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이야기 7 - 전국시대의 시작 춘추전국이야기 7
공원국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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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국작가의 춘추전국시대사 7번째 책으로 중국 전국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책입니다.

춘추(春秋)시대가 전쟁을 치루면서도 대의와 명분을 앞세우고 최소 등에 칼을 꼿는 비열한 속임수를 쓰지 않았던 시대인 반면에 전국시대는 대의명분이 사라진 체 오로지 국익(國益)을 위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통용이 되던 시대를 말합니다.

기원전 5세기의 일임에도 작가의 전쟁묘사는 현재 세계가 처한 국제정세와 매우 유사합니다.

작사는 결론에 해당하는 제7장에서 ‘전략과 전술’을 설명하면서 프러시아의 철혈재상 ( Iron Chancellor) 비스마르크( Bismarck)위 독일 통일정책과 중국 전국시대 초기 상황을 비교하며 당시의 중국정세도 철저히 현실주의적 입장에서 국가지도자의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국가가 정치의 중심으로 떠올라 군사와 조세를 관장하는 국가주의적으로 흘러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실리를 기준으로 국익을 위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맹이 될 수도 있는 국제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현재 패착(敗着)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한국의 이념외교와는 정반대입니다. 알량한 도덕적 우월성을 전제로 실리를 망각하는 기본이 안된 외교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은 전국시대 초기를 다루었는데 주요한 정세변화는 중원의 동쪽을 장악한 강국 진(晉)이 사실상 3국으로 나뉘어-삼가분진( 三家分晉)- 위(魏), 조(趙), 한(韓)으로 분열되고 위나라가 오기(吳起)의 병법을 채용해 서쪽의 진( 秦) 의 동진을 막았으나 위문후(魏文侯) 사후 위혜왕 (魏惠王)또는 양혜왕(梁惠王)의 실정으로 서쪽의 강국 진의 동진을 허용하게 됩니다. 위의 성급하고 무모한 동쪽 국가 공격을 역이용한 조나라에는 손빈(孫臏)이라는 전술가가 위니라에 치명상을 입힙니다.
서쪽의 오랑캐로 인식되어온 진(秦)나라는 위(魏)나라 출신 상앙(商鞅)의 병법을 채용해 위나라가 막고 있던 서하땅을 정복하고 진의 동진을 이루었고 이 진의 진출로 진의 천하통일의 기반이 마련됩니다.

위에서 보듯 이 책은 주로 법가(法家)를 중심으로 한 전략가들이 주인공으로 작가는 손빈병법의 주인공 손빈은 전략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기의 유교적 법가를 계승했으나 철저히 법가적인 변법으로 일관했던 상앙을 오기의 후계자로 보았습니다.

유교적 명분론과 법가적 실리에 대해 논한 보론도 경제적 논설로 매우 흥미롭습니다. 특히 위나라 이회가 주장한 생산력의 증대가 바로 국력의 증대라는 주장은 현재의 국력의 척도로 보아도 무방한 현실론으로 중국의 청동기말기 철기 초기의 사상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특징적인 것은 농경사회인 전국시대 중국에서 오기도 상앙도 모두 중농주의(重農主義)를 기본으로 삼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오기는 단순하고 기본에 충실한 전략을 선호해 위문후 치하에서 국력의 확대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입니다.

전쟁의 전략 그리고 국력의 관점에서 봤을때 그 기본이 경제력 ( economic power)라는 건 중국의 전국시대인 기원전 5세기나 지난 20세기나 현재인 2024년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단지 경제력의 기반이 농업이냐 제조업이냐의 차이뿐입니다. 그리고 국력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인구(人口)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인구가 많아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고 단지 사람이 많아야 농사를 지을 여력이 크다는 말정도로 치부될 말이 아닙니다.

인류사상 최초로 인구감소로 인한 국가소멸 위험에 처한 한국은 노동력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가 관건이 되었습니다. 현재 이상한 방식으로 국가를 아마추어처럼 운영하는 집권세력들은 표면적으로 자유방임형 기업우선의 신자유주의를 우선하면서 사실상 국가의 역할을 방기(放棄)하고 있고, 인구가 주는 와중에도 국민들의 주거상황개선 노동환경개선 그리고 물가통제 등 기본적 국가경제정책에 관심도 의지도 없습니다. 무지에 기반한 방기입니다.

권력의 남용에 있어서는 매우 전제주의(專制主義)적이면서도 민생은 방기하면서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삼는 자유방임적 정부형태를 유지하는 매우 기이한 정체(政體)를 가진 겁니다.

