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타 툰베리와 함께하는 기후행동 - 기후 위기,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이순희.최동진 지음 / 빈빈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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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

 

민주시민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공동체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이익을 마치 공동체의 이익인 양 치장하는 사람도 아닌 사람들,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시민 교육이다.

 

그래서 민주시민 교육하면 왠지 정치교육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은데, 민주시민의 권리 중 하나가 정치적 권리이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정작 민주시민은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도록 행동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민주시민 교육은 생태, 환경 교육일 수밖에 없다.

 

공동체의 지속, 지속가능한 발전, 녹색 성장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지금 지구는 포화 상태다. 임계점에 도달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인구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올라가고 있는 온도들로 인해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견딜 수 없는 수준까지 가면 지구는 폭발하고 말 것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지구 온도가 1.5도 이상 올라가면 그때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많이 봐주어도 2도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 2도 이상 올라가면 이제는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도 지구 스스로 계속 온도를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고 한다. 그것을 되먹임 현상이라고 한다는데...

 

그레타 툰베리로 인해 촉발된 청소년들의 기후행동. 이것은 청소년들이 더이상 기성세대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현이다. 당신들에게 맡겨놓았는데, 도대체 이룬 것이 무엇이냐는 항변이다.

 

통렬하고 아픈 지적인데도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막무가내다. 움직이지 않는다. 그들이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그냥 지금을 모면하려는 모습만 보인다.

 

그러니 미래를 살아갈, 자신들이 살아갈 시대를 빼앗긴다는 생각을 지닌 청소년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자신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행동으로 나서야 한다. 매주 금요일, 기후행동으로 나서는 청소년들이 전세계에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도 참여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언론들은 이렇게 생존이 걸린 문제에 청소년들이 참여해도 대학입시를 위해 치르는 수능시험만큼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수능시험에서는 전국민이 출근시간까지도, 또 비행기 뜨는 시간까지도 조정하면서,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을 제거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청소년을 위한다면서 그들을 계속 사지(死地)로 몰아넣고 있으면서도 너희들을 위해서 그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면서 청소년들에게 민주시민 교육을 한단다. 그들이 이미 미래의 암울한 모습을 보면서 바꿔야 한다고 행동하고 있는데, 그 행동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만류하면서 민주시민 교육?

 

이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여졌다고 하지만, 아니다. 청소년들은 그 특유의 민감성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이 얼마나 위험에 처해졌는지 몸으로 깨닫고 있다.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다.

 

그레타 툰베리가 스웨덴 의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것도, 전세계 청소년들이 기후행동 시위를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다. 살아 있는 민주시민 교육이다. 그런 현장을 우리는 애써 무시해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는 그래서는 안된다. 청소년들이 이렇게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청소년이 아니야, 바로 당신들, 기성세대 당신들이야!라고.

 

그러니 이 책은 기성세대들이 읽어야 한다. 너무 쉽고, 간략하게 쓴 것 아니냐고?

 

아니다. 기성세대들은 이렇게 간략하게 쓴 것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한다. 그들은 지금 세상만 바라본다. 자신들의 미래 세대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기성세대다.

 

이런 기성세대에게 정신차리라고, 당신들의 그 태만이 우리들에겐 생명의 위협이 된다고 외치는 것이 바로 청소년들이다. 미래세대다. 그러니 기성세대가 눈 감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이건 진보, 보수를 떠나서 생존이 걸린 문제다.

 

아주 명쾌하게 기후위기에 대해서 정리해주고 있는 책이다. 청소년용이 아니라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을 보면 문해력(리터러시)이 무척 떨어져 있는 것 같던데, 이런 책을 읽어서 이해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이해하고 행동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나섰는데, 세상에, 수능보다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다니.. 그들에겐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아니, 그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책 표지에 있는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한다.

 

기후 위기, 행동하지 않으면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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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레타 툰베리와 함께 -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위한 긴급 메시지,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팸플릿 시리즈 (한티재) 16
한재각 엮음 / 한티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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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팸플릿이다.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작은 책자. 어려운 말을 쓰지 않고 명료하게 주장을 알리는 책. 위기의식에서 나온 책. 그렇다. 위기다. 그런데 이 위기를 감지하는 민감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뭔 위기? 하며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위기는 과학기술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없다. 짤막하게 핵심만 알려야 한다.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서. 이 책은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았다.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들의 글.

