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들 - 어느 대학 청소노동자 이야기
김동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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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 삶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임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 가령 집안일 같은 것, 또 소비자가 스스로 하는 일들, 표를 키오스크라는 기계에서 자신이 직업 끊거나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직접 넣는 것. 이것을 그림자 노동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동을 해서 우리들 삶을 좀더 편안하게 해주고 있지만 결코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는 일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 책은 '유령들'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존재하지만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로 여겨지는 말. 마치 유령처럼 취급당하는 대학 청소노동자들, 특히 민주노조에 가입한 청소노동자들을 유령취급하는 대학이나 또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자 노동이든 유령 노동이든 당연히 그냥 노동이라고 불러야 하고, 그런 노동을 하는 사람은 노동자라고 해야 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근로의 권리와 의무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천대받아서는 안 되는데... 과연 그런가?

 

노동자이되 노동자임을 드러내지 말아야 하고, 노동이되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아야 하는 노동, 그것이 바로 청소노동이다. 아침에 출근하루 때 보면 쓰레기로 덮여 있어야 할 거리가 깨끗한 것을 보게 된다. 이미 청소노동자들이 새벽에 나와서 치운 것. 왜 이들은 이렇게 일찍 일을 해야 할까?

 

우리들 인식이 아직도 이들 노동을 정당하게 대우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로 인해 깨끗한 환경이 유지되고 우리들이 기분좋게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노동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아야 한다. 보일 때는 더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찡그리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외관이 지저분해 보인다고 (청소하는데 그럼 어떻게 외관이 깨끗할 수가 있지? 건물에 이물질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청소 안 했다고 뭐라 하는 족속들이 그것을 치우는 사람에게 무어라 한다. 치우면서 외관이 지저분해졌을 뿐인데) 또 냄새난다고 (이들 몸에 밴 냄새 때문에 저들이 냄새 없는 환경에서 지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비난하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놔두고 걸어올라가란다. 이런 청소 도구들을 지니고 어떻께? 이렇게 이들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일 때가 많다. 보이지 않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바로 자기들 눈에 보일 때는 이렇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게다가 대학가에서 시험 때가 되면 강의실에서 자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들이 자고 있을 때 강의실 청소를 하면 대뜸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강의 시작 전에는 청소를 마쳐야 하는데, 학생들이 자고 있으면 안 할 수도 없고, 하기도 힘든 상태.

 

이 책은 이런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모 대학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반으로 쓴 대학 청소노동자, 그냥 청소노동자라고 하기보다는 민주노조에 가입된 청소노동자들 이야기.

 

이들을 대하는 용역업체의 태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늘 갈등하는 관계임에 틀림없으니, 그런데 원청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실질적으로 고용하는 대학의 태도는 참 문제가 많다. 청소노동자들을 좀더 편하고 싸게 이용하기 위해서 이들은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을 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것은 자신들과 관계없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임금을 대학에서 지불하면서도 용업업체에 떠넘긴다.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냥 모르쇠로 일관하면 그나마 괜찮다고 해야 하나?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용역업체 편을 들어 민주노조를 와해시키려는 행동을 한다. 결국 이 책에 따르면 대학과 용역업체와 사용자 편을 드는 노조가 삼위일체가 되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민주노조를 와해하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들의 노동은 그림자 노동처럼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노동이 아니라 당당한 노동이다. 임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그림자 노동이 아니라 보이는 노동, 실체 노동이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제대로 된 노동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유령 취급을 당한다.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들로 여긴다. 당연히 노동조건 또한 열악하기 그지 없다.

 

대학이라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답게 이들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에도 신경쓰고, 이들이 적합한 조건 속에서 당당하게 노동을 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대우는 고사하고 특히 민주노조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없는 존재로 더더욱, 이들을 해체시켜 말 잘듣는 노조만을 존속시키려 한다. 대등한 존재로 이들을 인정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발생한다.

 

모 대학에서 일어난 민주노조 출범부터 거의 해체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면 먹먹해진다. 민주화가 되었다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약까지 한 정권에서, 그것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도 여전히 비정규직에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유령처럼 지내야만 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들이 아직도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는 현실에 아무리 눈 감으려 해도 이들은 유령이 아니라 인간임을 보여주는 이 책. 그래 우리가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유령처럼 일을 하는이 아니라 마치 우렁각시처럼 일을 하지만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하는 그들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이 때문에 작가의 말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비리에 눈감고, 약자를 억누르는 사회에서 정의는 움트지 않는다. 죽은 진리의 전당에서 지식인이 태어날 리 만무하다. 그런 곳에서 학생도, 교수도 어차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에는 무관ㅅ미하다. 그들에게 피억압자들의 운명을 맡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오로지 짓밟힌 자들끼리 힘을 합칠 수밖에 없다.

