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동물 - 동물은 왜 죽여도 되는 존재가 되었나
김도희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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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인권(人權, Human Right)에 대해 무관심한 한국에서 동물의 권리 (Animal Right)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우선순위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책을 보게 된 사실을 고백하는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는육식을 포기하는 비거니즘(Veganism)에 대해 말하지만 여기서는 논평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할 뿐입니다.

다만 육류생산이 공장식 축산에 따라 동물에게도 인간에게도 좋지못한 영향을 끼치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육식주의자들 누구도 항생제에 쩔은 고기를 먹고 싶지 않을 것이고 솔직히 대량으로 가공된 고기가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저 자신이 나름 합리적 사고를 가졌다고 생각하지만 솔직히 동물의 권리는 너무나 낯선 주제입니다.

그리고 책에서 보여주는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현실적인 실행가능성보다는 이상적 추상적 이론적 논의에 그치는 경우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중도적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고 푸코의 생명정치를 일부 이해한다고 해도 솔직히 인간사회를 규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의 주체 내지 행위자로 동물을 집어넣는 게 맞는지 회의적입니다.

인간의 논리가 인간의 언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설령 동물들 나름대로의 의사소통체계와 인간과 다른 언어로 소통한다고 해도, 왜 인간의 규울체계인 법에 행위주체로 동물을 끌어들여야 하는지 회의적입니다. 억지로 끼워맞춘 인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너무 사변적(思辨的)입니다.

책에 나온 동물권 관련한 소송에서 예외없이 판사들이 동물이 법률의 행위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결한 경우도 아마 위의 이런 논리때문일 겁니다.

인간이 생태계에서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과 그들을 인간사회의 규율체계에 끌어들이는 건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생태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이면에서 동물이 착취되어 온 점, 그리고 소수자의 관점에서 여성과 아동 그리고 동물들이 자본주의 초기 수탈을 당했다는 관점은 수긍이 되는 지적입니다. 말하자면 실체가 있으나 ‘말하지 못하게 된 상태’로 잊혀진거죠.

자본축적의 역사는 대체로 남성위주로 기술된 것이 사실이고, 특히 자본주의 초기역사는 백인남성 위주로 기술되었다는데 이론을 제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성들의 가사노동과 자본주의 초기의 아동노동은 어쩌면 초기 자본주의의 치부이기 때문에 논의자체를 꺼린 것도 사실입니다.

역사서술의 주류를 이루는 정치외교사나 전쟁사의 주인공은 남성 그중에서도 왕이나 황제 또는 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사에서 농업이나 초기 산업발달에 있어 말이나 소가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서 논의된 적은 있어도 이들이 어떻게 어떤상황에서 살았는지는 알려진바 없습니다.

서양의 고대전쟁사나 중국고대의 전쟁사를 봐도 몇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있었는지 어떤 전투대형을 이루어 어떤 전술로 싸웠는지는 있으나 얼마나 많은 말들이 희생되고 말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보여지지 않았던 소수자로서 여성과 함께 동물을 호명하는 건 그래서 수긍할만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권보다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으로 고된 삶을 보내는 현실에서 우선순위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생을 위해 동물권이 중요하다는데 동의하지만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인간이 애완견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경우는 최소 없어야 동물권을 위한 논의의 장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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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출판된 이래 개정판이 2015년 출판되어 2024년 현재 출판이력만 10년이 넘은 책입니다.

동양철학자 임건순 작가의 책으로 제가 읽은 2015년 개정판은 본문만 558쪽에 이릅니다.

잘알려진 유가책도 아닌데다 560쪽에 이르는 분량이기 때문에 중국 고대사상에 처음 접하는 분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책에는 작가가 선정한 중요 문구가 해석과 원문이 병기되어 나옵니다. 책의 일부는 분명 일반적인 중국 고전 강설(講說)의 형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저는 묵자(墨子)라는 중국 전국시대 초기 사상가에 대해 이 책으로 처음 접해 솔직히 임건순 작가의 해석에 대한 판단은 내릴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느낀점과 생각한 것을 위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책은 논어(論語), 맹자(孟子) 등 전통적인 유학의 전통과 묵사의 관계를 비교 설명합니다. 따라서 논어 맹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편이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둘째, 묵자라는 사상가는 사회전체의 이익증대에 관심이 많았던 사상가로 계급의 고하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이 제몫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것을 추구했던 사상가입니다. 따라서 사회에 대한 분배정책을 중시했으며 소수의 엘리트가 기득권과 물질적 부를 장악하는 불평등을 용납하지 못한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명분조차 없이 이익을 위해 죽고 죽이던 살벌한 전국시대에 이런 식으로 사회전체의 복리증진을 강조하는 사회정책(social policy)를 강조하는 사상가가 나왔다는 건 매우 놀랍습니다.

셋째, 민주주의와의 유사성입니다.

