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대화 - 시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 이성복 대담
이성복 지음 / 열화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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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성추문이 끊이지 않고 불거지고 있다. 예전부터 있어왔던 이런 성추문들이 쉬쉬 감추어져 있었다가 어떤 계기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그간 성에 관해서 관대하게 대했던 풍토도 있었다고 할 수 있고, 문인들이란 본래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도 이런 풍토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인의 삶이 기행적이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냐 하면 그건 아니다. 문인들의 기행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인들의 기행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 나와서 그의 기행이 말 그대로 사회적 일탈행위로 처벌받지 않고 기행으로 인식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예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문인들의 기행이 좋은 작품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문인은 문인이 되기 위해서는 온갖 경험을 다 해봐야 한다고 못된 행위까지 강요(?)했다고도 하는데... 그런 행위와 좋은 글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이성복의 이 책을 읽고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성복은 이런 기행과는 거리가 멀게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시는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범으로 존재했고, 숱하게 많은 시인지망생들에게 읽히고 외워지고 베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그의 시세계에 관해서 대담을 한 기록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1983년 대담으로 시작으로 2014년 대담이 마지막으로 실려 있다. 그렇게 가진 대담들을 이성복 자신이 약간 손보아 엮어놓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성복의 시세계를 조감할 수 있으며, 최근 불거진 문단의 성추문에 경각심을 불어넣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작은 제목이 '사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대담 중에 그의 말에서도 확인이 되는데...

 

"젊어지려면 끊임없이 자기 반성이 필요하죠. ...  문학의 본질은 정신의 젊음에 있어요. 문학은 젊음에 의해 태어나고, 젊음을 유지하게 해요. 그러려면 항상 낮은 곳에 있어야 해요." (123쪽)

 

낮은 곳에 있다는 것, 그것은 막 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낮은 곳에서는 온갖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것이다 저것이다 구분하지 않고 자신에게 온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살펴야 한다.

 

낮아진다는 것은 비운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우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우려면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비울 수가 없게 된다. 오로지 채우려고만 한다. 그렇게 채우려고만 하는 행위, 그것이 곧 추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작품이 되기 힘들다.

 

그의 말에서 요즘 문단 성추문을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이 시를 쓰는 이유가 인생 때문인데, 그 사람들은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시를 위해서 인생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들어." (171쪽)

 

그 사람들이 성추문을 일으킨 문인들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시를 위해서 인생을 사는 듯한 사람들을 확대하면 성추문을 일으킨 문인들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마치, 그런 일이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는 듯한 말을 하는 사람들. 전혀 아닌데...

 

시란 무엇인가? 결국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성복에게 시는 곧 '윤리'다. 윤리가 되어야 한다. 여기에 추문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의 시에서 비루하고 비참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은 인생의 참 의미를 찾기 위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런 삶을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의 끝까지 가게 하는 시, 그런 시를 이성복은 쓰고자 한다.

 

"시인은 사람들 멱살을 잡아서 그들이 자꾸 안 보려 하는 걸 억지로 보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204쪽)

 

여기에 어떻게 추문이 끼어들겠는가. 오히려 인생에 대한 통찰, 윤리만이 작동할 뿐이다. 이런 시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시를 쓸 사람, 그가 바로 이성복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이성복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다. 거의 30년에 걸친 대담들이 실려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세계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따라서 대담 연도 순으로 배치된 이 책의 글들을 읽으며 이성복의 시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성복의 시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의 시는 낮은 곳에서 세상을 담고 있는 그릇이라고 보면, 그 그릇에 담긴 그의 시는 어둠과 같다. 어둡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오래 보아야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보도록 경계선을 보여준 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 책은.

 

마지막으로 이성복에게서 시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어떤 존재였는가를 들어보면...

 

"예술가란 대속자(代贖者), 아픈 사람보다 더 아파하고, 아픈 사람 자신도 모르는 아픔을 대신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277쪽)

 

세상은 살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이런 시인들이 있어서 세상은 살 만한지도 모른다. 소수의 일탈자들을 보기보다는 이런 시인들을 찾아 그들을 우리 곁으로 불러오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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