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일본의 프로파간다
기시 도시히코 지음, 정문주 옮김, 조명철 감수 / 타커스(끌레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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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자는 일본의 학자가 미디어와 전쟁의 관계를 1894년 청일전쟁부터 1945년 일제의 패망과 그 이후 연합군의 일본 점령통치시기까지를 연구한 책입니다.

즉 메이지유신(1868) 이후 제국 일본이 대외전쟁을 수행할 때마다 국민들에게 어떤 미디어를 동원해 전쟁열 (戰爭熱)을 고조시켰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미디어를 이용한 선전전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최근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 전쟁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총력전 체제에 접어든 1930년대 전쟁을 위한 프로파간다의 정점을 찍었고, 일제의 군부는 모든 종류의 미디어에 대한 사전 검열과 사후 검열을 단행했습니다.

최악의 군국주의 체제를 언론 검열 및 통제를 통해 이어가고자 한 겁니다.

이 책에는 일제의 미디어 정책과 선전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쟁 상대국이었던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침공하고 점령했었던 대만과 만주국 그리고 몽골에서의 선전전 상황도 나옵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천황제 군국주의 국가의 미디어 통제정책을 보면 독재국가에서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얼마나 억압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민간신문의 보도사진 기자들이 결국 모두 군부에 소속되어 군부의 명령과 검열에 따라 내용과 형식 모두를 통제당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보도검열과 관련해 현재 한국의 상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직 검사출신 대통령과 육사출신 경호실장( 후애 국방장관)은 ‘입틀막’으로 대변되는 비판세력 탄압을 공공연히 벌여왔습니다. 정권의 정책을 비판하는게 언론의 본연의 임무인데도, 무지해서 이를 모른체 TBS방송을 거의 파산지경으로 이끌었고, 검찰출입기자출신 방송문외한을 KBS사장에 앉히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언론의 자유인데 검찰주의자이자 친일극우 독재자인 대통령은 스스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왕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 사법적 탄압을 해온 야당이 계속 정부인사들과 검찰권을 남용한 검사들을 탄핵하자 이를 빌미로 지난 12월 3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2시간 이후 소위 비상계엄은 해제되고 내린을 일으킨 대통령은 아직도 현직에 있습니다.

속히 내전상태가 종식되고 주모자에 대한 법적처벌이 있어야 합니다.

독재적 대통령의 고리는 이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총력전체제의 군국주의 제국일본이고 대통령주위의 뉴라이트 인사들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의 후예들을 포함한 일본극우와 동일한 생각을 가졌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부인하고 한국의 후진성을 인정하는 이들입니다. 더구나 검찰은 일제가 만든 조직으로 모르긴 해도 오랜세월 조직문화 자체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긍정하도록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도 천황제를 폐기하지 않은 일본은 근대적 민주주의 국가로 보기 어렵습니다.

중일전쟁 당시 미디어를 통제하고 검열하는 일제의 정책은 만주국 장교출신 군사독재자 박정희도 따라했고, 박정희를 추종했던 12.12 군사내란의 수괴인 전두환도 따라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출신 독재자도 따라하고 언론을 탄압했습니다.

민주주의를 모르고 타인과 대화하는 법을 몰라 무력을 동원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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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집인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일본의 극우까지는 아니어도 일본 보수세력의 지식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정도는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한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대놓고 ‘친북’이라고 주장해 놀랐습니다. 북한과 대화를 추구한게 친북으로 불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극히 일본적인 사고방식으로 쓰여졌고, 전근대적인 천황제를 고집하는 극우 아베 정권의 민낯도 볼 수 있었습니다. 최소 헤이세이라는 시기를 알기 위해 첫째로 볼 책은 아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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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내용의 책이 출간되어 소개합니다. 역사학자 김종성씨가 2024년 출간한 책으로 그동안 소홀하게 취급되어온 친일파(親日派) 매국노(賣國奴)들이 그들의 부역행위로 얼마나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었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입니다.

친일 매국의 아이콘 이완용(李完用)을 비롯해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화신백화점(和信百貨店)의 사업가 박흥식(朴興植)에 이르는 30명 친일파 매국노들의 친일행각과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를 기존의 연구를 인용해서 정리해 놓았습니다.

흔히 말하듯 이들이 대중에게 ‘친일은 일제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라는 주장과 다르게 이들은 철저하게 ‘경제적 이득( economic benefit)’을 고려하고 이를 감안해 돈을 벌 목적으로 친일을 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것입니다.

