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굉장히 오랜시간에 걸쳐 책을 읽게 된 경우입니다.
중간에 다른 책을 읽느라 왼독이 늦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2025년 8월 28일 백창민작가를 초대해 북토크를 진행했던 연남동 책방곱셈에서 샀습니다.

거의 일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 이제서야 책에 대해 쓰게 되니 좀 미안한 마음도 드네요.

전체적인 평가를 우선 하자면, 한국 도서관계에 일제와 친일의 영향이 상당히 남아있다는 점과 박정희/ 전두환에 걸친 군부독재 시절 학술과 문화의 척도인 도서관을 소홀하게 취급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도서관을 소홀하게 취급한 대표적인 예가 국립중앙도서관이 받은 푸대접입니다. 1970년대까지 서울의 도심 소공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국립중앙도서관이 박정희 군부에 의해 남산으로 쫓겨난 사례는 차라리 코미디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도서관을 ‘열람실’혹은 ‘독서실’취급하고 폐가식으로 운영하던 당시의 실태를 보면 당시 군부는 국민들이 도서관에서 배은 지식으로 정권을 위협하는게 몹시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그 시작이 해방후 국립도서관이고 일제 때 조선총독부 도서관이기 때문에 초기 도서관 사서들의 경우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조선총독부에서 관료를 지낸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제국대학 출신의 검증된 친일파인 경우가 상당수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의 최고 도서관이라고 하는 국회도서관의 경우, 국립중앙도서관과 함께 양대도서관인데도 관외대출이 되지 않는 운영방식이 상식밖이고, 더구나 국회의원들이 잘 이용하지도 않는다고 하니 세금들인 방대한 자료들을 활용을 못하는 대표적인 국가자원 비효율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저같은 사람들은 국가가 지원하는 도서관 시설조차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면 집권세력과 정부조직은 뭐하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그래도 복지수준이 처참한 나라에서 유일한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도서관의 이용만큼은 좀 더 개방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서구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도서관 서비스는 질이 낮습니다.

대학도서관이든 공립도서관이든 미국에서는 20권 정도 대출받는 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5권이 최대 대출수량입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건 교육청 도서관과 구립도서관의 새 책을 구입해서 대출해주는 서비스의 상한이 3만원이라는 점입니다. 학술서나 연구서의 경우 3만원이 넘는 경우가 허다한데 국민들은 이런 책 읽지 말라고 부추기는 것도 아니고.

도서관은 국민들의 문화복지 차원에서 고가의 양서를 마음껏 빌려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황당한 경우는 ‘공공도서관’성격의 교회도서관인 명성교회 도서관이 ‘세습’된 경우입니다.

‘극우’목사들의 어처구니 없는 전횡이 정치적 측면에서 이미 ‘사회악’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강동구에 있는 대형교회인 명성교회에 세습이 진행되면서 그 부속 도서관도 세습되는 몰상식한 사례입니다. 반공자유주의를 외치며 민주주의가 자신들만의 소유인 것처럼 오만하게 굴면서 북한을 적대시하면서 북한처럼 권력을 세습합니다. 자기부정을 부끄러움없이 저지르는 대형교회 목사들을 보면 황당함과 분노가 같이 일어납니다. 웃긴 건 이들이 주장하는 아무것도 성경과는 무관한 것이라는 점이죠. 대형교회는 ‘종교기업’이라고 봅니다. 종교를 참칭하고 종교를 일상적으로 모욕하는거죠.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고종의 도서관인 경복궁 집옥채와 덕수궁 중명전의 장서가 사라진 경우입니다.

