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오늘 완독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내성적인 남자의 미술품 집착( obsession) 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6-17세기 미술품을 훔치는 충동을 참을 수 없는 남자가 동거하는 애인을 파수꾼(lookout)으로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의 미술관, 갤러리에서 집착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미술품을 훔쳐 집 다락(attic) 에 쌓아놓습니다.

책의 전반은 이 남자의 미술품 도벽과 기술에 대해 기술하고, 후반은 남자가 스위스에서 체포된 이후 법정에서의 재판진행과정과 옥살이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책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주인공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다락에 쌓여있던 미술품들을 근처 운하에 투기하고, 목재조각과 유화들은 모두 태워버린 일화입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예술품 도난 수사대가 프랑스의 주인공 집 다락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곳은 주인공과 여자친구의 흔적과 미술품이 모두 모두 깨끗하게 치워진 상태였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미술품을 훼손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간호사로 일한 병원에서도 해고되었습니다.

책의 가장 절망적인 부분은 주인공이 복역을 마치고 새삶을 시작하려는 찰라에 습관적으로 나온 도벽으로 옷을 훔친 일입니다. 이 일로 그는 도벽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불행한 삶을 살게 된 겁니다.

미술품애호가(collector)라고 재판과정에서 변호사들이 지칭하고 높여본 것이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끝으로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주인공을 비롯한 이 사건 재판 관련 변호사들과 형사 그리고 미술전문가들 그리고 심리상담사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후술했고, 참고한 관련 저서들과 저자들을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미술품 도둑들은 책도둑(bibliomaniacs)과 같은 부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으로 수도원과 공립도서관에서 책을 훔쳐온 몇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주인공이 이들을 존경했다고 허는 대목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어판으로 이 책을 읽었지만 한국어 번역판이 이미 출간되었습니다. 미국에서 2023년 6월 처음 출간되고, 한국에서 2024년 9월 출간되었으니 1년도 안되어 한국판이 나온 셈입니다.

예술도둑, 마이클 핀클 지음, 염지선 옮김 (생각의 힘,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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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요모타 이누히코 지음, 한정림 옮김 / 정은문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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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회고록처럼 쓰여진 이책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소설보다는 더 논픽션처럼 느껴집니다.

일본에서 프랑스문학과 영화를 공부한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취업하게 됩니다.

당시 일본 젊은이들처럼 한국에 대해 아는 것 없이 그저 한국은 일본의 예 식민지였고 일본보다 못사는 후진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결에 한국에 가게된 주인공은 속성으로 한국에 대해 공부하고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갑니다.

현국대( 건국대로 보입니다) 에 취업한 주인공은 당시 아파트가 지어지던 한강건너 잠실의 장미아파트에서 하숙을 살면서 학교로 통근울 합니다.

시대배경이 1979년이고 당시 60-70대는 젊은시절 일재강점기에 일본인으로 살며 일본어로 교육을 받은 세대였습니다. 주인공의 하숙집 주인도 그래서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고 일본책을 즐겨읽을 정도였습니다.

배운 지식인충은 거의 대부분 일본어를 할줄 알았고, 당시만 해도 일본은 따라잡을 수 없는 선진국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하숙집 주인 뿐만 아니라 군사독재를 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고위인사들 모두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던 시기였습니다.

주인공이 묘사하는 개발초기 강남( 잠실) 의
모습과 국제우편과 편지를 검열하는 독재정부의 일상적 모습과 열악한 교통상황이 새삼 그 당시를 상기시킵니다.

제 기억속 1970년대는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기억되는데 종로나 명동으로 나가려면 늘 만원버스에 시달린 기억이 나고, 반포에 고속버스 터미널이 생기기 전까지 시내의 알수없는 곳에 정차되어 있던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멀리 떠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상식인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고, 어린아들은 부모 무릅위에 앉아가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과 주변 어른들로부터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사실 당시는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탄에 살해된 그 날 돌아가신 제 할머니께서 우시던 기억만이 또렷합니다. 마치 세상이 끝나는 듯한 느낌도 좀 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 이 책에서 묘사하는 야간통금과 학교에서의 지루한 아침조회 그리고 학교가다 말고 멈춰서서 국가에 맹세를 하고 학교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던 것 역시 기억합니다.

