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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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째 책읽기가 거꾸로 되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순서대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대체로 순서 대로라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아니면 먼저 읽고 그 책에 감명을 받아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경우가 많다.

 

김승섭의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으면서 좋은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라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은 우주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몸에 대한 책임은 개인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의학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해준 책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었다면, 이 책은 질병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도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는 순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회에서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질병에 관해서 연구를 한다.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서 이들의 질병이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을 밝힌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질병이 더 많고,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질병이 많다는 것.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렇겠지 하는 것들을 많은 사례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소방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것을 공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들이 그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

 

경제적 대우, 근무 여건의 개선뿐만이 아니라 부상을 당했을 때는 당연히 공상처리가 되어야 하고, 또 폭행을 당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그것이 근무 여건의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에 정리해고된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뿐만이 아니라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낙태에 관한 문제.

 

지금 국회에서 낙태금지법이 다시 제정이 되었고, 여성단체에서는 그 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김승섭은 낙태에 관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낙태금지가 과연 누구에게 더 해로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입법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앞부분만을 읽었어도 그 법안을 그렇게 내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낙태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한 것이 우리나라 현실인데,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여성의 건강권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이 받은 유전적인 건강을 떠나 사회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의 악화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잘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책임에 사회의 책임이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사회는 어쩌면 의사들 배만 불리는 사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의사들은(다는 아니겠지만) 개인의 건강만을 본다. 개인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을 이야기하고 약을 처방하고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속해 있다.

 

역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니, 그들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이 그렇게 된 것은 사회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이들 건강이 좋아지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치료와 사회 환경의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이 책에서 김승섭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면 이 책에 나오는 전공의들의 건강상태 부분을 보면 기가 막힌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데,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 건강을 돌볼 수 있는데, 전공의들의 건강상태는 아주 나쁨 상태에 있다는 것.

 

장시간 노동, 부족한 수면, 쌓이는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등등으로 그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의사 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가 힘들다는 현실.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진료거부를 하는 것은 의사 집단의 동질성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면,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선배 의사들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것.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방법은 인원수를 늘리는 것 아닐까? 같은 일을 한 사람이 할 때보다 두 사람, 세 사람이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나. 그들도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사색을 하면서 환자들을 만나는 수련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무슨 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전공의들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건강하게 수련을 해서 건강한 의사가 되도록 하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법의 일부를 보자. 과연 이 법대로만 한다면 건강한 전공의가 될 수 있을지 판단해 보라.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과 비교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 약칭: 전공의법 )

[시행 2017. 12. 23.] [법률 제13600호, 2015. 12. 22., 제정]   

 ①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4주의 기간을 평균하여 1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1주일에 8시간 연장이 가능하다.

 

②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연속하여 36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연속하여 40시간까지 수련하도록 할 수 있다.

 

③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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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세계라면 - 분투하고 경합하며 전복되는 우리 몸을 둘러싼 지식의 사회사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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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우주다. 우리 몸은 세계다. 그런데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방대한 세계를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우주라면 어떨까? 우리는 아직도 우주의 일부만을 알고 있다.  또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된 사실일 수도 있다.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 몸 역시 마찬가지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우리 몸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알려졌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수준도 많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병들과, 또한 치료가 힘든 불치병, 난치병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망 원인 1위라고 하는 암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몸에 대해서 잘 알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다른 존재에게 넘겨주고 있다. 특히 의사들에게. 우리나라 의사들의 권위적인 모습을 보라. 그들이 진료 거부를 할 때 주장했던 것을 보면 그들이 지닌 자세를 알 수 있다. 전교 1등에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공부는 못하지만 의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에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라고 당당하게(?이건 당당이 아니라 뻔뻔이지만) 주장하다가 그것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모습을 생각하라.

 

이들은 우리 몸을 재단한다. 자신들이 판단한다. 그리고 그 판단이 맞다고 옳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환자의 죽음으로 이어지더라도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로지 환자의 잘못이다. 수많은 의료사고에서 의사들의 과실을 증명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만큼 의사들이 잘못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의사들의 카르텔이 공고하다는 얘기다.

 

이 책에 나오는 제멜바이스의 예를 보면 의사들이 우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많음을, 그리고 그들이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세에 대해 알게 된다. 자신들이 시체 만진 손을 닦지 않아 산모들을 감염시켜 죽음에 이르게 했음에도 인정하지 않았던 의사들. 그것을 밝힌 제멜바이스는 오히려 의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음을 이 책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자본의 힘에 굴복하는 경우도 있다. 거대 자본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담배와 관련된 일들은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수많은 사실 중에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사실들만 골라 그것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이유로.