고종은 조선에서 재위기간이 매우 긴 왕이었음에도 조선말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 앞에 무력한 왕이었고, 개인적으로도 부인안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참살당하는 아픔도 겪었지만 끝내 국권을 빼앗겼기 때문에 평가가 결코 좋을 수 없는 왕입니다. 그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장서를 모았던 그의 왕립도서관 도서들이 격변을 맞아 흩어지고 사라지고 불탄 사실이 매우 안타깝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도서관과 관련된 한국 근현대사를 두루 소개하다보니 일제시대 제국 일본의 문화정책과 일본에 협력했던 친일지식인/관료들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고 한국전쟁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시대를 거치며 아직도 일제의 영향하이 있었던 폐쇄적이고 부실한 도서관 정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에도 일제의 영향은 1980년대까지도 유효했습니다. 당시 고위관료들 중에 일제시대 제국대학을 나온 이들이 현직에 있었고, 학교에서도 일본의 대학을 대단하게 생각했던 기억입니다. 특히 국문학이나 한국사의 경우는 현재도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박정희의 경우 자신이 일제 만주군 장교 출신이고 2인자 김종필은 일본육사를 나온 인사이가 때문에 박정희가 실행했던 경제개발계획이 대체로 만주국에서 시행했던 것의 복사판이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도서관도 예외가 아니어서 폐가식 운영에 공부방인 열람실울 운영하는 체제가 아직까지도 운영되고 있죠. 정작 일본은 패전이후 미국식으로 도서관 운영체제를 바꿔 열람실을 없애버렸는데 말이죠. 역설적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 중 몇가지 관련 도서를 소개합니다.

제국대학출신 한국의 엘리트에 관해서는,

정종현,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 2019)

를 소개합니다. 한국의 경제개발 초창기 엘리트들의 뿌리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연구서로 역사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연구입니다.

군부독재시절 ’근대화‘의 만주의 영향/기원 관련해서는,

한석정, 만주모던 ( 문학과지성사, 2016)

을 소개합니다. 박정희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경제개발계획이 사실 만주국의 계획을 배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박정희 당시 고위관료 중에는 만주국에서 일했던분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에 관해 한마디하려 합니다.

저는 이 노정객이 한국전쟁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한국계 미국인( Korean-American)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고종시절인 구한말부터 살아온 이이기 때문에 전근대적인 조선의 전제정치( 왕정)의 인식을 1950년대까지 가지고 있던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제를 싫어했지만 자신을 왕으로 여기던 전제정치 인식은 그의 배움과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린스턴에서 박사를 받으면 뭐하나요. 하는 행동은 전제군주처럼 행동했는데요. 그는 이땅에서 민간인으로 독재정치를 처음 도입한 독재자입니다. 민주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4.19 혁명이 일어난 원인도, 막걸리선거라고 칭해지던 1950년대의 금권선거도 설명이 안됩니다.

애석하게도 한국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1945년 해방이후 42년 후인 1987년에야 가능했습니다. 그 이전은 이승만의 독재시대,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의 군부독재가 이어졌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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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ll of Heaven: The Pahlavis and the Final Days of Imperial Iran (Paperback)
Andrew Scott Cooper / Picador USA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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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출간된 이 책을 읽은 건 다분히 지난 2월 말 시작된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의 영향이 큽니다.

과거 페르시아 제국이었던 이란이라는 국가는 막대한 자원의 양과 이슬람에서의 위치 그리고 지정학적 중요성을 여러 방송을 통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있었지만, 영미권 학자들이 쓴 책 몇권 읽은 것이 전부인 저로서는 다가가기 어려운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이란과 미국/ 이스라엘의 전쟁을 계기로 이란의 현대정치사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나뉘어 있고, 이슬람 근본주의자( fundamentalist)인 호메이니(Khomeini)를 추종해서 일어난 1978-79년의 이란혁명(Iranian Revolution)은 2부에서 자세하게 다룹니다.

이 책의 1부는 이란혁명 당시 이란의 왕이었던 레자 팔레비(Reza Pahlavis)가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 팔레비 왕의 선왕이 어떻게 쿠데타를 일으켜 이란의 이전 왕조를 무너뜨렸는지, 그리고 팔레비왕이 어떤연유로 두번이나 이혼을 하고, 이란혁명 당시 왕을 보좌한 파라 (Queen Fahra)와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팔레비 왕이 이란을 현대화시키고, 이란의 석유산업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생각했는지 등이 나옵니다.

