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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약속의 땅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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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공부하신 조귀동 작가의 책을 완독했습니다.
책의 주제는 효능감을 잃어버린 현재의 한국정치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이지만, 결론은 ‘중도’혹은 ‘무당파층’이라고 불리는 침묵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에게 한국정치가 어떻게 효능감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노동시장으로 인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저소득층을 어떻게 정치가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제를 던지는 것입니다.

이책의 결론은 구체적 방법보다 한국정치가 이루어야 할 당위적 방향설정을 하는데 그친 건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오히려 한국사회를 위한 전략적 전술적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인들이 팬덤정치, 정체성 정치 또는 포퓰리즘 정치에 매몰되어 산업화와 고도성장기 이후 그리고 계층이동서다리가 끊어져 버린 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체제변혁을 추진해 나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상황을 경제 사회 보건 교육 등 각종 자료와 연구를 인용해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이 왜 지금처럼 초저출산국이 되고 경제의 성장동력마저 꺼질 정도의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한 경제상황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수학적 방법론이 도입된 이후 대중과 전문가들의 뇌리에 박힌 편견 중 하나는 경제학이 수리적 학문이라는 점인데, 사실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 이래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ics)이었고, 본질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먹고 살수 있는 방법을 찿는가였고, 먹고사는 문제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고 정치가들은 결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문제에 대한 결정을 하기 때문에 정치과정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점입니다.


경제문제에 있어 한국의 엘리트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고도성장기인 산업화시기이후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경제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얽매어 있는 상태가 큰 문제입니다.

선진국 경제에 걸맞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빨리 정립해야 하는 과제가 있으면, 만성적 재정부족에 시달렸던 개발도상국 당시의 관행인 ‘균형재정’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부가 역할을 못해 민간이 맡았던 역할을 선진국이 된 다음에도 그대로 유지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육은 무상교육만으로는 부족하고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도상국 시기 정부가 돈이 없어 민간이 하던 일을 정부가 회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그래야 경제논리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사교육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교육이 공교육 중심이고 연구중심 대학이 사실상 모두 국립이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한국에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부실한 사립대학들이 문을 닫는 이유도 국가가 해야 할 교육을 민간에 맡겨 놓았다가 저출산과 저성장기를 맞아 경쟁력 없는 대학들이 퇴출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경제논리에 맡겨놓았다가 대학이 망하는겁니다.

비싼 사립학교나 사교육이 활개를 차는 건 기본적으로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가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학원에 교육을 외주주고 있는 게 현실이고 학부모들은 높은 교육비때문에 교육이외의 다른 쪽으로 소비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겁니다.

치솟는 교육비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 그리고 비싼 주거비가 한국의 기록적 초저출산의 원인이고 저성장의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죠.

정치는 결국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하는 행위인데 포퓰리즘에 매몰되어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정쟁울 일삼는 현재의 한국정치는 시급히 기능을 복원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특정대학의 고시출신 법조인들로만 채워지는 인적구성으로는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가 없습니다. 수사만 할줄 아는 검사출신 정치인들이 정적을 수사만 하는 모습을 봐오지 않았나요?

검사들이 수사를 잘해서 전문가라는 윤대통령의 언급은 그 자체로 코미디로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길러온 전문가들을 무시하는 오만하기 짝이없는 발언입니다.

집권 2년차에 다다른 이 검사정권은 ‘무능’이 키워드로 호명되는 정부로 남았습니다. 유권자로서 고시가 정말 고위공무원을 뽑는데 유효한 수단인지 의심스럽고 오히려 기득권 ’카르텔‘로 작동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민간에서라면 이미 자리보전이 어려울 정도의 실수를 저지르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후안무치는 한국의 관료제가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도 지지않을만큼 비정상적인 상태인 걸 웅변한다고 봅니다.