하지만 어릴 때 접했던 이 모든 것들아 사실상 일제강점기 특히 총력전을 위해 온 사회가 전쟁에 동원된 1930년대에서 비롯된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라디오 음악에 맞춰 국민체조를 하는 것도, 국기게양 시간에 일제히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길가에 서 있는 것도, 그리고 국가가 언론을 검열하고 우편물을 검열하는 모든 것들의 뿌리가 일제군국주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겁니다.

또한 박정희 군사정부가 치적으로 내세우는 경제개발계획의 경우도 그 뿌리가 일재가 새운 만주국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가 만주군 장군출신인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고, 경제발전계획을 집행한 초기 관료들 중에 상당수가 일본의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총독부나 만주국 정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일본에 우호적인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사람들아 생존해 있었고 , 일본인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주인공은 한국어를 배우러 왔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일본어로 말을 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책의 계엄에 대한 서술은 계엄이 실제로 일어나면 군인들이 사회를 어떻게 통제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전두환 신군부는 언론사를 장악하고 국민들의 선거권을 박탈했고 국회의 야당인사들을 탄압해 자택에 감금시키길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생소한 통금시간이 존재해 자정이 넘으면 일반인의 외출이 허락되지도 않았습니다. 이책에는 10.26사태 이후 통금시간이 저녁 10시로 앞당겨지고, 거리에 장갑차가 들어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게된 직접적 이유는 물론 2024념 12월 3일 일어난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 때문이었습니다.

영상을 보다 갑자기 밤 10시에 대통령이 담화를 한다기에 보니 계엄선포였습니다. 급히 TV를 틀고 무슨일이 벌어지나 지켜봤습니다. 국민들이 잠들 시각에 계엄령을 기습적으로 발표하다니…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하고 헬기가 국회에 착륙하는 광경을 보았고, 대통령은 오만하게 앉아서 계엄포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국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통제한다는 말을 무표정하게 발표하는 장면은 독재자의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파업중이던 의사들을 ‘처단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소름이 끼쳤습니다.

지금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지만 그의 내란수괴혐의애 대한 형사재판은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한국의 사법부는 12.12내란을 일으킨 전두환 노태우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몰상식한 판단을 한 역사가 있습니다.

전두환이라는 내란수괴가 ‘자연사’하게 내버려둔 겁니다. 12.3 쿠데타의 형사재판과 사법부의 판결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국이 진정한 법치주의 공화정 국가를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린 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부가 과거의 치욕을 딛고 세계 12위 경제규모에 걸맞는 선진적 판결을 할지 아니면 미얀마와 같은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을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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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강렬합니다. ‘Uncivilised’, 즉 ’‘문명인이 되지 못한 자’라는 뜻으로 이책에서는 서구(The West)가 아닌 지역 (Non-West)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책 내용을 살피기에 앞서, 저자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합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영국출신 백인도, 남성도 아닙니다.

그녀는 인도계로 본인 스스로 남아시아출신( South Asian descendant )로 말하고 런던대학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 London, UCL)의 과학 컬렉션(Science Collection)을 담당하는 UCL 박물관의 큐레이터입니다.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 런던의 주요 대학인 UCL의 박물관의 유일한 유색인 큐레이터로서 고고학과 인류학을 전공하였기 때문에 영국에서 시작된 진화론부터 대영제국의 확장과 이에 따른 식민주의 그리고 영국의 백인남성들이 보여주는 유색인정에 대한 차별을 자신의 학문을 통해서 그리고 개인사를 통해 고백하듯 보여줍니다.

저자는 아랍에미리트UAE)의 아부다비 (Abu Dabi)에서 인도출신 이민자의 딸로 출생했고, 약사와 의사인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고, 영국에서 성장하고 영국시민권을 딴 경우입니다. 대학박물관에 몸담고 있지만 외지인으로 살아왔고,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늘 경험하고 살아온 겁니다.

따라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의 백인남성위주의 세계관인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와 서구와 비서구의 차별과 더불어 비서구를 ’문명화되지 않은‘ 또는 ’야만적인(Barbarian) ‘지역을 자동적으로 해석해온 서구의 이분법적 사고의 폭력성을 드러냅니다.