이슬람 혁명이전 그냥 전제왕정이던 이란은 그래서 왕이 사는 궁전에 근무하는 궁인(Courtier)과 정부에서 일하는 관료(Technocrat)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극에서 처럼 말입니다.

이 책을 보고 처음 안 사실인데, 이 책에 등장하는 상당수의이란의 파워엘리트들도 다른 중동국가처럼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프랑스의 영향이 두드러집니다. 어려서 스위스출신 보모의 보살핌을 받았던 팔레비 왕은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녀 불어 능했고, 파라 왕비도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하다가 팔레비왕과 결혼한 경우입니다.

이슬람혁명이후 이란을 떠나 팔레비왕과 파라왕비는 이집트에서 망명생활을 했고, 팔레비왕이 이집트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이후에는 프랑스에서 살았습니다.

팔레비왕의 장남이던 레자 황태자(Crown Prince Reza)는 왕이 되기 위한 수업때문에 미국에서 공군장교로 교육을 받았으나 이란혁명이후로도 계속 미국에 머물게 된 경우입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전개되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레자 팔레비 황태자를 언론이 거론하게 되자 수십년 만에 팔레비라는 이름이 미디어에서 보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1970년대의 중요한 경제적 사건 중 하나인 오일 쇼크(Oil Shock)를 다루지 않을 수 없는데 세계경제를 충격에 빠뜨린 두 사건이 모두 이란의 팔레비왕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1973년 오일쇼크는 팔레비 왕이 서구세력의 석유증산 압력에 맞서 석유를 무기로 감산을 해서 일어난 경제충격으로 그 이전까지 이란의 석유생산을 좌지우지하던 유럽열강에 대항하기 위한 의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반면 1979년의 2차 오일쇼크는 팔레비 왕조를 타도하고 이란에 신정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호메이니를 따르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석유생산공장에서 파업을 해서 일어났습니다. 팔레비 왕실의 주수입원이던 석유 생산을 줄여 타격을 가할 목적이었습니다.

이 두번의 오일쇼크로 충격에 빠진 세계경제로 인해 그리고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이란에서 일어난 미국인 인질사태로 민주당 출신 카터 대통령이 실각하고 1980년대에 공화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규제완화에 시동을 걸며 신자유주의가 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이란의 미국대사관과 국무부는 호메이니가 단순 성직자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인사이기 때문에 그가 이슬람근본주의자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팔레비 시절 이란은 서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로운 나라였고,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뿐만 아니라 휴양지에서 비키니도 입는 매우 개방적인 나라였습니다. 미국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이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에 신정체제가 들어서고,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로서 이스라엘과 대립각을 세우고, 핵계발을 시작하고 우라늄을 농축하자 이란에 대한 경제적 제제를 하기 시작했고, 위태하던 미국/이스라엘-이란 관계가 호전적인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를 통해 전쟁에 이른 것입니다.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가 요즘처럼 공허한 적이 없는데 전제왕정체제인 중동국가들이나 왕노릇하려고 대통령이 된 듯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군인출신인 네탄야후 이스라엘 총리가 가자지구의 민간인을 학살(genocide)하면서 그지역을 초토화시키고, 이어서 이란의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이 테러리스트라고 하면서 무차별 공격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얼마전 있었던 홀로코스트(the Holocaust)추모일에 유태인들의 학살은 추모하면서 이스라엘의 유태인들이 가자지구에서 학살한 팔레스타인인들은 그냥 죽어도 되는 것인지 유태인의 위선을 요즘처럼 적나라하게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이스라엘-가자전쟁이 일어났고,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했습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이어진 30여년의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가고 이제는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어색하지 않은 ‘전쟁의 시대’가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콜럼비아대학의 제프리 삭스교수는 제3차세계대전이 이미 시작되었다고까지 주장하기도 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과연 언제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지, 시기만이 문제라고 합니다.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껄끄러운 일본과 미국보다 한국을 경제파트너로 삼을 수 있다고 러시아 전문가들이 주장합니다.