농민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나 청년층을 대변하는 다양한 국민의 대리인들이 현재 국회에는 없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소위 586 정치인들이 30년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고, 국힘당은 검찰 경찰 고위관료출신과 지방의 토호세력둘 그리고 극우 유튜버로 대표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지 못하는 정치현실은 그 자체로 한국의 정치지형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국회의원 될 사람들의 직업군이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기에는 국회가 너무 천편일률적입니다.

특히 검사를 비롯한 엘리트 관료들의 무능과 도를 넘은 책임회피를 지속적으로 목격하게 되는 현재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더 다양한 국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자연계에서도 먹고 살기 힘들면 동물들이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20-30대 청년들이 출산을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자신들보다 못한 환경에서 사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그 자체만 봐도 한국의 위정자들과 정치가들이 한국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왔다는 명백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매우 괴롭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생각거리는 충분히 던져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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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출판되어 화제가 되었던 책입니다.

초연결사회 (hyper connected society)애 진입하면서 각 개개인이 소셜미디어로 연결되고 이는 전통적인 언론미디어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흔히 도발자 또는 선동가로 번역될 수 있는 영어의 provocateur가 이 책의 주제이며, 이들이 변화된 공론장( 公論場)을 오염시키는 주역이라는 주장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현재 변화된 한국의 언론지형에서 보수언론의 한편에 ‘받아쓰기’와 ‘인용’이 하는 일의 전부인 출세지향적 ‘기레기‘집단이 존재한다면, 그 정보의 소스 (source)로 존재하는 극우 유튜버들이나 유사언론인 등 막말과 도발을 직업으로 삼는 집단을 여기서 말하는 프로버커터라고 보면 됩니다.

프로보커터들은 ‘주목(attention)’이 돈이 되는 초연결사회에서 주목을 받기위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혐오발언과 유언비어 그리고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말과 막말 모욕스런 언사를 거리낌없이 배설합니다.

책이 비록 허무맹랑한 도발을 일삼고 조회수 장사에 혈안이 된 저급한 인터넷 시대 담론을 다루고 있지만 소수의 저급한 발언과 막말이 일상으로 침투하고 정치판을 진영논리와 대결구조로 몰고가는 상황은 결코 가볍게 볼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문제는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조차 없는 극우 프로보커터의 발언을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사회구성원들끼라 이해보다는 대결, 그리고 공감보다는 혐오를 하게 되고, 소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이 무방비 상태로 폭력에 노출되는 극심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런 소수 프로보커터들의 몰상식한 발언과 향태는 사회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안이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끝없이 노출되는 지금, 정보의 신뢰성(reliability)을 판단하지 못하는 많은 대중들에게 근거없는 믿음과 잘못된 오해를 끊임없이 일으키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유 정치권, 특히 소위 보수정치권이 보수언론의 기레기 집단과의 협업하의 공론장의 여론을 교묘하게 조작하며 진실을 은폐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에 출입하던 법조기자 출신이 공영방송에 낙하산으로 사장으로 임명되어 기자본연의 업무인 ’정부비판‘을 한 것을 보고 프로그램을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구성원의 의사도 묻지 않은체 자르는 무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책애도 나오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소위 주유보수언론들은 ’화장실 낙서‘에 불과한 정보가치가 없는 프로보커터들의 발언을 여과없이 인용해서 소위 민주진영 인사들을 깎아내리고 폄하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평소 극우매체들이 쏟아내는 허무맹랑한 헛소리 내지 가짜뉴스, 그리고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는 혐오발언들을 보면서 나라가 왜 이모양이 되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혐오‘의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자기자신이 올바른 판단력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몰상식이 난무하는 시대에 정신차리고 살려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가 제대로 된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말고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부하지만 책을 읽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eBook이 아니고 종이책말입니다.

억만장자인 실리콘밸리의 CEO들이 왜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멀리하게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미 알려져 있듯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운명의 이기가 자식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아니까 사용제한을 두는 겁니다.


