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도시연구자 조이담씨가 새롭게 해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구보(仇甫) 박태원 선생의 ‘소설가 구보(仇甫)씨의 1일’에 대한 책입니다.

1부는 조이담씨가 소설로 재구성한 박태원 선생의 전기로 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이라는 소설이 탄생하게 되는 전사를 기록합니다.

2부는 저자가 1920-30년대 경성에 대한 도시공간 연구와 여러 근대 문헌을 기반으로 해제한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입니다.

이 책은 이후 2009년에 다시 한번 개정된 것으로 압니다만 저는 2005년 초판으로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지만 소설 자체보다 사실 저는 이 시대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1부의 시작도 1919년으로 박태원 선생이 초등학교 입학 전 일어났던 3.1운동의 영향과 미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언급, 그리고 조선에서 일어났던 공산주의운동이 박태원 선생의 집안에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꽤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상해임시정부 관련 인사들이나 박태원 선생 주위의 일본 유학생들의 이야기도 같이 나오게 됩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약 1930년대 중반 정도를 커버하는 이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는 경성 한복판인 육조거리를 광화문통으로 변모시키면서 광화문을 동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조선 총독부 건물을 올렸으며 경성역을 새로 지었고 경성부청과 조선은행 그리고 미스코시 백화점 경성지점을 세워서 경성의 경관을 근대적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창경궁은 창경원이 되어 조선인들의 놀이공원이 되었고 장충단에도 공원을 세웠습니다.

구보 박태원은 일본 호세이 대학 (法政大學) 영문과에 다니다 신경쇠약 증세로 학업을 포기하고 귀국하고 친구 이상과 함께 매일 경성 도심을 산책합니다. 그러면서 상념에 빠지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는 주인공의 심리를 포착하여 기술해서 소설을 씁니다. 이 소설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로 읽다보면 작가 자신의 경험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서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거의 첫번째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설에는 아예 직접적으로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James Joyce) 의 율리시즈 (Ulysses, 1922) 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기까지 합니다.

당시로서는 최신의 영문 소설로서 일제의 지배가 본격화된 경성의 도심 한 귀퉁이 카페에서 일본 유학생 출신 주인공들이 먼 아일랜드 소설가의 이야기를 하는 건 웬지 현실감이 떨어지게 느껴집니다.

흔히 알려진 폐병쟁이 문인들의 초상도 쉽게 엿볼 수 있는데 박태원이 사사했던 소설가 이광수도 건축가 출신 천재 시인인 이상도 모두 결핵을 앓았습니다. 해방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한국에서 문인들의 모습은 박태원 선생이 소설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폐병에 걸려 있거나 마음이 심약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들로 각인되었던 것 같습니다.

구보씨가 돌아다니던 산책구간은 저 역시도 한때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녔던 곳으로 광화문에서 남대문으로 그리고 한국은행을 지나 소공동을 끼고 조선호텔을 지나 종로로 그리고 종로3가에서 을지로를 통과해 충무로를 거쳐 명동으로 가던 코스였는데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겹치는 코스가 많아 놀라웠습니다.

서울 사대문 안에서 역사적 흔적과 더불어 도시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동선으로 1930년대 당시 경성의 이 지역은 경성의 근대경관을 대표하는 곳으로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의 총본산이었던 공간이기도 합니다.

시간적으로도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미국의 세계지배가 최초로 공식화 되었던 시기로 20세기의 국제관계를 규정한 파리강화회의 (1919)가 제1차세계대전 (1914-1918)이후 개최됩니다. 한국의 3.1운동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알리고자 고종의 장례식을 맞아 조직되었던 저항운동이었고,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 단체와 사회주의 무장조직들이 상해와 연해주 러시아 등지에 나타나게 됩니다.
1917년 발생한 러시아 혁명은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2 세를 폐위시키고 소비에트 공산 정권을 수립했지만 러시아의 내전으로 1922년까지 이 지역은 안정화되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사회주의 혁명에 가담하고 러시아 내전에 참전한 조선인들도 상당했습니다.