이런 차별의 근거로 진화론( evolutionary theory)는 가장 우월한 백인종이 열등한 유색인종을 지배해도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귀결되고 유럽제국주의자들의 식민통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습니다.

서구제국의 문화재 약탈의 논리도 위의 서구우월주의와 인종주의에 근거합니다. 영국의 경우 아프리카와 그리스 등의 문화재를 약탈해 대영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이유 중의 하나로 이들이 침략하거나 지배해온 국가의 ‘열등한’유색인종들은 자신들의 문화재를 관리할 능력이 없어 ‘우월한 문화선진국’인 영국에서 소장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실제 대영박물관에서 보면, 소위 비서구 지역으로 불리는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지역의 정교하고 세련된 유물들을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할만큼 정교한 유물을 제작한 자들의 후손들이 자신들의 문화유산인 이 유물들을 관리하지 못한다는 주장은 사실 상식적이지도 않고, 괘변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니 책의 부장 중 하나는 ‘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갖는 취약성입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와 근대 서두에서 출발한 ‘대의민두주의’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일반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해서 모두에 의한 정치가 가능한 반면, 서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의 정치참여가 불가능하고 선거로 뽑힌 소수에 의한 통치가 제도화 된것으로 서구의 정치체제는 왕정에서 귀족정을 거쳐 대의제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소수에 의한 지배, 엘리트에 의한 과두적 지배( oligarchy)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예상과 달리 불평등과 차별은 서구사회에서 그 뿌리가 매우 깊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세계를 움직인 열가지 프레임( 북하우스, 2024)‘로 번역출간되었습니다.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빼려 하는 현재, 유럽은 러시아의 위협에 대한 실존적 위협( Existential Threat)으로 느끼고 있지만 미국의
안보 우산이 사라지면 자신을 어떻게 방어할 지 의문인 시점입니다. 한 때 민주주의를 축으로 한 서구 자유주의가 승리했다고 들떠 있던 때가 30 여년 전입니다.

하지만 서구국가들이 독재국가라고, 덜 문명화된 나라라고 깔보며 무시하던 과거 공산국가들 못지 않게 대의제 민주국가의의 대표격인 미국도 영국도 소수의 엘리트 집단과 억만장자들이 정치권력을 독과점하는 과두지배체제 내지 금권정치체제(plutocracy )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종차별 과 젠더차별이 같이 따라옵니다.

최근 친위쿠데타가 일어난 한국도 검사출신 대통령을 국민들의 직접선거로 뽑았습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 현직대통령이 쿠데타를 일으킨 초유의 역사퇴행이 일어난 겁니다.

여기에는 주류 엘리트 집단인 고시출신 검찰과 행정부 고위관료들이 국민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자원배분 과정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대통령과 결탁해 결국 헌정질서를 무너뜨려 전제정치로 나아가려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을 추종하는 친미적 근대화를 이룬 한국을 친미성향의 엘리트들이 민주주의와 별개로 스스로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는데 동조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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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유명한 책을 이제서야 읽은 건 개인적으로 유감스럽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 후반 젊은 직장인들 ( 주로 20대후반에서 30대로 보이는)의 회사생활과 사생활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이 처음 출간된 해가 2019년이니 COVID-19 팬데믹 직전의 한국의 직장생활을 그려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2020년 출간된 26쇄판으로 읽었습니다. 아무튼 인쇄횟수를 보니 엄청나게 인기를 끈 소설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해서 글보다 영상을 먼저 접한 작품입니다.

작가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의 동명작품 ‘The Peasures and Sorrows of Work(2010)’에서 제목을 가져온 이 작품은 온라인 중고마켓 플랫폼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인 주인공이 너무나 멀쩡한 물건을 중고마켓에 내놓는 또 다른 주인공과 만나면서 이루어진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월급을 포인트로 받은 직원은 포인트로 물건을 구매해서 포인트를 현금화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된겁니다.

회사 오너의 눈에 나서 포인트로 월급을 받게되는 황당한 상황은 우스운것이 아니라 기가막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완전허구라면 웃고 지나가겠지만 현실에서 일어남직한 경우여서 씁쓸한거죠.