 

그래서 이들의 글은 추상적이지 않다. 실제적이다. 자신의 몸으로부터 나오는 외침이다. 이 외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중언부언 할 필요 없이 이 책에 나와 있는 글들을 발췌한다.

 

이 팸플릿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자 하는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엮었다. (한재각. 생존과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나서자! 14-15쪽)

 

저는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 위험은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데, 기업과 정치인들이 마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명민한 계산과 광고를 통해서요. (그레타 툰베리. 다른 탄소예산이 있나요? 24쪽)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서명한 파리협정의 내용을, 매주 금요일이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기위위기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알리지 않는 건 어른으로서 더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혜선, 나이가 들어서 돌아보았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말할 수 있기를. 34쪽)

 

현재 세계 배출량은(탄소) 연간 약 42기가 톤이다. 이 배출 속도가 지속된다면, 사용할 수 있는 탄소량이 67퍼센트 확률에서는 10년, 그리고 50퍼센트 확률에서는 14년 후에 소진된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2년이다. (조천호.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12년. 40쪽)

 

기후변화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우리 모두의 삶에 갈수록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기에 기후변화에 대응함으로써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구여야 한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처럼 들리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이 기본적인 권리조차 부정당한다. (김도현, 김서경, 김유진. '청소년인데도' 아니라, '청소년이라서'. 49쪽)

 

탄소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탄소 배출을 하지 않겠다는 목표를 선언하고, 그에 합당한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간 한국 사회는 그리 솔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박진미, 좀 더 솔직해져야 합니다. 55쪽)

 

이제부터라도 기후위기와 관련한 제반 과정에 여성을 고려하고 여성적 관점을 통합해야 한다. (김양희, 기후위기, 여성의 경험과 관점이 중요하다. 66쪽)

 

낯 두꺼운 저 자본의 힘을 우리가 빼지 않는다면 / 망해가는 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 / 지금 당장 행동하고 저항해야 한다/ (김수상, 지구를 위한 요가. 71쪽)

 

부디 청정 제주가 사라지지 않도록, 제주의 난개발을 멈춰주길 바랍니다. 여기서 그만 멈추세요. 멈추어야 합니다. 마지막 나무, 마지막 물고기, 마지막 물을 잃고 난 후는 너무 늦습니다. (그린씨. 안녕? 그레타 툰베리. 80쪽)

 

..거대기업 중심의 글로벌 푸드체인을 거부하고 지역 중심의 푸드체인으로 전환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자연순환적인 농생태학을 전국 각지에서 여성농민들이 실천하고 있다. (김정열, 소농이 지구를 식힌다. 86쪽)

 

...사회경제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노동자, 저소득층, 취약계층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과도하게 부담하는 것을 방지하고, 그러한 비용을 사회 전체적으로 공평하고 정의롭게 배분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노동운동이 주장하고 있는 원칙이 '정의로운 전환'이다. (장영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92쪽)

 

기후변화는 건강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공중보건 인프라를 파괴하고, 현재의 보건의료체계는 기후변화 때문에 초래되는 급격한 질병부담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 .. 기후변화보다는 '기후위기'가 좀더 정확한 표현이다. (김명희, 팔짱 끼고 인류 절멸을 관찰할 것인가. 100쪽)

 

기후변화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주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 ...둘째, 건강권을 침해한다. ... 셋째, 생계권을 침해한다. (조효제, 기후위기, 절체절명의 인권문제. 107쪽)

 

이제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그것은 누구의 몫인가? 행정부와 국회는 막대한 권력을 쥐고, 이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받지 못했고 시간만 흘러, 마침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10년을 넘겨받았다. (고은영,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114쪽)

 

기후위기... 정말 위기다. 탄소예산이라는 말을 아는 국회의원이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이 책에 나온 뉴질랜드 총리만큼 기후위기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지도...