최고위층의 권력남용정도에 비해 국가의 역할이 너무 없어 권력의 사유화가 진행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지경입니다.

고대사가 정치사이면서 전쟁사인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하고 중국식 국가주의의 뿌리를 중국의 법가에서 찿을 수 있다고 봅니다.

과거와 현재는 소름끼칠정도로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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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경계의삶 - 1945~60년대 농촌정착사업으로 본 한국 사회 역비한국학연구총서 42
김아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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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한림대학교에서 한국현대사회사를 연구하시는 김아람 교수의 신작입니다.

2023년 3월 출판된 책으로 이 시리즈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또한 2023년을 대표하는 연구서로 선정된 바 있는 책입니다.

이책은 우리가 흔히 부모세대와 조부모세대 어르신들에게 들었던 피난민(避難民)에 대한 이야기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피난민이라고 하면 한국전쟁 당시 고향을 등지고 공산사회를 피해 월남(越南)한 북한출신 주민들을 이야기합니다.

이책에서 다루는 난민 중에는 물론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난민 그리고 월남민도 있지만 한국전쟁이전 미군정 당시의 제주도 4.3 사건으로 인한 난민 그리고 여순반란 사건과 뒤이은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도 포함됩니다.

모두 민간인들이 심각한 국가폭력(國家暴力)에 노출되어 삶의 터전을 벗어나 생존을 위해 고난을 감내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당시 정부는 발생한 난민들을 전쟁의 장애물로 인식했고,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서 이렇게 발생한 난민을 감소시키는데 정책적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해방이후 만주와 일본에서 들어온 난민이나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내부난민 모두 체제 변동으로 발생한 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박정희 군사정부는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고아 부랑인 등을 사회에서 배제시키는 방책으로 정착사업을 시행한 측면이 큽니다.

이렇게 체제형 난민이든 사회형 난민( 부랑아 깡패 고아 등)은 최초에 사회정책의 하나로 난민을 구호하기 위해 실시했던 농촌정착사업을 점차 농촌의 생산력향상을 도모하는 경제정책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이러한 난민의 농촌정착사업의 정책주체인 정부의 목적은 1> 난민을 정착시켜 난민을 줄이는 것으로 이는 난민의 자발적 노력으로 실시한다(?)는 원칙입니다. 2> 농촌정착사업은 지방정부와 지역사회의 역할에 의존한다는 겁니다.

이상한건 중앙정부 관료들이 정책을 입안하면서 본인들의 책임을 모두 난민과 지방정부 지역사회에 전가시켰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그때도 고위관료들은 무책임하고 영혼이 없었습니다.

거기에다가 1960년대에 사회형 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농촌정착사업은 도시에 있던 고아 부랑아들을 ‘강제로’ 데려다가 간척사업과 농지개발사업에 투입하고 지방정부 그리고 심지어 중앙정보부까지 이들의 동태를 감시하던 ‘동원’된 사업이었습니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이렇게 몰상식하게 사람을 동원하고 노예처럼 강제노동을 시키는 정착사업이 성공할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례는 1960년대 이후 군사정부에서 국민을 상대로 폭력과 인권유린을 한 ‘범죄’지요.

웃픈 건 이런 농촌정착사업장에 부랑아들과 짝을 맺어주기 위해 도시에 있던 윤락여성들과 ‘합동결혼’을 시킨 사례까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강제로 한 결혼생활이 원만할리가 없었지만 이 모든 게 정부가 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라는 데 그 ‘후진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당시 공무원들이 사회하층민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볼 수 있는거죠. 사회악으로 척결대상인 부랑인들은 고위관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도시에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였고, 이들의 노동력을 험하고 어려운 간척사업이나 농지개량사업에 활용하고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마찬가지로 척결대상인 윤락여성들과 짝을 먖어주자는 기막힌 발상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으로 심지어 매우 계급지향적이기까지 합니다( 하류는 하류들끼리…). 이런 권력지향적 관료들이 추진한 정책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건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아무튼 책에 실린 당시 간척사업 참가자들의 구술을 보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들을 아무데나 묻고 장례식도 치루지 않은 경우가 많고, 식량도 충분히 주지 않아 허기진 상태에서 노역을 했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간척사업의 경우 간척이후 토지분배과정에서 나타났습니다. 애초 사업의 목적이 간척지를 농지로 만들어 간척에 참여한 난민들에게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그 땅에 정착시키려는 의도였는데 문제는 간척이 끝나고 난민들에게 토지무상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겁니다. 농지에 대한 소유권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근거를 갖추지 못해 소유권 분쟁이 일어난 경우도 있고, 간척 후에 지주가 나타나 사유지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경우에도 한국정부와 사법당국은 마찬가지로 무책임한 행태를 보이고 간척지에 대한 모든 부담을 난민들에게 돌리거나 지주의 손을 들어줍니다.

