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국가 중심의 역사가 아닌 해양사의 관점, 국가의 변방에 위치한 도서 (島嶼) 입장에서 역사와 주민의 삶을 바라 본 연구서입니다.
오가사와라제도라는 이름을 이 책에서 처음 보았는데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입니다.
이전에 주강현 교수님이 쓴 일본 오키제도 (隠岐諸島)와 독도와의 관계에 대한 책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독도 강치 멸종사, 서해문집,2016) , 이 책은 오키제도 이외 잘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부속도서에 대한 또다른 연구서입니다.
이무래도 주권국가 단위의 국가사나 지배계급 위주의 정치사나 왕조사에 익숙한 독자에게 이 책의 서술방식은 익숙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오가사와라 제도라는 북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외딴섬에 사는 사람들이 근대 대항해 시기와 포경선 수렵 밀렵선의 시기를 지나 세계대전과 일본의 대륙 및 해양 침탈 정책시기를 거치며 어떻게 삶을 헤쳐왔는지가 주된 관심사입니다.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첫째 시기는 16세기에서 21세기 현재까지를 망라합니다.
둘째, 16세기 범선이 주도한 대항해 시기와 해적들이 창궐하던 시기를 거쳐 19세기 이후 일본 근대국가 성립과 미국의 포경선과 수렵 밀렵선들이 태평양으로 밀려들던 시기를 지나 재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이후 미국의 군사력이 태평양을 압도하는 시기까지 커버합니다.
셋째, 17-19세기 선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폭압적 지휘체계로 인해 도서 지역의 해방구로 탈출한 이들이 많았고 이들이 정착했던 섬 중 하나가 오가사와라라는 점입니다. 일종의 치외법권지대로 국가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해서 상대적 자유를 누렸던 지역이었습니다.
넷째, 아시아 지역 뿐 아니라 대항해 시대부터 유럽출신을 비롯한 다양한 이들이 도서에 몰려 살면서 포경선이나 수렵선들에 물품을 팔고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다민족 다이아스포라(Diaspora)를 형성했던 곳입니다.
북태평양의 고래잡이, 특히 미국의 포경산업과 극동 러시아와 알래스카에 이르는 지역에서 행해진 물개 수달 등의 모피무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미국이 콜롬비아 강을 탐험하고 멕시코와 전쟁을 해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빼앗은 이후에도 자신들의 서부개척은 미국 서부가 끝이 아니라며 이후 하와이와 필리핀을 복속하며태평양으로 진출하고 고래잡이와 수렵을 해서 중국과 교역을 합니다. 이와 같은 미국의 태평양 진출은 초기 미국의 산업 자본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이런 영향력 확장이 제국주의는 아니라고 홀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도쿠카와 막부 시절부터 주권을 행사하려던 일본이 1870년대 이 지역을 주권지역으로 포함시켰고 이후 일본 본토에서 개척이민이 시작됩니다. 같은 시기 일본은 아이누들의 지역인 홋카이도를 병합하고 오키나와를 복속시켜 근대국가의 모습을 잡습니다. 홋카이도 개척의 사례는 오가사와라개척에도 준용됩니다.
여섯째, 일본의 아시아 팽창정책과 함께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오가사와라 제도의 섬들은 일본의 병참기지와 해군기지로 바뀌고 정책에 따라 섬 주민들을 일본 본토로 소개시킵니다. 난민화의 시작입니다.
일곱째, 일본의 패전이후 미국은 일본이 지배하던 ‘남양군도(
南洋群島)를 접수해 태평양을 세력권에 넣기 시작했으며 하와이에서 괌을 지나 필리핀에 이르는 태평양 전역에 해군기지와 미사일 발사대, 무기 실험을 행하면서 대륙세력안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containment)하는 정책을 취합니다.
오키나와에 미군기지가 새워졌고 오가사와라에도 미군 기지가 세워져 이전에 이 섬에 살던 주민들 대부분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체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사망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섬 주민들은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의 병참기지때문에 삶에 어려움을 겪었고, 미국이 섬을 접수한 이후로는 군사적인 목적때문에 태어난 고향에 가보지도 못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에 따라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건 일본이건 한국이건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오키나와에서 성범죄를 비롯한 미군들의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건 한국에 위치한 미군기지 주변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오가사와라 제도의 이오지마(硫黄島)주민들이 제2차세계대전 말, 미군의 일본 지상군 공격 전투 때문에 일본본토로 소개(疏開)된 이후 70여년간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고 되돌아가지 못한 체 고령으로 세상을 등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전쟁으로 고향땅에 돌아가지 못하는 한국의 실향민들과 그 후손들의 삶과 겹쳐 보입니다.
미국이 필리핀에서 해군기지를 폐쇄하고 한국의 기지를 용산에서 평택으로 옮기고 있고 중국을 겨냥한 사드미사일을 경상도 지역에 배치하려는 가운데 제주도에도 해군기지를 지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국방전략을 잘 모르는 제가 봐도 미국은 이미 본인들이 중국과 러시아를 타격하기 가장 좋은 위치에 자신들의 기지를 지어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의 친미 기득권층은 아무소리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적대시하는 건 그들 입장에 이해가 되지만 한국은 입장이 당연히 미국과 다릅니다. 간단히 한국에 우호적인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당장 경제적 손실이 옵니다. 더구나 미국은 미군에 소요되는 경비마저 한국에 내라고 하니 이건 말도 안되는 상황입니다.
군인들은 유일하게 ‘살상(殺傷)을 전문으로 하는 직책으로 답이 없는 조직입니다. 2차 세계대전 때도 교수들과 학자들이 새로 발명한 무기가 없었으면 미군 수뇌부도 전쟁에서 졌을 수도 있습니다.
최소 말도 않되는 소수의 엘리트들의 자의적 결정으로 역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건 막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모르긴 해도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이나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이나 다 같은 황인종으로 별로 다른 정책을 펼 이유를 몰랐을 것입니다. 1960년대까지도 백인과 유색인종의 화장실을 달리 쓰던 인종주의 국가에서 그리고 자신들 세계 이외에 무관심한 나라에서 아시아의 조그만 패전국에 대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대륙의 라이벌을 막기 위해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이상의 생각을 했으리라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본이 한국에 이식한 통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현상유지 정책 ( status quo policy)를 펴고 일본과 한국에 군정을 실시했을 것이고,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들을 다시 전후 일본 사회의 지도세력으로 불러들여 미국의 정책을 따르게 했을 것입니다.
이 책의 말미에 미국이 일본의 통치하에 있던 ‘남양군도’를 신탁통치의 대상으로 정하고 실제 그리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미국은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지로 전쟁 중 ‘일본땅’이던 한반도에서 ‘신탁통치’를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소련과 북쪽에 대한 신탁통치를 논의한 건 구한말 이래 러시아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함경도와 평안도 지방에 대해 선뜻 미국이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은 다른 연구서를 좀 더 찿아보아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