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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 - 십대 여성들의 성매매 경험과 치유에 관한 기록
김고연주 지음 / 이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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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 여성들의 성매매 경험과 치유에 관한 기록'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한때 '원조교제'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용돈을 벌고, 어른들은 어린이의 성을 사는 그런 관계, 일본에서 유행하던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에 들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원조교제란 말은 쏙 들어갔는데, 이 말이 들어갔다고 해서 그런 현상이 사라졌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오히려 더 활발해지고 조직화되었다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십대들의 성에 대해서 우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 법률이 제정이 되어 십대들이 성을 보호하려는 법적인 움직임도 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이 법은 공허한 글자에 불과하다.

 

실제로 처벌받는 어른들이 별로 없거니와(거의 70%가 넘는 청소년성매매구매자 어른들이 겨우 벌금형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더 심한 경우는 달랑 하루의 교육으로 처벌을 끝낸 경우도 많다고 하니...), 십대들이 성매매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도 별로 없다고 한다.

 

이 책은 석사와 박사 논문을 청소년들의 성매매를 주제로 쓴 김고연주가 그들과 만나고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사실 밖으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으나 소문으로는 잘 알려진 청소년성매매에 관해서 책을 내기는 좀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모르던 사람에게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할 수도 있고, 또 청소년 성매매가 이렇게 광범위하고 또 이렇게 심각했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성매매에 관해서 눈을 감고 있을 수는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소년 성매매로 인해 정작 상처받는 사람은 청소년 당사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도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직접 성매매 활동을 했던 청소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는 이런 청소녀들이 자신들의 좋지 않은 환경 때문에 성매매에 빠져든다는 단선적인 해석은 거부한다. 청소녀들이 성매매에 빠져드는 원인을 한 가지로 정리할 수 없다고 한다.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합쳐서 청소녀들은 거리로 나오고 있으며, 거리로 나와서는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또는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성매매로 빠지게 된다고 한다.

 

하여 청소녀들이 성매매를 하는 것을 그들의 자발적인 일탈행위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들이 거리로 나왔더라도 성매매를 하지 않을 여러 조건들이 있다면 굳이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이용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즉 불우한 환경만이 이들을 성매매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과 청소년들이 일할 수 없는 사회환경, 그리고 거리의 청소년들을 이탈자 취급하는 사회적 시선 등이 이들을 성매매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일탈행위를 하는 청소년들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일탈행동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에 대해서는 고민을 덜 하고 있다. 그냥 개인의 의지박약이라든지, 가정환경으로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많다.

 

그것은 문제해결이 되지 않는다. 개인의 의지로 이런 문제를 취급해서는 안되면, 또한 모든 문제를 가정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가정이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사회가 막아줄 수 있어야 하며, 개인의 의지가 약하다면 관계를 통해서 행동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동물이라고 자처하는 우리 인간들이 해야할 일인 것이다. 그것이 사회의 책무이고, 국가의 의무인 것이다. 그것을 소홀히 한 상태에서 개인에게, 가정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자세는 민주주의국가에서 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 책에는 그런 점이 너무도 잘 나와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청소녀들이 성매매를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들은 자신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어도 그것이 쉽지 않다는 점... 그럼에도 이들 역시 자신들의 처지에서 벗어나 남들과 비슷한 생활, 즉 일탈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고 싶어한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을 통하여 또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청소녀들의 성매매를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청소년성매매 구매자인 어른들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법 정비가 동반해야 함은 당연한 일이고.

 

십대 포주까지 등장하면서 이들은 이제 용어를 '번개'니 '조건'이니 라는 말을 쓰면서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서 몸을 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많이 조직화된 모습도 보인다고 하는데...

 

거리로 나온 아이들... 어떤 아이들은 거리가 학교라고 거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배웠다고 언론에서 띄우기도 하는데... 이 아이들, 적어도 이 책에 나온 아이들 대부분은 언론에서 자랑스레 이야기한 거리를 학교라고 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삶을 거리를 통해서 온몸으로 겪어온 아이들이다.