 

절대적인 무시 아니었던가. 이제 그러면 안 된다. 올해 기후를 보라.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을 보라.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우리에게 문제를 제대로 보라고 경고를 하고 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안된다. 이 작은 책, 팸플릿, 우리에게 경고를 넘어서 행동하라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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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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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간에 위계가 있는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있다. 현실에서 사람들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등하지는 않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학력, 집안, 경제력 등등)에 의해 위계지워진다.

 

스스로 위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위계 속에서 어느 자리에 자신이 속해 있음을 판단하게 된다. 이런 위계를 부정하는 것이 인권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람과 동등한 존재인 것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도 자신의 노력으로 가진 것이 아니다. 학력이 자신의 순수한 노력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과연 그런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답도 많다. 이미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에 최종 학력도 달라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니... 학력이 꼭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자신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얘기다.

 

여기에 집안은 이미 선천적으로 주어졌고, 경제력 역시 자신의 노력보다는 이미 주어진 집안의 환경에 따라서 크기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경제력과 학력은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성공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자신의 능력에 더해 다른 조건들이 큰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동등하다. 어떤 사람도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렇게 인권의식이 발달하면서 학력, 집안, 경제력 등에 의한 위계는 차별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이런 것들로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이라는 생각도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다.

 

하지만 천부적인 것인데도 여전히 위계가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별이다. 성별과 더불어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위계가 존재한다.

 

페미니즘은 인권운동이다

 

그래야 한다.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 앞에서는 남녀나 또는 성적 지향을 구분해서는 안된다. 누구나 사람이라는 존재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성별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인권이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서 성적 지향에 따라서 차별이 이루어졌다. 공공연히, 또는 암묵적으로.

 

이것에 반대해서 우리도 사람이다. 성별이나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권리 주장을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들만 잘살겠다고 하는 운동도 아니다.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운동도 아니다. 이 책에도 언급되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을 반대하는 것이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포함된다.

 

이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당연히 인권 운동이다. 인권 운동이기에 성별의 다름을 먼저 내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어떤 성별,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고, 사람으로서 동등한 존재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과격하다?

 

페미니즘 운동을 표방하던 운동 중에 과격하게 보인 운동이 있었다. 미러링이라고 해서 남성들이 하는 혐오표현을 거울 비추기 식으로 되돌려 주는 운동도 있었다. 혐오 표현에 혐오 표현으로 대응한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처음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다. 그간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낼 수 있는 방법은 큰소리다. 작은 소리는 다뤄주지도 않는다. 자신들을 봐달라고,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다고 밖에 대고 존재를 드러낼 때,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세력을 그것을 과격하다고 한다.

 

동등하게 대하지 않는다. 반항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더 험한 표현을 한다. 그럼에도 처벌은 잘 받지 않는다. 공고한 연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운동은 더 강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을 어떻게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 전혀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미디어에 자신들을 알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격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격이란 무엇인가. 드러나는 것만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이미 과거로부터 더 심한 억압을 받고 지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이제야 주장하기 시작했는데 그 방법론을 문제 삼아 다 문제있다고 무시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페미니즘은 과격하기보다는 성별로 또는 성적 지향으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조건들로 인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먼저다. 그런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여기에는 남성, 여성, 또는 다른 성적 지향, 진보,보수, 자본가, 노동자 또는 어떤 직업에 따라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사상이 들어 있다.

 

페미니즘은 모두의 행복을 꿈꾼다. 누가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 책을 읽자

 

이 책은 이런 저런 페미니즘 운동을 다루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1990년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정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성들이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부터(호주제 폐지 등) 시작하여 미투 운동까지 근 30년에 걸쳐 일어났던 페미니즘 운동을 여러 자료들을 통하여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현대 페미니즘 운동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여기에 더한 점은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페미니즘을 남성들의 자장 안에서 머물게 하려는 모습이 페미니즘 운동 내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든 진보든 가리지 않고 남성 연대들이 등장한다. 또 자기들 진영을 지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은 모습도 드러난다.

