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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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감독인 마민지 작가의 개인적인 가족사를 다룬 책입니다.

울산에서 상경한 작가의 부모가 서울에서 강남 ‘도시개발’시대를 맞아 ‘집장사’를 시작해 돈을 벌고, 부동산 투자를 잘못해 중산층에서 빈곤충으로 떨어지고 그럼에도 부동산에 대한 믿음을 버릴 수 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들려줍니다.

독립영화감독으로 감독의 개인사에 대한 다큐 <버블 패밀리,2018>을 만들었던 감독이 이야기를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K-장녀이자 IMF키드로서 한국경제발전사에 중대한 변곡점이었던 강남개발과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 가족에 미친 영향을 솔직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누구나 겪었으나 속시원히 할 수없는 이야기를 풀어놓은 겁니다.

강남의 도시개발에 대한 여러 책들이 주로 관료출신이거나 건축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설명한 공적인 역사라면 이 책은 서울에서 벌어진 강남 도시계획과 그 이면에서 벌어진 일확천금의 기회를 누가 얻었고 누가 잃었는지를 저자 가족의 개인사를 통해 드러냅니다.

상경한 울산출신 집장사였던 저자의 부모처럼 서울에는 당시 수많은 집장사들이 다세대주택을 짓고 팔아 가족들을 먹여 살렸을 겁니다. 은연 중 작가는 한국의 도시개발 초기인 1970년대 말까지도 주택건설에 대한 구체적 제도적인 기반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자격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집장사가 될수 있었던 현실을 보여줍니다.

이촌향도(離村向都)로 인구가 폭증하고 있던 서울에 주택난은 큰 문제였으며 아마 서울시 당국도 정부도 가용한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려고 했을 것이고 주택공사가 커버하지 못하는 소규모 주택건설에는 돈이 없는 서민들에게도 기회가 생겼을 겁니다.

1988년 이후 최대규모의 부동산 투자에 올인했던 저자의 아버지는 하지만 바뀐 경제환경을 인지하지 못한체 하던 방식대로 사업을 진행해 실패를 맛보게 되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결정타를 맞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저자의 부모들에게 두번의 기회는 찿아오지 않습니다.

말하고 있지 않지만 현재 ‘불패’의 신화를 갱신하고 있는 서울 강남의 ‘일확천금’의 기회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 한번 찿아온 기회로 앞으로 이런 기회가 찿아오길 바라는 건 비현실적인 전망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용어로 말한다면, 매우 일어나기 힘든 경우가 일어난 경우, 블랙스완( black swan)의 경우가 바로 1980년대의 강남개발이라고 봅니다. 정상적인 경제, 그리고 아미 인프라가 포화상태인 수도권에서라면 부동산에서 더더욱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기는 불가능하겠죠. 아무것도 없었던 개발초기에나 가능했던 일이죠.

책의 성격을 좀 더 살펴서 정리하자면
이책은 저자 부모님의 가족생애사이자 송파구지역의 도시개발의 이면사이고, 어떻게 강남의 부동산 불패신화가 생겨났는지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이기도 합니다.

독립영화감독이고, 특히 부모님의 과거 부동산 사업을 추적하는 와중에 서울의 도시개발사에 대한 기존 연구를 통한 검증이나 당시 언론 지면을 통한 확인작업은 지나간 세대인 부모님의 생활 괘적이 어떻게 한국의 사회발전과 맞물려 있는지 보여주는 미시사의 좋은 예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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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덕 작가는 임진왜란을 전공하신 문헌학자이신데 몇년전부터 도시관련 답사기를 출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튜브 삼프로티비에서 도시관련 방송을 몇번 본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내신 임진왜란 관련서적과 도시답사 관련 서적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은 추후 이야기하기로 하겠습니다.

이 책은 2024년 1월 출간된 작가의 최신간입니다. 임장(臨場)이라는 일본식 한자어를 이책 제목에서 처음 보았는데 그 의미가 ’현장에 임하다‘ 즉 답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이 책은 한국의 중요 3대 메가시티와 소권역을 저자가 답사해 미래를 예측한 책입니다.

