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미원조 -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백지운 지음 / 창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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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한 시기에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책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중국(中國)이라는 아시아 대륙의 대국은 한국의 역사를 통틀어 오랜기간 교류를 해온 이웃나라이자 관계의 부침을 수없이 겪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의 아시아 대륙침략에 맞서 같이 싸운 적도 있었고, 많은 조선인들이 중국의 혁명에 가담하기도 했지만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여하면서 현재 한국에 여태까지 남아있는 중국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습니다.


이 책은 한국인들에게 동족상잔( 同族相殘)의 기억으로 각인되고 , 지금도 어르신들이 ‘6,25전쟁’으로 통칭하시는 한국전쟁을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인이 쓴 한국전쟁의 전쟁사(戰爭史)가 아니라 중국의 TV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재구성된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로서 국가보다 당이 우위에 있는 중국의 정치체계 상 위에서 언급한 모든 영상창작물은 결국 국가기관에서 제작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허구가 섞여있는 드라마나 영화라 할지라도 제작전 사전검열을 이미 거친 것이기 때문에 중국공산당과 최고지도자의 정치적 지침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즉 이 책은 중국이 한국전쟁을 어떤식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각 시기별 변천을 통해 대표작 위주로 평론을 하면서 그들이 각 작품을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중국 지도부의 지침을 같이 제시하면서 이해를 돕습니다.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한국전쟁, 즉 중국입장에서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으로 불린 이 전쟁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변화에 따라 소환되는 방식, 서술되는 방식, 심지어 이름까지 다르게 불렸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0년대까지 중국은 미국을 제국주의자로 인식했고, 한국전쟁을 미 제국주의자와의 전쟁으로 인식했고, 소련과 공조해 공산주의 블럭을 형성한 시기에 한국전쟁을 반미적 시각에서 보았습니다. 미국을 적으로 보고 있으니 반미(反美)적인 시각이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들어 소련의 후루시쵸프가 스탈린의 뒤를 이은 뒤 스탈린 격하운동을 하자, 중국은 소련을 ‘수정주의(修正主義)라고 비난했고 이에 따라 공산주의 블럭이 분화하기 시작합니다. 중고갈등이 터져나오던 시기입니다.

이후 1970년대 들어 중국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시도해 미국과 소련으로부터의 고립에서 탈출하려고 하면서 미국과 적으로 싸운 한국전쟁의 기억은 의도적인 삭제가 불가피해지고 어떤 중국의 공적인 문서(statement)에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지속되면 수많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짓고 운영하는데, 반미논조가 가득한 항미원조전쟁의 이야기를 공적으로 발표하거나 드라마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건 충분히 수긍되는 면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시기부터 노골적으로 중국을 적대하기 시작했고, 바이든 정부 들어 트럼프 정부의 중국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역대 최고조로 올라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미국과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은 중국의 부상과 잠재력을 두려워하면서 심지어 일부 극렬극우주의자들이 인종주의적으로 중국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미국인들을 비롯한 서구인들은 아편전쟁(Opium War ,1840-1842)이후 세계를 이들의 물질문명으로 장악하면서 중국이 서구가 아시아에 모습을 드러낸 15-16세기 이전까지 세계최대규모의 경제력을 가졌었다는 과거를 애써 잊고 싶은 듯 합니다.

아무튼 현재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공급망( Supply Chain) 재편이 진행되면서 미국은 특히 군사전략적인 이유로 반도체의 중국내 생산을 꺼려하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의 삼성과 대만의 TSMC가 전세계 반도체 와이퍼의 거의 15% 정도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동맹을 내세워 한국 반도체 회사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려고 해도 단순히 돈만 투자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한국회사들이 중국시장을 포기할 일도 없는데, 일단 중국을 배제한 세계경제 체제 자체가 불가능할 것 같아 미국과 중국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실제 실현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시진핑주석이 최초로 3연임을 한 중국은 현재 미국과 불화를 겪고 있고, 일부 우파 학자들 중에는 신냉전( New Cold War)시대가 도래했다고 성급히 주장하기도 합니다.

미국을 적대해서 싸운 한국전쟁, 즉 중국에서 항미원조전쟁이 전후 거의 70여년 만에 다시 중국의 공적인 레토릭에 모습을 드러내고, 이 전쟁을 소재로 한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이런 현재의 미중갈등이 그 주요 배경입니다.

미국이 아직도 단일패권국가이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후 지속되온 미국의 헤게모니에 균열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은 이런 미중갈등 상황에서 한국전쟁의 이야기를 소재로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현재의 중국을 만들었는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다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국이 마음에 안들어도 한국 옆에 있는 큰 나라고, 더구나 한국과 특별히 적대할 이유가 없는 나라입니다. 한국전쟁에서 상대한 나라는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라고 인식하는걸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중국을 건드리고 스스로 알아서 적대하고 중국시장에 대한 경제적 이익도 챙기지 못하는 현재 윤석열 정부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다르다는 기본을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아무튼 뉴라이트나 극우 성향 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역사는 한가지로만 쓸 수 없는것이죠. 불편해도 상대가 서술해온 한국전쟁의 역사를 최소 인지는 하고 있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을 가장해서 한가지 서술만 인정하는 건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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渼沙_常水 2023-10-09 1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가치나 신념 또한 편향일 수 있기에 절대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주입되어 알고 있는 그런 주관에서 벗어나 비록 적대했던 상대라는 사실을 감안하고라도 그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는건 흥미롭습니다.
사람이나 국가나 절대악이나 절대선은 없습니다. 불가근 불가원의 적절한 관계가 필요합니다. 일본, 미국, 중국 어떤나라도 자기들의 실리를 우선으로 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이며 그런 실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엎어지는것도 자빠지는 것도 안됩니다. 밀당은 연애에만 소용되는게 아닙니다. 적절한 관계설정이 필요합니다. 친일, 종북, 극일, 반중... 이런 극단적 관계가 아닌 저들을 잘 아는게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평화를 위해 당근과 채찍 또는 매와 비둘기가 필요 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오월동주 할 수 있는 유연하고 노회한 대처가 필요 합니다

Dennis Kim 2023-10-0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국제관계에는 절대적인 적이나 우방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국익이 유일한 판단기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