이렇게 제국일본이 친일파의 도움이 필요했던 이유는 조선 전체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상태가 아니었고, 러일전쟁이후 외교권을 침탈하고 이후 한일병합을 실시한 이들의 조선 식민지화 정책 때문에 대한제국 황족을 비롯해 대한제국의 고위관료 기득권 층을 친일파로 포섭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국일본은 자신들에게 협력한 친일파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주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주었습니다.

이책에 나온 거의 모든 골수 친일파들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자문기관이자 현재로 치면 국회기능을 한 중추원(中樞院)에 적을 두고 고액의 연봉을 받아왔고, 대한제국을 팔아먹은 뒤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은사공채(恩賜公債)를 받아 거액의 이자를 따박따박 받아먹었던 겁니다.

책은 저자가 오마이뉴스에서 연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으로 30장이 모두 짤막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이전 한국정부에서 실시한 대통령 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가 친일파들의 친일 행위를 역사에 기록하는 중요한 연구자료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하나 중요한 연구자료는 민족문제연구소가 1994년부터 진행해온 <친일인명사전> 으로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식민통치를 찬양해온 친일파들에 대한 사전입니다.

한국은 해방직후 미군정이 친일관료들을 그대로 존속시키고, 이승만 대통령도 사실상 반민특위를 방해하고, 친일파들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어 친일파들이 아직도 한국사회의 기득권층에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법조계는 친일의 영향력이 막강한 곳으로 이 책에 따르면 해방이후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閔復基)씨는 친일파이자 외척이던 여흥 민씨이며 민병석(閔丙奭)의 아들로서 그 자신 친일판사로서 경성지방법원에 근무한 이력이 있습니다. 일제시대 판검사는 여타 다른 분야와 다르게 고등문관시험 합격이후 일제의 사상검증을 통과해야 임용되는 구조였기 때문에 검증된 친일세력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검찰 기득권의 뿌리인 기소권과 수사권 독점도 일제시대의 유산인 이 두 권한을 해방이후 70여년이 지나도록 검사들이 방어해서 그대로 둔 것으로 검찰권 남용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만주 관동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이 일제강점기 제국대학 출신 관료들을 임용하고, 일제 당시 제2차세계대전의 전범이었던 당시 수상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를 통해 차관을 들여와 경제개발의 시작을 알리면서 해방이후에도 친일파들의 영향력은 이 사회에 막강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일본의 밀사가 청와대에 직접 방문하기도 했고, 당시 청와대를 자문하던 소위 사회원로라고 하신 분들이 자신들이 일본어로 아직도 대화한다는 언급을 들어 매우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일본의 돈으로 일본에서 공부한 아버지를 둔 검사출신 대통령과 검사를 아버지로 둔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외교안보실장이 노골적 친일외교정책을 추구하는 현실이 너무 황당합니다.

일본과 다른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진 한국의 역량을 무시한체 스스로 한미일 관계에서 낮은 자리를 찿고, 전범의 후손들인 일본 극우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또는 ‘사과를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는 둥 몰상식한 주장에 동조해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한 체, 일제의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국가배상(國家賠償)도 없는 일로 하는 노골적 친일행위를 어떻게 지켜봐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대통령의 무지와 역사적 청산이 되지 않은 체 남아 있는 친일세력들이 ‘역사의 퇴행’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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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계승범 교수님께서 최근 펴내신 책입니다.

저자께서 밝혔듯이 이 책은 이전의 연구논문들을 모아서 펴내신 책으로 조선 중기이후 조선사대부들을 집어삼켰던 이데올로기인 사대주의(事大主義)특히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원군을 보내 조선을 구했다고 여겨 명나라를 아버지로 조선을 자식으로 생각하는 부자관계로 보는 강상(綱常)의 의리가 양국의 외교관계를 규정지었고, 이는 또 근본주의적 성리학을 신봉하는 조선이라는 나라와 지배엘리트인 양반사대부들의 정체성(identity)를 규정해 대청제국과 새로운 관계를 전혀 정립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자들의 이런 강고한 이데올로기가 피할수 있었던 전쟁인 병자호란을 피하지 못한 원인이었고, 조선은 청나라에게 삼전도에서 항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광해군이 선조의 마지막 왕비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켜 강상(綱常)의 의리를 저버렸다는 명목으로 반정을 일으키고 집권한 인조는 반정의 명목이 무색하게도 아버지인 명을 버리고 짐승처럼 여겨지던 오랑캐인 여진족인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항복의 예를 다하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근본주의적 성리학자들인 사대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고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일이 발생한 것이었고 수직적 계급사회였던 양반사대부들은 사회의 기강이 무너져 그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칠까봐 매우 두려워한 상태였습니다.

