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을 공부하신 작가 최예선의 세번째 책입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오래전에 ‘청춘남녀 백년전 세상을 탐하다 (모요사,2010)’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막 생기기 시작한 초창기의 저작으로 생각되는데 제 서가에서 잠자다 얼마전 읽었습니다. 이 책이 대체로 알려진 공공건물 위주의 근대 건축유산을 답사하는 경우라면 지금 소개하는 이 책은 촛점이 온전히 가정집에 맞추어져 있고 집에 대한 건축 뿐만 아니라 주거생활, 인테리어, 가구 등도 같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책의 디자인도 대단히 강렬합니다.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살던 운현궁(雲峴宮)의 기와지붕과 운현궁 양관(洋館)이 겹쳐진 흑백사진의 배경으로 보라색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책의 디자인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관을 구성하는 건물들의 현재모습은 직접적으로 일제시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게 현실이고, 한국의 대부분의 서양식 건물들은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일제에 의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소위 ‘근대’라고 불리는 시기의 건물들과 도시계획 등을 살펴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을 이루는 공간과 장소의 기원을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건축물의 경우 궁궐이나 영사관 등 공공건물에 대부분 촛점이 맞춰져 당시 사람들이 실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런 단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일정부분 수행합니다.

총 380여쪽에 이르는 이책은 6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6장과 에필로그는 거의 집에 대한 저자의 수필로 보아도 무방하며, 건축 문화에 대한 역사적인 설명, 당시 문화계, 특히 문인들과 모던 취미 등에 대한 글들은 모두 1-5장을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즉 1920-30년대 일본 유학을 다녀온 조선의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은 양장을 차려입고 입식샹활을 하며 클래식을 축음기로 듣고 커피를 마시며 생활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모던한 생활공간이 필요했고, 이 필요가 도시형 한옥부터 불란서 양관 그리고 문화주택에 이르는 다양한 주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모던한 생활은 곧 서구적인 생활로 인식되어 조선의 고위관리나 귀족들이 그들의 서구취향에 맞춰 대거 서구의 가구를 외국에서 들여왔기, 정동을 중심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호기심어리게 조선의 전통가구를 집에서 사용해 왔다는 겁니다.

전통과 모던의 혼성모방이 일어났고, 이에 발맞춰 종로와 을지로의 가구점 및 서양잡화수입업체들이 호황을 누렸습니다.

1945년 이전까지 주로 경성을 중심으로 운현궁을 포함해 잘 알려진 근대 가옥에 대한 건축 그리고 당시의 문화와 생활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시도한 책으로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씨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자은과모음,2011)’ 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다만 시기가 근대가 아니고 1970년대 후반 이후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환경을 디자인, 문화적 측면에서 다루고 있으며 당시 아파트 인테리어 및 가구 등의 생활문화에 대한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소개하는 이 책이 우리 조부모 세대의 주거에 대한 글이라면 박해천 교수의 책은 국가주의 산업화 시대 주거에 대한 책으로 지금 한국전쟁을 겪으신 우리 부모세대의 주거에 대한 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작가도 산업화 시대 집에 대한 후속작을 펴낼 예정이라고 하니 어떤 글이 나올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일제시대 건축사 및 도시사와 관련해 몇가지 언급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전문적인 영역이다 보니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로 도시답사에 대한 글들이 많지만, 서울의 근대적 도시계획이나 일제가 만든 신도시 영등포, 흑석동 등에 대해서 저는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님의 책을 보고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경성 전도(大京城精圖,1936)에 대해서 처음 본 책도 김시덕 교수의 책입니다. 김교수의 도시답사 시리즈 중 첫번째 책 ‘서울선언(열린책들,2018)’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경성전도에 대해서 책에서 언급했듯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도판으로 출판했다고 했지만 사실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발행부수가 얼마 되지 않아 쉽지 않습니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도시계획 및 일제시대 도시개발역사에 대한 선구자이셨던 서울시립대 고(故) 손정목 교수의 책도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마 최초로 일제시대의 서울 도시개발계획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신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분 책이 대부분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발표되었는데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도시개발계획은 그 자체로 근대화, 경제발전과 연동돼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생각할 수 없는데, 아무튼 선구적 책들이 절판되고 구할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시경관은 사진가들과 인문학자, 문학가들의 관조의 대상이었고 그 자체로 모더니즘의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로서도 현재 서울의 풍경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 또는 도시계획의 입장을 뛰어넘는 사는 장소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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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noa 2024-01-07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모던의 시대 우리집>의 저자 최예선입니다. 책을 꼼꼼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료 구하기가 어렵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근대서울 자료 중 하나인 <대경성부대관>의 내용을
보실 수 있는 링크를 적어둡니다. 근현대 도시에 관심이 많으시니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https://museum.seoul.go.kr/CHM_HOME/ebook/ecatalog.jsp?Dir=67&catimage=

혹 링크가 깨진다면 서울역사박물관>학술자료>발간도서 에서 검색해보시면 다운로드 가능합니다.
연구 자료들이 더 많이 공공화되어야 더 즐거운 연구들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자료들의 바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