이책에 나오는 사회주의 운동가 한위건도 그중 한사람으로 일본 유학후 신문 기자를 하다가 상해로 망명한 이로 이후 사회주의 혁명가가 되어 일제의 감시를 받는 인물입니다. 일본에서부터 알던 의사인 이덕요와 결혼했지만 잠깐의 신혼생활이후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이후 중국에서 만난 부부는 중국 북경에서 보건 교사로 일하던 아내가 출산 도중 사망하는 불운을 경험합니다. 잠깐의 신혼생활과 망명 그리고 출산도중 사망이라니. 정말 기막힌 삶입니다. 이후 한위건의 자식은 박태원의 집에서 자라게 되고 한위건은 혁명을 위해 가정의 행복을 포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뜻을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상황인데 납득이 쉽게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1930년대 많이 배운 일본 유학생들 중에는 조선 독립 투쟁을 위해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든 이들이 많았는데 이는 일본 당국에서도 인지했던 상황으로 제국대학 출신 조선 유학생들은 대체로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혁명가의 길을 가거나 반대로 철저하게 일본제국주의의 협력자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어릴 적 돌아가신 할머니께서 3.1운동 당시 상황을 이야기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할머니 어릴적 당시의 이야기로만 기억합니다.
아버지께서도 돌아가시기 전 평안도에서 피난 오기전 집안의 살림이 어떠했는지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시간이 지난후 역사적으로 평안도 땅이 경제적으로 잘 살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진 지역이라는 걸 안 이후에는 아버지께서 생전 언급하셨던 말씀이 조금 수긍이 갑니다.

근래에 19세기와 20세기 초를 설명하는 여러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이 시기가 지금 21세기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문물에 직접적 영향을 준 중요한 시기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된다는 점입이다.

한국의 현재는 가깝게 보면 1945년 해방이후의 정치사와 직접 연관이 있겠지만 당시 의사결정권자들의 개인사는 제2차세계대전은 물론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혁명, 그리고 제1차세계대전과도 떨어뜨려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에 영향을 준 세 명의 열강 정상들은 모두 제1차세계대전과 대공황, 러시아 혁명을 겪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보는 이유는 현재의 기원을 알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케이스를 찿을 수 있다는 장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래룰 대비하기 위해 과거를 복기하는 것만큼 유용한 대비책은 없겠지요.

이책을 보고 나서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책은 구보 박태원의 소설들입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과 ‘천변풍경’입니다.
이전에 문학과지성사판으로 보려 했으나 끝내 읽지 못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Ulysses’ 입니다. 어릴적부터 난해한 소설로 영어 선생님들마다 언급하셨던 책입니다. 요새 영문 소설을 거의 읽지 않지만 기회가 되면 보려 합니다. 영미권에서는 이 책은 수많은 독자들이 읽고 또 읽는 그리고 천천히 읽어야 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런지 눈으로 보고 싶네요. 과욕일수도 있지만 도전은 해볼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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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대유행 (COVID 19 Pandemic)과 미증유의 경제불황을 겪고 있는 시점에 다시 2008년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책을 읽는 건 쉽지 않습니다.

지난 1월이후 심화된 코로나 바이러스의 대유행이전까지 누구도 실물경제의 공급사슬(Supply Chain) 의 붕괴와 이동제한에 따른 영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상황이 터지기 전 1929년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는 2008년 미국에서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촉발된 세계경제위기( The Great Recession)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19 대유행과 동반된 경기 침체와 그로 인한 공황의 여파는 이미 여러 경제학자들이 2008년 위기의 규모를 뛰어넘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여태까지 우리가 알고 이해하던 경제, 정치체제 자체가 이미 그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2008년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도 별로 달라진 것 없이 연명하던 경제체제가 사실상의 종언을 고했다고 섣부르지만 주장할 수 있습니다.

2008년의 위기가 지난 1990년대 이후 약 30여년간 경제철학을 지배해온 근본주의적 신자유주의 ( fundamental neoliberalism)에 따른 정부개입 최소화에 따른 결과입니다.