중국 한족입장에서는 동쪽의 오랑캐(東夷)일 뿐으로 여겨진 조선이 스스로 소중화( 小中華)를 자처하고 이미 민주족이 중원을 장악한 중국에서도 중국문화전통이 이어지지 않아 조선만이 중화의 후예라고 자처한 인식은 너무 과도한 근본주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제활동과 군사력 증강을 소홀히 여기고 윤리와 명분만 중요시 여기는 심약한 척화주의자(斥和主義者)들이 경전이나 인용하면 허황된 논박을 이어가는 사이 배고픈 백성들은 굶어죽고 전쟁터에서 포로로 끌려가는 일이 흔했습니다.

제가 보기엔 조선은 일 안하는 세습귀족인 양반과 경제활동과 군사력 모두 감당해야 하는 평민들로 갈라진 사실상 두개의 사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현재의 기준으로 조선중기사회를 평가할수는 없지만 분명히 힘을 잃어가는 나라인 명나라에 대한 의리만 강조하고 중국의 현실적 지배자인 만주족의 청나라를 오랑캐로 취급하며 상대하지 않는 처사는 분명히 이상한 처신입니다. 더구나 전쟁을 하면 질줄 알면서도 전쟁불사를 외치는 상소를 한다는 건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이 책에는 힘이 없어 오랑캐로 여겨온 청나라에 굴복을 한 뒤 조선의 사대부들이 청나라에서 보내온 국서의 내용을 위조(僞造)하며 대명사대주의를 끝까지 고수하려는 안타까운 역사왜곡, 기억조작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현실적 준비를 게을리해서 나라를 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만들어놓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료의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합니다. 헛된 명분없이는 권력도 유지하지 못할만큼 무능했다고 평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계승범 교수님은 조선중기 광해군, 인조 시기에 대한 책을 여러권 쓰셨는데 제가 읽었던 몇권을 소개합니다.

모후의 반역(역사비평사,2021)

위에서 언급한 인목대비유폐와 인조반정에 대한 책입니다.

중종의 시대(역사비평사,2014)

조선이 어떻게 유교국가가 되었는지를 고찰한 책입니다.

그리고 책후반부에 언급한 대보단(大報壇)과 19세기까지 이어진 대명사대의식에 대한 책도 있습니다

정지된 시간: 조선의 대보단과 근대의 문턱 (서강대 출판부,2011)

위의 책을 읽으면서 명나라가 망했는데도 대명사대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청나라 몰래 명나라 군주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조선의 지배층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19세기 말인 고종 당시까지 제사가 이어졌다는 사실에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군주에 대한 충성은 바뀔 수가 있고, 시원찮은 군주는 백성의 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는 정치사상이 유교입니다. 특히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인정한 맹자같은 선진유교(先秦儒敎)의 관점에서 볼때 근본주의적 성리학(性理學)은 너무 사변적이고 경직적이며 지나친 윤리학이라는 생각입니다.

현재 유교경전에 대한 해석도 주자성리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각주본이 나오는 게 이런 성리학의 경직성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병자호란과 척화파의 명분론을 읽게되면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답답한 마음이 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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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가 시작된 이후 한세대(30년)가까이 지나다 보니 1990년대를 평가하는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멀지않은 과거로서 역사적 평가가 이루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이 책은 이미 한국에서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90년대:깊고도 가벼웠던 10년간의 질주(온워드,2023)

1990년대를 청년시절 경험한 X세대(Generation X)로서 제가 즐겨들었던 음악과 영화에 대한 내용을 보는 건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특히 한때 영화를 즐겨봤던 사람으로서 퀸텐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의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1992)‘과 ’펄프픽션(Pulp Fiction,1994)’에 대한 평가를 보게 되어서 입니다.

특히 ‘펄프 픽션’은 폭략과 함께 나타나는 B급정서를 나타내는 영화로 이미 한물간 스타로 알았던 존 트라볼타의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입니다. 당시 신인이었던 우마 터만과의 댄싱장면이 가장 많이 생각납니다.

이전과는 다른 소위 매니악한 정서가 나타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개봉이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입니다.