 

너무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깨우친 아이들이다. 이들은 잘못된 길을(법적으로) 갔다고 하더라도 그 잘못이 자신의 인생을 좀더 풍요롭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어른과 사회가 할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지금 청소년들이 만약 아무 대책없이 거리로 나왔다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부터 우리들이 해야 한다.

 

적어도 이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여럿 있다는 것을 알아야 진정 '거리'가 '성매매'로만 빠지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배움터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거기에 대해서 고민해 보라고 청소녀들의 성매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그들이 잘 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도 잘 보여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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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 -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 너머의 역사책 1
이희근 지음 / 너머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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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7년 8월 18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한국 사회의 다민족적 성격을 인정하고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5쪽

 

다음에는 이런 말이 이어진다.

 

  이와 같이 중국인,, 일보인, 그리고 북방 유목민족 등 한반도의 주변 여러종족 및 민족만이 아니라, 멀리 무슬림 세계의 아랍인까지도 오늘날 한민족으로 지칭되는 구성원의 일원을 이루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재 한국인의 관념 속에 자리하고 있는, '한민족은 단일민족'이란 신화는 만들어진 역사 즉,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8쪽

 

어떤 책에서는 이런 말도 있었다. 중국인들이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잘 살고 있지만, 유일하게 중국인이 자신들의 공동체 만들기에 실패한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은 단일민족이라 배타적이다.

 

그런데... 이게 자랑일까? 그리고 우리가 진짜 단일민족일까? 단군신화만 보아도 우리 민족은 단일민족이 될 수 없지 않았을까? 곰족과 호랑이족. 그리고 천계족과 지상족. 이렇게만 보아도 이미 고대사회부터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에 갇혀 독일의 아리안 순수혈통을 주장한 히틀러의 광신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그러한 틀에 갇혀 있음을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그러한 신화가 허구임을, 우리는 애초부터 다문화 사회였음을, 우리가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토당토하지 않음을 역사적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고조선 시대에 위만부터 시작하여 삼한시대 특히 가야 전에 마한, 변한, 진한 때에도 역시 중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았으며, 왜라는 이름을 지닌 사람들은 지금의 일본과 똑같은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우리와는 다른 민족의 사람들이 한반도 남쪽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통일신라 때에는 아랍인들까지 들어왔음을 역사적 근거들을 들어 보여주고 있으며(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도 외국에서 건너온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때에는 국제무역항은 벽란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종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함께 살아갔다고 한다.

 

여기에 거란과 여진에서 넘어온 사람들, 몽고에서 넘어온 사람들, 그리고 다시 명나라 유민들, 또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에 정착한 일본인들 등등 하여 이미 예전부터 우리는 다문화 사회였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많은 민족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긴 했지만, 그들에 대한 차별이 지금처럼 이루어졌음을 보여주고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백정이다.

 

'백정'은 유목민족이 우리나라에 정착한 결과로 보여지는데, 유목생활을 강제로 정착생활로 돌리려는 정책으로 인해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으로 취급받았으며, 제대로 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고 한다.

 

'백정'을 단지 천민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유래가 바로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넘어온 다른 민족 구성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차별이 어쩌면 지금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의 연원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

 

책에 "섞임과 넘나듦 그 공존의 민족사"라는 말이 있다. 다문화 사회는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가 강한 사회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단일종은 멸종되기 쉽다. 마찬가지로 단일성을 강조하는 사회는 지속되기 어렵다.

 

우리 사회도 이제는 엄연한 다민족 사회다. 그걸 인정하기에 다문화 교육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다문화 교육이 어떤 때는 우리 민족 문화를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모든 문화는 평등한데 다만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쪽으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민족은 아주 오래 전부터 다른 민족구성원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다. 하지만 그들을 우리 문화에 동화되는 쪽으로 정책을 펴왔는데... 그런 결과로 다민족 문화가 아직 우리나라에 제대로 살아남아 전승되지 못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아니다. 역사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우리는 다문화 사회가 이미 되었다. 그렇다면 다양한 문화가 함께 어울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이 책은 우리의 다문화 역사를 살펴보게 함으로써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 민족의 다문화 역사가 이리도 오래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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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 몸도 마음도 저당 잡히는 시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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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현대.

이것이 현대를 바라보는 바우만의 관점이다.

