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호텔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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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결국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일 것이다'라는 이 시집의 뒷표지에 실린 김종철의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문재의 시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감수성이 뛰어나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사람, 그래서 자신과 남의 일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자신의 일인 것처럼 표현하는 사람, 그 표현을 통해 남을 자신에게 동화시키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이 시를 통해서 남을 자신에게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그 시는 성공했다고 말하기 힘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점에서 이문재의 이 시집은 성공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시집의 제목 "제국호텔"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제국에 침탈당하고, 생활은 물론 의식까지도 제국에 지배당하는 그런 상태를 보여준다고...

 

이 시집에서 '제국호텔'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시들은 이런 우리의 상태를 비판적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보지 않으니, 시인이 우리더러 보라고 우리의 눈 앞에 그 상황을 펼쳐 보여준다. 안 보면 안 된다는 듯이.

 

컴퓨터 정보화시대, 초고속통신망시대, 스마트폰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생각까지도 지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지구적 축제라는 월드컵에 갇혀, 그런 제국의 논리에 빠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고 있지 못함을 시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제국이 어떤 나라를 의미하는지는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나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프런트에서 왼쪽으로 이십 미터를 가면 스타벅스 / 오른쪽으로 다시 백오십 미터를 더 가면 맥도널드다' ('제국호텔 -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57쪽)

 

제국에서는 우리가 꿈을 이루어도 그 꿈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제국에서 탈출해야, 제국을 없애야 비로소 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 제국에서 / 이루어진 꿈은 꿈이 아니다 / 그대들은 꿈★은 늘 미루어지게 되어 있다' ('제국호텔-인도에서 소녀가 오다' 중 일부 56-57쪽)

 

그러니 제국의 환상 속에 갇혀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은 이루어진다'는 붉은 악마의 구호를 인용해서 현실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시인은 '남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단지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계속 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럼에도 이 시집에 이런 시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시들이 있고 (농업박물관 소식, 지구의 가을, 식탁은 지구다), 사람이 지닌 기본적인 감성을 일깨우는 시들도 많다.

 

그 중에 이 시 '파꽃'을 사람이 배우는 이유에 대입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파꽃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이문재, 제국호텔, 문학동네. 2012년 1판 5쇄. 93쪽.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한다. 자신이 비워져야 제대로 존재할 수 있다. 만약 파의 속이 꽉 차 있다면 그것은 이미 파가 아니다. 파로서 존재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많이 배운 사람이 제 속을 비우지 못했다면, 그것은 제 욕심으로 가득찬 사람이 되었다면 차라리 안 배움만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배우는 사람의 의무가 아닐까 싶기도 한데... 우리는 배움을 채움으로 잘못 착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배움을 오로지 채움으로만 생각하는 세태에 물들어 있지는 않은지, 이 시가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비우는 것만큼 중요한 것, 파는 속을 비우지만 속을 비우기 위해서 자신은 꼿꼿하게 홀로 서야 한다. 꼿꼿하게 홀로 섬, 이것과 속이 빔이 함께 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파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우기나 채우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몸 자체, 항아리 그 자체이다. 몸은 튼튼해야 하고, 항라리는 단단해야 한다.'

 

그렇다. 바로 우리 자신들부터 바로 서야 한다. 바로 서는 공부. 바로 서는 몸. 그 다음이 바로 비우기다. 비운 다음, 채우기다.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시인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시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사람이다. 우리가 외면할 수 없게 바로 우리 눈 앞에, 우리 마음에.

 

이문재의 시집, "제국호텔" 그 역할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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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대화 -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 이성복 대담
이성복 지음 / 열화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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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성추문이 끊이지 않고 불거지고 있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이런 성추문들이 쉬쉬 감추어져 있었다가 어떤 계기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그간 성에 관해서 관대하게 대했던 풍토도 있었다고 할 수 있고, 문인들이란 본래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도 이런 풍토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인의 삶이 기행적이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냐 하면 그건 아니다. 문인들의 기행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인들의 기행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 나와서 그의 기행이 말 그대로 사회적 일탈행위로 처벌받지 않고 기행으로 인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예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문인들의 기행이 좋은 작품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문인은 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온갖 경험을 다 해봐야 한다고 못된 행위까지 강요(?)했다고도 하는데... 그런 행위와 좋은 글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이성복의 이 책을 읽고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성복은 이런 기행과는 거리가 멀게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시는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범으로 존재했고, 숱하게 많은 시인지망생들에게 읽히고 외워지고 베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시세계에 관해서 대담을 한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1983년 대담으로 시작으로 2014년 대담이 마지막으로 실려 있다. 그렇게 가진 대담들을 이성복 자신이 약간 손보아 엮어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성복의 시세계를 조감할 수 있으며, 최근 불거진 문단의 성추문에 경각심을 불어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작은 제목이 '사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대담 중에 그의 말에서도 확인이 되는데...