  나는 억잡자들의 승리를 바라지 않는다. 아직 그들이 이겼다고 보지도 않는다. 억압자들만 승리하는 세상에서 피억압자들은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꿈이 있어야 저항도 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억압자들의 실패를 보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피억압자들의 역사가 억압자들의 기록으로 새롭게 덧칠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민주노조 파괴는 현재진행형이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잊지 않기 위해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 (303-304쪽)

 

'그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 점을 알아야 한다.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밀 마르틴 니묄러(Friedrich Gustav Emil Martin Niemöller)가 했다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들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이 책은 이렇게 니묄러의 말을 생각하게 해준다. 결코 그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내 이야기임을 생각하라고.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다행히도 대학에서 직접고용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노동자들이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는 책이다. 고압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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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8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20-02-28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령들˝ 꼭 읽기도 하겠고, 여러 기관 신청도서에 신청해놓겠습니다!

2020-02-28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편 1호 세대 인문 잡지 한편 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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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무시하는 시대에 인문학을 표방하는 잡지를 낸다는 것, 용기일까? 무모함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인문학은 없어서는 안될 삶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일까? 이런 질문을 하게 하는 잡지다. 인문학이 홀대를 받다못해 이제는 거의 고사직전까지 간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런 잡지가 반갑다. 무언가 생각할거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야만 하는데, 그럴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잡지 이름이 [한편]이다. 뭐라 설명이 없기 때문에 그냥 생각해 보면 한편, 즉 같은 편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잡지를 기획한 사람, 편집한 사람, 글을 쓴 사람, 읽는 사람이 한편이라는 의미. 그래서 인문학이 사라지는 시대지만 인문학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삶을 바라보는 눈을 갖추는 한편이라는 의미로 생각하기로 한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그 시류를 멀리서 볼 수 있고, 시류를 거스르기도 하며, 시류의 방향을 바꾸려고도 하는 사람들, 한편.

 

그런데 한편은 다른 의미로 이것과는 반대로 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있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참 잡지 이름에 여러 뜻이 있다.

 

그러니 한편은 잡지를 읽는 사람들이 같은 편이라는 넓은 틀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자리를 지켜가야 한다는 다름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잡지일 수밖에 없다.

 

이 이름과 같은 것이 창간호 주제인 [세대]다. 세대 역시 하나로 뭉뚱그릴 수도 있지만 뭉뚱그려지지 않는 다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대 논의는 늘 조심스럽다. 세대로 통칭하지만, 그 세대 속에 얼마나 다양함이 공존하고 있는지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대를 주제로 삼은 이유, 미래를 살아갈 청년들에게 각종 세대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대 갈등을 이야기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고. 그럼에도 세대라는 말 속에 여러 의미들이 중첩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세대론에 접근해야 하는지 모호하기도 하다.

 

이런 모호함 속에서 다양한 세대 논의를 [한편]에서 하고 있다. 총 10개 글이 실려 있는데, 큰주제는 세대지만 풀어가는 내용은 다 다르다. 이런 다름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통해서 세대론을 통해 미래로 향해 나아가는, 즉 세대갈등만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는 접점을 찾아내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한 세대 속에도 다양한 집단들이 존재함을 생각해야 한다. 세대 속에는 계층과 젠더와 또 지역과 학력과 경제, 국가 등등의 다양함이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세대라고 해서 오로지 같을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같음 속에 다름을 찾아내는 것, 그 다름을 다시 세대라는 큰 틀로 융합시켜내는 것, 그리고 세대 간의 차이를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세대들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그래서 [한편]은 같은 편이자, 다른 편이다. 이것이 인문학이기도 하다. 바로 세대들이 의미하는 것과 같이. 우리는 다른 세대에게 이름을 붙인다. 예전에 386세대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기득권 세력이 된 세대가 있는 반면, 88만원 세대라고 하여 사회 주류에서 밀려난 세대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포 세대라는 이름으로 더더욱 살기 힘들어진 세대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세대 논의를 통해서 하는 것은 세대와 세대의 차이를 부각시켜 갈등관계로, 어느 세대가 어느 세대를 누르고 나아가야 한다는, 친부살해의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대 논의를 하는 것은 세대간의 차이로 사회에 대응하는 행동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그 지점에서 논의를, 행동을 시작해야 함을 깨우치기 위해서다.

