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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평점 :
이거 어째 책읽기가 거꾸로 되었다. 같은 작가의 책을 순서대로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대체로 순서 대로라기보다는 마음 내키는 대로, 아니면 먼저 읽고 그 책에 감명을 받아 다른 책을 찾아 읽는 경우가 많다.
김승섭의 책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이 세계라면]을 읽으면서 좋은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우리 몸은 우리 자신의 것이라서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은 우주의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몸에 대한 책임은 개인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의학에 관한 것들을 이야기해준 책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었다면, 이 책은 질병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이 [우리 몸이 세계라면]에도 나오기 때문에 책을 읽는 순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회에서 약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질병에 관해서 연구를 한다.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서 이들의 질병이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을 밝힌다.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질병이 더 많고,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질병이 많다는 것.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도 그렇겠지 하는 것들을 많은 사례들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은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사회의 책임이 더 크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소방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사람을 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그것을 공표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부상을 당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고, 이런 일들이 그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
경제적 대우, 근무 여건의 개선뿐만이 아니라 부상을 당했을 때는 당연히 공상처리가 되어야 하고, 또 폭행을 당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그것이 근무 여건의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여기에 정리해고된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뿐만이 아니라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 그리고 이 책의 앞부분에 실린 낙태에 관한 문제.
지금 국회에서 낙태금지법이 다시 제정이 되었고, 여성단체에서는 그 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있는데, 김승섭은 낙태에 관한 다른 나라의 사례를 들어 낙태금지가 과연 누구에게 더 해로운지를 보여주고 있다.
입법하는 사람들이 이 책의 앞부분만을 읽었어도 그 법안을 그렇게 내지는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낙태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한 것이 우리나라 현실인데, 여성의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여성의 건강권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여기에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건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도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이 받은 유전적인 건강을 떠나 사회적인 질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건강의 악화로 나타날 수 있음을.. 그래서 사회적 관계가 잘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사람들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건강은 개인의 책임에 사회의 책임이 더해진다고 할 수 있다. 개인에게만 책임을 묻는 사회는 어쩌면 의사들 배만 불리는 사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의사들은(다는 아니겠지만) 개인의 건강만을 본다. 개인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을 이야기하고 약을 처방하고 수술을 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온전히 개인에게만 속해 있다.
역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저자의 말에 따르면 사회가 중요한 역할을 하니, 그들의 식습관이나 운동습관이 그렇게 된 것은 사회 환경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들이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으면 이들 건강이 좋아지기는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의 치료와 사회 환경의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이 책에서 김승섭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면 이 책에 나오는 전공의들의 건강상태 부분을 보면 기가 막힌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데, 내가 건강해야 다른 사람 건강을 돌볼 수 있는데, 전공의들의 건강상태는 아주 나쁨 상태에 있다는 것.
장시간 노동, 부족한 수면, 쌓이는 스트레스, 과중한 업무 등등으로 그들은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다고 하는데... 그런데도 의사 집단의 특수성 때문에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기가 힘들다는 현실.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진료거부를 하는 것은 의사 집단의 동질성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면, 전공의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선배 의사들에게 대항하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것.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방법은 인원수를 늘리는 것 아닐까? 같은 일을 한 사람이 할 때보다 두 사람, 세 사람이 하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나. 그들도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사색을 하면서 환자들을 만나는 수련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무슨 법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것도 전공의들 개인에게 맡겨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건강하게 수련을 해서 건강한 의사가 되도록 하는 것도 사회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법의 일부를 보자. 과연 이 법대로만 한다면 건강한 전공의가 될 수 있을지 판단해 보라. 다른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과 비교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 ( 약칭: 전공의법 )
[시행 2017. 12. 23.] [법률 제13600호, 2015. 12. 22., 제정]
①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4주의 기간을 평균하여 1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교육적 목적을 위하여 1주일에 8시간 연장이 가능하다.
②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연속하여 36시간을 초과하여 수련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응급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연속하여 40시간까지 수련하도록 할 수 있다.
③ 수련병원등의 장은 전공의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