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838-1842년 행한 남태평양( 피지, 사모아,하와이), 개척 이전 서부 콜롬비아 강( 오레건, 캘리포니아, 캐나다 접경지역) 및 남극대륙 탐험에 대해 한국에는 놀랄만큼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이 160여년 전 행한 남태평양/ 남극 탐험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1830년대 미국은 아직도 서부 지역, 캘리포니아와 오레건 주의 영토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 이전시기부터 대서양과 인도양 그리고 태평양 항로를 따라 항해를 해온 유럽 ( 특히 영국과 프랑스) 세력과 달리 대양 항해 혹은 탐험의 역사가 일천한 신생국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남태평양/ 남극 항해를 이끈 미 해군 소속 찰스 윌키스 중위 ( Lieutenant Charles Wilkes)는 미 해군성으로부터 항해선단의 선장(Captain)으로 임명받지도 못한 상태로 전대미문의 항해를 하게 됩니다.

측량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찰스 윌키스는 4여년간의 항해동안 그 이전 서구 어느 나라에서도 측량하지 못한 피지군도와 남극 대륙을 측량하고 해도를 작성하는 성과를 거두지만 군인으로서의 오만함과 휘하 선원들을 무자비하게 또 폭군과 같은 스타일로 지휘해 능력에 비해 그의 업적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4년간의 항해가 끝난후 그는 뉴욕에서 열린 군사법원( Court Martial)에 회부되어 그가 행한 지휘가 적절했는지 심판을 받습니다.

능력은 있으나 오만하고 고집불통인 개인적 스타일로 그는 바라던 해군제독이 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긴 항해 이후 그는 자신의 업적을 내보이기 위해 항해일지를 기반으로 공식 항해기를 집필하였고 자신이 지휘한 항해 기간 수집한 남태평양 섬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표본과 식생에 대한 도판들을 전시하는 일에 책임을 맡게 됩니다.

그의 항해에서 수집한 이 표본과 각종 기록들은 후에 워싱턴에 세워지는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품의 근간이 됩니다.
이후 미국은 서부개척시대가 열리고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멕시코와 전쟁을 하게 되어 현재와 같은 서부지역 영토를 확보하게 됩니다.


같이 동행한 과학자들도 이후 식물학, 민족지학 (ethnography), 인류학 (anthropology), 그리고 진화이론(evolutionary theory)등을 선도하는 학자들로 뚜렷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영광의 바다(Sea of Glory)로 미국의 알려지지 않은 ‘영광스런 항해’에 대한 책이므로 한국인의 입장에서 쇼비니즘적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항해를 진행한 배경과 시기에 더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시기는 미국의 아직 열강에 들지 못했던 신생 국가의 시기로 흔히 하는 시대구분으로 남북전쟁 이전시기입니다.

1853년 일본에 전함을 끌고와 강제개항시켰던 미 해군 페리제독 (Commodore Matthew Perry)도 동시대의 사람이고, 거의 동일한 시기에 영국의 찰스 다원(Charles Darwin)이 영국 군함 비글호( HMS Beagle)를 타고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사하던 시기입니다.