 

"젊어지려면 끊임없이 자기 반성이 필요하죠. ...  문학의 본질은 정신의 젊음에 있어요. 문학은 젊음에 의해 태어나고, 젊음을 유지하게 해요. 그러려면 항상 낮은 곳에 있어야 해요." (123쪽)

 

낮은 곳에 있다는 것, 그것은 막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는 온갖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구분하지 않고 자신에게 온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

 

낮아진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우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우려면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비울 수가 없게 된다. 오로지 채우려고만 한다. 그렇게 채우려고만 하는 행위, 그것이 곧 추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작품이 되기 힘들다.

 

그의 말에서 요즘 문단 성추문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시를 쓰는 이유가 인생 때문인데, 그 사람들은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시를 위해서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들어." (171쪽)

 

그 사람들이 성추문을 일으킨 문인들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시를 위해서 인생을 사는 듯한 사람들을 확대하면 성추문을 일으킨 문인들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마치, 그런 일이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는 듯한 말을 하는 사람들. 전혀 아닌데...

 

시란 무엇인가? 결국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성복에게 시는 곧 '윤리'다. 윤리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추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의 시에서 비루하고 비참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인생의 참 의미를 찾기 위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런 삶을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끝까지 가게 하는 시, 그런 시를 이성복은 쓰고자 한다.

 

"시인은 사람들 멱살을 잡아서 그들이 자꾸 안 보려 하는 걸 억지로 보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204쪽)

 

여기에 어떻게 추문이 끼어들겠는가. 오히려 인생에 대한 통찰, 윤리만이 작동할 뿐이다. 이런 시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시를 쓸 사람, 그가 바로 이성복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이성복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거의 30년에 걸친 대담들이 실려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따라서 대담 연도 순으로 배치된 이 책의 글들을 읽으며 이성복의 시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성복의 시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의 시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보면, 그 그릇에 담긴 그의 시는 어둠과 같다. 어둡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도록 경계선을 보여준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이성복에게서 시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들어보면...

 

"예술가란 대속자(代贖者), 아픈 사람보다 더 아파하고, 아픈 사람 자신도 모르는 아픔을 대신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277쪽)

 

세상은 살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런 시인들이 있어서 세상은 살 만한지도 모른다. 소수의 일탈자들을 보기보다는 이런 시인들을 찾아 그들을 우리 곁으로 불러오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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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파란 2016.봄 - 1호, 사건들
파란 편집부 엮음 / 파란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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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보다 2권을 먼저 읽고, 1권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들의 시론이 2권이었다면, 창간호라고 할 수 있는 1권은 시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날짜를 중심으로 고찰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김소월부터 2000년대 시인들까지, 우리나라 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날짜, 사건을 중심으로 그것이 왜 사건이 되는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시의 역사를 안다는 것보다는, 시가 현실에서 떨어질 수 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다.

 

김소월의 시에서 또는 인생에서 중요한 사건 역할을 하는 것이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이라면, 한용운이 백담사에서 '님의 침묵'을 탈고한 1925년은 우리나라에서 자유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건이라고 하고... 이런 식으로 이상의 시가 우리 시에 미친 영향, 그리고 해방 후에는 김수영부터 '창비' 그리고 80년 광주에 대한 시인들의 응전, 노동현장을 시에 들여와 우리에게 충격을 준 박노해의 시, 2000년대 소위 미래파라 이름지어진 젊은 시인들의 등장을 고무한 잡지까지...

 

약 80년의 세월을 날짜를 중심으로 시인에게 영향을 준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다음인 지금, 시인에게 영향을 준 사건들, 그 사건들이 우리나라 시 역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 그리고 그 사건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까지 다루고 있는 이번 호는, 마치 헤겔이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대략 이런 의미였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나간 것들을 정리해주고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조망하고, 그것을 다시 현재에 들여오고 있으니... 이 사건들이 그냥 과거의 사건들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시의 역사를 알게 되는 것과 함께, 시가 어떻게 현실에 대응해 왔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 '사건들'이란 주제에서 알게 된다.