 

이미 제목에 위계가 드러난다. 페미니즘 좋다. 그러나 내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해라. 이게 바로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다. 이런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거부하고, 그 틀에서 페미니즘이 나왔을 때 보수와 진보는 연대한다. 페미니즘에 반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 책을 보라. 그런 연대 사례들이 너무도 많아서 열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테니 말이다.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이 책에서 말한 '오빠'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아직도 무의식 중에도 이런 '오빠' 의식이 작동하고 있음에.

 

페미니즘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부터 읽었으면 좋겠다. 또 페미니즘에 대해서 맹목적인 반감이 있는 사람도 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있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가 '오빠'에 빠져 '허락한' 페미니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이 책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론서보다도 우리나라 사례를 중심으로 여성 운동을 정리하고 있어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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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 안희정 성폭력 고발 554일간의 기록
김지은 지음 / 봄알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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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사건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하는데, 무소불위의 위력을 지닌 사람은 그 위력에 취할 수밖에 없다. 위력에 취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인(聖人)에 가까운 노력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권력을 지닌 사람들 곁에는 그 권력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이 꼬여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다 보면 철의 장막, 죽의 장막을 넘어서는, 더 막강한 인(人)의 장막이 설치된다.

 

그 다음부터는 권력의 입맛에 맞는 말들만 권력자의 귀에 들어간다. 권력자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지당하는 칭송의 말과 함께 곧장 실행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서 권력자는 권력의 맛에 취해 빠져나오지 못하고, 결국 자신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도 그에게 쓴소리를 하지 않고 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쓴소리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충언역어이(忠言逆於耳)라고 진실을 담은 말들은 귀에 거슬리는 것이 당연할 텐데도, 권력의 맛에 취하면 그런 말을 듣지 않는다. 듣지 않으니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떠나가게 되고,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만 곁에 남게 된다.

 

세상에! 민주주의 시대에 지방자치단체장이 무슨 왕이란 말인가? 왕처럼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다면 그는 단체장으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왕처럼 군림하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차기 권력을 노리는 유력한 정치인이라면 더더구나...

 

이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거야 원... 정말 마음이 답답하다. 아직도 이런 사람이, 그것도 민주주의 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싸우면서 닮아간다더니, 니체가 경고한 대로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는데, 어느덧 예전 민주투사라고 하던 사람들, 그들 자신이 전제권력이 되었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섬뜩한 말이다.

 

안희정의 참모진들은 나를 '순장조'라고 불렀다. ... 수행비서는 왕과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했다. 수행비서는 누구도 모르는 왕의 비밀을 알고, 죽을 때까지 함구하다, 죽음으로 그 입을 끝까지 막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조직 내에서 안희정의 지위는 절대적이었다. (15쪽)

 

이게 말이 되나? 이 민주주의 시대에, 수행비서가 무슨 예전 내시들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가. 순장조라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정치권에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니...

 

더 답답한 것은 미투 선언이 있고나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권력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자만큼이나 권력에 중독되어 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위협하는 이러한 폭로는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폭로한 사람을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여전히 그들은 권력을 쥐고 있음으로.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우리나라 내부고발자들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는가. 공익제보자들이 당한 일도 엄청난데,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는 이들보다 더한 고통이 따르는 일들이 벌어진다. 김지은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했던가. 그런 식으로 몇몇이 모여 거짓말을 말하니 순식간에 나는 세간에서 '그런 여자'가 되었다. 사심으로 일을 한, 지사의 사생팬인,, 신뢰할 수 없는 이상한 여자. (20-21쪽)

 

사실이 중요한 것으로서 대우받지 못하는 채로 여론과 선정성만이 중요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드는 데 얼마 전까지 나의 동료였던 사람들이 참여했다. 2차 피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큰 배신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꼈다. 권력 앞에서 사인 간의 우정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음을 배웠다. 인간은 없고, 조직만 있었다. (156쪽)

 

대부분의 성폭력은 권력의 차이에서 비롯되기에 가해자들은 여전히 조직의 핵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피해자를 향한 조직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2차 가해다. 가해자는 여전히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피해자가 그 힘 밖으로 나오려면 그 분야에서 쌓아온 자신의 미래도 함께 버려야 한다. (296쪽)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그것은 정치인 주변에서 이런 인식들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현 권력 옆에서 함께 권력을 누리다 다음에는 자신이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 거기까지 가지 못하면 최소한 권력 옆에 계속 있을 수 있게 되는 것. 그러니 바른 소리보다는 입맛에 맞는 소리를 할 수밖에 없고, 일을 할 때 주변을 의식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구절이 나온다. 권력자 주변의 사람들이 권력자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 성폭력을 폭로한 사람 편에 서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할 것이다. 