 

여기에 어떤 약은 개발이 되고, 어떤 약은 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에서 주로 걸리는 병들에 대한 치료제 개발이 더딘 이유는, 그것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서글픈 이유를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또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은 무척 힘들다.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같은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관념에 도전하는 의사는 배척당하기 일쑤다. 이 점을 이 책 6장에서 다루고 있다.

 

통념이 된 의학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것도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소위 과학적 사고를 한다는 의사 집단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몸에 대한 통제권을 찾아와야 한다.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야 한다. 4장을 보면 사람들의 끝, 즉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끝을 맺는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가?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에게 자신의 끝을 맡기고 있다. 연명치료라고 하는 것들...

 

이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고 한다. 그리고 건강이 과연 개인적인가? 여기에 대해서 고민하라고 한다.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건강이 개인의 문제일 수가 없다. 내가 잘 못 챙겨서 병이 걸렸다고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사회적인 문제가 깊숙히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일란성 쌍둥이도 자신이 자란 환경에 따라서 각기 다른 질병을 앓고, 그들의 건강한 생활에도 많은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러니 건강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그보다 더 사회의 책임이 크다는 것.

 

하여 건강은 정치와 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3장에서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2장도 마찬가지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사람들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 식민정책을 펼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이 책은 우리 몸을 통해서 사회, 문화,정치,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렇기에 우리 몸은 바로 우주라는 것. 이 우주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주체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읽기에도 쉽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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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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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로 다른 유리천장과 맨박스 : 피해자와 가해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는 장치가 있다. 우리라고 했지만, 성별 분류법에 따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과 남성을 우리하고 하자. 슬픈 일이지만 성소수자들은 우리라는 범주에서 잠시 제외하자. 


왜냐하면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의 차별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갇혀 있지만, 성소수자들은 유리천장이 아니라 높고 굵고 단단한 벽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담장 안에 갇혀 겨우 간신히 출입할 수 있는 문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글에서 우리라는 말에 주류 성별인 여성과 남성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아직도 성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조차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유리천장 하면 여성 차별을 떠올린다. 능력이 같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받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 이게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여성이 사회에서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 하는 순간 탁 부딪히고, 여성을 쓰러뜨리고 가두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유리천장을 지닌 여성은 피해자가 된다. 반면 맨박스는 남성의 행동을 제약한다. 이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제약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의 유리천장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역할은 정반대다. 맨박스는 다른 사람, 특히 남성을 의식하게 만든다. 남자다움이라는 것을 행동에서 이끌어내게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잘 발현이 되지 않다가도 여러 남성과 함께 있을 땐 아주 강하게 발현된다. 유리천장이 여성을 쓰러뜨리고 가둔다면 맨박스는 남성을 거칠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여성이나 다른 약자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맨박스는 남성들이 주로 가해자로 행동하게 만든다. 맨박스는 자신의 우월감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작동하기도 하고, 다른 남성의 평판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도 작동한다. 어떻게 작동하든 여성을 대상으로, 또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약자이고, 피해자가 된다는 식으로. 유리천장이 잘못된 사회적 인습이라면, 맨박스 또한 잘못된 사회적 인습이다. 우리가 벗어나야 할 인습. 이것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는, 혁파해야만 할 인습인 것이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로 가해자가 되게 하는 맨박스. 보이지 않지만, 여러 남성들과 함께 있을 때 자연스레 발현되는 그런 맨박스.


이렇게 유리천장과 맨박스는 보이지 않지만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제약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작동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하는 제도나 관습이 필요할까? 당연히 필요없다. 없애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을까?


그것은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도 노력을 덜한 여성의 책임으로, 맨박스에 갇힌 행동을 해도 그런 행동을 한 한 남성의 책임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는 유리천장과 맨박스도 없어지지 않는다.


2. 해결책은 백신이다. 접종률이 60%가 넘어야 하는


이런 일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 가해자가 또는 가해자와 같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성폭행 사건을 보자. 미국 대학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주로 피해자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다. 그런데 해결책은 주로 여성에게 주어진다. 가해자인 남성에게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세우는 대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한번은 내가 운영하는 단체인 ACTM(행동하는 남성들 A Call To Men이라는 단체의 약자다)이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끔찍한 강간 사건의 대응팀 회의에 초청받은 일이 있다. (중략)

주요 의제는 학교 측의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캠퍼스 내 여성 안전조치였다. 토론을 거치면서 비상연락망 제작, 여학생들 간의 2인 1조 시스템, 여학생들을 위한 교내 셔틀 차량의 증편 등이 논의되었다. (중략) 이 방법은 남성이 저지른 폭력에 대처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대처할 책임을 여성들이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전을 도모한다는 미명 하에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대응책이었다. 남성들의 삶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폭력 문제의 대응책이었다. (135쪽)


"...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어떨까요? 남성이 범죄의 장본인인데 왜 남성이 저지른 폭력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바야 하죠?" (136쪽)


