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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라자 세트 - 전8권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8년 11월
평점 :
이영도 작가는 현재의 판타지 문학의 초석을 닦았다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 문학 중에서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다른 어느 판타지에서도 다루어지지 않았던 드래곤 라자라는 소재를 통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판타지의 초기 창시자였던 존 로날드 톨킨은 자신의 문학에서 여러 종족을 탄생시켰다. 인간, 호비트, 엘프, 드워프, 페어리 등의 이종족이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세계를 조율하는 역할인 가장 강력하고 완벽한 종족, 드래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영도 작가는, 여러 종류의 신의 개념을 도입하여 각 종족의 성격을 설명한 후, 조화의 신 유피넬과 혼돈의 신 헬카네스 양쪽의 보살핌을 받는다는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드래곤 라자란, 바로 인간과 드래곤을 이어주는 그 상징물과 같은 것이다. 드래곤 라자의 자질을 가진 아이가 드래곤과 연결됨으로써, 드래곤과 인간은 그 연결점을 가지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것이다. 대신, 드래곤 라자란 것은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단지 그 상징물로써의 역할만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 드래곤 라자가 만들어진 목적은, 바로 서로 상극의 특징을 가진 두 종족이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가장 완벽한 종족이다. 홀로 수백만년의 삶을 살아도 전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살아간다. 그 반면, 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마음속에 내가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상극인 존재를 연결하여 서로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 드래곤 라자의 창시자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뜻은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드래곤은 완벽한 존재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였다. 하지만 결과는 오히려 인간의 승리였다. 드래곤은 인간화되었고, 그 뜻은 드래곤이 불완전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하다는 뜻은 과연 무엇일까? 한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보면, 질서나 완전 또한 혼돈의 일부일 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질서가 혼돈의 일부라는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카일 헬턴트의 말을 빌려보자.
"돌멩이 5개를 모아서 던져보자. 정말 우연히도, 돌멩이 5개가 정확히 일렬로 간격도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겠지? 우리는 그것을 돌멩이의 질서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돌멩이를 던져서 확률적으로 나온 것일 뿐이지? 다시 돌멩이를 던지면 돌멩이는 항상 서로 다른 모양을 갖추지. 결국, 우리가 완전한 것, 또는 질서 있는 것이라 부르는 것은 혼돈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결과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모든 혼돈 중에서 우리가 완전하다고 이름 붙인 불완전의 존재, 드래곤이 인간에 융화되어 인간화 될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닐까? 마치 인간처럼, 우리의 마음속에는 그 드래곤이 살게 되고, 드래곤의 마음 속에 인간이란 존재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드래곤 라자는 후치 네드발이라는 재치있는 화자를 둔 덕분에 내용상도 매우 재미있었으며, 또한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그 수준이 저급하지 않아서 읽기에 더 없이 좋았던 것 같다. 다시 한 번, 인간이란 존재가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