석유의 공급노선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고, 앞으로도 이란이 협상카드로 쓸 가능성이 있게 되자 러시아와 중동이외의 자원의 전략적 중요성이 켜졌습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이미 코로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었습니다.

이란과 미국이 왜 그렇게 철천지 원수가 되었는지, 이스라엘이 이란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그 대답의 실마리를 이 책에서 일부 찿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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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벨기에 출신 학자가 ‘나무의 나이테’로 과거의 역사( 자연사와 인간의 사회사)를 설명하는 학문인 Dendrochronology(Dendro: 나무/ Choronology:연대기)에 대한 입문서입니다.

저자는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래된 고목의 나이테를 읽어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는 전문가입니다.

따라서 저자의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의 기후현상, 즉 가뭄(drought), 홍수(flood), 폭풍( Hurricane) 그리고 17-18세기에 있었던 소빙하기(the Little Ice Age),전염병의 창궐 등을 접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회경제사에서 만나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사실은 당시의 기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중국 명나라를 멸망시킨 요인 중에서 16세기 말에 발생한 4년간의 심각한 가뭄으로 식량부족이 일어나고 기아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는 혼란이 일어났고, 사회불안과 경제적 파탄에 이르러 전체인구의 40%가 줄어드는 비극이 일어나고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p176).

위의 예는 과거에 일어난 제트기류(Jet Stream)의
변화를 이야기하다가 ‘열대의 확장(tropical expansion)’현상을 설명하다가 나온 역사적인 예입니다. 이 현상은 심각한 가뭄과 식량부족과 그에 따른 사회혼란을 결과적으로 가져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역사적인 기후를 나이테를 읽어 복원하는 이유는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는 산업혁명이후 대기에 누적된 탄소의 영향과 그에 따른 기후변화( climate change)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향이 있기 전 기후상황을 비교하기 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환경과 기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순수한 자연적인 요인에 의한 과거의 기후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요.

책은 나무의 나이테를 읽어 과거를 복원하는 과정을 설명할 뿐 아니라 빙하의 얼음의 성분을 분석해 과거의 기후를 분석하는 빙하학과 산호와 종류석의 나이테를 읽어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는 사례를 소개하는 등 상당히 전문적인 내용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책 뿐만 아니라 최근 과학관련서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이 둘이 별개의 학문이 아니고 결국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인문학 분야로 알려진 고고학에서 연대측정을 하는데 탄소를 이용한다든지, 고대 유물에 사용된 나무의 나이테를 이용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그 예입니다.

책은 매우 얇습니다. 본문은 210쪽에 불과하고 총 16장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은 2021년에 한국어판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발레리 트루에 지음, 조은영 번역( 부키,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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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의 일본의 출판자본과 일본/ 식민지 조선의 독자와의 관계를 다른 흥미로운 책입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독자들 중 실제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독자는 매우 소수였고, 국민 대부분이 문맹인 상태에서 일본의 거대 출판자본이 자국과 식민지 조선에 어떤 기획과 광고로 자신의 ‘상품’을 선전하고 시장을 확장해 왔는지 다룹니다.

일본의 출판사 사장이나 편집자 입장에서는 1910년대 후반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일본과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열풍이 이는 것을 지켜보고 지식 상품으로서 ‘사회주의’저작을 판매할 전략을 세웁니다.

더구나 일제의 사상통제와 검열정책에 맞서 사회주의 사상관련 책들을 어떻게 배본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국의 ‘탄압’을 마케팅의 전략으로 이용해 독자들의 소장욕구를 부추기는 방식으로 책 판매전략을 수립하고 이행합니다.