몇가지 이전 저작과 달라진 점을 우선 말하고자 합니다.

저자가 현재 알려진 정보와 답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 것으로 과거 저작에서 보여준 역사적 기원에 대한 언급이나 과거에 대한 언급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두가지 예측이 가능한데 일단 좀더 대중적인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점과 역사적 인문지리적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의 공간에 대한 가치가 중점이 된 것이 책의 서술방향을 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두번째 남한 전역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전작에 비해 피상적으로 보입니다. 시간적인 측면에서 일본측 자료를 통해 접근하던 식민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 지역의 발달초기 모습 등에 대한 설명이 많이 약화된 걸로 보입니다. 저지의 강점이 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남한 전체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서술의 밀도가 낮아지고 깊이가 없어졌습니다.

한국의 도시개발계획과 산업화 경제개발을 흔히 박정희때부터 보는데 그 뿌리가 일제시대부터 이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도시답사가라고 생각했는데 특유의 관점이 이 책에서 많이 없어진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학자이자 문헌학자인 저자의 시각이 사라진 건 아니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려는 경향은 알 수 있습니다. 각 장에 달린 미주에 보면 수많은 언론사 기사가 나옵니다. 도시계획에 대한 일차문헌이나 좀더 전문적인 자료가 인용되면 논의가 좀더 정밀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자가 삼프로타비에 출연한 이후 두번째 나온 책인데 아무튼 저자 입장에선 대중독자를 위해 노력한 책으로 보입니다.

저자께서 삼프로 티비 출연 이후 처음 나온 책은 <우리는 어디서 살아야 하는가,2022>인데 이 책은 어떤지 추후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저자의 도시답사기 중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서울선언 시리즈 첫번째 책입니다.

서울선언 ,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2018)

서울의 서민들의 살림집을 주로 살피면서 일제시대의 도시계획이 남긴 현대 서울의 흔적을 일제가 만든 경성지도와 일제시대와 현대 남한 군사정권의 연속성을 확인하면서 현재 서울에 남겨진 일제의 흔적을 찿아가는 여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료들이 일제를 지운 체 조선의 지배층 건물들만을 중시한다는 관점을 보여준다는 것과 일제 당시 서울을 덥쳤던 ‘을축년 대홍수(1925)’ 에 대한 기록을 소개한 점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강남을 개발한 영동개발계획이전 일제가 사대문 밖에 세운 이촌동과 휴양지로 만들었던 노량진 지역 그리고 공업지역으로 개발한 영등포 지역에 대한 설명도 매우 인상적으로 기억합니다. 잊고 있지만 사실상 최초의 서울근교의 신도시 개발이었습니다.

문헌학 연구와 함께 도시답사를 오래다녔던 저자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고 그 이후 나온 저자의 도시관련 책을 읽었던 계기가 된 책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메가시티에 대한 개념은 <대서울의 길,2021> 에서 처음 소개한 걸로 기억합니다. 서울이라는 지역이 단지 행정적 경계를 뛰어넘어 서울과 강원 일부까지 포함하는 생활권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이책에서도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핵심입니다.

이책에서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도시공간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과 다른 선으로 연결된 인접지역과의 교류여부를 중요하게 봅니다.

끝으로 이책의 구성을 살피면 본문 총 13장에 459쪽에 이르는 책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3대 메가시티 권력과. 지역별 소권역을 중심으로 설명되고 인구와 교통의 측면에서 해당도시와 도시의 미래를 예측합니다.

단순한 지역별 부동산 투자유망지 예측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이 책은 저자의 답사와 언론의 보도 그리고 과거의 도시계획 등에 근거한 지극히 상식적인 예측을 할 뿐입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담백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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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은 잘못 없다 - 신민재 건축가의 얇은 집 탐사
신민재 지음 / 집(도서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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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남아있는 작고 비정상적으로 잘린 필지에 들어선 얇은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건축가이신 신민재 작가가 서울의 이런 특이한 건축물을 답사하고 쓰신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내신 결과물입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건물이 들어설수 없을 것 같은 작은 필지( 대체로 삼각형모양으로 잘리거나 지나치게 얇고 좁게 남은 자투리 필지) 에 지어진 건축물을 보고 작가께서 그
건축물이 그 자리에 들어선 사연을 옛지도와 건축물 대장을 토대로 설명을 해주고 계십니다.