학교는 교내 성폭력 대응 방침을 개선하는 한 달 동안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137쪽)


바로 이것이다.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 사회에서 제시하는 방식도 여성의 안전에 대해서 논의를 먼저 한다. 대책도 그 선에서 나온다. 가해자인 남성을 제약하는 대처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피해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대책이 나온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특정 개인, 즉 대다수의 남성은 그렇지 않은데, 문제 있는 몇몇이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남성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들은 착한 남성일 뿐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렇게 나간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착한 남성들이 많다. 너무도 착해서 문제를 일으킨 특정 남성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을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아, 그 사람 행동이 잘못됐어라고는 하지만, 그 사람 앞에서 직접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착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것에 안도하고 그냥 넘어간다. 이러니 맨박스는 눈에 드러나지 않고 남성의 행동을 계속 규정지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토니 포터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소위 착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지적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맨박스라고. 우리가 없애버려야 할 맨박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착한 남성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맨박스가 눈에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착한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맨박스를 예방하는 백신이다. 독감을 예로 들면 걸린 사람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독감은 늘 유행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데 백신을 60% 이상의 사람들이 맞으면 독감 유행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맨박스를 없앨 수 있는 방법. 바로 착한 남성들이 백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맨박스를 인식하고, 맨박스가 작동되었을 때 그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런 지적들이 쌓이고 쌓이면 백신처럼 맨박스가 작동하는 것을 멈출 수가 있다. 아주 좋은 지적이고 제안이다.


3.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 : 일곱 가지 메시지


1) 남성 중심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 오늘날 남자다움의 정의는 세 가지 큰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입니다. 둘째,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입니다. 셋째, 여성은 남성의 성적 도구라는 시각입니다.


2) 가정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하는 노력은 전적으로 남성들의 몫입니다. 


3) 폭력과 차별은 종류와 관계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4)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려야 합니다.


5) 여러 억압 행위에는 교차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6)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7) 남성 스스로 남성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179-180쪽)


4. 무엇이 맨박스인가: 맨박스 10계명


남자는 울지 않는다  

남자는 분노 이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는 쫄지 않는다

남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남자는 약한 것들을 보호한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  

남자는 여자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게이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소유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이게 십계명이란다. 남자다움의 십계명. 설마 이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남자로 살고 싶지는 않겠지. 남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성소수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사람은 모는 사람을 차별할 권리가 없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대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 모든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 맨박스에 자신도 알게모르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 책의 5장을 보면 다른 남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남자들이 맨박스에서 벗어나면 여자들도 유리천장을 깰 수 있다. 그리고 둘 다 없는 세상에서는 성소수자들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남자만의 또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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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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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먹먹했다. 슬픔, 분노. 어찌 세상이 이토록 나아지지 않는지. 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데, 노동으로 삶을 잃어야 하다니.

 

최근에 택배 노동자들이 과로로 숨지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경제력이 세계 몇 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나라에서, 그 나라를 지탱하게 해주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과 가족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노동으로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잃고 있는 현실.

 

택배 노동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도 닥친 일이다. 이들은 고3이 되면 현장학습을 나간다. 노동과 학습이 연계된 활동. 예전에는 노동자 대우를 받아 월급을 받기도 했다는데, 요즘은 실습 명목으로 월급이 아닌 수당만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들에게 가해지는 노동강도가 너무 세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학교는 학교대로 취업률로 지원을 받으니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학생들에게 쉽게 학교로 돌아오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부모들 또한 마찬가지다. 다 그런 거지 뭐, 라는 말을 하면서 참으라고 한다.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이들이 선택하는 길은 극단적인 길이다. 그렇게 세상을 떠난 특성화고 출신 사람들이 많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그것이 개인 탓인가?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아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라.

 

무언가 결핍이 있는 학생이 특성화고에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 책을 읽어보면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단지 대학에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 특성화고는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아이들이 선택하는 길이다. 이런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고, 또 그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한다.

 

토대도 마련하지 않고 오로지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 이들이 학교와 사회 양쪽에 걸쳐 있다고 어느 쪽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는 상황을 고쳐야 한다. 적어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게 해야 한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지은이는 제목을 이렇게 붙였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의 죽음'이라는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존재하고,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아이들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여전히 학력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특성화고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오히려 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피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그들도 엄연히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임을,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누리며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함을.

 

특성화고 출신들이 모여 노조를 만들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들이 자신의 전공과는 동떨어진 취업을 많이 하고 있음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겪고 있는 차별들에 대해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결국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의 죽음일 것이다. 이대로 우리가 계속 외면한다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제는 더이상 이런 아픔이 일어나지 않게 '알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그것은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것임을 생각해야 한다.

