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책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20대였던 90년대말 영화에 빠져 살았던 전직 영화관으로서 한편으로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 과거의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흥미롭게 읽은 에세이입니다.

지은이 한상훈님은 영화에 흥미를 느껴 영화이론석사 공부도 하시고, 직접 단편영화연출도 하시고, 배우로 출연도 하시고, 직접 영화에 참여하기 전엔 영화학교인 시네마테크나 부산영화제에도 참여하셨던 제가 보기에 진정 영화에 빠진 삶을 사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해도 고전영화를 DVD로 찿아보거나 시네마테크에 가끔 기웃거릴 정도였으니 정도는 좀 약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 저도 알프레드 히치콕( Alfred Hitchcock)감독의 영화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저자는 ‘현기증(Vertigo,1958)’를 무척 좋아해 비디오로 보는 걸 넘어 극장에서도 보셨다고 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창(Rear Window,1954)’를 더 좋아합니다.

종군사진기자 출신의 남자 주인공이 발이 부러진 체로 카메라를 통해 살인현장을 목격하고, 여주인공이 사건현장에 몰래 다가가는 장면을 남자주인공 관점에서 시종일관 ‘훔쳐보기(voyeurism)‘로 표현된 스릴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헐리우드 고전시대 미인인 그레이스 켈리와 제임스 스튜어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저자는 ‘현기증’영화에 빠져 마치 현실과 영화가 구분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영화광의 영화와 인생에 대한 고백의 글답게 저자는 히치콕 이외에도 여러 고전과 걸작을 거론하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몇편만 소개하려 합니다.

얼마전 타계한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2001)‘ 는 현실과 꿈 그리고 아이덴티티에 관한 린치의 해석으로 강렬한 화면과 예상을 뒤엎는 전개로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생생합니다.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세기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왕가위의 ’중경삼림(1995)‘이 떠오릅니다. 종로의 시내코어에서 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영상과 음악을 듣고 빠져들었던 영화입니다. 이후 왕가위의 ’동사서독(1995)‘와 ’아비정전(1990)‘까지 찿아보았습니다.

1990년대말까지 적어도 홍콩의 중국반환(1997)이전까지는 홍콩영화가 아시아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홍콩영화의 영향력으로 2000년 미국의 유명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은 당시 홍콩영화를 분석한 ’Planet Hong Kong(Harvard)’를 썼습니다. 저도 당시 읽어보려 했던 책입니다. 제가 알기로 홍콩영화미학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9년도에 워쇼스키형제가 ‘매트릭스(The Matrix)’라는 걸작영화에서 홍콩의 무술감독을 채용해 홍콩무협영화의 스타일을 헐리우드에서 재현한 것도 이런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왕가위의 영화를 계속 거론하게 되는데 고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화양연화(2000)‘도 생각이 납니다. 개인적으로 왕가위 영화의 최고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인생을 잡아먹을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어린시절부터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으로서 저자가 거론하는 많은 영화들이 실제로 본 경우가 많아 반가왔습니다.

하지만 허샤오시엔의 영화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등은 본적이 없고 제목만 아는 경우였습니다.

끝으로 에세이라는 글은 결국 개인사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 살아생전의 기억과 화해의 기억 그리고 마지막 가실때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총 250쪽 정도의 얇은 자기고백적 에세이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은 금방 일독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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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에서 도시사(都市史)를 연구하시는 박진한교수의 2024년 저작입니다.

일본의 역사를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긴시간동안 도시의 발달의 관점에서 바라본 독특한 시각의 책입니다.


고대 일본에 도입된 중국의 도성(都城)제부터 일본의 중세이후 지방 영주들인 다이묘(大名)의 성과 그 성아래 마을인 조카마치(城下町)의 성립과정을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무사중심의 사회였던 일본은 수백개의 번(藩)의 영주와 영주의 성아래 마을인 조카마치의 형태로 지내다가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시기가 되어 폐번치현(廢藩置縣)이 이루어지고 번들이 통합되고 근대도시가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의 오랜수도였던 교토(京都)가 중국의 고대도시체계인 도성제의 영향이 도시 곳곳에 남아 있고, 일본의 경제수도인 오사카(大阪)는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 豐臣秀吉)의 근거지로 아직도 얼마남지 않은 일본식 성인 오사카성(大阪城)이 남아 있는 조카마치 구조였습니다.

일본은 17세기부터 유럽의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와 교역관계를 가졌고, 규슈의 나가사키(長崎)의 데지마(出島)를 통해서 제한적으로만 서양인들과의 접촉하며 쇄국정책을 유지했습니다.

일본은 또한 규슈 최남단 사츠마번(薩摩藩)의 가고시마(鹿兒島)를 통해 포르투갈의 화승총을 받아들여 조선과 임진왜란을 치를 때 사용한 전력도 있습니다.

이 책은 도쿄, 교토, 오사카 등 일본의 거대도시 뿐만 아니라 하기(萩), 규슈남단의 가고시마(鹿兒島)처럼 메이지 유신과 관련이 있는 소도시와 제국일본의 대표적 군수도시였던 히로시마(廣島) 그리고 일본 최초의 야하타(八幡) 제철소가 있었던 기타큐슈(北九州)도 다룹니다.

규슈 북부와 야마구치현사이를 가로지르는 세토내해(瀨戶內海)는 과거 조선과 일본을 이어주는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이 오가던 교통의 요지입니다.

부산과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下關)을 오가던 관부연락선은 일제강점기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이주하기 위해 탔던 배이기도 하죠.

규슈쪽에는 시모노세키 건너편에 간몬해협(關門海峽)을 사이에 두고 모지(門司)가 있습니다.