1858년 다윈은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원고를 이 항해에 참여했던 과학자 아사 그레이 (Asa Gray)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이 항해를 통해 미국은 후발주자로서 유럽 열강들처럼 자연과학적 지식을 대항해를 통해 축적하기 시작했고 그 기반도 1850년대 설립된 스미스니언 박물관이 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찰스 윌키스가 작성한 남태평양 및 미 대륙 서부의 측량자료와 해도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유일한 해도로서 사용되어 이후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어권에서 대중적인 항해/ 모험/ 해군 관련 서적들은 그 자체로 영어권 국가들에게 과거의 영광에 대한 기록이면서 상당히 제국주의적 성향을 띄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내새니얼 필브릭 (Nathanial Philbrick)도 전미 도서상 (National Book Award)를 수상한 유명한 해양전문 작가입니다. 이 작가의 책들은 대부분 항해의 해양의 역사 분야로 각종 해전 및 항해 관련 서적이 많습니다만 저는 이번에 처음 이 저자의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이후 읽고 싶은 이 저자의 책은 ‘In the Heart of the Sea (2000)’라는 책으로 멜빌의 마스터피스 ‘모비 딕 (Mobi-Dick)’과 관련되어 그가 영감을 받은 실화에 대한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한번 읽으려 했었지만 여건때문에 읽지 못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가졌던 패권을 가져오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9세기 남북전쟁 전후로 미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기에 있어 미국이 어떻게 아시아와 태평양에 영향력을 확대했는지를 알기 위해서 미국의 해양력 확대의 과정을 살피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를 바탕으로 일본을 자신들의 우방으로 끌어들이고 일본의 한국 침탈을 방조하였고, 대륙세력인 러시아와 중국과 충돌하면서 20세기 패권의 향방을 결정지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양의 관련 도서들이 세심한 참고도서 목록과 함께 존재합니다. 여전히 수많은 기밀 문서들이 있겠지만 일단 공식 출판된 관련 도서를 훑어보아도 상황을 복기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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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Breath Becomes Air (Hardcover, Deckle Edge)
Paul Kalanithi / Random House Inc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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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들은 책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책입니다.

다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요절했기 때문에 나오는 드라마틱함이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을 앞둔 저자가 삶과 죽음에 대해 쓴 글이기 때문에 주제 자체가 철학적이고 쉽지 않습니다.

굳이 어떤 형식의 글인가 구분하자면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본인의 일생을 정리했으므로 자서전으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영문학과 과학사/의학사를 공부한 후 의대에서 공부한 저자의 이력이 책에 그대로 담긴 것 같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문학도와 의학도로서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풀어냅니다.

저자는 폐암이 걸리기 전까지 전도유망한 신경외과 의사였고 신경과학자였으며, 실습을 하던 스탠포드 대학병원에서 교수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폐암은 그와 가족들의 삶을 바꿔버렸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는 폐암이 확진되기 전까지의 삶이고, 폐암이 확진된 이후 신경외과 수술을 병행한 초기, 신경외과 수술을 못하게 된 이후 딸의 출산과 암투병기를 기록한 부분이 후반부입니다.

자신의 폐 사진을 보고 더이상 신경외과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10여년 이상 걸어온 신경외과 의사의 길을 포기하는 장면은 보는 이를 슬프게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저자의 부인이 마지막 장에 있습니다.

저자의 부인은 그 자신 내과의사로서 자신의 반려자가 세상을 떠나는 상황과 저자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담담하게 서술합니다.
저자가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가족에게 짐이 되고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저자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모르핀을 맞으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들과 함께 합니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고 말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신경외과 의사로서 수많은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목격했던 저자는 본인이 죽음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자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신경외과 수술이 무슨 의미인지, 가족과 사랑이 무슨 의미인지,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그리고 미래가 없는 자신의 시한부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고민합니다.

삶이란 무엇인지, 육체란 무엇인지, 인생이 살같고 덧없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래도 저자는 자신을 닮은 딸을 낳아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8개월간 자켜보다가 세상을 떠납니다.

자신의 분신이 그래도 세상에 살고 있어서 안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2세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데 아무튼 이분들은 자신들만의 선택을 한 것 같네요.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읽고 싶은 분들은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의학용어를 감내하셔야 합니다. 특히 신경외과 (neurosurgery)에 관련된 용어는 엄청나게 생소해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전반부에 저자가 신경외과 수술을 집도하는 수술 장면은 주로 두개골을 절개하거나 척추 수술을 진행하는 광경을 묘사하므로 가독성이 엄청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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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소개드린 ‘무지개떡 건축 ‘의 이론서인 ‘무지개떡 건축 (2015)’의 탐방 보고서격인 책입니다.

주로 서울의 도심과 외곽지역에 있는 무지개떡 건축물을 답사한 것으로 답사 장소는 종로, 충정로, 홍제동, 용산 지역입니다.