1960년대에 끝난 간척사업지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30여년을 끌어오다 1990년대에 마무리된다든지, 2010년대까지도 분쟁이 지속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개척한 간척지에서 자신 소유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소작을 하는 경우가 나타나거나 결국 농지를 유상매입하는 경우까지 나타납니다.

에 책은 해방과 4.3 사건, 여순반란 그리고 한국전쟁같은 격동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동시에 내전으로 황폐화한 땅에서 북한을 떠나 온 난민들, 해방이후 해외에서 들어온 난민들을 어떻게 정착시키고 먹고 살게 할 것인지에 대한 정부정책과 당시를 경험한 난민들의 삶을 추적한 기록입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땅에서 먹고 살기 위해 농업생산력을 올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출발점에서 시작한 사업이고 자본과 자원이 없었던 당시 미군정의 무상원조를 통한 잉여생산물이 일단 그 시작이었습니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기 이전이라 최초 사회정책적 측면이 강하고 구호사업의 측면이 강했지만 1960년대 이후 점차 경제정책적 측면이 부각되긴 합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고된노동에 비해 소유권 보장도 되지 않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난민 출신 정착민들은 살기 위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따라서 생각한만큼 성과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체계가 잡혀있지 않던 전쟁이후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부의 ‘무책임’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특히 관료들의 무책임을 방기하는 듯한 정부의 조직문화는 심각하게 국격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가 듭니다.

관료들은 본인들이 국민의 머슴( civil servant)이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봉급이 세금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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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출신 재미사학자 장융전의 책을 서울디지털대 중국학과 이화승 교수께서 옮기신 책입니다.

책의 원제목은 礎材晉育, 즉 ‘초나라의 인재를 진나라에서교육시키다’입니다.

춘추전국시대 강남의 한 ‘오랑캐’국가였던 초나라의 인재를 초기 춤추시대 강국인 진나라에서 교육시킨다는 의미로 산업화에 뒤쳐진 중국이 당시 선진국으로 발돋음하던 미국으로 인재를 보내 교육시킨다는 의미가 있는 제목이죠.

중국출신이 아닌 타이완출신 학자의 책이고, 역자분도 타이완에서 공부하신 분입니다.

미중갈등이 첨예한 2024년 현재 중국인 엘리트들이 미국유학을 열망하고 심지어 미국인처럼 되려고 했다는 지난시절 중국의 이야기는 매우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접하는 공산주의 중국의 모습만으로 중국의 실체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전 만주족이 지배하던 전제주의적 중국이 있었고, 개항이후 나름 서구화 근대화를 이루려고 발버둥치는 중국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서양의 중국진출에 어떻게 대비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결과의 일부가 이책에 있습니다.

책은 1872-1931년까지 19세기말에서 중일전쟁 전까지의 중국인들의 미국유학사를 다루고 있고, 청대 말기부터 위안스카이의 독재정치, 군벌정치와 중화민국의 개국시기까지를 포괄하며 당시 미국에서 유학하던 중국의 엘리트 학생들이 중국과 미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두 나라를 바라보았는지 이들이 쓴 논설과 여러 글들을 분석하며 이들의 생각을 되짚어 봅니다.

이시기는 미국에 아직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만연했던 시기로 유학생들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면 영주권을 얻을 수 없어 중국으로 귀국했어야 하던 시기였습니다.

대부분 중국의 부유한 상류층 출신으로 남자들은 대부분 국비로 장학금을 받았고 10% 남짓한 여학생들은 대부분 상류층 출신의 자비유학생이었습니다.