시모노세키와 모지항은 별도로 장을 할애해 설명하지는 않지만 한국과의 관계 그리고 일제의 전쟁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항구입니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해서 중요한 도시로 도쿄 인근 에도만의 항구도시 요코하마(横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에도만의 우라가(浦賀)에 흑선을 타고 와 통상을 요구했고, 이에 일본은 요코하마를 개항하고 국제법체제에 편입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라가가 있는 요코츠카(横須賀)는 군항으로 일본의 패전이후 미군이 주둔했던 군항입니다.

같은 기능을 하는 미군주둔 군항으로 규슈의 나가사키 근처의 사세보(佐世保)항이 있습니다. 일본의
네덜란드 도시 하우스텐보스(ハウステンボス)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가장 가깝고 그래서 자주 가본 국가이기도 하고, 한국과의 과거에 애증이 남아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 일본의 수도 도쿄를 비롯해 교토, 오사카, 나가사키, 후쿠오카, 기타큐슈, 고쿠라, 모지, 시모노세키는 직접 방문한 적이 있어 글을 읽으면서 더 실감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에 대한 책을 찿아 읽기 시작한 것도 먼저 일본을 접한 경험이 이끄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왕에 도시에 대한 역사책을 소개하기로 했으니 제국일본의 도시계획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았고 또 조선에 어떤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수 있는 책이고, 제가 도시에 관해 거의 처음 읽었던 책이라 다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진성,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기억과 건축이 빚어낸 불협화음의 문화사 ( 천년의 상상,2015)

집필된 지 10년이나 지난 책이지만 그리고 두꺼운 벽돌책이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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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roaches to Popular Film (Paperback)
Joanne Hollows / Manchester Univ Pr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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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96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옥스퍼드(Oxford)의 유서깊은 서점 블랙웰(Blackwell)에서 구입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장에서 거의 20년을 잠자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습니다.

이 글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이론서입니다. 영화학 (Film Studies)에서 대중영화 (Popular Film)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이론적 틀을 간략하게 설명한 입문서입니다.

그래서 각 장에서는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미디어 이론부터 시작해 구조주의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심리분석이론과 기호학을 지나 브르디외로 대표되는 프랑스의 문화 사회학적 시각, 여성주의적 영화분석론도 언급합니다.

이 책의 전반부가 이론적이고 일반적이고 비역사적인 논의로 시작해 영화를 영화 텍스트 자체로만 분석하는 경향을 지나 점차 능동적 영화 수용자를 이론적으로 포섭하는 방향으로 글을 전개해 나갑니다.

또한 중반을 넘어서 영화를 특정한 역사적 환경의 산물로 이해하는 역사적 시학 (Historical Poetics)에 와서 영화는 단순히 매체 자체의 텍스트로만 읽히는 것이 아닌 특정한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인 관계를 같이 고려하는 단계로 설명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영화 관객의 영화수용에 어떻게 다른 사회계층의 취향에 영향을 받는지 그리고 그 취향이 단순한 기호가 아닌 사회 경제적 구조의 영향임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사회학자 브르디외의 주장을 차용합니다.

지금은 영화를 비롯한 매체의 수용과 피드백에 수용자들의 영향력을 당연시하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이 책이 출판되었던 1990년대나 이 책을 구성하는 이론들이 논의된 1900년대 초부터 1980년대까지 능동적이거 적극적 수용자는 이론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때 영화에 미쳐 있었던 제 20대가 떠오릅니다. 영화를 가리지 않고 수없이 보았고 결국 영화에 대한 책들도 상당히 많이 보았습니다.

영국에 처음 가서 이런 영화 이론서를 사온것만 보아도 그 때는 정말 영화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학자 한 분을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역사적 시학에 관한 논의는 대부분 미국의 영화학자 데이비드 보드웰(David Bordwell) 교수의 주장을 이야기 하는 부분입니다.
이 분은 1990년대 가장 뛰어난 홍콩영화 평론가의 한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데 그의 당시 홍콩영화에 대한 해설은 당시 유행하던 홍콩 누아르의 스타일을 설명하는 거의 표준적 해설로 이해되었습니다. 그의 이런 영향이 결국 할리우드에 수용되어 매트릭스 (1999)와 같은 걸작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된것으로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책은 기존의 영문학이나 언어학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면 더 읽기 쉬울 것 같습니다. 간략한 정의와 설명은 들어있지만 기본 전제와 개념에 대한 이해없이 읽기에는 좀 버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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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해
루이스 자네티 지음, 김진해 옮김 / 현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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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에서 영화교과서의 고전으로 알려진 책입니다. 벌써 출판사를 바꿔가며 12판까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왔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 초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던 중 만난 책입니다. 영화이론은 커녕 제대로 된 영화서적도 없던 시절 이책에 실린 고전영화들과 중요 영화들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갈증을 달랬습니다.

한국에 시네마테크가 처음 생긴 그 당시, 객기부리듯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난해한 영화를 보러 다녔던 것도, 30대에 고전영화에 빠져 있었던 것도, 같은 영화를 스무 번 이상 본 것도 모두 이 책의 영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어머니 댁에 가면 오래된 이 책이 서가 한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약 20여년이 흐른 지금 제가 영화와 가장 유사한 매체 특성을 가진 사진에 빠져 있는 것도 1990년대 당시 제가 심취해 있었던 영화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가 장편소설이라면 사진은 한편의 짧은 시겠지요.

아무튼 저를 비롯해 영화에 대한 애정이 있으신 분들은 많은 분들이 이 책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좋은 책은 생명력이 길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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