건축물이 들어설 공간의 자연지리적 환경과 경제적 입지가 건물 자체만큼 중요하지만 쉽게 중요성이 간과되곤 해서 설명이 생략되거나 중요하지 않게 취급되는데 이 책은 건물을 둘러싼 여러 환경적 요인들을 설명해주어서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책에 소개된 이런 작은 필지들은 대체로 복개된 옛하천의 지형에 영향을 받았거나 옛시가지의 길이 새로 나거나 확장되면서 기존의 건물들이 헐리면서 생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이책에 소개된 건물들 자체의 특이한 외관에 일차적 관심이 쏠리지만 결국 그 건물의 입지와 필지에 대한 추적이 이어지면서 지난 시간동안 서울에서 일어난 도시계획과 개발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조선사대 이래 서울의 각 입지의 경관이 변해온 상황을 살펴보지 않고는 각각의 건물들이 왜 현재의 상태로 남아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건축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수가 아파트, 재개발, 부동산 등 주택시장에 대한 담론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주거생활이나 공간 자체의 역사적 맥락, 그리고 한말이후 일제를 거쳐 이루어진 서울의 도시개발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답사지역을 중심으로 설명한 게 이 책의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 서울이라는 공간의 변화요인에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크겠지만 경제적 요인만으로 공간변화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니다.

도시는 이전 시대의 흔적을 이 책에서 소개한 이런 좁고 기형적인 필지와 건물형태를 통해 남기고 있는 것이죠.

저자가 책이름을 ‘땅은 잘못없다’라고 지으신 건 그래서 이런 정상적이라고 볼수 없는 작고 좁은 팔지들의 입장을 대변한 센스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가 있었던 파트는 서울에 흐르던 작은 하천들이 복개되어있는 지역들을 소개한 ‘물길의 흔적’입니다.

현재 한강의 지류로 탄천이나 중랑천 그리고 얼마전 인공적으로 복원된 청계천 정도만 알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용산과 마포, 서대문 등에도 한강의 지류인 만초천과 후임천(용산) 그리고 홍제천과 세교천( 마포), 월곡천( 강북)주변과 복개후 달라진 도심의 이야기는 처음 접해본 이야기라 흥미로웠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 동네에 있던 개울가가 복개되어 도로로 변하던 모습을 목격했던 터라 이 책에 보이는 여러 하천들이 도시개발을 이유로 모습을 감춘 이유는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아 알수가 없었다고 해야겠죠.

서울은 지난 40여년간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와 같이 급격하게 변화해 과거의 흔적을 거의 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보통 사람들이 살던 일반적인 주거형태의 흔적을 찿기는 더 어렵습니다.

일제시대 지어졌던 적산가옥부터 1960-70년대 지어졌던 수많은 양옥집들이 대부분 없어지고 초기 서울개발 당시 지어졌던 자층 아파트들이 헐린 자리에 위압적인 20-30층 짜리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것도 경기침체( recession)과 고물가 시대를 맞아 과연 아파트만 주택으로 지어서 공급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증폭되는 상황입니다.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그리고 아파트 살 사람도 없는데 건설사가 PF끼고 고분양가를 내걸고 후분양 장사를 하는지 맞냐는 겁니다.

초기 아파트는 서울에 인구가 폭증하고 주택문제가 심각했을 때 고육지책으로 나온 정책으로 압니다. 1970년대만 해도 대부분 가정에 아이들이 최소 2명에서 3명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자녀가 1명이거나 아이가 없는 딩크족도 많고 아예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 1인 가족도 많습니다.