유동하는, 무엇으로 변해갈지 모르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예측을 하기 힘든 시대. 또 한 사람이 한 직장에서 한 가정을 꾸리고, 한 장소에서 평생을 살아가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삶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없는 시대가 바로 현대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런 유동하는 현대에 직면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분석을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시트랄리가 질문을 하고 바우만이 대답을 하는 식으로 엮어진 대담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현대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전방위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현대에 대한 분석 중에 머리 속에 쏙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는데 바로 규제완화에 대한 구절이다. 우리는 지금 '규제완화, 규제완화'하는 여당의 높은 목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들은 규제완화를 통해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하는데, 바우만은 이러한 규제완화가 어떻게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일으켰는지를 이 책의 앞부분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규제완화는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있는 자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몰아주는 정책이고, 이런 규제완화로 인하여 중산층은 하층민으로, 하층민은 버려지는 삶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규제완화를 강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권력은 전지구적인 자본에 넘어갔는데, 정치는 지역적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규제완화에 대한 그의 글을 보자.

 

우리는 이제 좀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한다는 미명 하에, 인간적 대담성과 주도성을 터무니없는 규제들로부터 해방시켜 선택의 자유를 증진시킨다는 미명 하에 촉진되는 규제 완화가 결국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즉 국가 개입을 찬양하는, 즉 규제 완화로 풀어놓은 자유에 의해 촉발된 파국을 강제로, 국가가가 지원책을 내놓아 구제하는 것을 찬양하는 정반대 노래의 합창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을요. 79쪽

 

이렇게 국가는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국가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작동하는 모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의 권력 행사에서 벗어나게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들의 권력행사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몇 년에 한 번 하는 투표로는 권력을 견제할 수 없는데, 그나마 남아있는 견제 수단으로서의 선거에도 제대로 참여하고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이는 그동안 국가나 정치권력에 의해 밖으로 밖으로 내몰려 더이상 중심의 일에 참여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이들은 참여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는데, 그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고, 의식이 어떻다느니, 왜 자기 권리를 포기하냐느니 하는 말들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행사하게 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내몰린 삶들을 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에 대한 노력이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자그마한 틈을 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서는 지금의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권력을 행사하는데 필요한 대상은 초기에는 토지였다고 한다. 식민지로 나타나는 토지가 남아 돌던 시대, 자본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지 노동과 자본을 식민지로 보낼 수 있었고, 폐기물, 일명 쓰레기라고 불리는 대상들을 식민지에 보내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식민지는 사라졌다. 그 때 다시 개척한 식민지는 바로 사람이다. 사람, 특히 연령대를 불문하고 그들을 소비자로 만들어 버리는 자본의 능력. 이런 자본의 능력으로 우리나라는 지금 어린 아이들까지도 상품의 미끼에 걸려 허우적대고 있다.

 

사람의 연령층으로 더 이상 확대가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이들이 선택한 식민지는 바로 몸이다. 몸에 대한 권력의 행사. 무궁무진하다. 하여 우리나라는 성형천국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제 사람의 몸은 경제권력의 대상이다.

 

이런 몸에 대한 확장은 이제는 몸 속으로까지 퍼져 나간다. 유전자가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유전자조차도 상품이 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러한 것들을 넘어서서 자본은 이제 우주로까지 눈을 돌린다.

 

이렇듯 자본은 정말로 끝없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식민지를 만들어내고 확장해 간다. 거기에 대응하는 권력은 아직도 미약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된다.

 

이미 현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무언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고,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견고한 자본의 권력에 흠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틈을 내는 행위, 이를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바로 희망,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을 남녀간의 사랑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확장된 사랑으로 해석하면 사랑은 이 책에서 말하는 이런 의미, 이런 태도가 된다.

  

사랑은 장기간의, 고된 노력의 산물로, 위험하여, 항상 차질이 빚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름 아니라 언제든 곤란한 타협과 무거운 자기희생을 무릅쓸 각오가 되어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286쪽.

 

그렇다. 현실은 유동적이다. 이 유동적이라는 말이 절망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전환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 하고, 사랑은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하는 힘을 우리에게 부여해주고, 현실에서 더 나은 가능태로 나아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해준다는 생각이 든다.

