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가 시작된 이후 한세대(30년)가까이 지나다 보니 1990년대를 평가하는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멀지않은 과거로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이 책은 이미 한국에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90년대: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온워드,2023)

1990년대를 청년시절 경험한 X세대(Generation X)로서 제가 즐겨들었던 음악과 영화에 대한 내용을 보는 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특히 한때 영화를 즐겨봤던 사람으로서 퀸텐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과 ’펄프픽션(Pulp Fiction,1994)’에 대한 평가를 보게 되어서 입니다.

특히 ‘펄프 픽션’은 폭략과 함께 나타나는 B급정서를 나타내는 영화로 이미 한물간 스타로 알았던 존 트라볼타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입니다. 당시 신인이었던 우마 터만과의 댄싱장면이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이전과는 다른 소위 매니악한 정서가 나타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개봉이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입니다.

두번째 영화는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The Matrix,1999)’ 입니다. 이 영화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로 SF의 표피를 가진 블록버스터이지만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로서 노골적으로 홍콩 쿵푸영화를 오마주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Reality)가 무엇인지 메시지를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 꿈일수도 있다는 , 어쩌면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모르고 지나쳤지만 1990년대는 완전한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가던 시기였고, 책에서 언급하듯 X세대만이 디지털이 없던 아날로그 세상과 가상현실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본 세대로서 아날로그로만 살아온 베이비부머(Baby Boomer)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상을 살아온 밀레니얼 (Millennial)을 연결해줄 수 있다는 분석에 공감합니다.

1990년대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의 서막을 알리던 시대로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만들어진 시대이며, 미국 국내적으로 콜롬바인 고교 총격사건과 오클라오마 연방빌딩 폭파사건이 일어난 시기이며, 미식축구 선수 출신 방송인 O J Simpson 재판으로 미국 사회가 술렁이던 때였습니다.

또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 (Machael Jordan)이 시카고 불스와 함께 전성기를 이끈 시기였고, 농구화 Air Jordan 이 출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그를 능가할만한 농구선수가 없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는 클린턴 미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과 미 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된 클레런스 토마스의 성추문 관련 청문회도 미국 정치를 뒤흔든 시기였습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impeachment)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사실상의 종료가 2001년 9/11테러로 종결되었다고 보았습니다.

21세기의 첫해인 2000년 당시까지도 미국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였고, 인터넷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방송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아직 모든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11이후 적 아니면 동지로 그외의 선택은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게 되었다는 의견입니다.

책 내용은 저처럼 그 시대를 직접 목격한 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지만 경험을 못한 이들에게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사회 문화 정치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커버해서 평소 대중음악이나 영화에 관심을 가진 분은 읽기 편할 듯 합니다.

이 책의 후반에 나오는 2000년 대선은 미국 정치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접전이었고 플로리다주의 개표에 대해 결국 미 대법원의 판결로 아들 부시가 알 고어를 이기고 당선되었습니다.

알 고어 전부통령이 부시의 승리를 인정해서 일단락 되었지만 사실상 두 사람 중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었다는 평가도 상당합니다. 제가 아는 한 대통령선거가 법원판결로 결정된 사례는 이 선거 말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오래된 대통령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이후 아들 부시대통령은 미국 군수업체를 대표하는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미명하에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했고, 10년넘게 지속된 전쟁은 이 지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게 되어 사실상 실패한 전쟁수행으로 남게 됩니다.


아버지 부시부터 클린턴 그리고 아들 부시 대통령 시기가 신자유주의의 극한 전성기로 규제완화(deregulation)을 통해 금융기업들이 실물경제와 관계없이 부를 독점하는 현상이 장기지속되어온 저금리현상과 함께 지속됩니다.

이 모든 거품은 2007년 금융위기로 터지게 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이론적 정책적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2024년 현재는 그 직접적 영향을 1990년대에서 받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컴퓨팅,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인터넷의 상용화는 이시기에 시작되었고, 여기서 촉발된 플랫폼 경제체제가 경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질서까지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멀지 않은 과거지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이 전후 미국의 달러 중심 세계체제를 재편했고 소련과 냉전시대에 들어갔다면, 1990년 소련의 붕괴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가 역사를 바꾼 중요 변곡점이었습니다. 이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목격하면서, 그리고 그 부상을 억제하려는 예전같지 않은 미국을 보면서 또 한번의 역사의 변곡점을 마주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은 애써 중국이 근대이전 대륙의 헤게모니를 틀어쥐었던 강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여러 정보가 넘쳐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드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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