 정체성 자각에 대한 증언이 보입니다.

한국이 민주화된 나라로 홍콩인들에게 소환되는 것도 눈여겨 볼 지점이기도 합니다.

홍콩은 확실히 중국과 다릅니다. 공교롭게도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을 모두 가보았지만 상하이가 그 규모의 거대함과 화려함에 압도된다면 홍콩은 남국의 정서와 어우러진 묘한 영국풍이 인상적인 도시입니다. 단지 말이 중국 보통어와 광동어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또 상하이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지역이지만 홍콩은 그렇지 않다는 것도 큰 차이입니다.

2000년 이전에 홍콩을 다녀온 적이 없어 1990년대의 영국령 홍콩은 저에게 어렸을 때 본 왕가위 감독의 영화’중경삼림(重慶森林,1994)’의 이미지로만 기억될 뿐입니다.

온통 ‘유통기한’에 집착하던 주인공의 모습으로요.

하지만 영국령 홍콩이 이미 사라졌고, 홍콩이 중국 땅이 되면서 이전에 우리가 알던 홍콩영화의 이미지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슬퍼지기는 합니다.

얼마전 들은 이야기인데, 제도적으로 홍콩이 점점 중국의 정치체제에 흡수되어 가는 건 맞는 것 같으나 개인들 수준에서는 가령 홍콩 사람이 중국 상하이에 살고 있다면 아직도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고 합니다.

여전히 오랫동안 다른 체제 아래에서 살아온 이들의 이질감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표지를 보면 여행 에세이처럼 생겼지만 내용은 홍콩과 중국간의 정치와 정체성에 대한 글이고 불가피하게 영국과 중국의 관계가 언급됩니다.

300여쪽의 짧은 글이니 한번 정독해도 될 듯 합니다.
한 홍콩인 가족을 인터뷰하고 그일생을 같이 반추해보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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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라는 출판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김원중 교수님 번역의 ‘ 논어(2013)’도 이 출판사에서 나왔고, 태평양 군도에서 바라 본 근대를 조망한 ‘군도의 역사사회학(2017)’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책에서 이은혜 편집장이 언급했다시피 글항아리의 약 50%정도가 번역서이고 상당 수의 번역서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서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독서를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고, 책 한권 기획하기 위해 편집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하고 독서에 투자해야 하는 양이 상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꼭 내야 하는 책과 책 판매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측면이 있고, 천권 정도밖에 팔 수 없지만 500-600쪽을 넘어가는 두꺼운 책을 출간하는 건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번역을 위해 인용된 서적들을 모두 찿아보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번역된 서양 서적의 경우 교차검증도 해야하는 일이니 만만한 작업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 일은 외서기획자라는 전문가와 함께 하는 일이지만 노력에 비해 알아주는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한국에서 신간들이 너무 빨리 절판(絕版)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현재 출판계에서 신간의 수명을 5년으로 보고 있고 출판 후 팔리지 않는 책들은 더 빨리 절판된다고 하니 책들이 빨리 사라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중적 논픽션이 이러니 학술서나 연구서는 수명이 더 짧겠죠.

사실 1990년대 말에 나온 책들도 신간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역사서나 경제서도 교과서를 제외하고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부득불 헌책방에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있는 고 손정목 교수님의 일제시대 도시발달사 같은 책들은 길어봐야 40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현재 헌책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사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지만 절판이후 희귀본 취급을 받습니다.


영미권과 비교가 불가피한데, 아마존에서 보면 1960년대 출판된 책들이 아직도 신간으로(물론 복간이 된 책이지만) 출판되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두껍고 각주 잔뜩 달린 책들이 인기가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책과 연구가 없으면 어떤 대중적 논픽션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면이 큽니다.

영미권의 학자들이 쓴 책들이 100쪽 이상의 참고문헌과 색인 그리고 후주를 포함하고 본문만 최소 400쪽에서 700쪽에 이르는 경우를 봅니다. 특히 역사책의 경우 분야를 막론하고 두께가 상당합니다. 역사적 인물의 평전의 경우 2-3권 분량의 시리즈인 경우도 흔하고 1000쪽을 넘는 경우도 흔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책들이 대학출판부 뿐만 아니라 대형상업출판사에서도 나옵니다.
솔직히 장사가 될까 싶지만 꾸준히 이런 책들이 나오는 걸 보면 놀랍습니다.
요새 인공지능 이야기하고 머신러닝 이야기 하지만 이건 지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인공지능이 학습할 컨텐츠가 없다면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논픽션 전문 출판이 수익성을 떠나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최대의 영어사전을 출판하는 옥스퍼드대학이 세계최대의 영어사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전을 편찬할 수 있는 나라가 몇 나라 밖에 없는 것도 모든 것이 전자화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된 현재의 어두운 면입니다.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관심이 있을 책입니다.
독자가 독서를 지속하다 저자가 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출판에 편집장의 개인적 취향과 독서 편력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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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장으로 이루어진 일제강점기 조선의 문화/ 풍속에 관한 책입니다.

