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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만난 도시의 미래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재생 이야기
김정후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7월
평점 :
공간과 도심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낙후된 도심을 재생하는 도심재생사업은 사실 관심밖이었습니다.
서울에서 일어난 도심재개발사업이 대체로 기존의 건물을 흔적도 없이 때려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과 도시구역을 만드는 식으로 진행되어 그 ‘ 폭력성’으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존의 원주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기존 건축물의 보수나 개선방향은 생각하지 않은체 오로지 돈만 바라보고 사업을 진행하는 후진적인 사업방식만 봐와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이책의 10가지 사례는 영국런던의 지방정부와 영국정부, 그리고 민간 건축회사와 지역공동체가 어떻게 숙의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도심의 낙후된 산업시설과 슬럼가를 정비하면서 과거의 산업유산인 근대건축물들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도심재생사업을 진행해왔는지 보여줍니다.
30여년전 런던을 방문했을 때 템즈강 남쪽의 낙후된 우범지대에 대한 경고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 책에는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리노베이션해서 세계최고의 현대미술관으로 바꾼 테이트 모던 ( Tate Modern)의 사례가 나옵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 The National Gallery)와 함께 영국의 주요 미술관으로 짧은 시간에 도달한 테이트 모던은 지역의 경제활성화의 신호탄이 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테이트 모던과 영국을 상징하는 세인트 폴 대성당 (St. Paul Cathedral)을 잊는 보행자전용 다리인 밀레니엄 브리지 (Millennium Bridge)는 발전된 런던북부와 남부가 연결된 것입니다.
2003년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로맨스 영화인 Love Actually (2003)에서 본 밀레니엄 브리지와 세인트 폴 성당의 모습이 제가 본 21세기 런던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입니다.
17세기 런던대화재이후 석조로 건축된 유서깊은 대성당과 버려진 화력발전소를 리노베이션한 현대미술관과 보행전용 다리를 만들어 연결한다는 발상은 지금봐도 매우 신선합니다.
그외 인상적인 사례는 런던의 교통요지인 킹스 크로스역 (King’s Cross Station)의 재생계획입니다. 런던도심 한가운데에서 북부 영국과 연결되는 교통요지인 이곳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쇠락하고 방치되어 주변의 철도관리시설과 가스시설과 창고가 방치되어 도심 속 우범지대로 남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재생계획이 발표된 이후 킹스 크로스역과 함께 위치한 세인트 판크라스역 (St. Pancras Station)은 역사와 함께 있던 19세기 호텔을 리노베이션해 고급호텔로 재개관하고 역사를 이모델링해 영국에서 유럽대륙으로 나가는 전용 철도역이 되었고, 오래된 킹스크로스역 또한 리노베이션해 영국 북부지방을 있는 역할을 계속했습니다. 주변의 창고와 물품하역장도 리노베이션해서 각종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서고, 창고 주변의 리젠트 운하 (Regent Canal)의 수변녹지와 연계해 휴식공간을 제공하게 힌 것입니다.
런던 도심 한복판에 운하 물길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관련자료를 보면 전혀 대도시답지 않는 모습이 매우 놀랍습니다.
이 책에 나온 사례들은 한가지 사례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건출물과 지역일대를 모두 부수는 무지막지한 사례는 없습니다.
오래된 건물의 역사성을 인정하고 보전을 우선시하고 개발허가가 나더라도 건물외형을 보존하고 약간의 변형만 필요에 의해 진행할 뿐이고, 대신 내부는 현대생활에 걸맞게 대대적으로 수리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시간이 오래걸려도 도심재생과 오래된 건물의 리노베이션은 이런 방식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1970년 개발을 상징하던 삼일빌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일제시대 한국인 사업가가 만들었던 화신백화점도 사라졌습니다.
서울역은 그나마 원형이 보존되고 있지만 2000년대 초까지 있었던 용산역도 흔적이 없어졌습니다. 1960-1980년대, 즉 개발년대를 상징하는 현대건축물 중 남아있는게 얼마나 있나요? 조선시대 궁궐이나 전근대적인 건축물만 가치가 있고, 일제시대 일반 건물 들, 적산가옥이나 공장건물, 그리고 개발년대의 건물들은 가치가 없다며 싹 밀어버렸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종로 1가의 명물이었던 피맛골 골목을 밀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빌딩을 지어 경관을 청진동 일대를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서울이 다른 외국도시들에 비해 편리한 첨단도시인 건 분명하지만 도심재개발 방식이나 건물 리노베이션 방식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눈에 보여야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여야 할 건물들을 철거하고 완전히 새로운 건물로 대체하는 건 두가지 점에서 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체로 친일에 부역한 과거를 가진 기득권층이 개발을 목적으로 증거를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애초에 몰역사적이고 돈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건축물 리노베이션같은 더디고 돈 안되는 작업에 관심이 없는 것이죠.
제 추정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요새처럼 기득권층의 민낯을 마주하는 시기에는 이런 의심이 더 커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