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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연대기 - 잊힌 시간 형태의 기록
이창익 지음 / 테오리아 / 2025년 1월
평점 :
종교학자 이창익 교수의 ‘시간형태의 역사’입니다. 2025년 1월에 출간된 책이니 나온지 2달정도 밖에 안된 신간입니다.
종교학자이신 저자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저술하신게 의외였는데 이미 박사학위논문으로 조선시대 ‘달력’에 대해 저술하신 적이 있더군요.
이책의 5장 ‘달력의 연대기’가 저자의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한 부분입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5장의 앞의 4장은 달력을 연구하다 파생된 여러 다른형태의 시간을 나타내는 사물들을 추가적으로 파헤치다보니 부가된 ’각주‘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부가된 장들이 5장을 초과해서 책이 쪽수가 자그마치 714쪽에 달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물시계를 기반으로 종으로 시간을 알렸고, 일제가 들어온 이후 정오마다 오포라는 대포를 쏴서 시간을 알리고, 전기가 들어온 이후 싸이렌과 전기시계 등으로 시간을 알리게 됩니다.
전기가 들어온 이후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고 이후라디오 시보를 따러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일하고 쉬는 시간을 일관적으로 유지해 식민권력이 신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공장, 군대 등 근대의 모든 조직에서 시간에 따라 구성원들을 통제하기 쉽고 자본과 기득권층의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제는 계속 자금을 투자해서 규율을 만들어갑니다.
군대에서 오포를 쏘아 시간을 알리다 시계가 도입되고 전기시계가 나오면서, 새로 신축되는 근대건축물인 기차역, 교회, 백화점, 관공서에 시계를 부착하고 시계탑이 등장합니다.
오포와 싸이렌의 경우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의 기능을 처음에 담당했지만 이후 일제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시보의 성격과 함께 경보(警報)위 성격이 혼재되기 시작합니다.
라디오방송의 경우도 처음엔 시간을 맞추는 시보용도로 사용되다 전쟁이 시작되고 인원동원이 강제되면서 ‘라디오 체조’라는 동원기재가 시작되고, 이후 국민체조, 한국신민의 서사, 기미가요 제창, 궁성요배, 신사참배에 조선인들을 동웒합니다.
달력에 대한 마지막 장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기본적으로 천문역법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도, 달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조선시대 전통달력은 길흉화복을 나타내는 방위에 대한 공간개념과 길일과 흉일에 대한 역주도 붙어있어 흔히 생각하는 달럭과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갑오개혁이후 갑작스럽게 실시된 양력의 채용은 엘리트들이 일방적으로 시행한 위로부터의 제도개혁이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제사일이나 농사와 관련된 절기는 모두 음력으로 알려져 있어서 양력역서애도 음력이 부가되는 경우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조선도 일본도 양력과 음력이 부기되어 합본된 기간이 약 40여년에 달합니다.
축일의 경우 양력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졌지만 제사일의 경우는 음력이 주를 이룬체 끝내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계절의 중요 절기(節氣)는 음력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양력과 음력의 이중적인 시간체계가 아직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양력은 아직도 완전히 정착이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서양중심의 양력으로 표기된 달력과 누구나 흔하게 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계가 사실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서서히 일상을 파고 들었고 이런 사물의 침투와 함께 ‘시간의 일원화’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식민권력과 자본은 시간의 통제를 통해 얻는 이익이 상당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갇혀 올싹달싹 못하는 불쌍한 찰리 채플힌의 모던타임즈(1936)속의 모습이 단순히 코미디로만 보이지 않는 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