미국 오레곤 대학교(University of Oregon)의 소장된 작품들을 연구해서 서양 특히 영미권의 지식인들이 일제강점하의 조선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연구한 책입니다.

본문이 총 194쪽 밖에 되지 않으니 약간 학술적인 산문 정도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서구 유럽이 비서구, 특히 중동과 동양( 또는 아시아)를 어떻게 보는지는 특히 비교문학 ( comparative literature)분야에서 그 단초를 제시하고 인문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관점입니다.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의 문예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Said)의 명저 ‘오리엔털리즘( Orientalism, Vintage, 1978)’이 그 이론적 분석틀을 처음 제공했습니다.

한국에서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 따른 서구의 ‘시선의 정치학(the politics of gazing)’을 다룬 책은 물론 이 책이 처음은 아닙니다.

오리엔탈리즘이 기본적으로 동양을 여성적이며 정적인 대상이며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ahistorical) 주체가 아닌 대상 (objective)으로 보고 있으며,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문명국인 서양의 국가들이 비문명적인 동양을 계몽하고 깨우쳐 문명화를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서양의 백인 남성들이 저지른 폭력과 착취 그리고 식민화의 역사가 고스란히 소거된 체 겨우 300여년에 이르는 서구 유럽의 경제적 힘의 우위를 절대적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점자체가 매우 폭력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대 그리스부터 로마제국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변방에 머물렀던 서유럽이 이렇게 오만하고 폭력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이 경제발전을 위해 저질러온 식민지에 대한 착취와 노예무역의 역사를 지우고 고상하게 포장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자체의 폭력성은 공산주의가 사라졌다고 해도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골수 자본주의자들, 특히 근본주의적 시장자본주의자들이 왜 그렇게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성을 공격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폭력적인 건 두 체제에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무튼 한국어로 쓰여진 책 중에서 제 인상에 가장 많이 남은 책은 고미숙 선생이 2001년 출판하신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찿아서 (책세상,2001)’입니다.

근대적 신체의 탄생과 병리학과의 관계, 위생관념과 근대개념을 연결시키면서 문명안들인 서양인들이 근대 초기 조선인들을 어떻게 인식했든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책의 주인공인 세여인도 모두 기독교인이고, 모두 중산층이상의 집안에서 여유롭게 교육을 받았던 20세기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배경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베라 잉거슨 (Vera Ingerson)은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의료선교를 하던 미국인으로 특히 기독교의 교세가 강하기로 유명한 평안도 선천, 정주, 강계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신의 미국여인으로 조선으로 오기 전 전문적인 간호교육을 받았습니다.

평안북도는 일제상점기 이전부터 청과의 사행로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에서 한양 다음으로 큰 경제력을 지니고 있었고, 오래전부터 대외무역이 종사해 해외의 문물을 받아들이기에 거리낌이 없는 지역이었습니다.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이 지역에서 서양인들의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현재 한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의 핵심을 이루는 감히교파가 모두 평안도에서 월남을 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우 반공 세력이 나온 지역이면서도 또한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진출한 반일 세력의 근거지이기도 한 곳입니다.

조선말기 19세기 평안도에서 일어났던 홍경래의 난에 대해서는 아래의 책을 참조바랍니다.

조선의 변방과 반란, 1812년 홍경래난 (푸른역사, 2020)


다음 인물인 거트루드 워너(Gertrude Warner)는 시카고 출신의 아시아 유물 컬렉터로 기본적으로 조선보다 중국과 일본의 고미술품과 풍속에 관심이 많은 여성이었습니다.

글 서두에서 소개된 시카고 대학 교수인 프레드릭 스타(Fredrick Starr)외의 인연으로 그가 ‘조선불교’에 대한 강연 관련 조선의 불교 관련 사진과 슬라이드를 사들이기도 했던 그녀는 세번째 주인공인 영국출신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Elizabeth Keith)외의 친분으로 조선의 고미술품과 사진을 더욱 많이 수집하고 키스의 목판화를 다수 소장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엘리자베스 키스는 이책뿐만 아니라 이미 그녀의 목판화에 대한 책들이 한국에 출판되어 있어 낯설지 않은 화가입니다.