무지개떡 건축이 실용적 의미에서 ‘상가 아파트’라면 서울시내에 남아 있는 상가 아파트들이 위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필연적으로 답사는 이 지역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최초의 상가아파트를 찿아가다보니 이런 답사 경로가 짜여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 상가아파트 건설이 잠시 활발하게 일어났던 시기가 1960년대 후반에서 1971년 정도 되는 짧은 기간동안이었습니다. 하지만 1974년경부터 본격화되는 ‘영동개발’이후 아파트는 모두 근린주구 이론에 따른 단지형으로 바뀌고, 이에 따라 건물의 밀도와 복합도가 낮아졌습니다. 이후 상가아파트라는 건축유형 자체가 유명무실해졌다가 최근의 주상복합아파트의 열기로 관심이 다시 올라가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책은 2017년 출간되어 현재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읽을 때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우선 대도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수직으로 건물을 짓고 복합도를 높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필요하다해도 복합건축의 핵심인 ‘밀집도(density)’ 자체가 전염병 발발의 영향으로 도전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밀집도를 완화하게 되면 무지개떡 건축의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사회역학적 이슈가 경제적 효율성을 우선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효율성을 우선으로 하는 복합건축에 대한 재고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복합화가 불가피하다면 어떻게 거리두기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공간배치가 이루어질 지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재택근무(work from home)이 일반화된다면 현재 단지형 아파트 일변도인 거주공간의 개념도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홍익대 유현준 교수는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일반화되면 더 넓은 주거공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견해를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주장하시고 계십니다.

건축가인 작가께서 개별 건축물 자체에 촛점을 맞춰 건축비평을 하신다면, 이전에 소개해 드린 김시덕 작가님의 ‘서울선언(2017)’, ‘갈등도시 (2019)’는 개별 건축물보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도시, 그리고 현대의 ‘대서울’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던 식민지 시대의 도시계획의 흔적을 찿아본다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좋든 싫든 식민지 시대가 현재의 서울과 수도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인하긴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책의 서두에서 선행연구로 초기 아파트를 연구한 ‘대한민국 아파트 발굴사 (2009)’를 언급하셨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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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작가의 ‘대서울 답사기’ 두번째 편입니다.

작가님의 포인트는 명확합니다: 사대문 안의 남성 지배층 즉 왕족과 양반들의 유물과 유적만 역사기록으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세와 근대 시기를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인 평민, 노비들의 유물 유적도 삶의 기록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학계와 의사결정 계층에서 아직도 ‘조선시대 양반 중심적 사고’를 가진 분들이 지난 100여년간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들을 너무나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식민지 시대의 주택들, 일식 가옥이나 개량한옥들이 단지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또는 식민지 잔재라는 이유로 파괴되는 것은 지난 100여년간 대서울 지역에서 살아온 평범한 이들의 삶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답사도 사대문 안보다 사대문 밖의 대서울 경계지역과 수도권의 경기도 도시들을 포함합니다. 현재도 대부분 서울과 연관되어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사대문 밖에 살고 있고 100여년 전에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편인 ‘ 서울선언(2018)’에서 1936년 출판된 ‘대경성부대관(大京城府大觀)’을 소개하고 영등포와 명동, 용산과 노량진, 흑석동 등 식민지 시대에 일제가 만든 신도시를 소개했는데, 이 지역은 박정희 군사정권이 1970년대 ‘영동개발’하기 이전 현대 서울의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이책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식민지 시대의 신도시 답사기가 실려 있습니다.

또 제가 관심이 가는 지역은 길음동에서 창동까지 이어지는 서울 동북부 지역입니다.

