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박스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서로 다른 유리천장과 맨박스 : 피해자와 가해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는 장치가 있다. 우리라고 했지만, 성별 분류법에 따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과 남성을 우리하고 하자. 슬픈 일이지만 성소수자들은 우리라는 범주에서 잠시 제외하자. 


왜냐하면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해도 그들의 차별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갇혀 있지만, 성소수자들은 유리천장이 아니라 높고 굵고 단단한 벽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담장 안에 갇혀 겨우 간신히 출입할 수 있는 문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글에서 우리라는 말에 주류 성별인 여성과 남성으로 한정하고자 한다. 아직도 성소수자들은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조차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유리천장 하면 여성 차별을 떠올린다. 능력이 같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약을 받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 이게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여성이 사회에서 주어진 한계를 넘어서려 하는 순간 탁 부딪히고, 여성을 쓰러뜨리고 가두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유리천장을 지닌 여성은 피해자가 된다. 반면 맨박스는 남성의 행동을 제약한다. 이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을 제약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의 유리천장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역할은 정반대다. 맨박스는 다른 사람, 특히 남성을 의식하게 만든다. 남자다움이라는 것을 행동에서 이끌어내게 한다. 혼자 있을 때는 잘 발현이 되지 않다가도 여러 남성과 함께 있을 땐 아주 강하게 발현된다. 유리천장이 여성을 쓰러뜨리고 가둔다면 맨박스는 남성을 거칠게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여성이나 다른 약자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맨박스는 남성들이 주로 가해자로 행동하게 만든다. 맨박스는 자신의 우월감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작동하기도 하고, 다른 남성의 평판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도 작동한다. 어떻게 작동하든 여성을 대상으로, 또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가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약자이고, 피해자가 된다는 식으로. 유리천장이 잘못된 사회적 인습이라면, 맨박스 또한 잘못된 사회적 인습이다. 우리가 벗어나야 할 인습. 이것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는, 혁파해야만 할 인습인 것이다.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고 인식하지도 못한 상태로 가해자가 되게 하는 맨박스. 보이지 않지만, 여러 남성들과 함께 있을 때 자연스레 발현되는 그런 맨박스.


이렇게 유리천장과 맨박스는 보이지 않지만 여성과 남성의 행동을 제약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작동하지만 방향은 정반대다. 피해자와 가해자로. 자,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피해자와 가해자를 양산하는 제도나 관습이 필요할까? 당연히 필요없다. 없애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을까?


그것은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도 노력을 덜한 여성의 책임으로, 맨박스에 갇힌 행동을 해도 그런 행동을 한 한 남성의 책임으로만 여기는 사회에서는 유리천장과 맨박스도 없어지지 않는다.


2. 해결책은 백신이다. 접종률이 60%가 넘어야 하는


이런 일은 한 개인의 책임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 가해자가 또는 가해자와 같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이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된 성폭행 사건을 보자. 미국 대학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주로 피해자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다. 그런데 해결책은 주로 여성에게 주어진다. 가해자인 남성에게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 언급된 내용을 보자. 지금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세우는 대책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한번은 내가 운영하는 단체인 ACTM(행동하는 남성들 A Call To Men이라는 단체의 약자다)이 대학 캠퍼스에서 발생한 끔찍한 강간 사건의 대응팀 회의에 초청받은 일이 있다. (중략)

주요 의제는 학교 측의 즉각적이고 장기적인 캠퍼스 내 여성 안전조치였다. 토론을 거치면서 비상연락망 제작, 여학생들 간의 2인 1조 시스템, 여학생들을 위한 교내 셔틀 차량의 증편 등이 논의되었다. (중략) 이 방법은 남성이 저지른 폭력에 대처할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한다는 점이다. 대처할 책임을 여성들이 져야 할 뿐만 아니라 안전을 도모한다는 미명 하에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고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대응책이었다. 남성들의 삶에는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폭력 문제의 대응책이었다. (135쪽)


"...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면 어떨까요? 남성이 범죄의 장본인인데 왜 남성이 저지른 폭력 때문에 여성들이 피해를 바야 하죠?" (136쪽)


학교는 교내 성폭력 대응 방침을 개선하는 한 달 동안 여학생이 아닌 남학생들을 차량으로 이동시키기로 결정했다. (137쪽)


바로 이것이다.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우리 사회에서 제시하는 방식도 여성의 안전에 대해서 논의를 먼저 한다. 대책도 그 선에서 나온다. 가해자인 남성을 제약하는 대처 방법은 나오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피해자의 행동을 제약하는 대책이 나온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그리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특정 개인, 즉 대다수의 남성은 그렇지 않은데, 문제 있는 몇몇이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남성에게는 책임이 없다. 그들은 착한 남성일 뿐이다.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렇게 나간다.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착한 남성들이 많다. 너무도 착해서 문제를 일으킨 특정 남성에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을 뒤에서 수군거리면서 나는 저렇게 행동하지 않아, 그 사람 행동이 잘못됐어라고는 하지만, 그 사람 앞에서 직접 그렇게 하면 안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냥 착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것에 안도하고 그냥 넘어간다. 이러니 맨박스는 눈에 드러나지 않고 남성의 행동을 계속 규정지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토니 포터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소위 착한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잘못된 행동을 지적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맨박스라고. 우리가 없애버려야 할 맨박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착한 남성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맨박스가 눈에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착한 남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맨박스를 예방하는 백신이다. 독감을 예로 들면 걸린 사람만 치료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독감은 늘 유행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런데 백신을 60% 이상의 사람들이 맞으면 독감 유행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맨박스를 없앨 수 있는 방법. 바로 착한 남성들이 백신 역할을 해야 한다. 그들이 맨박스를 인식하고, 맨박스가 작동되었을 때 그것을 지적해야 한다. 이런 지적들이 쌓이고 쌓이면 백신처럼 맨박스가 작동하는 것을 멈출 수가 있다. 아주 좋은 지적이고 제안이다.


3.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 : 일곱 가지 메시지


1) 남성 중심주의는 사라져야 합니다. ... 오늘날 남자다움의 정의는 세 가지 큰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입니다. 둘째,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입니다. 셋째, 여성은 남성의 성적 도구라는 시각입니다.


2) 가정 폭력과 성폭력을 근절하는 노력은 전적으로 남성들의 몫입니다. 


3) 폭력과 차별은 종류와 관계없이 사라져야 합니다.


4)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려야 합니다.


5) 여러 억압 행위에는 교차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6) 지역 사회에 기반을 둔 참여를 유도해야 합니다.


7) 남성 스스로 남성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179-180쪽)


4. 무엇이 맨박스인가: 맨박스 10계명


남자는 울지 않는다  

남자는 분노 이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남자는 쫄지 않는다

남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남자는 약한 것들을 보호한다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약하다  

남자는 여자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게이처럼 굴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를 소유한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한다


이게 십계명이란다. 남자다움의 십계명. 설마 이 십계명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남자로 살고 싶지는 않겠지. 남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여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성소수자이기 전에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다. 사람은 모는 사람을 차별할 권리가 없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할 책임이 있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자기 자신처럼 대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이 책, 모든 남자들이 읽어야 한다. 맨박스에 자신도 알게모르게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이 책의 5장을 보면 다른 남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


남자들이 맨박스에서 벗어나면 여자들도 유리천장을 깰 수 있다. 그리고 둘 다 없는 세상에서는 성소수자들도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은 남자만의 또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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