조선의 경우 소수의 엘리트들이 일본어책을 읽고 토론할수 있는 이들이었고, 조선어로 쓰여진 책들도 나오는 상황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내내 그리고 해방후에도 상당수 지식인들은 여전히 일본어책을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출판자본은 번역을 통하지 않더라도 일본어로 쓰여진 책의 소비층이 있다는 걸 알고 이들을 공략하기 위해 조선어 신문인 <동아일보>,<조선일보>에 광고를 내고, 강연회와 간담회를 진행하고, 검열을 피해 독자에게 직접 책을 발송했습니다.

1930년대 만주사변이후 만주국이 성립하자 대표적인 사회주의 서적 출판사인 <개조사> 사장은 출판시장 개척을 위해 조선과 만주국을 시찰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출판자본의 조선시장 공략은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이 사실상 이중언어사용상태( bilingual) 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입니다.

일제의 조선에 대한 불공정한 교육정책때문에 1925년 이전까지 조선에는 제대로된 대학과 도서관도 없었으며, 공부를 더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중고등과정과 대학과정을 유학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교육환경은 지식인들이 ‘일본친화적’으로 만들었고, 상당수가 ‘친일’을 하게 되는 배경이 됩니다.

일제의 탄압으로 조선어 연구도 조선어 문학도 체계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에서 번역된 서구의 학문을 받아들이는 면도 있습니다.

이책의 마지막 두개의 장은 일본 여성소설가의 중일전쟁 종군기와 식민지 조선 독자들의 반응을 살폈고, 내선일체 정책이 일본과 조선의 인텔리 여성들을 통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보여주었으며 한국전쟁 발발이후 일본은 미군과 연합국의 보급기지로서 역할을 하며 구 일본제국의 군수시설을 재가동하게 되며 경제발전의 기틀을 다지게 되면서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전쟁의 전황을 전하면서 ‘점령자’미국이 ‘식민지 일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줍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인의 입장을 짐작하지 못했던 일본 지식인들이 패전 후 미국에 ‘점령’당하면서 미국이 일본을 영구점령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하면서 미국의 식민지 ‘일본’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일 마지막 장이 눈길을 끈 것은 한국전쟁기 일본의 상황에 대한 매우 드믄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해방이후 미국과 연합국이 한국을 신탁통치한다고 결정해서 대한민국 정부수립 전 혼란이 일어난 건 잘알려져 있지만 당시 남한에 주둔하던 점령군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일본에서 전후헌법을 제정하면서 일본을 사실상 통치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같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해방과 한국전쟁이후의 상황은 미군의 일본 한국주둔과 같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맥아더 사령부가 도쿄에 사령부를 차리고 일본에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맥락상 모두 고려해서 상황에 대한 서술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이 책에 흥미를 가진 이유는 저자께서 오랜시간 일본 도쿄에서 일본문학을 가르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문학연구자분들이 훌륭한 역사연구서를 쓰시기도 하고, 일본현지에서 일본인들이 식민지 조선의 출판시장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사상의 관점이 아니라 ‘시장’의 관점에서 본 점도 참신했다고 봅니다.

이 책과 관련해서 몇가지 생각나는 책 몇권 더 소개합니다.

일제시대 한국지식인들에 대한 지식사회학으로는

정종현,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2019)

근대의 책읽기 전반에 대해서는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2014)

을 같이 읽어보면 좋습니다.

끝으로 일제강점기에 대한 애증을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 서울의 가로체계는 일제시대의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해방이후 수많은 일제시대 건축물들이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일제가 한국땅에 남긴 흔적을 없앤다고 아직도 일본을 추종하는 파워엘리트들이 있는 한 일제의 망령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차별적으로 대하고 만주사변 이후 병참기지로 삼은 사실을 기억하면 ‘식민지근대화론’이라는 ‘일본친화적’주장을 할 수 없을텐데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정확하게 알아야 일본으로부터 전쟁배상금도 받을 수 있고, 새로운 관계 정립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방이후 한국의 독재자들과 전범이거나 그 후손들이던 일본 자민당 정치인들과의 관계는 반드시 되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방이후에도 수십년간 일본어를 읽고 쓸줄 알았던 지식인/ 파워엘리트들이 최소 1980년대까지는 한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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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세대 작가들이 쓴 한국현대사 책은 유시민작가의 <나의 한국현대사 1959-2020> 말고도 여럿 있습니다.