 

바우만의 이 책. 더 유동하는 우리나라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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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학교 - 밥상의 안전부터 에너지 대안까지 방사능 시대에 알아야 할 모든 것
김익중 외 지음 / 반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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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하는 말은 '00마피아'다. 해피아라든가, 관피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끌어주고 밀어주고 하는 집단을 말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도와 하나의 권력집단이 되어 있다. 

 

사실 마피아란 말이 일본의 야쿠자나 우리나라의 조폭처럼 안 좋은 말이지 않은가. 이 말은 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그런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비도덕적 집단이 우리 사회에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해피아든 관피아든 척결의 대상이 되고 있음에는 틀림없는데, 우리가 잘 모르는 집단으로(또는 알면서도 넘어가는 집단으로) 원자력마피아(정확한 용어로 하면 핵마피아가 될 터인데,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원자력이란 말로 잘 알려져 있으니 원자력마피아라고 해도 될듯)가 있다.

 

정확한 용어에 대해서는 이 책에 나와 있는 최무영 교수의 다음 글을 참조하면 될 듯하다.

 

  흔히 원자력발전소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원자력이란 완전히 잘못된 말입니다. 핵에너지는 원자력이 아닙니다. 원자력이란 원자끼리 작용하는 힘을 가리키는데, 극서은 본질적으로 전자기력입니다. 원자의 주위에 전자가 있는데, 이 전자와 원자핵 사이의 힘이 바로 전자기력이지요. 그런데 핵에너지와 관련된 힘은 전자기력이 아니라 핵력, 즉 강상호작용입니다. 원자의 가운데에 있는 원자핵 안에 양성자와 중성자들을 강하게 묶는 힘이 핵력이지요. 다시 강조하면 핵에너지는 원자핵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핵과 원자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에너지와 힘도 다른 양입니다. 원자력은 원자 사이의 힘이라는 뜻이지 에너지가 아니고, 핵발전은 핵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지 원자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원자력이란 말은 핵에너지로 바꿔 써야 합니다. 원자력발전도 핵발전으로 바꿔야 하고요. (최무영. 142-143쪽)

 

이렇듯 핵마피아는 핵발전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집단을 일컫는 말인데, 워낙 핵발전이 전문적인 일이라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게 일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들은 나름 전문가집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들은 일본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가 폭발했음에도 경각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는 이런 큰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일본의 핵발전소와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다르다고 오히려 일본의 일을 기회로 우리 원전을 수출해야 한다고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원전을 더욱 확대하는 정책을 펼치게도 되었으니 이들의 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들로 인해서 일어난 엄청난 홍보, 그리고 핵발전소가 아닌 원자력발전소로 알고 있는 잘못된 이름, 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발전이라는 허상 등으로 인해서 우리나라는 핵발전이 중단되지 않고 있으며, 그에 대한 경각심도 덜한 편이다.

 

이 책에서 말한 핵발전의 관성을 없애기 위한 역돌출부가 필요한데, 그러한 역돌출부는 시민들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아직 우리나라는 시민들이 핵발전에 대한 반대운동에 광범위하게 나서지 않고 있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중앙집권된 에너지정책과 엄청난 핵홍보, 그리고 미약한 반핵 또는 탈핵 시민운동으로 인해서 세계에서 가장 핵발전 밀집도가 높은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핵발전소의 20킬로미터 이내에 300만 명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인데도 이렇듯 핵발전에 대한 통제가 미미하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위험수준이 그만큼 높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이대로 넘어가야 할까? 정부를 믿고 핵관련자들을 믿고 우리가 이 생활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도 우습다. 핵발전은 분명 우리에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재앙이 되는데, 우리 때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여도 우리의 후손들에게는 엄청난 처리비용과 사고 위험을 물려주게 되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갈 수가 있단 말인가? 또 당장 우리에게도 엄청난 사고 위험의 부담을 느끼게 하고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반핵, 탈핵 운동에 뛰어든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기도 하다. 다만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러한 홍보 부족. 이를 메우기 위해서 탈핵학교를 진행했다고 한다.