인구감소로 주택수요가 줄었는데 건설사가 예전 사업방식을 고수하는 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코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는 개발시대 주택건설모델은 이제 시장에서 더이상 통용될 수가 없다고 보는데 답답합니다.

물론 이 책이 가정집에 국한된 건축물을 보는 건 아니었지만 상당수 주택가에서 도시개발이후 남은 자투리 땅에 지은 건물이라는 점이 삶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런 시간의 흔적을 모두 밀어버리고 그저 새것만을 쫓아 크고 비싼 건물만 지으려는 풍토는 시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물러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도시의 건축물들에 대한 그리고 도시계획에 대한 다양한 책이 나왔으면 합니다. 너무 조선왕조에만 매몰되어 있는 건축문화유산에 대한 관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눈앞에 남아있는 우리 당대의 멀지않은 과거 ( 예를 들어 1980년대)의 건축물이 없으면 지금 세대들은 그 당시의 삶을 직접적으로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망한지 100년이 넘은 조선시대 건축물보다 일제가 이땅에 세운 건축물이 더 중요하고, 그보다 개발시기 한국의 건축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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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똥장수 -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
신규환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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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이미 지적하셨듯이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본문 270여쪽 가량인데 같은내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도시사와 사회사쪽에서 흥미있는 20세기초 북경의 하층민에 대한 연구가 될 수 있는데, 내용이 부실해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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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서울을 걷는다 - 제10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허남설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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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에 출간된 서울의 ‘재개발’관련된 일종의 르포입니다.

저자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일을 하다 경향신문 기자가 된 이력의 소유자입니다.

책은 아파트가 아닌 공간에서의 삶의 쾌적을 추적합니다. 즉, 중계동 백사마을, 동대문 상권에 위치한 창신동, 남산 밑의 다산동, 세운상가 일대와 을지로의 공구거리의 삶을 추적하죠.

흔히 아파트단지가 뒤덮은 서울은 공동체(community)가 사라진 거주공간이고 사실상 마을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70년대까지 있었던 같은 동네주민, 이웃이라는 말은 이제 점점 더 쓰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저역시도 인생의 절반이상을 아파트단지에 살아 그 외의 공간에서의 삶이 어떠한지 어릴때의 기억 뿐 지금은 어떨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이 책은 한국 특유의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지역 주민들의 삶을 ‘무시’한체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속도’에 집착해서 ‘실현 불가능한’계획을 남발하고 있는지 드러냅니다.

오래전부터 거리에 사진을 찍으러 나갈때마다 느꼈던 것은 서울의 ‘경관’이 너무 빨리 바뀐다는 것이고 또 과거의 흔적을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나라도 한국처럼 하나 들여다 보면 이런 과거의 흔적을 모두 없애버리는 전면 재개발은 한국에서만 행해지는 행위였습니다.

서울에서는 매우 드물게 오래된 건물의 외양을 남긴체 내부를 현대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그것도 문화재급 군대건물이나 기념물만), 대부분의 오래된 건물글, 특히 일제시대에 지어졌던 적산가옥이나 일제가 만든 공장건물들은 속절없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건물이 들어섭니다. 이 행위자체가 그 공간에 대한 ‘역사’말살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극단적인 경우이기는 하나 종로에 위치한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유네스코가 서울시의 세운상가지역 재개발에 제동을 건 사례가 책에서 나옵니다. 이 사례가 극단적이라고 한 이유는 굳이 조선초기의 건축물이라서 보존가치가 있고, 경관훼손이 일어나지 않아야 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런 조선시대 유산뿐만 아니라 일제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과 종묘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조선시대 한성에서 출발했지만 현재의 서울은 일제시대 경성에서 직접적인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팩트는 팩트니까 인정하고 가야하고, 일제말기면 1930-40년대인데, 지금사점에서 이때 지어진 거의 100년이 다된 건물들 중 일부는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축물은 구체적인 삶의 증거고, 더구나 일제의 식민통치를 눈으로 볼수있는 증거입니다. 보존해야 일본인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이땅에서 한 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친일파 저택과 일반 국민들의 가정집이 같이 남아 있어야 일제의 부당한 대우도 알수 있는데 말이죠.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과거의 흔적을 너무 쉽게 없애버렸어요.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서울시장을 비롯한 선출직 지자체장이니 건축관련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파괴하고 철거하는 건물들의 가치를 알고싶지도 않아하고 별 생각도 없는것 같습니다.