책을 보면 미국은 매우 배타적인 인종주의 국가로서 심지어 중국 국적의 유학생과 결혼한 미국 출생의 화교들마저 미국 국적을 박탈할 정도로 중국인들의 이민을 혐오하던 국가였습니다. 따라서 상당수의 미국출신 회교들이 중국인과 결혼 후 중국으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차별이 완화된 시기가 1960년대라고 하니 미국 주류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그 역사가 꽤나 깊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에 유학하던 중국인들은 대부분 중국의 동부 해안지대 출신으로 광동성(廣東省)출신이 가장 많았고 죽경등 동북부 출신들은 광동, 장쑤, 저장성 등 중국 남부출신들을 업신여기고 심지어 이들이 쓰는 언어가 달라 중국어로 의사소통이 되기 어려워 영어로만 소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원래 중국에서도 대부분 상류층이거나 광동의 부유한 성인집안의 자제였던 이들은 미국 유학으로 배타적인 엘리트 의식을 더 키워 갔으면 중국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 따라 많이 배우면 출사를 하는 그래서 정부의 고위관료가 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중국의 과거 사대부들이 유학공부를 한후 과거시험에 합격후 관직에 진출하는 출세경로가 20세기가 된 후에도 전혀 바뀌지 않은겁니다. 그래서 초기 유학생들은 청 정부에 자신들을 임용하라고 요구하는 문서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대부분 기득권 층에 속했던 중국의 미국유학생들은 대부분 보수주의적이었고, 이건 그들이 향후 중국의 관료가 되기 위해서도 필요했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미국 유학출신 중엔 20세기 초반을 휩쓸던 사회주의에 경도된 이들은 극히 소수였습니다.


책은 본문 475쪽으로 약간 부담될 수도 있는 두께이고, 상당부분 중국 유학생 관련 통계자료 등이 나오고 여러장의 20세기 초 중국 유학생들의 동창회나 여름캠프 사진 자료가 나옵니다.

심지어 초기 유학생들은 중고등학교부터 대학 또는 대학원까지 미국에서 나와 심지어 대학을 세곳 정도 다닌 이들도 많습니다. 지금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으로 유학을 가는 코스가 아니라서 당시 중국유학생들이 ‘미국화’된 정도는 현재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굳이 분류를 하자면 중국인들의 미국 유학의 역사 혹은 유학생들의 사회사 내지 사상사라고 볼 수 있고 이렇게 근대화 초기 일부 학생들을 뽑아 선진국에서 교육을 시킨 경우는 물론 중국만 있는 건 아닙니다.

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당시 청말의 중국의 경우도 두가지 유학경로가 있었는데 그중 한곳이 일본( 매이지 일본)이고 또다른 곳이 미국입니다. 비용면에서 일본이 저렴해 집안 배경이 낮은 많은 이들이 일본을 택했다고 하고 그중에는 현대 중국문학의 비조로 불리는 루쉰(魯迅)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도 일제시대 많은 수재들이 일본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조선땅에 1925년까지 제대로 된 대학이 없어 많은 조선 유학생들도 일본에서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국의 초기 미국유학의 경우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조선의 초기 일본유학생들도 일본에서 10여년씩 공부를 하다보니 지나치게 일본화되는 경우가 속출했는데 중국의 초기 미국 유학생들도 지나치게 미국화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대화와 경제발전 초기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catch up)일정부분 선진국의 이론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이제 한국의 경우도 경제발전계획을 세우고 따라잡기 전략으로 경제정책을 세운지 반세기가 넘어가 이제는 따라잡기를 넘어선 뭔가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하고 또 독자적 사고체계와 이론체계를 갖추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틀을 서구에만 의존하는 건 매우 안이하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과거처럼 마냥 서양 이론만 수입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현대를 통틀어서 기득권을 구성하는 지식인들의 유학과 그들의 괘적을 추적한 책들이 몇권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중국지식인의 일본 유학에 관한 책으로는

옌안성, 한영혜 옮김, 신산을 찿아 동쪽으로 향하네 (일조각,2005)

오래된 책이지만 중국인들이 일본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책입니다.

다음으로 식민지 조선인들의 일본제국대학 유학에 대한 책입니다.

정종헌, 제국대학의 조센징 (휴머니스트,2019)

이책은 일재강점기 일본의 제국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들이 해방이후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개발계획을 입안하는 등 그들의 졸업 후 행적이 초기 대한만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돌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이책에는 일제시대 조선인 법조인들이 왜 공인된 친일파였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문학가 이광수의 일본유학과 그의 일생에 대한 책입니다.