1988-1992년 처음 발간되었던 작가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1-3>이 먼저 생각 납니다. 386운동권의 시각에서 한국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했던 책으로 꽤 오랫동안 읽힌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처음 읽을 당시 왜 학교에서 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는지 위정자들이 뭐 숨겨야 할 것이 있는지 매우 의심스러웠습니다.

해방전 사회주의 편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의 역사가 북한으로 월북된 문인들의 역사가 철저하게 지워졌다는 걸 아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가 저지른 민간인 학살을 포함해 한국의 역대 독재 정권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현대사는 지금 살고 있는 분들이 삶에서 경험했던 사건이 대한 서술이자 해석이고 그래서 지금 현재가 어떻게 현재가 되었는지 알수 있는 가까운 과거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386세대 운동권 출신 중 자유주의자를 대표하시는 분이 유시민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30여년 전에 읽은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 (푸른나무,1998)이 저에게는 유작가의 첫 책이었는데, 이번의 이 책이 아마 제가 읽은 세번째 혹은 네번째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작가가 전에 냈던 <나의 한국현대사 > (돌베게,2014)의 개정증보판으로 본문 쪽수가 400쪽이 넘어가는 책입니다.

작가께서 직접 참여하셨던 1980년의 서울역 시위와 회군 그리고 1987년 6월 10일의 시위 광경은 작가의 위치가 386세대 내에서 어떠한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한국의 경제개발계획을 다룬 제3장과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다룬 제4장입니다.

제3장의 제목은 ‘절대빈곤, 고도성장, 양극화’로 지난 50년대 말부터 군사독재 시절의 경제계획/ 산업화시기의 고도성장, 그리고 9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화와 이에따른 양극화를 제목에서부터 보여줍니다.

제4장은 ‘전국적 도시봉기를 통한 한국형 민주화’라는 제목으로 멀리는 1919년 3.1운동에서 시작해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1961년의 4.19 그리고 1980년 광주를 거쳐 ‘87년체제’의 시작이 된 1987년 6월 항쟁 그리고 이후의 촛불혁명을 다룹니다.

작가는 독재를 타파하기 위해 국민들이 불가피하게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고 국민들의 도시봉기는 늘 ‘연속적, 동시다발적, 그리고 전국적 도시봉기’인 특징을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한국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1980년대 시위에서 각목과 체루탄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 양상에 폭력이 빠지고 촛불이나 응원봉이 나온 것만 다른겁니다. 책이 2021년에 나와 직접 이런 언급은 없지만 이런 맥락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런 봉기가 지역적으로만 일어날 경우 ( 1980년 광주의 경우처럼) 실패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실패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당시 도시봉기를 조직한 지도부들은 전국에서 동시에 연속적으로 민주주의를 위한 개헌과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개인의 자유, 자신의 주장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자유가 1986년 당시만 해도 생각할 수 없는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중국과 휴전선으로 고립된 상태로 한국전쟁의 휴전이 계속된 한반도 남쪽은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이후 처음에는 이승만이라는 미국 망명객 출신이 독재정치를 하면서 왕처럼 군림했었고, 5.16 군사쿠데타이후 일제의 만주군 출신 박정희는 자신이 군대에서 배운바대로 국가를 ‘병영’으로 만들었고 군사독재를 시행했으며 경제발전을 위해 국민들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희생하는 공포정치를 했습니다.

왕이 되고 싶었던 이 군인은 1972년 ‘유신’을 통한 ‘친위쿠데타’를 성공시켜 이후 1979년 심복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을 맞아 죽을때까지 18년을 철권통치했습니다.

1979년 12.12군사반란을 일으키고 1980년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집권한 전두환은 ‘정의사회구현’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며 군사독재를 이어갔고, 후계자로 자신과 함께 12.12군사반란을 일으킨 노태우를 지명합니다.