특히 1970년대부터 서울 도심의 철거민들이 동소문 밖으로 이주시켜 만들어진 지역인 미아동, 삼양동 등 삼각산 아래 동네는 제가 유년시절을 보낸 지역이기도 해서 더 관심이 갔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상계동 중계동 지역은 제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확연한 농촌지역으로 끝없이 펼쳐졌던 논밭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시절 1988년 올림픽 이전까지 재개발되어 현재의 아파트단지가 되었습니다. 대학시절까지 창동역 인근의 아파트단지애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지역이고 특별한 산업기능이 없어 현재는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사는 주거지역이라는 점이 이 지역의 특징입니다.

이 책에서 언급한 삼양동과 장위동 지역은 제가 어렸을 때 본 바로는 엄청나게 큰 달동네 지역이었습니다. 장위동 지역은 산동네 전체가 재개발되었습니다.

영등포는 일제 시대부터 서울의 대표적인 공업지대였으나 공장들이 구로 부평 등 서울 외곽지역으로 이전되고 공장부지들이 모두 고층 아파트단지로 재개발되었습니다.

노량진과 흑석동도 아직 식민지 시대의 도시개발계획에 따른 길과 구획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에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 아직도 현대의 서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현대 서울의 공간은 사실상 조선의 영향보다 식민지 시대의 도시계획에 더 큰 영향을 받았고 따라서 식민지 시대의 유산이라는 이유로 현재 서민들의 생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식민지 시대의 건물들을 밀어버리고 순전히 경제적인 판단으로 일률적인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만 짓는다면 한국인들은 그냥 역사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될 뿐입니다.

따라서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식민지 시대와 광복 이후 지어진 옛 건물들을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에 문제가 있거나 주거 또는 상업적 용도로 쓰기가 곤란할 경우가 아니라면 시간의 흔적이 있는 건물들을 잘 관리해서 쓰면 되는데 국민 모두가 토건 산업의 논리에 휘둘릴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울의 역사가’이천여년’이나 되었다고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에서 ‘서울2천년사’라고 관찬 역사서까지 펴내고 있지만 서울에서 1500여년 전인 한성백제의 유적지는 거의 찿아볼 수 없습니다.

삼성동 토성은 1970년대 ‘영동개발’로 흔적만 남기고 파괴되었고, 풍납토성도 일부 유실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전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식민지 시대부터 서민들이 살던 일식 가옥과 개량한옥들이 무수하게 없어졌습니다.

편협한 조선시대 중심 사고 방식에 갖혀 스스로 현대에 살아온 역사의 흔적을 파괴해 왔다는 점에서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의사결정권자들은 자신들의 결정에 책임을 저야하고 앞으로 이런 무자비한 일들은 줄어들어야 합니다.

유럽의 나라에 다녀와서 그 나라 사람들이 옛 건물을 고쳐살고 있는 걸 보고왔다면 한국에서 그런 방식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텐데, 편리한 새 아파트가 좋다고 그 이전 세대들이 살던 주거지를 밀어버리고 재개발을 하면서 ‘서울에 유적이 없’느니 하는 주장을 하는 건 ‘분열적’ 사고방식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작가님께서 책에서 언급하신대로 서울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예전 서울 거리에 사진을 찍으러 나가면 늘 가던 공간의 풍경이 너무 자주 바뀌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놓지 않으면 그 풍경은 영영 볼 수 없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서울은 전례가 없이 빨리 도시화가 되고 도시지역이 팽창된 지역이고 지가 급등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속도를 기록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거주지를 투자와 교환가치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고 거주지의 원래 목적인 이용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몇년전 어렸을 때 살았던 단독 주택을 찿아가 본적이 있는데 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이 재개발로 헐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만 머물러 살 수는 없지만 고향집이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생각보다 상실감이 컸습니다.

‘발전’과 ‘선진화’의 목적이 무엇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단순히 유명한 곳을 찿아가는 답사가 아니고 지난 100여년간 대서울에서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흔적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책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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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Moneyball)에 이어 연이어 읽게 된 마이클 루이스의 스포츠 논픽션입니다.

전작에 비해 ‘경제적 분석’이나 프로스포츠 구단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적은 순수하게 한 미식축구 선수의 삶에 촛점을 둔 책입니다.