 

캠프는 단순히 일하는 능력이나 학위 같은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평판을 중요시 여겼다. ... 누군가의 눈 밖에 나면 그것은 곧 커리어의 끝을 의미했다. (79쪽)

 

이런 사람들이 모여 캠프를 이루고, 그들을 중심으로 정책이 마련된다. 무언가 이상하다.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하면서 그들에게는 권력이 더 중요하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겉모습이 중요하다. 평판이 중요하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 가까이서 지내면서 알게 되면 환멸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말로는 미투 운동에 찬성한다 하면서, 자신이 성폭력을 자행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정치인 안희정의 대외적 이미지와 내가 업무를 통해 겪는 실상은 낱낱이 상반되었다. 그는 신분과 계급이 존재하는 세계에 살았다. 나의 자리에서는 그에게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나 노동권도 존중받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101쪽)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인권, 노동권도 지켜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민의 인권, 노동권을 지킨다는 것인지...

 

가끔 뉴스를 보면서 의아할 때가 있었는데, 검사들이 피의자를 조사할 때 밤샘조사를 하는 것, 왜 남들 근무하는 시간에 하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집에서 쉬게 했다가 다음 날 다시 조사하는 것이 기본적인 인권 보호 아닌가 하는 생각.

 

법을 집행한다는 검사들조차 이렇게 수면권, 또는 8시간 노동권을 무시하면서 일을 하니, 어떻게 국민들의 인권,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지금도 지니고 있는데...

 

또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그들 역시 어떨 때는 (이들이 일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 보면 참 부끄러운 결과가 나올 테지만) 늦은 밤에도 회의를 한다. 회의는 낮에 하면 되는 것이고, 낮에 그들이 회의 한 결과를 국민들에게 발표하면 될 텐데... 이들 역시 기본적인 노동권을 지키지 않고 있다.

 

사법부나 입법부에서 일하는 것이 이런데.. 정치인들은 이보다 더한가 보다. 수행비서 역할을 하려면 인권과 노동권을 포기해야 할 정도라니... 어떻게 이렇게 하면서 보편적 인권, 노동권을 운운하는지...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고 재판을 거치면서 여러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김지은은 단지 성폭력만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노동권에서도 엄청난 침해를 받았음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이런 비민주적인 활동들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니...

 

범죄 피해 사실과 관련된 수행 일정, 출장 기록, 영수증, 메시지, 사진 등 관련 자료를 모두 찾아서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당한 범죄는 성폭력뿐 아니라 노동권과 인권 침해에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하나둘씩 스스로 깨우쳐갔다. 그동안도 모르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무기력 속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었을 뿐이다. (51쪽)

 

이런 일을 겪다 드디어 세상에 자신이 당한 일을 말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폭로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폭로를 한 순간부터 더 큰 어려움이 닥친다. 바로 2차 가해다. 이런 2차 가해로 인해 김지은은 자해, 대인기피증 등 여러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성폭력이 신체와 정신에 가하는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현재의 삶, 과거와 미래, 자아, 인격에 대한 살인이었다. 성폭력이 비공개 살인이라면, 2차 가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칼로 난도질 하는 살인 같았다. (275쪽)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가려는 사람들. 또한 아무렇지도 않게 댓글을 통해 피해자를 난도질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니 피해자는 폭로한 순간부터 또다른 폭력과 싸워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권력자 주변에서도 피해자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증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로 인해 피해자는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든 2차 가해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차 가해는 엄연한 범죄임을, 그또한 심각한 성폭력임을 명심하게 해야 한다. 피해자가 또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더불어 피해자가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피해자가 그 이후에 더 힘든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김지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가해자는 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법에 의한 처벌로 자신의 행위를 무마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게는 그런 행위가 일회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피해자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지속되는 행위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니 피해자가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야만 성폭력과 같은 일들을 막을 수 있다.