이 군인들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체육관 선거’를 고수하고자 했지만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민주화 세력은 직선제 개헌을 관철하게 됩니다.


작가가 언급했듯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의 ‘난민촌’에서 군사독재자 치하의 ‘병영국가’로 그리고 이후 ‘민주화’를 통해 세계 10위권의 선진국이 된 유일한 사례입니다.

세상일 알 수가 없는 것이 이 책이 나오던 2021년만 해도 문재인 정부이후 검사출신 대통령이 선출되어 독재로 사회를 퇴행시키고, 2024년 12월 3일 박정희 이후 볼 수 없었던 ‘친위 쿠데타’를 다시 볼 수 있을 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도 12월3일 밤 10시가 넘어 대통령이 오만하게 ‘계엄령’을 낭독하고 정치를 정지시키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뒷덜미에서 식은땀이 흐르던 걸 기억합니다.

아직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은 사법적 단죄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검찰과 사법부의 내란공모가 의심되는 가운데 내란수괴의 재판은 침대축구식으로 늘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 ‘쿠데타’를 일으킨 내란수괴가 제대로 사법적 단죄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전두환에 대해 사법부는 ‘성공한 쿠데타는 단죄할 수 없다’는 치욕적인 판결을 남겼을 뿐입니다. 그래서 군사반란을 일으키고 국민을 무자비하게 죽인 정치군인 전두환은 ‘천수’를 누리다 노환으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윤석열의 사법적 단죄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사법부의 명예가 달려있는 판결이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흐지부지된다면 한국에서 최소 사법부는 그 존재의미를 잃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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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0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한국현대사>와 저자 유시민에 대하여 한말씀만 드리자면,
유시민은 일제강점기 친일 훈도였던 부친 아래서 자라나, 대학시절엔 민간인 4명을 사복경찰로 오인하여 감금 고문 폭행한 죄목으로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받은 사람입니다.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 피해자에 대한 한마디 사과나 반성 없이 저술과 정치 활동을 계속하는 유시민의 가려진 실체는 직시해야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선 가해자인 유시민의 이 같은 자가당착의 역사관과 세계관의 후안무치함에 두배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6/01/19/2006011970162.html <유시민 때문에 인생 망친 4명, 그 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0395 <유시민, 여성, 노동자, 고졸 비하 발언>
https://www.breaknews.com/10175 <유시민 선친, 일제치하 ‘훈도‘ 경력 확인>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41204000420 <법원 ‘가짜뉴스 유포‘ 유시민에 3000만원 손해배상 선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19/0000005906?sid=100 <유시민 국민연금탈루, 여성비하, 기독교비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19/0000005935?sid=100 <유시민 국고횡령, 허위영수증>
https://www.chosun.com/national/incident/2024/10/15/GHBZLFC4NRC7JIR6QFLG2RHS2A/ <‘유시민 누나‘ 유시춘 EBS 이사장, 법카 유용으로 기소>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90321/94670407/2 <‘마약 밀수’ 유시민 조카, 2심 ‘징역 3년’ 이유?>
(언론에 보도된 유시민 일가의 비리 행적은 많지만 극히 일부만 열거했을 뿐입니다.)

유시민처럼 역사에 대하여 항상 선악 이분법적인 단순 잣대를 적용한다면, 막말과 비리로 얼룩진 유시민 본인의 과거행적도 동일 잣대에 의하여 악행으로 단죄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성과 기독교를 비하하고, 고졸 학력자들을 비아냥거리며 세금을 요령껏 탈루하는 자신의 비리에는 관대한(혹은 무감각한) 유시민의 역사관이라면 주의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Dennis Kim 2025-09-22 09:09   좋아요 0 | URL
주장은 자유이시니 알겠지만 책을 읽어보시기는 했나요? 이분법적인 사고는 찿아볼수가 없던데. 심지어 박정희의 경제개발의 긍정적인 면을 좋게 평가하기까지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