뭐 일제시대 건축물에 대해서는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 인문학적 관심이 없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운상가와 을지로 공구상가 재개발편에서 보여준 공무원들 , 특히 건축관련 공무원들의 경제적 ‘무감각’은 거의 재앙수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무원 시험보면서 가치사슬이 뭔지 산업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배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청계천변 을지로 공구상가와 세운상가 재개발을 계획하면서 그 지역의 산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협업을 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건물주의 아이극대화에만 ‘편협’하게 몰두합니다. 그 지역에서 일하는 사람과 사업은 고스란히 무시한 체 낡은 건물을 헐고 새건물 올릴 생각만 하고 입만 열면 ‘첨단 산업‘이야기만 합니다.

이건 그냥 무지의 소치입니다. 보수적인 경제적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습니다. IT나 플랫폼 사업 그리고 그에 수반된 서비스산업은 몸으로 일하는 제조업과 유통업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경제의 기반이 제조업이고 그걸 떠받치는 게 부품 공구 산업인데 한국전쟁이후 청계천변 을지로에서 자그마치 70년 이상 대를 이어 일을 하던 기술자들의 공동체를 부수고 그 네트워크를 없앤 뒤에 새건물을 지어 나올 수 있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되길래 이런 무도한 짓을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건축관련 공무원들이 땅팔아 먹는 것만 알지 나머지는 아는게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평가합니다.

끝으로 도시미관이라는 요상한 말에 대해 언급하려고 합니다.

도시미관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요새식으로 말하면 판자집인 토막(土幕)문세를 거론할 때부터 나온 걸로 압니다. 지금부터 거의 100여년 전이죠. 일자리가 많은 경성에 일하러 온 총부들이 비싼 경성의 집을 사지못해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살았는데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경성 밖으로 이들을 이주시킵니다.

약 50여년 뒤 박정희 정부시절, 거의 판박이 같은 일이 또 일어납니다. 주로 청계천 변에 살던 빈민들을 ‘도시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현재 성남인 경기도 광주로 이들 빈민를 강제아주시킵니다. 아무런 인프라도 없는 허허벌판에 국민들을 버린 겁니다. 그래서 1979년 이 빈민들이 박정희 정부에 반기를 드는 ‘광주대단지 사태’가 일어납니다.

그 이후로도 도시미관을 이유로 국민을 내다버리는 폭력적 향태는 계속됩니다.

지속적으로 이런 일이 자그마치 100여년 이란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걸 보고, 도대체 한국정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인가, 서울시장과 건설관련 공무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른데는 모르겠고, 최소 제가 가보았던 유럽의 대도시들은 건물을 함부로 부수거나 철거하지는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 낡은 건물이 즐비한 프랑스 파리같은 도시는 보기와 다르게 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건물을 지었으면 튼튼하게 잘 지어서 오랫동안 고쳐쓰는 게 정상이지, 건물의 노후연한을 법적으로 20년으로 지정하고, 20년 지난 건물은 철거해도 된다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건 우선 건설회사와 토지주들이 너무 돈만 밝히는게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러면 한국에 왜 20세기 이후 제대로 된 역사적 건축물이 없나 불만도 제기할 이유도 없습니다. 20년 넘으면 건물철거하는게 법적으로 보장 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몇백년이 지난 고건축물이 남아 있을 수 있겠어요? 20세기 이후 한국의 건축역사와 도시의 역사는 ‘소거’되는 겁니다. 나중에 20세기 서울 시민들이 아파트와 주상복합말고 어디에 살았는지 아무런 실체도 알 수 없게 되는거죠.

책은 본문 226쪽의 소책자로 서울의 공간에 관심을 가지는 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저자가 각주에서 소개한 재개발 관련 법령해설이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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