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에서 한문학(漢文學)을 연구하시는 정민교수님이 2014년 펴내신 책입니다.
하버드 옌칭도서관(Harvard -Yenching Library)에 수장되어 있는 일본의 동양학자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隣, 1879-1948)가 소장했던 조선과 청국 문인들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고서에 대한 소개를 한 책자입니다.
정민교수는 2012년 8월부터 1년간 이 연구소에 초청학자로 머물며 이 일본인 동양학자가 수장했었던 조선과 중국의 고문서들을 살피고 후지쓰카 지카시 컬렉션으로 하버드에서 모르고 있던 고서들의 가치를 확인하는 서지(書誌) 작업을 하신 셈입니다.
본문만 712쪽 총 40장에 이르는 내용을 이자리에서 언급하는 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한학(漢學)에 문외한인 제 능력밖의 일입니다.
다만 조선후기 역사에서 북학파(北學派)로 불리던 소수의 유생(儒生)들인 홍대용(洪大容), 박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청국의 문인들과 교류하던 열린 문인들이었습니다.
특히 박제가의 경우 그의 글씨와 시문이 베이징의 문인들사이에서 널리 알려졌던 유명인이었고, 그가 써준 여러 글씨, 편액들이 중국쪽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18세기말부터 19세기초까지 연행만 4차례 수행한 것도 매우 이례적입니다.
정권의 주류인 서인의 노론(老論)세력 유림들과는 다르게 청국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워야한다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청국내의 한족(漢族)문인들뿐만 아니라 만주족(滿洲族) 그리고 몽골족 문인들과도 교류하고 배울건 배우는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선과 청나라간 18세기에 일어난 연행(燕行)이라는 외교행사의 이면에서 일어난 양국 지식인들의 인적교류사이고, 그들이 남긴 문집과 주고받은 시를 풀이하여 의미를 알아야하므로 문학사이기도 하고, 같이 건네받은 그림을 추적해야 하므로 한편으로 한중미술교류사이기도 합니다.
청나라는 18세기내내 건륭제(乾隆帝)치하의 성세를 이룬 시기였고, 조선은 학자군주 정조(正祖) 통치기였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이 정민교수님 책으로는 두번째인데, 가장 최근작인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김영사,2022)‘에서 받은 인상이 매우 강렬했기 때문에 두번째 이 책도 읽게 된 것입니다.
해당주제에 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약간의 실마리라도 보이면 관련 기록을 모두 찿아 비교하고 대조하는 모습은 두 책을 관통하는 아카이브 이용방법론이기도 합니다.
분야가 어떻든 특히 역사와 인문학은 과거의 기록물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해석해야하는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자료가 나타나 정설적 설명이 바뀔 수 있는가가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이책에서 읽었던 가장 인상적인 말씀은 요즘 학자들이 담론(談論, discourse)위주의 연구를 많이 하지 사실관계 확인( fact finding)과 같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연구를 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론이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인데 현실을 등한시한다는 뼈아픈 말씀입니다.
지금도 그런현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지식인의 역할이 서구의 담론수입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상황에 대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수입상( 知識輸入商)‘을 지식인으로 착각하는 지식사회에 대한 고언(苦言)이라고 봅니다.
또한가지 인상적인 건 북학(北學)과 북벌(北伐)의 대조입니다.
북벌이 단지 명분론으로서 사실상 군사력이 부실한 조선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의 패배이후 일종의 국책 프로파간다( propaganda)였다면, 북학은 오랑캐라고 하더라도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을 배우자는 자세이므로 훨씬 개방적인 마음가짐을 나타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북학파 학자들은 청국에 있는 문인 학자들을 민족과 상관없이 만났습니다. 상대가 몽골인이건 만주인이건 가리지 않았고 유럽에서 파견한 카톨릭 신부도 만났습니다.
이건 근본주의적 주자학자들인 서인 노론 출신들이 조선사회에서 반상(班常), 적서(嫡庶)차별을 당연시하고 노비를 재물취급하고,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등 변경지방 양반들마저 차별하면서 또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등한시한 체 오로지 이미 멸망한 명나라에 대한 의리(義理) 만을 강조하는 허물뿐인 명분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제 짧은 소견으로 조선은 이런 근본주의적 주자학자들의 허망한 명분집착과 국방 경제력 강화를 하지 않은 것이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집권층인 노론측에서 명분론으로 내세운 북벌론이 조선의 ‘국가보안법’이었다는 설명은 적절해보입니다.
병자호란에서 굴욕을 당하고도 바뀌지 않은 체 군사력도 변변치 않은 체 청국의 팔기군과 대항하겠다는 주장은 정상적인 사고로는 나오기 어려운 황당 그 자체입니다. 북벌의 주장에 대한 연구서는 봐야 알겠지만 일단 제가 아는 한 이것이 정책은 아니었고, 단지 명분론이고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근래 읽은 한문학자들의 연구서들은 제 기대 이상으로 좋은 저서였다는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정민교수님 책은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읽은 한문학자 강명관 교수님의 아래의 저서도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노비와 쇠고기 ( 푸른역사,2023)
명륜동의 성균관이 조선최고의 대학인 줄만 알았지,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이 얼마나 이 기관의 재정지원에 인색했는지를 새삼 알게 되었고, 경제 전공자 입장에선 사대부와 양반들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처신이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쇠고기 도살과 판매를 독점하던 성균관 소속 노비들인 반인들을 성균관이 착취하게 되는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조선시대를 현재의 시각으로만 보아서도 안되겠지만, 이 책을 보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탱하는 구조가 이렇게 착취와 묵인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선은 너무 강고하고 경직적인 신분사회가 아니었나, 그리고 지식인이라는 양반이 고담준론말고 도대체 사회의 후생에 무엇을 기여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