두번째 영화는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The Matrix,1999)’ 입니다. 이 영화도 비디오로 수십번씩 보았던 영화로 SF의 표피를 가진 블록버스터이지만 헐리우드 메이저 영화로서 노골적으로 홍콩 쿵푸영화를 오마주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Reality)가 무엇인지 메시지를 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 꿈일수도 있다는 , 어쩌면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입니다.

모르고 지나쳤지만 1990년대는 완전한 아날로그 세상에서 디지털 세상으로 옮겨가던 시기였고, 책에서 언급하듯 X세대만이 디지털이 없던 아날로그 세상과 가상현실이 존재하는 디지털 세상을 살아본 세대로서 아날로그로만 살아온 베이비부머(Baby Boomer)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세상을 살아온 밀레니얼 (Millennial)을 연결해줄 수 있다는 분석에 공감합니다.

1990년대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무너지고, 신자유주의의 서막을 알리던 시대로서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가 만들어진 시대이며, 미국 국내적으로 콜롬바인 고교 총격사건과 오클라오마 연방빌딩 폭파사건이 일어난 시기이며, 미식축구 선수 출신 방송인 O J Simpson 재판으로 미국 사회가 술렁이던 때였습니다.

또한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 (Machael Jordan)이 시카고 불스와 함께 전성기를 이끈 시기였고, 농구화 Air Jordan 이 출시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지나도 그를 능가할만한 농구선수가 없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미국 국내정치적으로는 클린턴 미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과 미 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된 클레런스 토마스의 성추문 관련 청문회도 미국 정치를 뒤흔든 시기였습니다. 르윈스키 스캔들로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impeachment)의 위기까지 몰렸지만 대통령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1990년대의 사실상의 종료가 2001년 9/11테러로 종결되었다고 보았습니다.

21세기의 첫해인 2000년 당시까지도 미국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였고, 인터넷의 영향력이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습니다.
전국적인 네트워크 방송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고, 아직 모든 상황을 이분법적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11이후 적 아니면 동지로 그외의 선택은 생각할 수 없는 세상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현재의 미국을 만들게 되었다는 의견입니다.

책 내용은 저처럼 그 시대를 직접 목격한 이들에게는 어렵지 않지만 경험을 못한 이들에게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의 사회 문화 정치 전반에 걸친 다양한 주제를 커버해서 평소 대중음악이나 영화에 관심을 가진 분은 읽기 편할 듯 합니다.

이 책의 후반에 나오는 2000년 대선은 미국 정치역사상 유래가 없는 대접전이었고 플로리다주의 개표에 대해 결국 미 대법원의 판결로 아들 부시가 알 고어를 이기고 당선되었습니다.

알 고어 전부통령이 부시의 승리를 인정해서 일단락 되었지만 사실상 두 사람 중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었다는 평가도 상당합니다. 제가 아는 한 대통령선거가 법원판결로 결정된 사례는 이 선거 말고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미국의 오래된 대통령 선거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이후 아들 부시대통령은 미국 군수업체를 대표하는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일으키고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이라크에 민주주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미명하에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했고, 10년넘게 지속된 전쟁은 이 지역을 무정부 상태로 만들게 되어 사실상 실패한 전쟁수행으로 남게 됩니다.


아버지 부시부터 클린턴 그리고 아들 부시 대통령 시기가 신자유주의의 극한 전성기로 규제완화(deregulation)을 통해 금융기업들이 실물경제와 관계없이 부를 독점하는 현상이 장기지속되어온 저금리현상과 함께 지속됩니다.

이 모든 거품은 2007년 금융위기로 터지게 되고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이론적 정책적 정당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 2024년 현재는 그 직접적 영향을 1990년대에서 받고 있습니다. 네트워크 컴퓨팅,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인터넷의 상용화는 이시기에 시작되었고, 여기서 촉발된 플랫폼 경제체제가 경제를 넘어 정치와 사회질서까지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멀지 않은 과거지만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1945년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이 전후 미국의 달러 중심 세계체제를 재편했고 소련과 냉전시대에 들어갔다면, 1990년 소련의 붕괴와 신자유주의를 앞세운 세계화가 역사를 바꾼 중요 변곡점이었습니다. 이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중국의 부상을 목격하면서, 그리고 그 부상을 억제하려는 예전같지 않은 미국을 보면서 또 한번의 역사의 변곡점을 마주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미국은 애써 중국이 근대이전 대륙의 헤게모니를 틀어쥐었던 강국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에 대한 여러 정보가 넘쳐나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드문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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