시장의 참가자는 이성적이고 시장은 저절로 균형점에 ‘스스로’ 복귀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주류경제학자들은 현실 경제에 대한 정책처방보다 수학적 모델링에 매달렸고 대기업 CEO들을 포함한 기업인들은 정부의 규제가 풀린 틈을 타 단기적 이익을 추구해 주가를 올리는데 올인했습니다. 기업의 장기적 성장과 무관하게 단기적 이익을 추구한 이들은 일반 노동자들보다 많게는 300배 이상의 보너스를 챙겼습니다.
심지어 2008년 경제위기로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최고경영자조차 상상할 수 없는 보너스를 챙겨 이들의 도덕적해이(Moral Hazard)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신자유주의 추종자들의 맹신과는 정반대로 미국의 중앙은행과 미 재무부는 미국의 세금을 동원해 스스로 위험자산에 배팅해온 거대은행들을 구제(bail out)하였습니다.

전례가 없었던 미 정부의 개입을 중앙은행의 전통적인 통화정책(monetary policy)는 물론이고 중앙은행이 직접 은행의 부실자산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반으로 한 자산담보부 채권)을 인수하고 돈을 푸는 양적완화 (Quantitative Easing)을 실시하였습니다.

2008년 미 중앙은행과 재무부로 대표되는 정부의 대규모 시장개입( Intervention)으로 사실상 시장이 스스로 균형점에 도달하기 때문에 정부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의 믿음에 대한 신화는 이미 깨졌습니다.

기업은 이전에도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성장해왔고 지금도 그 상황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실제로 입증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여년 후 2008년을 능가하는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은 투자 은행들과 당국에서 GDP가 이번 사태로 약 3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지난 30여년을 관통해오던 세계화(Globalization)는 더이상 따라야 할 기조가 아니고 코로나 19를 확신시키는 요인으로 세계화를 다시 생각하는 것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현재 세계경제는 저금리 상태로 인해 더이상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효과가 먹혀들지 않는 상태이고 각국 정부의 재정정책을 통한 경기부양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2008년의 위기를 통해 그리고 현재의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촉발된 경제위기 상황에서 소환된 두명의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한명은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경제학자로 알려진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 이고 다른 한명은 케인즈주의자로서 경제의 불안정성(instability)를 주장한 민스키 (Hyman Minsky) 입니다.

시카고 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파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등장해 약 40여년간 주류 경제학을 지배해 왔습이다. 작은 정부를 주장하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s)은 전세계를 지배해 왔습니다.

그 이전 대공황 시기에 등장해 20세기 경제질서를 확립한 케인즈는 고전파 경제학자들과는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고전파 학자들은 기업이 상품을 생산하면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의사결정해서 상품 소비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시장가격을 수요 공급이 따라 결정되고 항상 균형점으로 수렴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케인즈는 기업이 상품을 생산해도 소비자가 구매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이게 되면 경제가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대공황이후 침체에 빠졌던 미국이 뉴딜정책을 시행하는 이론적 기반이 되었고 이후 경제위기가 생길때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즉 이론적으로도 순수하게 민간기업들만으로 경제를 운용할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소위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시장근본주의는 이데올로기로서 경제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허구적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민스키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경제학자이지만 신자유주의자들과 정반대로 경제는 늘 불안정하다(instable)고 주장했던 학자입니다.
그는 ‘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불안정한 단점이 있다 (Instability is an inherent and inescapable flaw of capitalism)’ 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매체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경제위기는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건이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블랙스완 (black swan) 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늘 함께해 왔던 화이트 스완(white swan) 이라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도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직장생활하는 동안만 해도 약 6번의 경제위기를 경험한 것 같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IMF 구제금융)
1998년 아시아 통화위기
2000년 닷컴 버블
2001년 9/11 사태
2007-2009년 세계경제위기
2020년 코로나 19 대유행과 경제위기

이렇게 경제위기가 자주 닥치고 직장 생활하는 동안 경기침체( recession) 상태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데 경제가 균형점으로 수렴하고 정상적인 경우가 경제가 안정적이라고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은 현실에 비추어 비판의 여지가 아주 많아 보입니다.

앞서 소개드린 케인즈와 민스키의 주장을 다시 들여다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이 책의 본론은 1-7 장까지가 본문으로 그 뒤 정책개혁 부문이나 향후 경제전망은 현상황과 달라 선택적으로 읽어도 될 듯 합니다. 2010년 경제위기 직후 나온 책인 것은 감안해야 할 듯 합니다.