군주가 통치하는 수직적인 전제왕권을 인정하지만 민중의 의지(즉 민의, 民意)로 대변되는 하늘의 의지( 천지, 天志)가 통치를 정당화합니다. 유교가 하늘의 며, 즉 천명(天命)으류받은 군자의 통치정당성을 주장한 사실과 대조됩니다.

천명이 일종의 숙명 (destiny)혹은 이미 정해진 삶을 의미하는 매우 수동적인 개념이라면 천지는 의지가 들어가 있는 능동적 주체적 개념인 것도 인상적입니다.

민중의 의지가 최고 권력자에게 올라간다는 아라로부터의 하향식 의지 천명이라는 점에서 놀랍게도 민주주의와의 유사성이 발견됩니다.

셋째, 기독교와의 유사성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하늘의 의지가 정치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통치정당화와 매우 유사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히 추정컨데, 기독교의 지식인들이 일찍부터 묵자에 주목했던 건 이런 유사성에 기인한 걸로 추정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추후 읽어볼만한 책 한권을 찿았습니다. 재야 한학자 기세춘 선생과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께서 묵자와 예수에 대해 쓰신 책입니다.

예수와 묵자, 문익환 기세춘 홍근수 지음 (바이북스,2016)

이 책은 기회가 되면 읽고 다시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다른 모든 걸 떠나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이것입니다

義, 利也

의로움은 즉 이익이다. 즉 ‘사회구성원에게 경제적 실질적으로 이롭지 않으면 의로운게 아니다’라는 주장입니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꺼리고 멀리한 공맹의 유학 그리고 조선 성리학과는 대척점에 있는 주장입니다.

묵자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문장은 묵자의 경제적인 사고를 볼 수 있었습니다.

공맹유학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지나치게 윤리와 당위만 강조하고 실질적인 생활의 기반인 농업과 상업을 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묵자처럼 이익을 중시하고 그 이익이 사회전체에 배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봅니다.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소수에 의한 경제력 독점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더욱 더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그 주장이 당시를 넘어 현재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이고 묵자의 경우 사회정책( social policy)자체에 대한 개념도 논의도 결여된 2024년 현재 좋은 가이드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서구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오류를 인정하고 폐기한 신자유주의 경제학( neoliberal economics)를 아직도 고수한체 낙수효과 (trickle down impact)만을 종교적으로 숭상하는 고위공직자 집단과 집권층은 본인들의 이익 수호를 위해 정책을 이용하는게 아닌지 의심됩니다.

특히 경제의 세 주체인 가계 기업 정부 중 사실상 현재 정부는 경제개입의 의무를 사실상 방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정부는 경제에 대한 보도에서 전부의 역할을 은폐하고 잇다고 의심합니다.

묵자가 오랫동안 중국사상계에서 잊혀졌던 이유도 국가의 사회정책을 강조하고 계급보다 능력을 강조하는 급진성때문에 전제정치 체제였던 중국에서 특히 기득권세력들에 의해 경원시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추후 기회가 된다면 묵자라는 텍스트 원문 전체에 대한 주해를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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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이야기 6 - 제자백가의 위대한 논쟁 춘추전국이야기 6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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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원국작가의 ‘춘추전국이야기’ 시리즈를 보았습니다. 시리즈 책을 잘 읽지 않는데 여러 사정으로 근 2년만에 다시 읽기 시작한 책입니다.

전국시대 중국대륙의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나라를 잘다스리기 위한 통치방법에 대해 유세(遊說)하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주장들을 공작가의 시각에서 엮은 책으로 작가 스스로 이 책은 전체시리즈의 ‘별책’에 해당한다고 머리말에 언급했습니다.

중국의 고대 정치철학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중국 고대의 왕들이 어떻게 하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애 대해 저자의 사회로 각 사상가들이 문답을 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따라서 국가(國家)와 통치자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필연적으로 따라 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중국의 정치사상의 관점에서 본 국가론의 개설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같은 사기 서양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인 플라톤의 <국가>와 <법률>을 인용하고 대화의 주체에 끌어들여 국가론의 논의를 더 풍부하게 했습니다.

이 책은 공자의 <논어>가 저변에서 인용되고 있지만 주로 맹자(孟子), 순자(荀子), 묵자(墨子), 한비자(韓非子),장자(莊子)등 사상가들의 논쟁 위주이고 에필로그에서 손자(孫子)와 오자(吳子)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

끝으로 에필로그에서 저자가 정리한 ‘철학과 실용학문의 관계’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세상이 온통 인공지능(AI)과 일자리가 사라지는 우려에 대한 언설로 넘쳐나고, 살길을 어떻게 찿을지 우왕좌왕하는 와중인 이 때 ‘고리타분하게’ 철학이라니 하고 황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철학이 없다면 분석도 불가능하다. 철학이 없다면 전선에서 강령을 세우지 못하고, 강령이 서지 않으면 전략을 펼 수 없고, 전략이 펼쳐지지 않으면 전술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p300).