 

핵의 위험성에 대해서 알리고 대안이 있음을 알리는 학교. 그러한 학교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도 핵발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방사능은 생명체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한다면 방사능을 제일 많이 배출하는 것이 자연이 아니라 핵발전이라는 사실은 명확하기에 핵발전은 반생명적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반생명적인 기술을 우리가 유지해야 할 것인가? 여기서 출발하면 된다. 이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의료기술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몸이 조금만 안 좋아도 병원에 간다. 특히나 전국민이 몇 년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정기검진을 받는다. 이 정기검진의 필수항목으로 엑스레이 촬영이 있다.

 

가장 약하게 하는 사람이 흉부촬영만 하는데, 좀 있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방사선 검사를 여러가지 한다. 그것들을 할 때 방사능에 피폭된다는 의식없이.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방사능에 대해서 무지했는지도 알 수 있다. 우리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죽이는 검사를 받는다. 역설이다. 그런데도 이것들이 더 확대되고 있다.

 

의사들, 학자들 이런 점에 대해서 알려야 한다. 한 때 비행기를 타도 방사능에 노출이 된다고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방사능에 노출되고 피폭되고 있다. 그것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으로 병원에 가서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는 현실이라니..

 

이 책의 첫부분이 바로 의료기관에서 피폭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 다음에는 먹을거리. 이렇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시작해 조금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는데,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핵'과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서 알게 된다.

 

사실 알아야 이길 수 있다고... 핵과 관련된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학교가 많이 필요하다. 공교육기관에서 핵에 관련된 진실을 얻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교육에는 정말로 많은 00마피아들이 관련되어 있다. 아주 강고한 집단들이 얽히고 설켜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 매듭을 한 칼에 잘라버렸듯이 자르지 않으면 교육에 얽힌 00마피아들을 없애기는 어렵다), 공교육 밖의 단체에서 이런 활동들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홍보가 되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거나 의식있는 사람들만이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모르고 있던 사람들, 대충 알고 있던 사람들, 아니면 핵발전에 찬성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탈핵학교 같은 곳에 가야 한다. 가서 듣고 토론해야 한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시민들의 의식이 고양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의식만 바뀌어서는 안된다. 의식과 더불어 행동이 변하지 않으면 찻잔 속의 폭풍에 불과하다.

 

내 생활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우리네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내 생활이 전기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 다른 폐기물들을 얼마나 배출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그리고 내가 고칠 수 있는 것부터 고치는 생활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이런 탈핵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실천하는 것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상상력" 바로 이것을 지녀야 한다고. 이 상상력은 현실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현실을 제대로 읽는 능력이다. 내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나와 다른 사람, 또 인간과 자연, 지구와 우주 등과 교감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상상력이다. 이런 상상력을 우리는 성찰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것을 지녀야 한다. 내 삶 속에 매몰되어 버리지 말고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함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핵에 대한 모든 것. 우리의 삶이 정말로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또 윤리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탈핵학교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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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난징대학살.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으리라. 왜냐하면 우리나라 역사책에 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가해 당사국인 일본에서는 철저하게 감추려고 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라는 말에도 논란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 중국이나 우리나라 또 서양의 여러 나라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로 보고, 그 규모에 관해서만 논쟁이 되고 있는데...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이를 조작된 것으로 보고, 사실이 아니라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꽤나 오래 전에 서점에서 우연히 "남경대학살"이라는 책을 본 기억이 있는데... 정확한 제목도 출판사도 생각이 나지 않고, 책에 나와 있는 사진이 너무도 충격적이라 책을 살 엄두도 내지 못해서 그냥 사진만 훑어보다 만 책이었는데... 그래서 남경대학살이라는 말은 내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한자어로 남경을 중국어로 난징이라고 하니, 그 때 내가 본 책이 도대체 어떤 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독일이 자행한 유태인 학살에 비견될 수 있는 이 집단 학살극이 어떻게 묻힐 수 있었는지... 세계 정세와 각국의 힘이 역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은 "난징의 강간"이다. "강간"이라는 말이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내 의사대로 강제로 상대방을 겁탈하는 것이니, 강간이나 대학살이나 비슷한 의미로 쓰면 될 듯한데.. 굳이 "강간"이란 용어를 쓴 이유는 "대학살"은 죽음이라는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반면에 "강간"은 상대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더 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고, 상대방 본인에게만이 아니라 가족에게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행위, 그것이 "강간"이고, 난징에서는 아예 집단적으로 이러한 "강간"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정확한 피해규모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 정부는 사과는커녕 없던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니, 진정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아이리스 장..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자신의 가족에게 들은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난징 대학살에 대한 철저한 자료 조사를 한다. 그러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책을 써냈기 때문에 이 책은 난징 대학살에 관해서 상당히 객관적인 자료들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난징 대학살은 꾸며낸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실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나게 끔찍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고, 난징 대학살을 경험한 사람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힘겹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음을 알게 된다.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보면 역사는 강자의 편에 선다. 아니, 역사 자체가 강자의 역사다. 패자의 역사는 왜곡되거나 사라져버리고 만다. 하여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현상이 역사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역사는 늘 강자의 편에 서는가? 아니다. 강자가 영원하다면 모를까, 인류의 역사상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은 순간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순간, 강자가 될지 모르지만 영원히 강자일 수는 없다.