참고로 같이 읽으면 좋은 책들을 좀더 뽑았습니다.

케인즈와 민스키 교수의 글은 저도 향후 읽을 기회가 있으면 다시 한번 리뷰할 예정이며 나머지 책들은 제가 이전 소개했던 책들입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uncontrolled risk 가 리먼브러더스에 촛점을 맞춘 책이라면 How Markets Fails 는 사무엘슨 이후 미국의 주류경제학이 어떤 이론적 논의를 통해 발전되어 왔는지 추적한 경제학의 역사에 대한 책입니다.
아마 주류경제학에 대해 이 책처럼 간결하고 재미있게 서술된 책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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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브러더스 ( Lehman Brothers)라는 미국의 투자은행은 2008년 발생하여 2009년까지 계속된 미국의 경제위기 ( The Great Recession)를 상징하는 회사입니다. 이 경제위기는 1929년 발생한 대공황 (The Great Depression)이후 최대의 경제 위기로서 주류 경제학의 존재 이유를 뒤흔든 매우 중대한 사건입니다.

이책은 22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중 상당량을 리먼 브러더스의 역사에 할애하고 있고 150년이 넘는 이 기간 중 미국의 경제 발달과 관련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간략하게 살핍니다.

19세기 말 남북전쟁이후 산업화 되는 미국 경제의 발전 과 뉴욕 금융시장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고찰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 따른 미국 경제의 호황이 1929년의 대공황으로 큰 영향을 받고 미국 조야는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선회합니다.

이후 철저하게 구별되었던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사업영역을 그 장벽이 1980-9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하에 거의 유명무실하게 완화됩니다. 철저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옹호한 미 연준 의장 알란 그린스펀( Alan Greenspan)의 저금리 정책으로 미국 경제는 2000년대 초 dot.com 버블이후 다시 자산 가격이 폭등하게 됩니다. 경제가 금융화 (Financialiation)되고 따라 자산담보부 채권들은 증권화(Securitization)되어 금융기관 간 거래가 활성화됩니다.

2000년대 초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에 대해서는 그의 자서전 ‘The Age of Turbulence’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신봉자인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이 미국의 부동산 자산버블의 한 원인이라는 주장은 거의 정설로 굳어졌습니다.

독일에서 미국 남부의 앨라배마 (Alabama)주에 19세기 중반 이주하여 초기에는 금융이 아닌 잡화상으로 자본을 축적한 이민자들인 리먼형제들이 창업한 회사로서 미국의 남북전쟁 (The Civil War) 을 전후한 시기에 면화중계업 ( Cotton Brokerage)으로 큰 돈을 벌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의 중심지 뉴욕에 진출합니다.

처음에는 면화와 같은 농산물 중계로 사세를 키워나갔지만 19세기 말 일어난 미국의 산업화의 흐름을 타고 점차 금융으로 그 영역을 넓혀갑니다.

초기에는 가족경영으로 일관한 이 회사는 가족들간 합자회사 (Partnership)형태로 운영 되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족 외의 인물들에게 파트너쉽을 개방하고 그 이후에야 주식회사로서 면모를 일신합니다.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그렇듯 이 회사도 초기에 굉장히 보수적인 경영기조를 이어왔으나 1960년대 진행된 IPO와 이를 통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 이후 경영의 기조가 상당히 바뀌게 됩니다.

Trader 출신 최고 경영자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High Risk High Return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단순 거래 중계를 통한 커미션 영업을 점차 경시하게 됩니다.