철학과 전쟁의 관계를 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철학‘이 없어 ’정치‘의 부재(不在)를 촉진시킨 무능한 검찰독재정부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지금, 우리는 철학 부재의 위험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철학이 부재한 고위관료 출신들이 국가를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는 진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책임을 저 본적 없는 이들이 정치를 하겠다고 나와 국가를 사유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즉, 현재 한국사회는 국가가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정부가 역할을 방기(放棄) 한체 국민들에게 각자도생을 강요당하는참혹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에 모두 무지한 대통령은 권한을 남용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반하는 의견을 가진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습니다.

보수의 원류인 유가의 입장에서 봐도, 그리고 부국강병을 최우선으로 하는 병가의 입장에서 봐도 현 한국정부의 극단적인 무능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넘은지 오래입니다.

현대 한국사회와 관련해서 플라톤의 4가지 정치체제 중 한국은 지금 참주제(僭主制; Tyranny)와 가장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인민의 보호자로 등장한 참주는 적수를 모조리 때려눕히고 국가의 조정자가 됩니다. 그 주변의 현명한 자, 용감한 자, 부유한 자를 모조리 제거합니다. (pp320-321, 일부 표현을 문맥에 맞게 조정)

정적을 ‘수사’라는 무기로 묶어놓고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현명한 조언자들을 내치고 고집을 버리는 무능한 현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모습에서 ‘참주제’의 모습을 보는 건 괴로운 일입니다. 정치의 ‘퇴행(退行)‘을 눈앞에서 보게 되다니 말이죠.

플라톤이 ’철학자‘만이 군주로서의 자격이 있다고 한 주장은 수천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용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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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와 21세기 - 1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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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선생이 1999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EBS에서 방송강의한 내용을 묶어서 낸 책이다.
그러니까 나온지 19년이 된 책이다.
다른 책들처럼 집안 서재에 있었던 책의 먼지를 털고 읽게 된 책이다.
난 오래전부터 도올의 책을 꽤 많이 읽어왔는데, 다른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가 잘난체 하고 때로는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책을 계속 읽어온 이유는 아마도 그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가 그 나름대로 동양철학을 진지하게 공부해온 학자라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세상의 기준에 따른다면 그는 강단에서 동양철학을 강의해온 인사도 아니니 사실 재야에 더 가까운 인사고, 그가 말하는 경제에 관련된 부분은 사실 받아들여지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80년대 말부터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언어의 엄밀성을 강조해온 면이나 경전의 텍스트에 대한 서지학적인 접근을 시도한 점이나 금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경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해온 점은 솔직히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나의 경우 그의 책을 읽고 동양경전과 한문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나름 새로운 시각을 맛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책은 총 3권으로 이루어진 김용옥 선생의 노자강의의 첫번째 책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21세기에 노자철학이 필요한 시대적 요청을 서문격으로 소개하고, 노자라는 도가 경전에 대한 서지학적 고찰이 뒤이어 나온다,

요즘 우리가 한문 텍스트로 보는 노자라는 책과 고고학적 발견이 가져다 준 경전의 변화상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리고 노자 제 1장에서부터 6장까지의 주해가 이 책을 이루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노자라는 책의 한문이 어지껏 보아왔던 다른 한문경전보다는 좀더 쉽게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한문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고등학교 때 배운 한문과 일본어 공부하면서 접한 것이 전부임에도 한문을 읽고 저자의 주해를 읽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지난 구정연휴기간에 읽기 시작해 어제 완독했으니 빨리 읽은 편이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서양의 '목적론적 세계관'과 대비되는 '스스로 그러함'을 강조하는 노자적 세계관에 대한 해설이다.

천지와 음양이 순환하는 동양적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아주 요긴했으며, 판본에 따라 다른 한문의 변천에 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억지'를 부리지 않고, '의도'에 따라 자연을 목적론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각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다'고 느끼면서도 그 의미를 생각치 못하고 있었는데, 그 자연스러움에 대해 지어진지 2500여년이 지난 이 고서는 흥미롭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 책은 또한 노자라는 책을 해설한 천재 사상가 왕필에 대한 이야기도 곁들이고 있는데, 그의 노자에 대한 주역을 읽는 것도 큰 재미였다.

언제 이 노자에 관한 해설서 3권을 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 제1권은 노자철학 전반에 대한 해설로는 초심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공자 맹자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이 노자를 먼저 접근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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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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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적 동양철학자 김용옥 선생의 첫 저작입니다. 대학 때 읽었던 책입니다. 중국 및 동양고전 전문가로서 특유의 직설적인 강의를 이 책에서 처음 선보였습니다. 당시에는 그 파격적인 설명방식에 독자들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학문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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