세명 중 유일하게 영국출신이고 일본에 오랫동안 살았던 일본통 독신여성입니다. 일본에서 목판화 (우키요에, Ukiyoe, 浮世絵)를 배워 자신의 사실적인 회풍에 접목시킨 화가로 유명합니다.

최근 그녀의 저서 중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올드 코리아 (책과함께,2020)’이 출간되었습니다.
이책은 그녀가 1946년 런던에서 출판한 ‘’Old Korea’를 번역한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조선에 처음 입국해서 일제의 조선인 탄압을 직접 목격해 조선인들에 대해 동정적인 시선을 가졌던 화가로 알려졌습니다.

이책은 저자가 언급했듯이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사례연구’에 해당됩니다.

대부분 지금부터 100여년 전에 활동한 영미권 여성들에 해당되는 사례이지만 서구 특히 영미권의 오리엔털리즘은 극복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전염확대와 관련하여 중국에 대한 거짓정보가 내외신 가리지 않고 난무했던 사실이나 최근 타이완을 둘러싼 중국과의 긴장관계가 커지자 영미권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국과의 전쟁을 거론하는 듯 백인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도를 넘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서구문명이 중국에 뒤쳐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내제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17세기-20세기를 제외하고 중국이 문명국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지식인들은 그래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문화혁명 시기까지만 해도 별볼일 없던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이미 일본을 추월한 상태여서 일본을 아시아 정책의 축으로 삼았던 미국에서 격렬한 반응이 더 나오는 것 같습니다. 군사적 긴장이지만 그 내면에는 오리엔탈리즘이 깔려있고 서구의 오만함(arrogance)이 깔려 있습니다.

정치와 예술은 별개의 분야가 아니고 무의식과 행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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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The People's Middle Kingdom and the U.S.A. (Hardcover, Reprint 2013)
John K. Fairbank / Harvard University Press / 196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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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존 K. 페어뱅크 (John K. Fairbank)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에 중국학(Sinology)를 확립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우스 다코다 주에서 태어난 이분은 위스콘신과 하버드 그리고 옥스포드에서 공부를 하셨습니다.
중국학은 옥스포드에서 처음 접했다고 하네요.
1936년부터 1977년까지 하버드에서 중국학을 가르쳤고 1991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반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책은 이분이 저술한 ‘중국사(China:A New History,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1992)’ 입니다.


이 책은 1967년 출판된 책으로 저자의 잡지 기고문과 대학강연 그리고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 기록 등을 모은 책입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1966년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상황을 먼저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글 중 타이완의 ‘독립’과 ‘두개의 중국’을 주장하는 2부는 2021년 현재 미국과 중국사이에 타이완을 서이에 둔 긴장관계를 생각할 때 미국 외교당국이 타이완을 지닌 50여년산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그 단초를 찿을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반도체 와이퍼 가공 기술을 보유한 타이완은 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에 매우 중요한 곳이고, 중국 봉쇄의 측면에서도 전략적 가치가 있는 지역입니다.
미국은 현재 중국의 ‘하나의 중국’정책에 결사반대하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책의 타이틀에 ‘Middle Kingdom’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중국사회가 서양의 중세때처럼 ‘후진적’이라고 본 페어뱅크 교수의 시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1966년 당시 미국이공산화된 중국을 얼마나 뒤떨어진 후진사회로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1966년에는 중국혁명 ( The Chinese Revolution)을 성공시킨 마오쩌뚱(毛澤東,1893-1976)이 아직 생존해 있을 때였고, 미국과 중국과의 수교(1979)이 이루어지기 전입니다.

미국과 중국은 적대적 관계를 이루고 있었고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공산주의를 봉쇄하면서 핵전쟁이 일어나게 하지 않는 방식을 찿는데 고심을 하던 시기입니다.

중국은 독자적 노선을 걸으며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다른 길을 추구했습니다.

페어뱅크 교수는 당시의 중국이 공산주의의 영향보다 수천년간 이어져온 유교적 전통과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관료들의 권력 독점의 전통, 화이론 (華夷論)에 입각한 중국우선주의와 광활한 영토와 자원에 기반한 중국의 내수경제 우선주의의 전통이 중국이 국제사회에 진출하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진단합니다.

중국사에 정통한 인물인 만큼 중국의 중세 근세와 혼란스러운 근대에 이루는 시기를 종횡으로 누비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합니다.