30여년 전만해도 한자를 익히기 위해 그리고 글의 논리를 익히기 위해 종이신문의 사설을 읽은 적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 기자들은 자신이 쓰는 글이 정부관료들이 불편하더라도 그냥 실어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자들의 상당수가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바라보고 있고 정부가 주는 보도자료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조건( requirement)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의 타락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시절 ’종편‘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것 역시 우연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계급적 이익을 위해 언론시장을 재편해서 공론장을 사실상 악화시키고 제기능을 못하게 만든것이죠.

다시 말하지만 조회수장사를 하기 위해 막말과 혐오표현을 일삼은 극우 프로보커터들과 정부와 기득권의 입장과 주장을 받아쓰기만 하는 기레기 집단들이 언론을 자처하면 어쩔 수 없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시민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스스로의 판단력을 강화하는 방법이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정치문화와 언론환경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대면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 의견을 들어보고 책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읽거나 들은 혹은 시청한 정보들을 되새기면서 자신의 생각을 벼르고 가다듬는 방법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읽으려했으나 아직 읽지 못한 책을 하나 소개합니다.

정치공론장과 ’혐오의 자유‘에 대한 부제가 인상적입니다.

김학준 지음, 보통 일베들의 시대 (오월의 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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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 족청계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 본 해방 8년사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4
후지이 다케시 지음 / 역사비평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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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 대해 새로운 시각( Perspective)을 제공해주는 저술이라는 평을 들어서 한번 읽고 싶었는데 오늘 완독했습니다.

편견일수도 있지만 해방이후 한국전쟁이후 냉전이 도래하는 시기인 1945-1953년의 격동기를 한국 국내정치의 관점에서 서술한 이 책은 일본출신 한국현대사 연구자이신 후지이 다케시씨 이시고 한국어로 된 저술이어서 일단 매우 놀랐습니다. 이책은 저자께서 2010년 성균관대에 제출하신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한 책이라고 서문에 소개해주셨습니다.

총 5부에 본문이 456쪽에 달하니까 분량이 어느정도 되는 책입니다.

우파의 입장에서 해방정국이 어떻게 이루어져 나갔는지, 중국에서 무장투쟁을 하던 광복군 출신 독립운동가와 미국에서 활동한 이승만 그리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의 태평양지역 진출을 막기 위해서 미국 외교/안보 당국과 미군정이 한반도 남쪽의 국내정치에 어떻게 개입하고 공작을 벌였는지 이 책은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광복군 출신 이범석(李範奭)이 중국에서 돌아온 후 국내에서 만든 조선민족청년단(朝鮮民族靑年團) 또는 족청(族靑)은 해방이후 이범석이 국내정치를 하기 위해 만든 청년단체로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총통의 파시즘적인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만든 단체입니다.

이는 중국이 독일과 소련의 지원을 받아 중국 국민군을 조직하고 이들의 군국주의를 따라 청년교육단체를 만들었고 이범석 역시 장제스와 함께 중국 전구(戰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웠기 때문에 중국 국민당과 장제스의 영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장제스 총통(總統, generalissimo)로 알려진 그는 현재 알려진 영미식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일종의 군부독재정권을 중국에 세우고 일본군과 싸우고 중국공산당과 내전을 치룬 인물입니다.

거기다 족청의 두 이데올로그 중 한명인 안호상(安浩相)은 독일 나찌정권 시절 독일에서 헤겔과 칸트 등을 공부한 인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파시즘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나머지 또 한명의 이데올로그는 양우정(梁又正)으로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 전향한 정치인으로 후에 안호상과 함께 극단적 민족주의의 일종인 일민주의(一民主義)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이승만 정부의 사상적 뒷받침을 하는데 일조합니다.

이상에서 보면 이범석, 안호상, 그리고 양우정 세사람 모두 우파입장에서 이승만 정부의 출범을 도운 셈이지만 한반도 남쪽을 점령한 미군정이나 미국외교당국이 불편해할 사상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게 특징입니다.