 

부끄러웠다. 나 역시 알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의 죽음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으니... 살려고 하는 노동, 정말 살게 하는 노동이어야 한다. 죽음으로 몰아가는 노동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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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0-21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긴 하지만,,,,평생 주부로 사셨던 엄마는 항상 저에게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커서 언제가는 나도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한국을 떠난지 10년이 넘어서) 지금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적다는 생각을 한적이 있어요. 극단적인 육체노동정도만이. ˝노동˝이라는 생각하는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노동의 신성한 가치와 다양한 종류로 이루어진 노동에 대한 바른 인식이 생겼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kinye91 2020-10-21 08:44   좋아요 0 | URL
‘노동‘에 대한 생각이 아직도 예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이 노동이고, 그러한 노동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는데요.
 
미래는 오지 않는다 -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
전치형.홍성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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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미래(未來)'라는 말을 그대로 풀이한 것이다. '미래'는 '오지 않다'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이 판치는 이 시대에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그것도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런 주제로 책을 냈다는 사실이 특이하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시대고, 과학기술이 미래를 이끌 거라는 것에 의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부터 시작하여 나노기술 등등. 과학기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장미빛 환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미래를 디스토피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책 표지에는 또다른 말이 있다. '과학기술은 어떻게 미래를 독점하는가'라는 이 말을 통해 저자들이 과학기술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과학기술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이 미래를 완전히 예측하고 이끌어서 우리에게 가져올 거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하고 있어, 과학기술에 비판적이지 않은 현대인들을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쉽게 과학기술에 열광하고, 과학기술 만능주의에 빠져, 모든 문제를 과학기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렇게 호도해 가는 집단들이 있는 현실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과학기술에서 일어난 예측들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니 예측불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 예측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기술도 의도한 바와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조건들이 융합되어 있는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예측은 늘 상반되는 주장을 한 집단들이 서로 자신들이 한 예측이 맞았다는 주장을 하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식인 것이다.


이렇게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제목을 달고 책을 낸 이유가 무엇일까? 미래 예측이 필요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인가? 아니다. 사람은 현재만 살지 않는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이유는 현재를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예측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즉, 사람은 현재에 과거와 미래를 함께 끌어들여 살아가는 존재다.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게 된다. 그러니 미래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미래가 온 순간, 미래는 현재가 되어 버리고, 다른 미래를 꿈꾸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간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일방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일은 문제라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미래를 독점하는 현상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보자.


... 이 책의 제목은 요즘 미래 담론에서 흔히 보이는 확신, 즉 미래를 곧 일어나고야 말 객관적 사건으로 보는 시각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과 주관성을 강조합니다. 동시에 이 책은 미래를 하나의 담론, 즉 해석과 비판과 논쟁이 필요한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미래에 대한 예측들은 데이터만이 아니라 세계관과 이념을 담고 있으며, 서로 주도권을 놓고 경합합니다. 그러므로 각종 미래상에 대한 꼼꼼한 독해가 필요합니다. (8쪽)


...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우선 우리의 미래 담론이 과학기술 중심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오늘날의 미래 담론은 과학기술이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8쪽)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또한 우리가 과학기술의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는 데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 과학기술은 그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경로와 방식으로 성공하거나,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이유 때문에 실패합니다. (9쪽)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선언을 통해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미래에 대해 말할 때 사실 우리는 현재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점입니다. (10쪽)

 

미래를 예측하려는 사람과 집단은 모두 특정한 종류의 과학기술과 특정한 형태의 사회를 옹호하고 그러한 방향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11쪽)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과학기술이 또는 과학자들의 예측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됨을 여러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읽으면서 예전에 월드컵에서 승자를 예측했던 문어 파울이 떠올랐는데,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의 예측 결과가 침팬지의 예측 결과를 결코 넘어서지 못한다는 이들의 주장에 수긍했기 때문이다.


하여 이 책은 끝부분에서 우리가 미래를 예측하고 꿈꾸는 것은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야 미래를 꿈꾸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얼굴을 한 미래 예측은 CEO를 위한 것이 아니라, 문제투성이 현재와 불편한 미래를 포용하면서도 희망을 키우고 연대를 만들어내는 시민들의 실천을 위한 미래 시나리오 작업을 의미합니다. 미래에 대한 이런 상상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면서, 현재 삶과 노력에 의미를 더해줍니다.

  우리는 미래 예측에 홀리는 대신에 바람직한 미래사회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나눠야 합니다. 이런 얘기는 우리가 걸어온 역사에 대한 고민과 성찰에 근거해야 하고, 우리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토론과 협의를 반영해야 합니다. 결국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과학기술이 열어주거나 미래학이 예측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04쪽)

 


서문에서 한 말이 끝부분에서 다시 정리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특정인들의 담론에 맡겨서는 안된다는 것. 미래는 우리 모두가 참여하면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 

 

이들의 말을 명심하자. 미래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상들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단지 과학기술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에도 집중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인문학이 더욱 필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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