이 회사는 트레이더 출신 CEO Dick Fuld가 무려 20여년을 최고경영자로 회사를 이끌어 거의 제왕적 위치에서 단독적 의사결정을 해왔고 채권 (Bond) 트레이너 출신답게 회사의 수익을 위해 회사 자본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에도 눌 과감한 배팅을 하는 공격적 스타일의 경영자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모기지 담보부 채권 발행을 선도하는 투자은행 중 하나였습니다. 신용 위험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당연시했기 때문에 채권 부도의 위험이 높은 후순위채인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인수해 이를 담보로 채권을 발행해 금융시장에 판매해 높은 수익을 올렸습니다.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다면 손쉽게 돈을 절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채권자들이 재무적 여력이 없어 모기지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서 리먼의 장부상 기록된 모기지 담보부 채권 가치가 폭락해 순식간에 자본이 잠식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부도 당시 160여년 역사의 유서깊은 투자은행으로 미국의 Top5 에 들었던 리먼은 허망하게 문을 닫고 맙니다. 당시 미 연준과 재무성은 선별적으로 대형 금융기관을 지원했는데 큰 상업은행인 Citi와 대형 보험사 AIG가 세금을 투입해 구제를 받았고 모기지 담보부 채권을 보증했던 공공 금융기관 성격의 Fannie Mae, Freddie Mac도 구제를 받았으나 리먼은 불확실한 이유로 규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투자은행 CEO 출신이던 당시 재무장관 Paulson이나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출신으로 대공황 전문가인 당시 미 연준의장이던 Bernanke 는 당시의 막대한 미 정부 재정투입으로 사실상의 ‘정부개입’을 용인해서 많은 보수인사로부터 ‘사회주의’정책을 시행한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2008년 발생한 대공황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는 부동산 자산과 연관된 자산담보부 채권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 투자에 베팅을 한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들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한때 M&A와 적대적 인수를 통해 공격적 성장세를 보였던 미국의 투자은행은 부동산 시장 폭락으로 인한 자산담보부 채권의 부실화로 자본 잠식에 들어가 독자적인 힘으로 생존이 불가능하게 되어 거대 상업은행에 매각되어 투자은행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투자은행들은 다음과 같이 인수되어 미국의 5대 투자은행의 시대가 저뭅니다: 다섯번째로 큰 Bear Stearns 는 JP Morgan애 인수되었습니다.
미국 3대 투자은행인 Merrill Lynch도 부동산 자산담보부 채권 기반 파생상품 투자로 큰 손실을 보고 독자 생존이 어려워지자 거대 상업은행인 Bank of America와 지분 인수협상을 벌여 결국 BOA의 투자은행 부문이 되었습니다. 영국의 Barclays는 Lehman의 자산중 건전한 일부와 투자은행 부문을 인수하기로 협상을 벌여 영국 Financial Service Authority의 승인을 얻었고 2008년 9월 15일 Lehman의 파산은 공식화되었습니다.
리만의 파산으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은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었고 거대 보험회사 AIG에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고 이회사는 결국 국유화되었습니다.

미국 금융시장이 붕괴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미 연준과 재무부의 노력은 당시 연준 의장이던 Ben Bernanke의 자서전에 역시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책결정자의 한사람으로 미 의회에서 정책 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직접 청문회에서 증언을 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수익에 눈이 먼 경영자들은 자신들 결정의 위험성을 인지하였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과도한 투자위험을 취함으로써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세금으로 수혈한 자금으로 재기하게 된 거대 금융기관들은 그들의 평소 신념과는 반대로 자유시장경제의 작동에 본인들이 결정에 따른 결과를 맡기지 않았습니다.

단지 거대하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때문에 파산시킬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Too Big To Fail’노선은 신자유주의를 자처했던 미국 조야의 파워엘리트들과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은행가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이율배반적이고 모럴헤저드가 심각한지 스스로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란 실체가 없는 망상이라는 점이 명확해진 것입니다.
수학적 모델링을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신자유주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런 초유의 경제위기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해 실천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존재 이유마저 의심스럽게 되었습니다.

물리학적 이론적 정합성이 경제학을 필요로 하는 경제위기에 아무런 처방도 내리지 못한 셈입니다.

이 책 자체는 금융위기가 지난 지 얼마되지 않은 2010년 발행된 것으로 미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점쳐지기 이전으로 미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어떤 신호도 보내기 전입니다.

현재 미 경제가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저금리에 의한 인위적 부양 (Artificial Growth)의 결과로 보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으며 금융 위기 이후 10여년이 지났어도 수익만을 우선시하며 엄청난 금액의 스톡 옵션을 가져가는 최고 경영자들의 행태도 거의 바뀐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준이 금리를 조금만 올리려 해도 신용발작( Tapering)과 같은 이전에 볼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지난 30여년간 시행해온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부적절한 부산물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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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lo Effect : How Managers Let Themselves be Deceived (Paperback)
Rosenzweig, Phil / Simon & Schuster Ltd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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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자를 읽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에서 교재로 선택을 했고 과제도 제출해야 해서 읽게 된 것입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Halo, 한국어로는 ‘후광’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경영학자들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왜 어떤 회사는 성과( performance) 가 좋은 반면 어떤회사는 성과가 좋지 않나?