파시즘 국가인 나찌독일과 유럽전선에서 싸우고, 스탈린이 아시아와 유럽대륙에 공산주의를 전파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미국은 공산주의를 봉쇄(containment)해야 한다는 외교정책을 추구한 상태에서 한반도 남부는 미국입장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방어선이었습니다.

이미 공을 들인 중국대륙이 공산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간 마당에 한국의 우파 정부마저 파시즘적 성향을 보인다는 걸 미국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겁니다.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입하기로 한 후 이승만이 초대 정부를 구성하는데 족청이 다른 우파 청년조직들과 함께 일조를 했지만 이범석이 파시즘을 긍정하고 있고 안호상이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서 인종주의적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목격하고, 나찌독일과 유럽전선에서 싸운 미국으로서는 족청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 양우정은 일제시기 공산주의자였고 프로레타리아문학운동을 한 이력도 있어서 역시 요주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족청이 초기에 우파청년들 뿐만 아니라 과거 공산주의 운동을 한 이들도 대거 받아들여 한국전쟁이 휴전된 이후 이승만 정부와 여러 우익 정치인들로부터 ‘좌우합작’의 조직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사상적 탄압을 받아 결국 해체가 되는 수군을 밟게 됩니다.

다음은 이승만과 이범석 그리고 족청의 관계를 말하려고 합니다. 한마디로 이승만은 족청을 이용하고 버렸습니다.

반자본주의와 반공산주의를 주장하고 자신이 초대에
이어 2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한 공작에 철저하게 족청과 이범석을 이용했지만, 부산정치파동을 일으키며 자신의 대통령 재당선을 위한 개헌을 위해 의회를 겁박하는데 족청계 정치인들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이승만의 독재적이고 반민주적인 향태에 우려를 했지만 미국의 국익에 그가 한국의 대통령인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묵인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승만은 부산정치파동을 통해 개헌을 하고 2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족청출신 정치인들과 이범석을 숙청해 권력을 독점하고 자유당체제에서 분단을 고착시키며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구축합니다.

지금도 우익 정치권에서 이승만을 국부라고 떠받들고 ‘우상화’작업에 열중하는데 이 책을 통해 제가 본 이승만은 그냥 독재적으로 국가를 운영했고 국회에 대해 끊임없이 탄압을 가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일방적인 ‘유시’만 남발하고 제대로 정치인들과 대화도 잘안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남한 단독정부를 혼자서 좌지우지하려고 했죠.

국회가 삼권분립에 따라 이승만의 독단적 결정을 저지했는데도 이승만은 공권력을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채포하고 구속하는 등 횡포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실상은 무자비한 독재였습니다.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그도 그럴것이 이 책에서 탄압받은 인사들은 일부 공산주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우파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심지어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경도된 이들도 있었지만 나이들고 권력욕에 눈먼 이승만에게는 다음번 대선에서 권력을 빼앗기지 않는게 더 먼저였습니다.

이승만씨는 해방정국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인사이고 그가 한 국회탄압과 정치인 숙청을 보면 그가 민주주의와 별반 관계없는 정치인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승만씨는 국부라는 칭호를 받기에는 한일도 없고 권력욕만 센 정치인이었고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한 정치인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우파인 보수정치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뿐이 아닌 정말로 개인의 자유와 법에의한 통치를 이룩하지 않고는 우파를 액면 그대로 지지하기 힘듭니다. 수많은 ‘사이비 우파‘ 혹은 ’극우‘이면서 우파라고 속이는 이들이 지금 한국에는 너무 많습니다.