 

그래서 각 세대들은 다른 편이자 한편임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세대 내에서도 한편이자 다른 편, 다른 편이자 한편이라는 다양함이 존재함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다양함을 인정하고 함께 할 때 미래에 희망이 있음을 인문학 잡지 [한편]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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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 파소도블레 - 풋내기 신입기자들의 솔직궁상 사는 이야기
이현진 외 지음 / 작은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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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난해하다. 모르는 낱말이 있다. 모르는 낱말이 있으면 호기심이 작동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아예 멀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지도는 아는 말이고 '파소도블레'는 전혀 모르는 말이다.

 

난지도는 이름과는 달리(난초와 지초의 섬이라는 뜻이었는데) 한때 쓰레기 매립지였던 곳, 쓰레기꽃을 피웠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공원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땅 속에서는 가스가 새어나오고 있다는 것. 한번 쌓였던 것들이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데, 그만큼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겉모습이 살 만해져도 속으로 들어가보면 여전히 힘든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제목에 난지도가 들어간 것은 신입기자들로서, 사회 초년병으로서 편치 않게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겉으로는 난초와 지초처럼 고상하고 멋진 모습을 기대하지만, 예전 난지도처럼 힘든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란 의미.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외국어인지 잘 모를 낱말이 제목에 떡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거 아무리 외국어가 난무하는 우리 사회라고 해도, 좀 너무한다 싶은 말이다. 파소도블레라니...

 

찾아봐야지. 이렇게 제목도 찾아보게 만드나. 아니, 자신들의 삶이 이렇게 우리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있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찾아보니 춤 이름이란다. 스페인에서 유래한 춤이라고 하는데, 파소와 도블레라는 말이 합성된 것이라고 한다. 파소가 걸음이고, 도블레는 더블, 즉 둘이라는 뜻이니 두 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존재들인 청춘들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지만, 내키지 않기는 마찬가지. 그들은 그냥 '뭔가 있어 보이는 춤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8쪽)고 하는데,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하는 청춘일 수는 있겠다.

 

전체적으로 제목을 보면 남들은 잘 모르지만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을 만큼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기자 생활을 하지만 속으로는 썩고 있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을, 그런 소소한 일상을 글로 표현한 책이라고 하겠다.

 

그러니 무슨 거창한 주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냥 살아가는 모습을, 남의 일기장을 읽듯이 읽어내려가면 된다. 읽어가다가 자신의 삶과 겹치는 부분을 만날 수가 있다. 이들 역시 우리나라 청춘들이 벗어날 수 없는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우리나라 청춘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다른 청춘들보다는 조금 나은 처지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들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결혼을 하기도 했으며, 자식도 낳은 사람이 있고, 전세라는 형태로 거주지를 마련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포세대라는 말이 자연스레 들리는 이 시대에, 이들은 사회초년병으로서 살아가고 있으니 이를 이루지 못한 청춘들에 비하면 많이 나은 생활을 하는 것이지만, 이런 생활도 생활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많이 버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버거운 생활을 '파소도블레'처럼 두 걸음을 빠르게 움직이는 삶을 살아가는 청춘들, 그들이 이름 그대로 난초와 지초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속에 있는 그 가스들을 빨리 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함을 이 책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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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사진의 쓸모 -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
정기훈 지음 / 북콤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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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얽힌 이야기가 실린 책이다. 그런데 사진이 화려하지 않다.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도 아니다. 그런데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무언가 찡하는 마음이 된다.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일들, 그러한 일들을 사진으로, 글로 상기시켜 주고 있다.

 

소심하다는 표현을 제목에 썼는데, 그것은 바로 인위적이라기보다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다가 포착한 사진이라서 그렇다. 가령 시위를 하면 시위를 하는 중심적인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 시위 장면에서도 우리가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부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은 정기훈은 그래서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어떤 자세를 취할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마냥 기다린다. 자신이 생각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힘들게 지내는 그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그들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진가. 그들에게 애정을 지니고 사진을 찍는 사람.

 

그래서 표지에 '카메라 뒤에 숨어 살핀 거리와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이 돋보이지 않고 또 쉽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살펴야 알 수 있는 것들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글도 그렇다.

 

사진에 얽힌 글들이 우리 사회 어두운 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동안 관심없이 지내왔던 시간들을 반성하는 읽기이기도 했다.

 

사진가는 주로 우리 사회에서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을 찍었다.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속한 장소를 함께 찍었다. 그 장소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크게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작게, 마치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드러내는 것만큼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이들이 크게 표현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이 사진책 속에 나온 것처럼 힘들게 지내는 그런 모습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소심한 사진이 이런 사회적 약자들이 밝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이 나오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드러나지 않은 모습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우리가 지나치고 있던 그런 일들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소심한 사진의 쓸모'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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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시민운동
와다 하루키 외 지음, 이원웅 옮김 / 오름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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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도록 해결이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진상규명하고 사과하고 보상을 하면 한방에 끝나버릴 일인데...정부는 이미 협정으로 끝났다고 하고, 소위 지식인들이란 자들은은 자기들 유리한 자료들만 대상으로 논지를 펼치고, 보상은 정부 차원에서는 없다고 못박고 있는 상태.