저자는 이 질문이 모든 경영에 관한 질문의 어머니 ( Mother of All Business Questions) 라고 했습니다. 유머러스하지만 아주 중요한 질문이죠.

수많은 경영학 논문들, 잘 알려진 HBR (Harvard Business Review) 에 실려진 상당한 논문이 바로 이 성과와 성과측정에 대한 것들인데, 저자에 따르면 말이 되지 않는 논문들이 상당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 ( Harvard Business School)에서 교편을 잡았고 이 책 저술 당시 스위스의 IMD 경영대학원 교수로 있는 분이기 때문에 비록 학문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한 때 본인의 동료이거나 학문 선배였을 학자들의 논문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이 왜 학문의 종주국이 될 수 밖에 없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후광효과 (The Halo Effect) 라는 것이 그럼 무엇인가?
간단하게 이야기 하면 경영자/경영학자들이 성과를 이야기할 때 어떤 이유로 성과가 생겼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그 성과에 영향을 받는 조직의 일원을 인터뷰를 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으로 이는 성과의 속성 (attribution)에 대한 설명이지 어떻게 성과를 냈는지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경영자들이 성과에 대해 성과측정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새겨들어야 할 부분입니다.

경영에서 성과측정 ( how to measure performance)이라는 주제는 꽤 고전적인 것으로 문제는 이 성과라는 것이 반드시 재정적으로 흑자나 적자로 표현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논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제조회사의 경우 생산량 대비 불량률을 체크할 수 있고, 영업의 경우 대체적으로 판매량으로 성과를 측정하지만 이런 나름 근거있는 기준들이 그 회사가 제대로 돌아간다는 증거가 될 수 없고 성과가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1990년대 말까지 한국 기업들의 경우 매출액에 중점을 두고 성장위주의 정책을 펼쳤지만 이익률은 형편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산 명품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반면 이책에서 보여주는 기업관련 기사 (Business Journalism)가 기업의 평판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1960-70년대 황금기를 구사하던 IBM의 경우 1980년대 초 최대 위기를 맞는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신흥 주자인 Apple 이 등장하고 PC가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은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 책에서는 FORTUNE을 인용했습니다). 하지만 IBM은 내부적으로 별로 바뀐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크게 잘못대처하도 않았습니다. 수많은 PC 업체들이 세워졌다가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 공룡 기업은 건재합니다.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독자들을 현혹시켜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하는후광효과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점만 더 이야기하고 이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성과에 대한 연구와 이야기( storytelling)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몇가지 정리하면,

1. 이야기는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사업입니다. 미국의 유명 경영저술가들은 독자들에게 명료하고 단순한 메세지를 가진 책을 저술해 실제 경영현장과 독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 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장점과 기쁨이 있어도 그 이야기가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적이라고 포장이 되어 있어도 사실 과학적인 저술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학적 저술이라고 마케팅하는 것이 책판매에는 도움이 되죠.

3. 이것은 저술에 필요한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되며 즉 결론을 도출한 자료가 얼마나 믿을만한 것 (reliable)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성과에 직접 영향받는 바로 그 회사의 직원에게 ‘당신이 소속된 회사가 성과가 좋은가?’라고 묻고 질문지를 수거해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점입니다. 자료수집을 얼마나 심각하게 하든 수집기간과 노력이 얼마이든 잘못된 자료수집을 통해 도출된 결론은 그 외양과 방식이 과학적으로 보여도 결국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수많은 경영관련 논문들이 이런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시각이 참신하고 생각할꺼리를 던져주는 책인 것은 분명합니다.
경영학을 떠나 학문의 방법론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다면 상당히 유용한 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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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된 언어 - 국어의 변두리를 담은 몇 개의 풍경화, 개정판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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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희귀한 자유주의자 언론인이자 언어학자가 밝히는 언어순혈주의의 허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언어는 상호감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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