우파라고 하면서 사람따라 법률 적용 달리하고 그 기준이 검사와 얼마나 가까운 사람인가가 이면 그건 법치가 아니고 법치를 가장한 거짓말을 치는 것 뿐입니다. 정실주의(cronyism)일 뿐이죠. 아주 후진적인 태도죠. 공부잘하고 시험 합격해도 무슨 소용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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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현대정치사 - 아데나워에서 메르켈까지, 기민련을 통해 본 정당국가 독일
문수현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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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 자신의 중요관심사가 한국과 아시아의 정치 사회문제 그리고 역사적 전개과정이지 멀리 떨어진 유럽의 독일의 정치 그 자체가 관심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둡니다.

하지만 주된 관심사가 아닐 뿐 독일의 정치, 경제체제의 운용방식은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영미식 자본주의 운용체제와 비교하여 대안체제로서 충분히 음미해볼 가치가 있는 분야입니다.

우선 한국과 독일 모두 제2차세계대전 이후 세계열강에 의해 분단된 경험이 있는 나라이고, 독일은 한국보다 먼저 통일을 맞이했던 나라이기 때문에 지리적, 문화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체제를 돌아보는데 그 대안으로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가지 더 부연하면,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 패전국의 지위에 있었고, 한국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해방을 맞았으나, 일본이
패전국의 지위를 가진 것과 달리 한국은 전쟁에 따른 그 어떤 지위도 얻지 못했습니다. 미국은 일본의 패전이후 일본을 ‘점령(占領,occupied)’했으며 한반도의 남쪽도 점령해 미군정이 실시되었습니다.

이책은 기민련( 기독교 민주주의 연합)이라는 독일의 보수정당이 패전이후 어떻게 독일의 정당정치체제를 통해 권력을 쥐어 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추적합니다.

초대총리인 콘라드 아데나워부터 헬무트 콜 그리고 최근 퇴임한 독일 최초의 여성총리 앙겔라 메르켈까지 주로 장기집권한 기민련 출신의 총리들과 그들이 어떻게 정당에서 권력을 잡고 연방의회에 진출하고 또 최종적으로 권력의 정점인 총리가 되었는지를 주로 독일측 자료를 인용해서 밝힙니다.

영미의 자유방임적 시장자유주의와 독일의 전치. 경제체제가 다른 것은 독일이 ‘사회민주주의’를 택하고 있다는 점이고 시장의 메커니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것만큼이나 국가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시장은 그 자체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정하는 제도에 따라 나타나는 양상이 달라질 뿐만 아니라 국가는 자유시장경제에서 소외된 국민들, 노인이나 저소득층, 저임금 노동자, 성소수자, 여성 등 사회의 약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기본 인식을 전제로 경제제도와 정치제도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공산주의’취급받을만한 이런 생각이 독일에서는 보수적인 기민련 정치가들 사이에서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세상에 본받아야 할 체제가 영미식 자본주의 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놀라운 것은 보수정당인 기민련의 초대총리 아데나워머저도 이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아데나워의 통치는 그가 ‘가부장적 총리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매우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 정치를 해왔는데도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이책은 결론을 제외한 총7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본문이 430여쪽에 이르니까 보통의 양보다 조금 많은 분량의 책이지만, 책이 현대 독일의 정당정치를 다루는 만큼, 저자가 과거에 발표했던 논문을 일부 수정해서 포함시켰습니다.

하지만 현대 독일의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다면 입문서로 적당할 것 같습니다. 반면 독일이나 정치에 대해 낯설다면 읽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에 대해 무지한 저는 이 책을 보고 독일이 비록 신교(Protestant)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남쪽 지역과 북쪽지역의 종교적 차이가 상당하고 별도의 지역적 역사의 차이가 크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북쪽은 군국주의 국가인 프로이센(Königreich Preußen)의 지배를 받았던 신교 영향이 큰 지역이고 남쪽의 바이에른(Bayern)은 카톨릭의 영향이 지금도 상당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카톨릭이 우월한 지역출신 총리인 초대총리 아데나워는 미국보다 프랑스를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유럽 한복판에 위치한 독일이 그리고 스위스를 포함한 독일어권이가톨릭에 저항한 신교세력이 등장하는 종교개혁의 진원지임을 생각하면 종교에 기반한 역사적 뿌리가 현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일단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끝으로 이책에서 기민련의 연정상대로 등장하는 사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일의 정강정치는 기민연과 사민당 사이의 연정(聯政, 연립정부)를 이루어온 역사가 상당하지만 이 책이 기민련의 정당사 위주로 쓰여져서 빠진 부분이 많습니다.