글의 대략적인 이야기는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진 흑인 소년이 백인 가족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 프로 미식축구선수가 된 이야기입니다.

미국적이지만 충분히 이목을 끌 수 있는 이야기이고 따라서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책에서 묘사하는 주인공 마이클 오어 (Michael Oher)는 6.6피트(약 2m)의 키에 350파운드(약 160kg)의 덩치를 가졌으면서도 스프린터의 빠른 다리를 가진 타고난 운동선수였지만 양육 능력이 없는 미혼모인 엄마를 둔 탓에 수없이 학교를 옮기고 학업을 할 상황도 아니었고 먹을 것이 없어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던 소년이었습니다.

흑백이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살아가는 보수적인 테네시에서 주인공은 부유한 백인 가정에 사실상 입양이 되어 살게 되고 보수적이고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입양가정의 부모들과 학교의 선생들과 축구 코치들의 도움으로 미식축구를 하면서 대학 진학의 길을 모색합니다.

미국의 대학운동선수협회 (NCAA)는 각 대학에 적을 둔 미식축구선수들이 경기에서 뛰려면 고등학교 성적이 최소 2.86을 유지해야 선발이 될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 책을 통해 안 사실은 미국도 운동에 뜻을 둔 이들이 공부에 담을 쌓은 경우가 많아 주인공처럼 미식축구를 해서 대학을 진학할 수 있는 경우에도 진학이 불발되는 경우가 흔하고 미식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하던 덩치들 중 고등학교 중퇴 뒤 갱이 되거나 마약거래를 하는 경우도 흔하다고 합니다.

아무튼 대학 운동선수들이 자격 유지를 위해 일정 학점 이상 유지하는 규정을 둔 점은 한국의 스포츠계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미식축구의 게임의 법칙을 알려주기도 합니다.

전작인 ‘머니볼’이 프로야구 이야기라서 이해하기가 수월했다면 이 책에 나온 미식축구는 이해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포지션은 공격시 공을 패스하는 쿼터백 (Quarterback)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마이클 오너는 포지션이 레프트태클(Left Tackle)로 쉽게 말해서 가장 중요한 쿼터백을 방어하는 포지션입니다.

특히 쿼터백을 공격하는 공격수들은 쿼터백이 못보는 지역으로 기습공격(blind side)하기 때문에 이를 막는 레프트태클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미식축구 선수 중 레프트태클을 맡을 수 있는 선수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2m정도 되는 키에 160kg 정도되는 몸무게를 가지면서 빠른 발을 가진 선수는 매우 드물기 때문에 점차 몸값이 올라가는 추세이기도 합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경우 대학을 거치지 않고 바로 프로행이 가능하지만 특이하게 미식축구의 경우는 프로로 가기 위해 반드시 대학팀에서 선수생활을 해야한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읽기 불편한 부분은 마이클 오어의 친모에 대한 부분으로, 맴피스 서쪽에 몰려 있는 흑인 거주지역에 대한 묘사와 그의 가족사입니다.

미혼모인 주인공의 친모는 부양능력이 없는데도 다른 남자들과 약 13명의 자녀를 출산했고, 알콜중독과 마약복용으로 재활센터를 드나들었고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했습니다.

고아원과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살아야 하는 이들 자녀들의 삶을 바라보는 건 정말 불편합니다. 미국이 과연 선진국이 맞는지 회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에 코로나 발발과 함께 ‘흑인들의 삶이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캠페인이 왜 유럽과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지 그 이면을 들여다 본 느낌입니다.

이 이야기는 전형적인 미국이야기이고 좋게 보면 역경을 이겨낸 인간승리의 이야기로 볼 수 있지만, 좀 부정적으로 보면 주인공의 남다른 능력으로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다는 뻔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책보다 영화를 보시는 것이 더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배우 산드라 블록이 엄마로 나온 영화이고 미국 남부의 상황을 영화가 훨씬 더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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