하타노 세츠코, 최주한 옮김,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 ( 푸른역사,2016)

최초의 근대문학가 이광수가 일본 유학이후 어떻게 찬일파로 변해가는지를 일본의 이광수 연구자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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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서 중국사를 연구하시는 조영헌 교수의 연구서를 읽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께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책을 집필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책의 자매편과 같은 좀더 대중적인 책이 얼마전 나왔는데, 지금 소개하는 책과 어떤면에서 다른지 아래의 저자의 최근 저작도 시간이 되면 읽고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조영헌, 대운하 시대 1415-1784 ( 민음사,2021)

아무튼 이책의 물리적인 외관을 좀더 정리하면 본문이 423쪽으로 통상의 300쪽 내외의 연구서보다 분량이 조금 됩니다. 그리고 각주와 참고문헌 서지목록이 약 200여쪽을 차지합니다. 일단 책의 체제나 글의 밀도 면에서 깊이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특정분야에 깊이있는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통사위주로 역사서를 읽어오신 분들에게는 책내용이 어려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책 제목이 명시해주듯, 이책은 중국의 근세, 즉 명청시대 대운하와 두 왕조의 조운정책(漕運政策)과 그 참가자들인 상인계층 중 특히 양자강과 황하(黃河)와 회하(淮河)가 만나는 지역인 회양지역에서 활동하던 현재의 안후이성(安徽省)의 휘주(徽州)출신 상인들의 사회경제적 역할에 대해 연구한 연구서입니다.

따라서 책은 중국의 명청시대 사회경제사이자 명과 청이 주면의 국가와 각 지방으로부터 조공(朝貢)과 세금을 납부하는데 꼭 필요한 대륙운송로인 대운하의 역할에 대한 물류( logistics)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근대 시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황제에게 진상되는 각 특산품이 현물로 조달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곡물과 소금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회안과 양주에 거점을 둔 휘주상인들은 특히 소금거래를 장악했던 이들로 명 청 두 왕조를 대신해 소금을 운반하는 사업을 해왔습니다.

이 책이 커버하는 15-18세기는 서양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알려진 시기와 겹치는데, 중국의 경우 명초기 영락제(永樂帝)가 수도를 남경(南京)에서 북경(北京)으로 천도한 이후 수당 시대 이미 건설해놓은 대운하를 이용하기 위하여 그리고 강남지역의 풍부한 물산을 수도 북경으로 운송하기 위해 대운하를 준설하고 확장했습니다. 그 결과 이 운하는 강남의 항주(杭州)에서 시작하여 북경까지 중국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중간에 중국의 큰 강인 양자강과 황하를 가로질러 건너갑니다.

조세를 징수하기 위해 거대한 물길을 뚫은거죠.

명나라 중기때인 15세기, 명은 동쪽해안에 나타난 왜구로 인해 해상교역을 원활히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영향으로 항행을 금지하는 해금(海禁)정책을 펼쳐 원나라 당시만 해도 바다를 통해 각종 세곡을 받았던 해운정책을 폐기하고 모든 조세물품은 전적으로 대운하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닷길을 통해 강남의 세곡과 물산들이 이동하지 못하게 되자 대운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고 왕조의 관려들이나 대운하의 수운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상인들 역시 대운하의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과 청 조정은 특히 양주와 회안 지역에서 3가지 중요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것은 조운( 즉 소금을 북경까지 운송하는 것), 하공( 운하 관리, 운하의 범람을 대비해 운하 준성과 제방을 쌓는 것) 그리고 염정( 국가의 전매품인 소금에 대한 통제)입니다.

북경이 북쪽에 치우쳐 대운하를 통해 올라온 곡식과 소금 등 먹거리에 대한 수급은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문제였고 이는 청나라 시기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 두 황제가 친히 대운하를 타고 남쪽에 내려오는 남순(南巡)을 행했다는 사실로 그 중요성이 입증됩니다. 두 청의 황제는 재위기간 중 각각 6차례나 대운하를 타고 강남지역 시찰을 했고, 특히 대운하의 중간에 해당하고 수해에 취약한 지역인 회양지역의 치수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농공상이 분명하던 근세시기 회안과 양주에 자리잡은 휘주상인들이 염업으로 사업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공공사업에 참여하고 운하와 관련된 고위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문사계층인 신사(紳士)층과 거의 동등한 사회적 위상을 가진 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휘주출신 상인집안 중에서 과거 신사로서 문인계급이었던 자손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자 객지로 나가 장사를 하는 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중국적 특징으로 보입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유교사회인 명나라였지만 조선처럼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책에서 잠깐 언급이 나오지만 조선에서 금기시된 양명학(陽明學)의 영향을 받은 신사와 상인계층이 있어서 문사계층이 상업활동을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에 국제정치학자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교수의 중국에 대한 언급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두 전쟁에 직면해 있으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실수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전략적 우위는 아시아에 있고 미국의 가장 큰 라이벌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기 때문에 아시아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유명하신 이 분이 중국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하셨는데 최근의 한국의 중국 경시풍조는 임계점을 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익을 생각하면 중국을 무시하는 무지한 행태를 그만두어야 하고 중국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굳이 병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게 당연하고 국가전략을 짜는 고위관료라면 중국을 무시하는 행위 그 자체가 국익훼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경제에서 배제하고자 하지만 이건 미국의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그 레토릭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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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임기자이자 북한학자인 저자가 1990년이후 2018년까지의 남북관계 30여년을 조망한 책입니다.