 

이게 벌써 몇 년이냐?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었는데도, 엄연한 주권국가로서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해주는 일은 위안부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약간의 일. 그것도 많은 압력이 있은 뒤에야 이루어진 일이니.

 

가장 중요한 일은 진상규명이다.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자료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료들을 종합하는 사고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제국주의는 이미 잘못되었음을 전세계가 인정했다.

 

지금 정부가 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의 나라 과거 정부가 했던 일이라고 지금 정부의 책임이 면해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책임은 완전히 청산하기 전까지는 계속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책임을 부정하기 시작하면 끝이 안 난다. 이게 지금까기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일본 정부가 부정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미약하지만, 그리고 우리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일본 정부에서도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거기에 대한 보상을 하려고 한 적도 있고. 물론 피해자들이 만족감을 느끼고 완전히 용서를 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되는 데는 국가 간의 외교 능력도 필요하지만 자국 내 시민운동의 역할, 즉 깨어있는 시민들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정부는 시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데...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또 그것이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는 쪽으로 이루어졌다는 쪽으로 알려져 있어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운동이었지만,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여러 논의를 거쳐, 정부와도 협의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했다. 시민사회가 깨어 있을 때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일본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청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중요하다.

 

이 책은 그 과정과 결과를 담은 책이다. 일본 편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을 여러 자료를 통해 밝히고 있는데, 결과는 실패다. 이 운동은 실패했다. 실패한 원인들이 여러가지 있겠지만 이들은 우선적으로 홍보부족을 들고 있다.

 

자신들이 하려는 취지가 왜곡되어 보도되고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위안부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그렇다고 완전한 실패는 아닌 것이 필리핀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다만, 우리나라와 대만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원인을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에서 추진해서 정부의 책임을 희석시키고 있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또 이 위로금을 받으면 일본 정부에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위로금을 받는 일과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별도라는 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고 이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홍보부족은 피해자 당사국들에서 벌어지는 시민운동의 주체들을 설득하지 못했던 것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나 대만에서도 위안부를 돕는 단체가 있는데, 이들 단체들과 함께 하지 못한 아시아여성기금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시하기 전에 이런 단체들과 먼저 의논을 하고 조율을 하는 과정을 거치며 양해를 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런 일은 다시 10년 전후로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다.

 

전후 50주년을 맞아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제국주의 시대에 벌였던 잘못들을 바로 잡고 평화로운 미래로 나아가고 싶단 생각을 했나 보다. 그래서 과거의 일을 청산하는 운동을 하고, 정부에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그 일을 추진하려고 하지 않자, 먼저 민간에서 기금을 모아 피해를 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지원을 하고자 '아시아평화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 운동을 했다고 한다.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 중에는 정부가 보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사람도 있는데, 그들 역시 장기적으로는 정부가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지만 지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고도 한다. 

 

그래도 사무적인 기금은 정부에서 내고, 총리 사과문까지 동봉해서 지원금을 주겠다고, 이 일을 하면서 일본 사회에 과거의 일을 밝히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일본 국민들이 모금에 참여하면서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게 되니 자연스레 교육적 효과도 있다고 그들은 생각했다고.

 

이렇게 일본에서 벌어진 위안부 문제에 관한 시민운동은 몇 년 지속되다가 중지하게 된다. 그리고 잊혀졌다가 2010년대 들어와 다시 한번 불거진다. 비슷한 민간기금 문제로... 참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운 것인지...

 

일본 정부는 한결같이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고 나오니, 최소한 1995년처럼 총리 사과라도 했으면 좀더 나았으련만... 일본 시민운동 단체들도 힘이 많이 떨어져 이 문제는 또 흐지부지 되고,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하지 않고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그 일은 언제고 다시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하여 진상규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적어도 학자들이 역사적 자료들을 찾아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책임을 후대들이 지어야 한다. 후대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조상들이 잘못한 일은 후손들이 마무리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다.

 

지금 일본에서는 시민사회가 많이 위축되었다고 하는데, 이 책을 통해 과거에 일본 사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음을 보여준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이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가해국 시민들의 압력이 가해국 정부의 사과를 이끌어내는데 도움이 되니, 일본 시민사회와 연대할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실패의 기록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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