 

더불어 시인들의 시 세 편씩이 실려 있으니... 그 시들을 감상할 수도 있으니... 더욱 좋고. 다음 3호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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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 칠곡 할매들, 시를 쓰다 칠곡 인문학도시 총서
칠곡 할매들 지음, (사)인문사회연구소 기획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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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할매들 두 번째 시집이다. "시가 뭐고?"에 이어 그동안 칠곡 할매들이 한글을 공부하고 글쓴 결과물이 나온 것이다.

 

시인들만이 시를 쓰는 세상은 고도로 전문화되고 분화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라는 것도 특정한 집단만이 써야 한다면, 그것은 자기 분야가 아니면 전혀 모르는 청맹과니들이 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만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자기 분야말고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의학분야만 하더라도, 우리는 통칭 의사라고 하지만, 의사들도 자기 전공 분야로 나뉘어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또한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다른 분야에 뭐라 말하기가 그런 세상이 된다.

 

뭐라 말하면 네가 뭘 알아? 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이번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건을 보아도 대다수의 의사들과 사람들은 사망진단서의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하는데도 주치의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하면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전문화는 곧 분업화요, 분업화는 곧 소통의 단절이 될 수 있음을 이런 사태를 보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는데... 이런 전문화ㅡ분업화를 거부하고 통합, 융합으로 갈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인문학 분야 아닌가 한다.

 

인문학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학문 간의 융합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는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굳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함께 하는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시 분야로 국한시켜 말해보면 요즘 시인들은 어려운 시들을 많이 쓴다. 그것이 시인이 해야 할 일인 양, 다른 사람과 시인을 구분해 주는 양 난해한 표현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표현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도로 전문화, 분화된 지금 세상을 시인들이 반영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래서 시 역시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있고, 시 분야에서도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시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행위 아니던가. 예전에는 시인이라는 직업이 없지 않았는가. 그냥 감정이 흘러 넘쳐 무언가로 표현해 내야 한다면 그것을 몸으로든 언어로든 표현하지 않았던가.

 

노래와 시는 그래서 삶과 하나였고,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분야였는데... 근대에 접어들면서 '시인'이 하나의 직업이 되면서, 시는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

 

좋다. 시인은 누구나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앞 부분에 중점을 두자. 시는 누구나 쓸 수 있다는 부분에 말이다. 그 누구나 쓸 수 있는 시를 누구나 쓸 수 있게 하는 사회가 바로 좋은 사회 아니겠는가.

 

시를 특정한 사람들만이 쓰는 문학 행위라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쓸 수 있고, 발표할 수 있는 문학 행위라는 인식이 확산된다면, 우리 사회에 시가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칠곡 할매들과 함께 한 인문학 교실, 여기서 한글을 배우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시로 쓴 할매들의 결과물은 소중하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 않고, 자기만 아는 표현을 하려 하지 않고, 지금껏 살아온 삶을 그들의 언어로 표현해내고 있는 것.

 

그들 삶 자체가 시일텐데... 진솔한 표현들 속에서 할매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나고 있어서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고, 때로는 웃음이 머금어지기도 한다.

 

시가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오고... 이런 활동을 한 사람들이 고맙고 그렇다. 이 시집에는 칠곡 할매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시, 마음에 짠하게 다가온다. 이게 바로 우리 민초들의 삶이다.

 

민초들은 바로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런 민초들의 삶, 그것을 소위 말하는 지식인들, 권력자들이 배워야 한다. 자신들의 삶을 강요하지 말고. 

 

  내 평생

            - 남영자

 

20살에 시집 가지고 아 다섯을 낳고

삼십다섯에

혼자 돼 아 다섯 지대로

키워주지 못하고 공부도 올재 못시킸다

그래도 여짓것 살면서

남 해롭게 안 하고 평생 거짓말

한 번 안하고 살었다

남 도와주지는 못해도

평생 남 해롭게 하지는 않았다

 

강봉수 외 118명,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 삶창. 2016년 초판. 20쪽.

 

이런 시들이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이게 바로 시라는 듯이. 이렇게 삶이 바로 시가 될 수 있다는 듯이. 그래서 시가 삶에 더 가까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해준 시집이다.