독일 특유의 연립정부 중심의 정부구성은 결국 그 전제가 양당정치가 아니라 다당제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독일 정당의 역사를 보고 한국의 경우에 적용하면 현재 한국의 대의정당정치를 발전시키려면 다양한 목소라를 아우르는 다당제와 군소정당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특정정당 출신 법조인에 50-70 대 남성 노인층으로 구성된 의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50-70대 남성 법률가만 국회의원 되는 건 한국의 민주주의를 퇴행으로 몰고가는 것일 뿐이죠.

특히 사민당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총리는 서독과 동독의 통일로 가는 초석을 닦은 정치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전후 서독정치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추진한 동방정책(Ostpolitik)이 실제로 독일통일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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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잊힌 퇴조의 출발점 - 자유주의적 전환의 실패와 촛불의 오해
백승욱 지음 / 북콤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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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현재 한국사회의 전환점이 1987년이 아니라 1991년이라는 점을 주장한 책으로 특히 소위 ‘민주’진영이라고 불리는 586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 뼈아픈 대목이 많습니다.

현재 기형적으로 무능한 소위 ‘보수’진영은 차지하고라도 민주진영의 무능함과 안이함을 지적합니다. 보수가 기획한 2016년의 촛불을 민주당이 ‘가로챘다’는 입장이며, 수긍이 되는 분석입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의 퇴행적 행태들이 1987년이후 ‘절차적’민주화를 실현했으나 거기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 운동권출신 정치인들의 철학부재와 안이함에 있음을 지적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 실패로 끝난이유는 소위 ‘87체제론’에 입각해 자신과 적을 구별하고 윤리적으로 우월한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맹목적인 주장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저자는 이걸 ‘승리사관’이라고 규정하죠. 이런 사고는 한국사회의 자유주의적 ‘제도화’에 소홀하게 된다는 단점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가지게 된 시작점을 1991년으로 보고 있으며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는데도 그 당시 사회변화의 요구는 ‘잊혀진’상황으로 이후 벌어진 IMF 구제금융사태 등 한국을 뒤흔든 큰 변화의 시작점으로 봅니다.

요새 많이 잊혀진 역사적 사실 중 하나가 보수세력인 민정당에서 추진한 ‘북방정책’입니다. 군인출신으로 신군부의 핵심이던 노태우 대통령은 당시 공산주의국가인 소련과 수교를 했고 당시 중공과도 수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공산권 몰락도 한몫했으나 다분히 전략적 경제적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은 문민정부와 민주당 정부에서 이를 계승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검사출신 대통령은 자신이 소속한 정당에서 30여년 전 전략적으로 추진했던 러시아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스스로 걷어차는 어처구니없는 외교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실리’가 뭔지 모르는 무지한 행태입니다. 바보처럼 한국의 국익을 생각하지 않고 일본과 미국의 국익을 대변하는 현정부의 행태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일제가 심어놓은 패배주의적 ‘정체사관’에 찌들려 있는 극우 성향 대통령이 국익훼손과 역사의 퇴행에 앞장선 겁니다. 미국의 푸들을 자처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하려는 최근의 행태는 대통령의 권한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대로 촛불이 보수의 ‘궁정쿠데타’성격을 가졌다면 그 쿠데타를 주도한 소위 보수세력들도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현재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들도 말로 자유를 떠들지만 사실 얼치기 전체주의자에 불과합니다. 공화제 정치가 뭔지 법치가 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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