 

20세기 초 일본은 동양에서 최강국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중국에 넘겨주고 있다. 이처럼 강자는 바뀐다. 그렇다면 역사는 도대체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역사는 바로 진실,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인지... 그것을 판단하는 주체는 강자가 아니다.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역사를 왜곡하고 숨기려 하지만, 어떻게든 진리의 편에서는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내려 한다. 그리고 진실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다.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 속에서 순간 감추었던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마는데... 일본이 사과도 하지 않고 감추려고만 하는 난징 대학살은 이미 중국에서는 드러날 대로 드러나 기념관까지 생겼으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해봤자 비웃음만 살 뿐이다.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낸 대가는 어떨 때는 혹독하기까지 하다.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사람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알고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 난징 대학살에 대해서 언급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쓴 아이리스 장 역시 어려움에 처했다. 테러 위협 등을 겪으며 심각한 우울증세를 나타냈다고 하는데... 결국 2004년 아이리스 장은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한다. 자살이라고 판명이 났다고 하지만... 이것은 타살이라고 해도 된다.

 

진실을 드러내려 했다는 이유로 온갖 위협을 받았을 그가 견딜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슻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이것이 어떻게 자살일 수 있는가. 그것은 사회적 타살이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아이리스 장은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자신이 이야기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리스 장도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목숨을 버리게 되었다. 이게 진실을 대가라니...

 

그래도 이런 진실의 대가로 우리는 이제 난징 대학살이 꾸며낸 이야기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난징 대학살은 20세기 중국의 난징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극이라는 인식을 한다. 아이리스 장과 같은 사람 때문에 난징 대학살이 역사의 한 사실로서 자리를 잡았다.

 

일본... 우리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인데, 아직도 이들은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수요집회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책에 나오는 난징 대학살이 어떻게 중국에게만 해당하겠는가. 우리나라도 위안부 문제, 징용, 징병 문제부터 우리나라 사회가 왜곡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일본에 있지 않은가.

 

우리는 무려 34년 11개월을 식민지 생활을 했으니 말이다. 이런 일본이 통렬히 반성을 하고, 참회를 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용서를 할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니, 문제다.

 

다시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얼핏 강자의 편에 설 것 같지만, 아니다. 역사는 진실, 진리의 편에 선다. 지금은 감추고 왜곡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곧 드러나게 된다. 그 드러냄. 지난한 과정이겠지만, 결국은 드러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해서 우리 인류의 역사는 아직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사람들 가운에 한 사람... 아이리스 장.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글

 

책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책이 미국에서 1997년에 발간이 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14년에 번역 발간되었다. 그리고 아이리스 장은 2004년에 죽었다고 나와 있다.

 

중간에 책이 다른 판본으로 나왔다는 설명이 없는데...이 책 300쪽 '여전히 계속되는 역사 왜곡 망언' 부분에서는 2004년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분은 누가 쓴 것인가? 재판을 발행하면서 편집자들이 보충을 한 것인가, 아니면 번역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보충을 한 것인가. 거기에 대한 설명이 없다.

 

차라리 주나 보충설명을 통해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고, 아이리스 장이 쓴 원문을 그대로 번역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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