이 글이외에도 결혼 , 여행, 첫출근, 취업 등 젊은이들이 처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빼곡합니다.

일전에 장강명작가께서 ‘월급사실주의’를 추구하신다고 했는데 그 사조에 딱 맞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정갈하고 세련되게 쓰였지만 현실을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재미가 있어서 금방 읽을 수 있는 소설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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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연대기 - 잊힌 시간 형태의 기록
이창익 지음 / 테오리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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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이창익 교수의 ‘시간형태의 역사’입니다. 2025년 1월에 출간된 책이니 나온지 2달정도 밖에 안된 신간입니다.

종교학자이신 저자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저술하신게 의외였는데 이미 박사학위논문으로 조선시대 ‘달력’에 대해 저술하신 적이 있더군요.

이책의 5장 ‘달력의 연대기’가 저자의 박사논문을 기반으로 한 부분입니다.

서론에서 저자는 5장의 앞의 4장은 달력을 연구하다 파생된 여러 다른형태의 시간을 나타내는 사물들을 추가적으로 파헤치다보니 부가된 ’각주‘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부가된 장들이 5장을 초과해서 책이 쪽수가 자그마치 714쪽에 달하게 됩니다.

조선시대 물시계를 기반으로 종으로 시간을 알렸고, 일제가 들어온 이후 정오마다 오포라는 대포를 쏴서 시간을 알리고, 전기가 들어온 이후 싸이렌과 전기시계 등으로 시간을 알리게 됩니다.

전기가 들어온 이후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고 이후라디오 시보를 따러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일하고 쉬는 시간을 일관적으로 유지해 식민권력이 신체를 통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 공장, 군대 등 근대의 모든 조직에서 시간에 따라 구성원들을 통제하기 쉽고 자본과 기득권층의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제는 계속 자금을 투자해서 규율을 만들어갑니다.

군대에서 오포를 쏘아 시간을 알리다 시계가 도입되고 전기시계가 나오면서, 새로 신축되는 근대건축물인 기차역, 교회, 백화점, 관공서에 시계를 부착하고 시계탑이 등장합니다.

오포와 싸이렌의 경우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리는 시보(時報)의 기능을 처음에 담당했지만 이후 일제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시보의 성격과 함께 경보(警報)위 성격이 혼재되기 시작합니다.

라디오방송의 경우도 처음엔 시간을 맞추는 시보용도로 사용되다 전쟁이 시작되고 인원동원이 강제되면서 ‘라디오 체조’라는 동원기재가 시작되고, 이후 국민체조, 한국신민의 서사, 기미가요 제창, 궁성요배, 신사참배에 조선인들을 동웒합니다.

달력에 대한 마지막 장은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기본적으로 천문역법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도, 달을 기준으로 하는 음력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조선시대 전통달력은 길흉화복을 나타내는 방위에 대한 공간개념과 길일과 흉일에 대한 역주도 붙어있어 흔히 생각하는 달럭과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갑오개혁이후 갑작스럽게 실시된 양력의 채용은 엘리트들이 일방적으로 시행한 위로부터의 제도개혁이었으며, 일반 백성들은 받아들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제사일이나 농사와 관련된 절기는 모두 음력으로 알려져 있어서 양력역서애도 음력이 부가되는 경우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조선도 일본도 양력과 음력이 부기되어 합본된 기간이 약 40여년에 달합니다.

축일의 경우 양력화가 어느정도 이루어졌지만 제사일의 경우는 음력이 주를 이룬체 끝내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계절의 중요 절기(節氣)는 음력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양력과 음력의 이중적인 시간체계가 아직도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양력은 아직도 완전히 정착이 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생각하는 서양중심의 양력으로 표기된 달력과 누구나 흔하게 보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계가 사실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서서히 일상을 파고 들었고 이런 사물의 침투와 함께 ‘시간의 일원화’ 역시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었습니다. 식민권력과 자본은 시간의 통제를 통해 얻는 이익이 상당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에 갇혀 올싹달싹 못하는 불쌍한 찰리 채플힌의 모던타임즈(1936)속의 모습이 단순히 코미디로만 보이지 않는 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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