 

읽으면서 짠한 마음이 들었다. 재판은 끝났지만 김지은에게는, 또 피해자들에게는 이 일이 끝나지 않고 지속되고 있음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고 우리 모두도 이러한 가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이 지속되지 않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높이고, 인권, 노동권에 대한 감수성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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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
제임스 볼드윈 지음, 박다솜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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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흑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온갖 차별을 받아야 한다면? 그게 온당한 일일까? 아니 온당하다는 표현을 넘어서 그것은 범죄에 해당하지 않을까? 혐오 표현, 혐오 행동을 세계적으로 범죄로 취급하고 있는데, 피부색을 이유로 차별을 받는 것 역시 혐오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한 사람들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도 강하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라고 하는 미국에서, 걸핏하면 미국을 본받자고 성조기까지 들고 나와 시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도 선망하는 미국에서 흑인은 여전히 차별받는, 혐오당하는 존재다.

 

노예해방이 이루어지고, 흑백 분리가 철폐되었지만 현실에서 흑인은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주변부로 밀려날 뿐만 아니라 백인의 폭력에 희생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유리 천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대놓고 흑인을 폭행하는 백인 경찰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대다수의 흑인이 사는 동네는 할렘이다. 도시에서 공동화된 곳. 그곳에는 마약과 폭력이 넘쳐난다. 백인들은 감히 그곳에 들어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게 바로 지금 미국 흑인들이 처한 현실이다. 그들이 그런 삶을 원하겠는가. 원하지 않음에도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반에 나온 볼드윈의 이 책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 슬프고, 그가 외친 것들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그렇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과 자신의 체험을 담은 글. 두 편 모두 흑인이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런 흑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주장들이 지금도 실현되지 않고 있어서 씁쓸하지만, 이 주장을 피부색에만 적용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 적용을 하면 '혐오 표현'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기도 할 것이다.

 

조카에게 쓴 편지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네가 백인처럼 되려고 애쓸 까닭은 없다. 그들이 너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제넘은 가정에는 근거가 없다. 내 오랜 친구야, 정말 끔찍한 사실은 네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아주 진지하게 하는 말이다. 너는 그들을 받아들이되,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저 순진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희망이 없으므로. 과연 그들은 아직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의 덫에 걸려 있고, 그 역사를 이해하기 전에는 덫에서 풀려날 수 없다. (27쪽)

 

늘 강자로 살아온 사람은 약자의 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한다. 자신은 그런 처지에 있지 않았으므로. 그의 주변에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들만이 있을 뿐이므로.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실이 아님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볼드윈이 조카에게 백인처럼 되려고 애쓰지 말고 오히려 네가 그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그것도 사랑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들은 모르고 있음으로. 아는 네가 우위에 있는 것이므로. 너는 더 잃을 것도 없으므로.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길도 흑인들에게는 험난한 길임을 조카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자(백인이다. 문맥상 보면)들은 네 형제들이다. 네가 잃어버린 어린 형제들이다. 만약 <통합>이라는 단어에 의미가 있다면 이런 뜻일 테다. 우리 형제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현실 도피를 그만두고, 현실을 바꾸기 시작하도록 우리가 사랑으로 강요해야 한다는 것. (28-28쪽)

 

그런데 백인들은 여전히 현실을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렇게 그들 주변은 왜곡되어 있다. 진정한 현실을 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흑인이다. 그 짐을 흑인들이 기꺼이 져야 한다고 볼드윈은 말한다.

 

다른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흑인들만의 나라를 미국에서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흑인들의 권리 향상이 이루어진 것도 흑인들의 노력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상황과 맞물려 이루어진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또한 흑인들이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백인들과 함께 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이 책이 나온 지 60년이 되어가는 지금 미국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그가 이 책에서 쓴 글은 지금도 유효하다. 몇몇 내용을 인용한다.