 

* 표기는 할매들의 표기를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굳이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쳐서 시에 쓰인 표현에서 들을 수 있는 할매들의 목소리를 지울 필요가 없었을 듯하다. 이것이 더 좋다. 그래서 이 시들에서 할매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 눈만이 아니라 귀에도 들리는 듯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늘 고맙다. 이렇게 책을 보내주면. 특히 살아있는 목소리들이 담긴 글을 담아낸 책이 오면 더욱 반갑고 고맙다. 앞으로도 이런 책이 더 많이 사람들 곁에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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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시인선 52
이문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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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읽기와 시 읽기가 같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예전 시집들은 시인들이 다른 매체에 발표했던 시들을 묶고 엮어서 시집을 냈다. 따라서 시집에 어떤 일관성이 없는 경우도 많았는데... (시집 전체적인 의미를 고민하기 보다는 그냥 시들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시를 감상하면 되었다)

 

최근에는 시인들이 다른 매체에 발표하지 않은 시들을, 또는 발표를 했다고 해도 시집을 낼 때 어떤 주제를 가지고 시들을 배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시집 읽기는 그 시집에 실린 개별적인 시 읽기와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시집 전체적인 배열, 구조, 주제 등을 생각하면서 읽다보면 시집이 한 편의 글이 되어 다가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집 속에 있는 각 시들은 전체글을 완성해 가는 하나의 요소로 기능을 하게 되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한 편 한 편의 시가 그 자체로 독립적이지 않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독립된 시들이 모여 또다른 주제를 만들어내는 시집이 된다는 생각을 한다.

 

시집 전체를 읽는 법, 범위를 이문재의 이 시집으로 좁히면 이 시집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감상하는 법은 시집의 뒤에 실린 '신형철'의 해설에 잘 나타나 있다.

 

어쩌면 이 해설은 시집을 전체적으로 읽는, 그렇다고 개별적인 시들을 간과하지 않는 그런 읽기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시집이 구성되어 있는 4부를 유기적으로 연관되게 해설해 내고, 여기에 더해서 좋다고 하는 시도 소개하고 있는 그런 해설. 따라서 이 시집에 대해서는 신형철의 해설보다 더 잘 할 수는 없을테니... 이 시집에 대한 이해는 그의 설명에 맡기고.

 

나는 이 시집에서 제목이 된 시 '지금 여기가 맨 앞'을 내 나름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문재, 지금 여기가 맨 앞. 문학동네. 2016년 1판 10쇄. 142쪽.

 

'지금 여기'라는 말에서 자신이 있는 자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다. 현재의 장소.

 

'맨 앞'이라는 얘기는 뒤로 가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맨 앞이다. 누가 낸 길을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길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이 바로 내 상황이다.

 

단지 시간적, 공간적 위치가 아니다. 우리는 삶에서 늘 맨 앞에 있다.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이 바로 맨 앞이다. 그 맨 앞임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맨 앞'은 바로 '맨 끝'이 된다.

 

끝은 곧 시작이다. 나아가야 하므로. 끝에서 뒤돌아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내가 '정면'을 볼 수밖에 없다. 눈은 정면을 향하고, 발은 정면을 향해 걸어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손은? 앞뒤로 흔들리지만 손은 다른 누구와 함께 맞잡고 가야 한다. 손은 옆으로 함께 해야 한다.

 

(이 시집에서 '발'과 '손'이 나온다. 시집에 나온 손과 발의 의미를 빌리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삶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 자꾸만 뒤로 가고 싶을 때, 그때 이 시를 읽어 보자. 그러면 우리 삶에서 뒤는 없다는 것, 우리는 늘 맨 끝에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딛고 나갈 수밖에 없음을, 우리가 맨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맨 앞임을 인식하게 된다.

 

다만, 홀로 가서는 안 된다. 함께 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 몸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손이 옆으로 뻗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와 함께 맞잡고 갈 수 있게. 그렇게 가자고, 가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에서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늘 맨 끝에 있으므로, 그 맨 끝이 맨 앞이므로. 포기하지 않고 정면을 바라보고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시다.

 

덧붙이면 이 시집에 마음에 드는 시들이 참 많았다. 계속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시들, 또 해설에서 이야기했듯이 인용할 수 있는 경구(아포리즘)가 될 수 있는 시구절들도 많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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