이책에서 남북관계를 분석하는 프레임(Frame)으로 비대칭 탈냉전 ( 非對稱 脫冷戰)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이 틀로서 지난 30여년간의 남북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대칭 탈냉전이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하고 이후 소련이 무너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간의 오랜 대립인 냉전(Cold War)이 종식된 이후 한국은 이전까지 북한의 혈맹이었던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어 국교를 정상화한 반면, 북한은 냉전당시 적대국이었던 일본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지 못한 사실을 말합니다.

한국이 경제적 정치적우위를 확실하게 점한 반면 북한은 미일과 국교정상화에 실패한 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국가체제위기는 이후 북한의 핵개발의 주요 동인(momentum)이 되었고, 냉전이후 북한의 대화를 이어가려던 클린턴 행정부이후 2000년대 들어 아들 부시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욱 위기국면으로 가게 됩니다.

부시정권 당시 네오콘으로 불리는 골수 자유주의자들은 군산복합체를 배경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 9.11테러의 배후를 이라크라고 믿고) 북한을 악의 축( Axis of Evil)로 부르며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을 펼칩니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공을 들이고 남북경협으로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관광사업을 벌였으나 자유시장주의자라고 자칭하는 극우정권인 이명박 박근혜정부는 경제적 실익도 챙기지 못한 체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하고 북한 적대시정책을 ‘아무이유도 없이’펼쳐 한국의 기업들이 극심한 손해를 입은체 개성공단에서 철수해야 했고, 10여년간 이어져온 금강산 관광사업에서도 손을 떼었습니다.

경제적인 관건에서 봤을 때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의 대북경협철수는 매우 불합리한 결정입니다.

보수를 참칭하는 정치인들 중에 남북경협에서 생긴 이익이 북한의 핵개발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는 물증이 전혀 없는 그들의 ‘믿음’에 불과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한의 핵개발 능력 검증처럼 개성공단의 자금에 대한 정밀 ‘감사’가 이루어져야 확인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믿음을 위해 실리를 포기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결정을 시장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보수정부에서 한 겁니다. 최소한의 어떤 합리성도 보이지 않은 결정입니다.

이후 북한은 무조건적인 핵폐기를 압박하는 미국의 네오콘을 위시한 서구자유주의자들에 맞서 핵개발을 지속하다가 전임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검찰정권인 현 윤석열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부인하면서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고, 한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인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면서 지난 30년간 개척한 거대시장을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 몰상식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외교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무능 (extremely incapable)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교를 공부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도 국익( national interest)이 외교의 목적이라는 걸 아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30년간 공들여온 중국 러시아 시장을 걷어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옹호하지 않지만 전임 정부가 북한을 잘관리해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없애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도대체 감정적으로 북한과 전쟁하자고 하는 이들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눈으로 보고서도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 자체로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을 보면서 보수적인 군인 출신이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임동원씨의 회고록과 2차 북한 핵위기 당시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6개국 ( 남 북 미 일 중 러)와 6자회담을 이끈 송민순 전 외교수석의 회고록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동원, 피스메이커 (창비,2015)
송민순, 빙하는 움직인다 (창비,2016)

그리고 미국쪽에서 북한을 오래 관찰한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의 책도 봐야할 것 같습니다.

Selig S. Harrison, Korean Endgam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북한은 남한 입장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잘 알 수 없는 이웃같은 존재입니다. 더구나 한국전쟁 이전 저희 부모세대들은 북한지역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살던 지역입니다.

70여년이 지나도록 한국전쟁의 ’망령‘ 에 붙들려서 북한을 계속 적대시하면 한국이 얻을 이득이 뭘까요?

미국에서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까 아는게 한국의 대북전략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한국이 국익이 다른 미국의 대북전략을 따라가야만 하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이 자신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한 주장을 하면 한국은 한국의 국익에 맞는 주장을 하면 됩니다. 주장은 일치할 수도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대화가 싫다면 소위 보수진영에서 제일먼저 할일은 한국에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회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극열한 주장을 해도 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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