 

교회에는 진실로 사랑이 없었다. 증오와 자기혐오와 절망을 가리는 가면만이 있을 뿐이었다. 성령의 거룩한 힘은 예배와 함께 끝났고, 구원은 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 나는 모두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말은 신을 믿는 <우리>에게만 해당되었고, 백인에게는 전연 해당 사항이 없었다. (66쪽)

 

대학을 나와도 버젓한 직장을 가질 수 없었던 미국 흑인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는 교회였다. 이것이 초기 흑인 민권운동에서 목사들이 많았던 이유라고 한다. 볼드윈 역시 교회에 나가 설교를 한다. 그런데, 그는 교회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 점을 드러내고 있는 말이다. 지금 교회는 어떤가? 미국 교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회도 볼드윈의 이 말에 해당되지 않는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자, 가진 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글이 있다. 명심해야 할 말이다.

 

예속된 자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미개척의 힘과 마주하기 위하여, 도덕적 무게를 지니고 움직이는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하여 미국과 다른 서구 국가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있다. 스스로를 점검하고, 현재 신성시되는 것에서 풀려나고,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들의 삶과 고뇌와 범죄를 합리화하는 데 사용해 온 대부분의 전제를 버리는 것이다. (72쪽)

 

그들의 조상이 자유를 사랑하는 영웅들이었다는 미신, 그들이 최고로 위대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미신, 미국인들이 전시에는 무적이고 평시에는 현명했다는 미신, 미국인들이 멕시코인과 인디언과 다른 이웃이나 약자들을 언제나 명예롭게 대했다는 미신, 미국 남성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하고 정력적이며 미국 여성들은 순수하다는 미신. 니그로들은 그런 미신을 믿기에는 백인 미국인들을 너무나 잘 안다. (140쪽)

 

자신을 걸지 않는 한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자신을 걸 수 없는 사람은 단순히 줄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자유를 주는 유일한 방법은 그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이다. 미합중국은 니그로에게 자유를 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적이 없었다. (122쪽)  

 

이런 백인에게 흑인들의 처지를 맡길 수만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 그것도 서로를 증오에 빠뜨리는 폭력이 아닌, 서로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포용의 방법으로. 볼드윈의 이 말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분쟁에도 적용이 될 수 있겠단 생각을 한다.

 

사람은 자존감 없이 살 수 없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그것이 잃을 것 없는 사람이 어떤 사회에서든 제일 위험한 피조물인 이유다. 그런 사람이 열 명이나 필요한 것도 아니다. 한 명이면 족하다. (109쪽)

 

자신의 상태를 견딜 수 없지만 심한 억압에서 자신의 상태를 바꿀 능력도 없는 사람은 항상 부도덕한 권력자들의 손바닥 위에 놓이기 때문이다. (126쪽)

 

백인이 해방되는 대가는 도시와 시골, 법 앞과 정신 속에서 흑인이 완전하게 해방되는 것이다. (134쪽)

 

증오를 쏟아부으며 당신의 목을 짓밟는 자를 마주 증오하지 않으려면 대단한 영적 회복력이 필요하다. 당신의 아이들에게 증오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으려면 그보다 더 큰 기적에 가까운 통찰과 관용이 필요하다. (138쪽)

 

유한한 지구다. 우주 역시 무한하다고 하지만 인간의 한계일 뿐, 우주 역시 유한하다. 그렇다면 유한한 공간에서 유한한 시간 속에 사는 인간들이 서로를 보듬고 살면 좋지 않겠는가. 똑같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내가 다른 존재들이 있음으로 해서 유한한 삶을 무한하게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지 않겠는가.

 

피부색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다름도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됨을 다시금 생각하는 글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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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28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으려고
빌려 놓았는데 아직도 민기적거리고
있네요.

최근 위스콘신에서 또다시 총에 맞은
세 아이의 아버지 뉴스에 충격을 받았
습니다...

어떤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합니다.

kinye91 2020-08-29 09:50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경하는 미국에서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차별이 생명을 위태롭게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 그것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이 안타까워요. 어떤 형태든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고 저도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