유교에 기반한 통치의 원리는 이민족이 중국을 지배했던 13세기 몽골의 원나라 시기나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어진 청나라 시기에도 변하지 않았고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주의는 그 연원이 거슬러 중국의 고대 청동기 시대에 이르기 때문에 매우 뿌리가 깊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따라서 19세기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중국에 문호개방을 요구할 때도 이 중화사상을 유지하고 서양세력들을 오랑캐로 여기고 조공을 요구했습니다.

초기에 이 요구에 순응했던 영국을 비롯한 열강들은 하지만 이후 군함을 동원하며 국제조약을 요구했고 중국은 이때 맺은 불평등 조약으로 서양열강에 종속관계를 이루게 됩니다.

비슷한 상황을 맞았던 일본은 서양열강과 초기에 맺은 불평등 조약을 평등한 관계로 개정했으나 중국은 그러지 못한 상태로 청왕조가 무너지고 군벌 시대를 거치고 일본의 침략을 받으며 대혼란의 시기를 거치게 됩니다.

마국인으로서 페리 제독(Commodore Perry)이 일본의 개항을 요구한 이후 일본이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여 서구화를 이루고 1966년 미국의 동아시아의 파트너가 된 사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반면 중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지 못한 저개발국이라는 면을 비교합니다.

한국전쟁이 휴전을 맺고 중단된지 13년 밖에 안된 시점이고 , 1964년 일본은 도쿄올림픽까지 치룬 상황이니 이런 판단이 무리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봉쇄정책(containment)을 위해 한국과 일본을 자신들의 이익 방어선으로 삼았고 , 중국식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베트남 전쟁(1960-1975)을 치루는 와중이었습니다.

한번에 두곳에서 전쟁을 할 수 없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전쟁은 막고 최대한 중국과 대화를 이끌어내야 했으나 영미식 개인주의와 법치주의에 익숙한 미국인들이 집단주의와 아시아 전통인 인간관계주의와 가족을 기본으로 사회전체가 위계에 의해 움직이는 중국의 유교적 전체주의에 익숙한 중국인들과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서로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미국이 중국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를 강조합니다.

1966년 당시 타이완의 장개석 총통(1887-1975)의 국민당 정부가 국제연합을 비롯한 여러 국제기구에서 중국을 대표해 자리하고 있었고, 중국은 이때문에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전혀 못 얻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9년 미중수교 이후 타이완은 미국과 외교가 단절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1992년 중국과 정식수교관계가 수립된 이후 명동에 있었던 타이완 대사관이 중국대사관으로 바뀌고 타이완과 외교가 단절되는 동일한 과정을 거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 자체에 대해 몇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으로 과거 육군사관학교 도서관에 있었던 책이고 그 이전에는 미군의 자산으로 등재되어 있던 책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동아시아에 주둔하는 미군들이 동아시아의 상황을 아는 것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추정합니다.

미국의 지역학이 철저하게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66년 시점에 중국을 평생 연구한 학자답게 비록 미국인의 입장이지만 그래도 중국과 동아시아의 유교적 정치체제에 대해 나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은 매우 인상적입니다만, 2021년 현재 일반적인 미국인들이 이분과 같은 태도와 솔직함을 겸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의 특징은 외부세계에 대한 무관심(ignorance)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새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결코 이들이 서구사회애서 주류이거나 대다수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도 한국이 언급은 되고 있지만 매우 단편적이고 미국의 이익방어선 정도로만 이해가 되고 있고, 오히려 공산주의 중국과 일본이 자주 비교됩니다.

미국인으로서 일본이 선진국이 된 것에 대한 자랑스러움도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미국이 페리제독의 개항이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을 미국이 군사적 방패가 되어 일본의 발전되었다는 뚜렷한 시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제국주의(imperialism)를 추구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솔직히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은 분명 서구 유럽과는 다른 그들만의 제국주의를 추구했는데 말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한반도와 일본은 패전으로 미국에 점령(Occupied)되었으며 미국은 자신들의 제도를 일본과 한국에 이식했습니다. 한국에서 미 군부는 기존의 통치조직 위에서 군림했습니다. 저자가 주장한 것처럼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과도한 ‘점령’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대륙의 러시아와 중국 공산주의 세력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의 오끼나와(沖縄)와 규슈의 사세보(佐世保)항에 군사기지를 설치했으며 한반도 38도선 아래에서는 서울 용산과 의정부, 평택항 등지에 미군 기지를 세워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미국의 제국주의적 의도가 전혀 없다고 보는 건 너무 동기를 순수하게 보는 무리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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